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95화 (195/316)

195화

“와, 대박이다. 저녁은 후딱 먹고 시내 구경이나 하자.”

“그럼, 일단 호텔 먼저 돌아볼까? 나 이렇게 큰 호텔은 처음 봤어.”

학생들은 저마다 들뜬 감정을 드러냈다.

“단장님, 괜찮다면 제가 학생들과 함께해도 될까요? 제대로 구경하려면 지리를 아는 사람이 하나쯤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소현은 인도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으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원해서 하는 건데요 뭘. 들어가서 푹 쉬세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은 꾸벅 인사를 한 뒤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회장님이 신경 좀 쓰셨는데? 이 호텔이 5성급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방은 1박 하는 데 얼마나 들까?’

그는 정우의 배려로 스위트룸을 사용하게 되었다.

‘와, 거실부터 침실, 응접실까지 없는 게 없잖아? 오늘은 씻고 그냥 푹 쉬자.’

수혁은 일본에 오기 전에 밤잠을 줄여가며 일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이야, 최고네!”

욕실에 들어온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웬만한 방보다 더 넓은 욕실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특히 압권인 것은 통유리 옆에 붙어 있는 거대한 욕조였다.

‘이게 입욕제인가 본데? 어떻게 쓰는지 한번 볼까?’

그는 따뜻한 물을 튼 뒤 적당량의 입욕제를 욕조 안에 집어넣었다. 참고로 언어 이해 프로그램 덕분에 입욕제 겉면에 적힌 일본어 설명을 읽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와, 정말 끝내준다.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한번 와야겠다.’

수혁은 욕조에 몸을 기댄 채 창밖으로 보이는 아사쿠사의 밤 풍경을 감상했다. 아사쿠사는 빌딩이 가득한 여타의 도쿄 거리와 달리 신사, 불상, 절 등이 있어 일본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띠리리리리-

“여보세요?”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혁은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단장님, 학생들이랑 막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소현은 예정된 12시보다 한 시간 빠른 11시에 호텔로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내일 아침을 먹고 9시 40분까지 호텔 로비로 모이라고 공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애들에게 잘 전달할게요. 그건 그렇고 같이 나가셨으면 좋을 뻔했어요. 아사쿠라 거리를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볼 만한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재잘재잘 떠들었다.

“직접 본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제 방에서도 웬만한 것들은 다 보여서 아쉬운 마음은 없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네, 단장님. 안녕히 주무세요.”

용건을 마친 소현은 전화를 끊었다.

‘잠깐 이렇게 눈 좀 붙이고 있자.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아.’

수혁은 그대로 욕조 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 * *

“단장님, 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인원 파악을 마친 소현은 수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원래 통역 일과 일정 관리만 하면 되었지만, 어느새 수혁의 곁에서 보조하는 게 일상처럼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버스로 이동하죠.”

호텔 정문 앞에는 일행들이 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견학할 ANA 본사는 도쿄의 중심가인 롯본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롯본기는 흔히 유흥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여러 IT 기업들이 입점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외에도…….”

소현은 학생들에게 일본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틈틈이 알려 주었다.

‘도착했군.’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ANA 본사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소현의 안내 아래 차례대로 하차했다. 회사 입구에 정차한 버스 앞에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혁을 발견하곤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ANA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ANA인베스트먼트의 나가토모 전무입니다.”

“단장님은 이분은 ANA인베스트먼트의 나가토모 전무라고 하십니다.”

소현은 수혁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선생님, 저에게는 굳이 통역을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어를 배워서 어느 정도 할 줄 알거든요.”

“아, 네!”

“안녕하세요. 한국대학교에서 온 강수혁 단장입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ANA 본사에 오게 돼서 영광입니다.”

수혁은 사람들 앞에서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뽐냈다.

“와, 일본어 엄청 잘하신다.”

“작년에 우연히 독일어 강좌를 같이 들은 적이 있는데, 독일어도 원어민 수준이셔.”

“도대체 못 하시는 게 뭘까?”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군요. 단장님을 잘 모시라는 회장님의 특별지시가 있었는데 과연 보통 분이 아니시네요.”

나가토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워들은 풍문으로 어설프게 하는 겁니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일단은 밖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 동경대에서도 학생들이 왔는데 들으셨나요?”

“네, 회장님께 전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동경대 학생들과 같이 견학하시죠.”

“동경대 측에서는 괜찮답니까?”

“그쪽은 인솔자 없이 학생들끼리 와서 협의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나가토모는 수혁을 비롯한 사람들을 데리고 회사 안으로 향했다.

“우리 부서는 3층에 있습니다. 그 전에 ANA가 자랑하는 기업 현황 스크린을 보고 가시겠습니다.”

본사 1층에는 족히 200인치 정도 돼 보이는 스크린이 있었는데 화면에는 주요 기업들의 시가 총액, 자산 규모 등과 같은 지표들이 세계지도 형태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길 보시면 아시겠지만, 국가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이 지도에 표시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는 아무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

“써져 있는 수치들은 어디서 확인하신 건가요?”

수혁은 소현이 학생들에게 통역해 주는 동안 나가토모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수치들은 우리 부서의 직원들이 전 세계 회사들의 기업 정보를 조사해서 올린 것들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업데이트를 하니 꽤나 정확할 겁니다.”

나가토모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쪽을 보시면 각 지표에 따른 전 세계 TOP 10 기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 오른편에는 기업들의 순위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송이 우리나라 최고임은 분명하지만 세계적인 기업들과는 격차가 어마어마하구나. 이런 걸 계속 보다 보면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동기부여도 될 것 같아.’

수혁은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세미나실로 이동하겠습니다.”

나가토모는 한국대 학생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전무님, 동경대 학생들이 도착했습니다.”

나가토모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을 발견한 직원은 그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일단 회의실에 대기시켰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회의실을 세미나실로 쓰려고 했거든요.”

“알겠습니다.”

직원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나가토모는 학생들과 함께 세미나실로 천천히 이동했다.

* * *

그 사이, 회의실 안에는 동경대 학생들이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토, 한국에서 학생들이 오는 게 사실이야? 난 우리끼리 하는 줄 알았는데....... 좀 실망인데?”

“갑자기 외부인이 참여하는 게 싫은 건 매한가지지만 어쩌겠어? 마사토모 회장님의 지시라는데.”

사토라 불리는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하는 멤버들로 ANA에 견학을 신청하고 찾아왔다.

“그래도 네가 이야기했으면 일정을 새로 잡아 주지 않았을까? 너희 아버지랑 ANA 회장님이랑 많이 친하다면서.”

“후, 그러게 말이다. 나도 오늘 갑자기 들은 거라 아버지께 연락드릴 겨를이 없었어.”

그의 아버지는 ‘아이소프트’라는 일본 중견기업의 오너였는데, 가능성을 본 정우가 거액을 투자한 것을 인연으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너희 회사에서 만든 게임 진짜 재밌더라.”

“맞아, 나도 친구들이랑 시간 날 때마다 하는데 진짜 잘 만든 것 같아.”

사토와 함께 온 남자들은 회사에서 만든 게임을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소프트는 콘솔 게임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업으로 최근에 내놓은 제품이 히트하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모두가 한창 칭찬을 이어 가는 동안, 나가토모가 한국대 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평소에는 회의실로 쓰는데 오늘만 특별히 세미나실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아, 잠깐만요. 사토 상, 인사하시죠. 한국대에서 오신 강수혁 단장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사토 에이지입니다. 편하게 사토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사토는 떨떠름한 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강수혁이라고 합니다.”

“사토 상은 동경대 학생들이 속한 동아리의 회장입니다. 두 분께서 학생들을 대표하는 만큼, 서로 친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들은 말과 달리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네? 표정 관리를 하나도 못 하고 있잖아?’

수혁은 그의 얼굴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자리에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확인하고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가토모는 어느새 단상 위에 서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통역사께는 따로 마이크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현은 원활한 통역을 위해 마이크를 지급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진로 탐색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특히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학생들은 좀 더 집중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국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니 긴장이 되는군요. 이번 기회에 서로 교류도 하고 많이 배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착석한 것을 확인한 나가토모는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서두발언을 했다.

말을 끝맺을 때마다 통역을 위해 기다려 주었기에, 한국대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ANA라 하면 보통 통신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룹 내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ANA인베스트먼트는 세계에 있는 전도유망한 기업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 유수 기업들도 투자대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가토모는 자신이 속한 부서의 업무를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후, 계속 흐름이 끊기니까 짜증나네? 이러다가 세미나만 듣고 끝나겠어.’

사토는 발언 중간 중간에 소현이 통역을 하는 것에 대해 거슬려 했다. 그와 회원들은 창업에 관한 것 외에도 개인적으로 질문할 거리를 잔뜩 준비해 온 상태였다. 그러나 통역으로 인해 예상보다 세미나 시간이 길어질 듯 보이자 조바심이 들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전도유망한 회사를 발굴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기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가토모는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단 학생들과 소통을 하고 싶어 했다.

- 19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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