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94화 (194/316)

194화

“저는 이번 도전 멘토단에서 가장 우수한 활동을 했던 조에게 해외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강 대표님의 조가 최우수조로 뽑힌 건 두말할 것도 없고요. 대표님의 조원들은 벤처 창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홍콩에 세계창업박람회가 열린다는 것을 듣고 참석을 추진해보려 했습니다.”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 도움도 되고,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되겠군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정우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창업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티켓과 숙박할 호텔까지 모두 알아 놨는데 이렇게 일이 진행되어서 참 안타깝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애쓰신 마음이라도 고맙게 받겠습니다. 어찌 됐든 총장님과 학교 측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니 학생들도 불만은 없을 겁니다.”

‘해외에 나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따로 시간을 낼 심적인 여유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됐어.’

수혁은 해야 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외국을 나갈 필요를 못 느끼고 있었다.

“대표님이랑 학생들이 열심히 활동해서 얻은 보상인데 가지 못하게 되었다니 정말 유감입니다.”

정우는 자신의 일처럼 아쉬워했다.

“저는 오늘 회장님과 총장님을 뵙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학생들 입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진 않지만 나중에 또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올여름이 안 되면 겨울에라도 갈 수 있도록 조치해 보겠습니다. 대표님이야 시간만 되면 언제든지 외국에 나가실 수 있지만 학생들을 생각하니 면목이 없네요.”

경률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답답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저 형님, 괜찮으시다면 대표님과 학생들을 우리 회사에 보내 견학을 견학시켜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자네 회사에?”

“네. 취업박람회처럼 거창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진 않지만, 일본의 명문대 학생들이 종종 찾아오곤 하거든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ANA그룹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회사라 구색을 갖추기에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보통 회사 견문이라 하면 공장 설비나 생산 공정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기업인 ANA를 견학 오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수혁은 질문을 했다.

“통신 장비를 비롯한 간단한 제품들을 생산하는 자회사가 있기는 하지만, ANA그룹은 기본적으로 통신 사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보통의 회사 견학이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될 겁니다.”

“어떻게 한다는 건가?”

“관심이 있으신가 보군요?”

정우는 빙긋 웃으며 이경률 총장을 쳐다봤다.

“들어 보고, 프로그램의 취지와 부합만 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봐야겠지.”

그는 정우의 제안이 취업박람회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3박 4일로 일정을 잡아서 하루 이틀 정도만 견학을 하고 남은 날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관광을 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보상 차원으로 보내 주는 건데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니까. 흠, 그런데 이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네.”

경률은 뭔가 생각이 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 말씀이십니까?”

“멘토단에 배정된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도쿄에 있는 자네 본사 주변에는 고급 호텔들밖에 없지 않은가? 학생들이 가게 된다면 8월 20일경에 출발할 텐데 그때면 아직 성수기라 더 비쌀 테고 말이지.”

“뭘 그런 걸 걱정하십니까? 한국대에서 오케이만 한다면 체류 비용은 제 사비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은 교통비랑 활동비 정도만 챙겨 주세요.”

“허, 참……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구먼.”

경률은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그럴 땐 그냥 마음 편히 받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도 이번 기회에 대표님과 연을 쌓을 수 있게 되니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거 가만 보니 내가 아니라 대표님을 보고 내린 결정이구먼.”

정우의 배려에 기분이 좋아진 경률은 넉살을 부렸다.

“저희 때문에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일로 바쁘실 텐데 괜히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수혁은 회사를 경영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던 터라 갑작스러운 일본행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회사 일로 복잡해지셨을 머리를 이번 기회에 식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제안한 거지, 꼭 그렇게 하자는 말은 아니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저는 당연히 감사하지만 체류 비용도 지원받고 본사에 초대까지 받는 게 과분한 듯 보여서 꺼낸 말이었습니다.”

“대표님 말씀도 일리가 있긴 합니다. 김 회장, 정말 괜찮겠어?”

수혁의 말을 들은 경률은 공감을 표시했다.

“어차피 8월 중에 동경대에서 학생들이 오기로 예정돼 있던 차라 전혀 부담되지 않습니다. 일본 학생들도 지원해 주는데 한국 학생들에게는 왜 못 해 주겠습니까? 제가 비록 일본에서 나고 자랐긴 했지만, 고국에 대한 애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음,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군.”

경률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의 진심, 잘 들었습니다. 저도 기왕 지원해 주시는 거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혹시 일정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쇼. 대표님의 편의에 맞춰 스케줄을 짜 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대 일원으로 가는 거니 편의를 봐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일정에 맞추겠습니다.”

수혁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안 갈 수가 없잖아?’

수혁은 왠지 모르게 정우의 페이스에 말려든 느낌이 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그의 화법은 상대로 하여금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내일 중으로는 학생들에게 공지를 해야겠군요.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단장 자격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따로 인솔자를 구하는 것보다 그편이 여러모로 나아 보여서요.”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경률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줬다.

“괜찮다면 동경대 학생들과 같이 견학을 하는 건 어떠십니까? 서로 교류를 함으로써 배우는 게 적지 않을 겁니다.”

“난 찬성일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들끼리 비교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타국 학생들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 해야 발전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게 회장님한테도 더 좋겠습니다. 각자 따로따로 오면 일이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하하, 왠지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군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우는 앞서 말한 좋은 의도도 있었지만 수혁이 언급한 대로 일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그런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대화가 끝났으면 일어날까요? 제가 잠시 후에 약속이 있어서요.”

시계를 확인한 총장은 황급히 일어나 외투를 챙겨 입었다.

“마침 저도 다음 일정 때문에 일어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정우는 수혁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나중에 일본에서 뵙겠네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형님, 먼저 가 보겠습니다.”

“어, 또 보자고. 대표님, 세부 일정은 직원을 통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들어들 가세요.”

약속에 늦은 경률은 배웅할 겨를도 없어 보였다.

‘세상사는 게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다니까? 이런 곳에서 강수혁 대표를 만나다니……. 일본에 오게 되면 이야기를 제대로 해 봐야겠어.’

사람들과 헤어지고 학교를 빠져나온 정우는 멀어져 가는 수혁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 * *

시간은 흘러 8월 말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수혁은 학생들과 함께 나리타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객기 안의 모든 것들이 다 낯설었다.

“일본에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수혁에게 물었다.

“아니요, 해외여행은 처음입니다.”

수혁은 비록 단장이긴 하나 학생들과 연배가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 존대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정말요? 와, 의외네요? 전 단장님이 해외여행 경험이 많으실 줄 알았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죠. 이제 출발하려나 보네요?”

짧은 안내방송이 끝나자 비행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는 첫 비행 때 엄청 떨었는데 긴장 안 되세요?”

“뭐, 아무렇지도 않네요.”

40에 육박하는 정신력을 가진 수혁은 첫 비행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저 바깥 풍경만 바라보며 언제 도착할지 기다릴 뿐이었다.

* * *

‘벌써 도착인가? 하늘에서 보는 풍경은 이렇구나.’

2시간 하고도 20분쯤 지나자 창문 밖으로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고, 얼마 있지 않아 무사히 착륙했다.

“입국 수속 밟으면 먼저 가지 마시고 근처에서 기다리세요.”

“네.”

공항에 도착한 수혁은 학생들을 인솔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원은 다 온 것 같고 이제 통역사만 기다리면 되나?’

그는 8명의 단원들을 모두 체크한 뒤 벤치에 앉아 통역사를 기다렸다.

“혹시, 한국대에서 오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수혁네 일행들을 발견하고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소현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생활비를 벌기 위해 통역 일에 지원했다.

“강수혁입니다.”

수혁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 먼저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호텔 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버스가 온다고 들었는데요?”

“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잠깐만요. 다들 주목하세요. 여기 계신 분은 우리의 통역을 담당해 주실 선생님입니다.”

수혁은 학생들에게 소현을 소개시켜 주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은 소현에게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3박 4일 동안 통역을 맡은 김소현입니다. 일단 기사님께서 기다리시니까 버스로 이동하겠습니다.”

소현은 수혁과 학생들을 데리고 버스에 탑승했다.

* * *

‘과연…… 일본이 선진국은 선진국이구나.’

한참을 달려 도쿄 시내에 진입한 버스는 호텔로 향하고 있었고 수혁은 창밖에 보이는 화려한 빌딩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들은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기다렸다.

“단장님을 제외한 학생분들은 2인 1실을 쓰게 될 겁니다. 카드는 한 장뿐이니까 잘 보관해 주세요.”

체크인을 마친 소현은 사람들에게 카드를 나눠 주었다.

“저녁 식사는 1층 카페테리아에서 할 수 있는데,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개장하니까 원하는 시간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면 됩니다.”

“저, 단장님. 저녁 먹고 주변을 좀 걸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아, 잠시만요. 선생님,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죠?”

수혁은 적절한 귀가 시간을 설정하기 위해 소현에게 질문했다.

“오전 10시에 ANA 본사에 도착해서 회사를 구경하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됩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내일 적어도 9시 40분에는 출발해야 되니까 12시까지는 호텔로 돌아오셔야 됩니다. 그리고 되도록 다 같이 다니시고,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멀리까진 가지 마세요.”

‘친구들이랑 엄청 돌아다니고 싶을 거야.’

그는 학생들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 19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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