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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97화 (197/316)

197화

“단장님 진짜 멋지지 않았어? 일본어도 엄청 잘하시던데?”

“중간부터는 선생님이 통역해 주셔서 알게 됐는데 쓰는 단어나 문장들이 기초 회화 수준은 아니셨어.”

“난 프로그램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사업을 할지 고민해 봐야겠어.”

학생들은 저마다 세미나에 대해 호평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 12시인데 점심 식사를 하셔야죠? 회사 내에 식당이 있는데 다 같이 이동하실까요?”

“점심 식사 후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수혁은 나가토모에게 물었다.

“제가 알기로 회사에서의 일정은 본사 전체를 둘러보는 것이 남았는데 그건 내일로 예정되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아, 식사 후 호텔로 돌아가시게 될 건데 저녁에는 근처 공연장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이걸 받으시죠. 회장님께서 특별히 마련해 주신 공연 티켓입니다. 사토 상도 받으세요.”

“공연장이 다르네요?”

사토는 티켓을 살펴보며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편의를 위해 호텔 부근에 위치한 공연장으로 예약하느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내일 또 볼 텐데 굳이 같은 곳에서 관람할 필요는 없지요.”

수혁은 따로 보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아 했다. 그러자 사토는 얼핏 불쾌하다는 표정을 살짝 내비치며 말을 꺼냈다.

“전무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이들을 데리고 따로 점심을 먹어도 될까요?”

“가능하긴 한데 어디서 드시려고요?”

“마츠코츠시에서 먹으려고요. 거기 사장님이랑 안면이 있는데,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굉장히 좋은 음식점으로 가시는군요. 저도 이름은 들었지, 아직 가 보지 않았습니다.”

나가토모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반응을 보였다. 사토는 오늘 회원들에게 한턱내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에 식당을 미리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너희들은 사내식당에서 실컷 먹어라. 우리는 마츠코츠시 가서 너희는 구경도 못할 것들로 먹을 테니까.’

사토는 수혁을 흘겨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알기로 마츠코츠시가 미슐랭 스타를 받은 거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원래 예약하기 어려운데 우리 아버지랑 사장님이 서로 친하셔서 배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잘됐네요. 그런데 단장님과 한국대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하군요. 사내식당도 음식들이 맛있지만 마츠코츠시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데 말입니다.”

나가토모는 한국 학생들을 돌아보며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가고 싶지만…… 저도 용돈을 받는 처지라서 사 드리기 어렵겠네요.”

“굳이 얻어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내식당으로 충분하니 가서 맛있게 드세요.”

‘쳇, 조금이라도 질투를 할 줄 알았는데 뭐가 저리 무덤덤해? 어? 뒤에 있는 애들이 눈치챈 모양인데?’

수혁으로부터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실망하던 사토는 단원들을 보며 고소를 지었다.

“동경대 학생들은 우리랑 같이 식사를 안 하려나 봐? 보니까 미슐랭 인증을 받은 식당에 간다고 하는데?”

“미슐랭 가이드에 올라간 식당에 간다고요?”

“진짜요? 와, 부럽다. 우리도 가면 좋을 텐데…….”

소현이 옆에서 대화 내용을 일러주자 학생들은 저마다 부러운 감정을 드러내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긴, 멀리서 왔는데 일본에서는 특별한 걸 먹고 싶을 거야.’

수혁은 별 생각이 없었지만, 함께 온 학생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시켜 주고 싶었다.

“사토 씨, 실례가 안 된다면 동행해도 될까요? 우리 단원들도 마츠코츠시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괜찮겠어요? 여기는 그저 그런 초밥집이 아니라서 가격이 꽤나 비싸거든요. 그리고 자리가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너무 무리하시진 마세요, 단장님. 미슐랭 정도는 아니지만, 사내 식당도 꽤 괜찮습니다. 적어도 1인 1만엔 이상은 나온다고 들었는데 부담스러우실까 걱정되네요.”

나가토모는 학생들이 식비로 무리한 지출을 할까 봐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학교에서 준 활동비가 있어서, 조금 빠듯하게 쓰면 1만엔 정도는 부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혁에게는 해외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가 있었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굳이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둘러댔다.

“그거 다행이네요. 사토 상, 조금 전에 사장님을 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흠, 말씀드리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네요. 잠시만요. 전화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웬일로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지?’

수혁은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전무님, 다행히도 1시쯤이면 자리가 날 거 같다고 그러시네요.”

12시부터 1시는 점심시간이라 예약이 꽉 찬 상태였던 탓에 수혁네 일행은 조금 기다려야 했다.

“사토 상, 고맙습니다.”

수혁은 사토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맙긴요. 당연히 도와드릴 수 있는 거죠, 뭐.”

“곧 예약 시각 아니신가요? 우리는 알아서 갈테니 먼저 가셔도 됩니다.”

“식당이 근처 롯본기에 있긴 하지만 지리를 모르시지 않습니까? 같이 가시죠.”

“아, 네.”

수혁은 싱글벙글대는 사토의 행동이 미심쩍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야기가 잘된 것 같으니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시고, 공연 관람도 잘하시길 바랍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나가토모는 문제가 해결된 걸 확인한 후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우리도 초밥 집에 간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12시 40분쯤에 출발할 예정이니 잠깐 쉬고 계세요.”

“네, 단장님. 야, 야 우리도 같이 간대!”

“잘됐다. 가서 실컷 먹어야겠다.”

학생들은 식당에 관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이 피었다.

“자, 이만 나가시죠. 방금 연락이 왔는데 자리가 났다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다들 옷 입고 나갈 준비 하세요.”

수혁은 단원들과 함께 그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단장님, 저기 사람들 줄 서 있는 거 아니에요?”

“사장한테 미리 이야기해 놨으니까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사토 상, 오셨습니까?”

입구에 서 있던 직원 하나가 사토를 발견하고는 아는 체를 했다.

“제가 말씀드린 건 다 세팅됐나요?”

“훗, 걱정하지 마십쇼. 들어가시면 좋은 구경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리가 났으니 이쪽으로 오세요.”

“네, 다들 들어가죠.”

수혁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학생들을 데리고 식당 안으로 향했다.

“사토 상과 일행 분들은 여기에 앉으시면 됩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어이, 여기로들 오라고.”

사토를 비롯한 동경대 학생들은 요리사가 있는 바 형태의 테이블에 일렬로 앉았다.

‘남은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

일본 학생들이 착석한 지 5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직원은 자신의 일을 하느라 바빴고, 수혁과 단원들은 홀 안에 있는 대기석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저, 우리 자리는 언제 나옵니까?”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금 막 자리를 치우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딴청을 피우던 직원은 수혁의 부름을 듣고 그제야 이들에게 집중했다.

‘홀에서 음식만 나르고 있었으면서 거짓말을 하네? 역시, 저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모양이군.’

수혁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훗, 마츠코츠시의 점심 메뉴는 1만엔이 아니라 1만 5천엔이라고. 게다가 특실에서는 무조건 디럭스 세트를 시켜야 하는데 1인당 자그마치 2만 5천엔이라 그래도 나오는 수밖에 없을 거다.’

사토는 수혁을 물 먹이기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직원과 작당하여 함정을 팠다. 일부러 가장 비싼 방으로 준비하도록 수를 써 둔 것이다.

“여긴 어디죠?”

화려하게 꾸며진 방으로 안내된 수혁은 직원에게 물었다.

“이곳은 귀빈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특실입니다. 마츠코츠시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1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손님께서는 당일날 문의를 하셨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쪽으로 모셨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인원이 10명이라 홀에서 먹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잘됐습니다. 다들 앉으세요. 여기서 먹고 갑시다.”

“저, 그런데 이 방을 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코트를 벗고 자리에 앉으려던 수혁은 직원을 쳐다봤다.

“우리 가게의 원칙상, 특실을 사용하는 고객님들은 디럭스 세트를 주문하셔야 합니다.”

“그래요? 메뉴판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직원은 두 손으로 공손히 메뉴판을 건넸다.

‘어쩐지, 순순히 말을 들어줄 리가 없지.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식당에 데려온 거구나.’

가격을 확인한 수혁은 사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손님, 죄송하지만 다른 자리는 모두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특실을 이용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나요?”

“그게, 간혹 그냥 나가시는 손님이 있어서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수혁의 당당한 태도에 직원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사람 수에 맞춰서 디럭스 세트로 주세요. 그리고 물어볼 게 있는데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까?”

“보통은 만족들 하고 가시는 편이긴 합니다만…….”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비싼 가격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기에, 기왕 온 거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양 자체는 보통 사람 기준으로 적당한 수준이지, 배가 가득 찰 정도는 아닙니다. 대신 재료의 질과 밥맛이 무척 뛰어난 편이라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디럭스 세트 말고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으면 몇 개 보내 주세요. 가격은 신경 안 쓰셔도 되니까 가장 맛있고 질 좋은 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츠코츠시가 자랑하는 특별 메뉴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으니 편히 쉬고 계시면 음식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주문을 받은 직원은 방문을 닫고 나갔다.

“저, 단장님. 예산은 충분한가요?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여기는 제가 알아서 낼 테니까 선생님은 맛있게 드셔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수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현을 안심시켰다. 잠시 후, 디럭스 세트와 잘 조리된 고래 고기가 상 위에 차려졌고, 학생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한편, 사토와 동경대 학생들은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다 먹었지? 그만 일어나자.”

“고마워, 사토. 네 덕에 잘 먹었다.”

“와, 근데 진짜 맛있지 않았어? 아까 요리사님이 주신 것 중에…….”

‘뭐야? 벌써 나갔나?’

대화를 하며 나갈 채비를 하는 친구들과 달리, 사토는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저기, 아까 왔던 한국 학생들은 어디 있습니까?”

사토는 직원을 불러 물었다.

“사토 상이 말한 거랑 완전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현재 한국인들은 특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방금 가격표를 봤는데 못해도 30만엔 이상은 나올 거 같더군요.”

“뭐라고요?”

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사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토 상, 가시려고요? 이렇게 좋은 음식점을 소개해 줘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주 포식하고 있습니다.”

잠깐 화장실을 가려고 나온 수혁은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사토를 발견하곤 선선히 웃었다.

“크흠, 우린 가 볼 테니까 수고하세요.”

그러나 사토는 수혁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황급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쯧쯧, 자존심 상할 게 뭐 있다고 저러지? 참 못났네, 못났어.’

수혁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 19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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