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02화 (202/316)

202화

“저를 찾는다고 하셔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왔네요.”

“급한 사안은 아니라 내일 뵙고 이야기해도 괜찮았는데 직원이 잘못 전달했나 봅니다.”

유신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얼굴을 보니 나쁜 소식은 아닌 것 같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엘마트 관련해서 희소식이 있습니다.”

“그래요? 말씀해 보세요.”

“지난 8월 말에 서울에 있는 11개 지점에서 온라인 판매를 개시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습니다. 수도권 지점까지 확대를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고요.”

“잘됐네요. 어차피 정리하고 나올 사업이긴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서 나쁠 건 없죠.”

수혁은 인상적인 보고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회장님, 엘마트 측의 말로는 온라인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오프라인과 대비해 볼 때 15퍼센트 수준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지난 6월에 2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성장이라는 거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수익률은 더 높아질 거고, 어느 순간에는 오프라인에서 창출되는 수익도 능가하게 될 겁니다.”

“저, 회장님.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외람된 줄은 알지만, 온라인 마트 사업을 계속 유지하면 어떻겠습니까?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의 매출분 중 수수료로 받을 금액만 10억가량 됩니다. 지점이 확대되는 것을 고려하고 성장세만 지속된다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 온라인 마트 사업이 많이 아까우십니까?”

“지오쇼핑에서 진행한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점점 더 잘되다 보니 욕심이 나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라면 굳이 타 유통 업체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유신은 수혁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작은 것을 쫓다가 큰 걸 잃을 수 있습니다. 10억, 20억이 적은 돈이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지오쇼핑을 만들었을 때 기대한 정도의 수익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건비 부문에서 돈이 많이 나가서 그러지 시스템이 개선되고 판매량이 늘면 지점 하나당 들어오는 수익이 엄청나게 늘 수 있는 사업입니다. 게다가 우리 회사 이름도 함께 광고로 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그만두면 고객들이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수혁의 말을 들었음에도 유신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후,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온라인 마트 사업은 11월 중에 엘마트 측에 전부 인계할 테니 더 이상 이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두도록 하죠. 그리고 광고는 내달 중으로 전면 중단하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좀 과했던 것 같습니다.”

유신은 수혁의 얼굴이 굳자 발언에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이게 다 회사에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지요. 어찌 됐든, 온라인 마트가 잘되는 건 기쁜 소식입니다. 제가 오늘 세게 말한 건 마음에 두지 마세요. 빠른 시일 안에 사업을 포기한 게 오히려 우리 회사에 큰 득이 되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네, 회장님.”

수혁은 행여 그의 마음이 상했을까 다독여 주었다. 이후, 소소한 안건을 두고 간단히 대화를 나눈 이들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온라인 마트가 잘되고 있는 건 우리한테는 희소식이야. 이젠 본격적으로 움직여야겠어.’

그는 유신이 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석호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찻집에서 본 이후 처음으로 연락하는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회장님께서도 별일 없으시지요?”

석호는 바쁘지 않은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저야 항상 똑같지요. 그것보다, 최근에 엘마트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마트가 크게 화제던데요?”

“점차 수익이 나고 있긴 하지만 화제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수혁은 보통 때처럼 칭찬에는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신문을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한 일간지에서는 지오닷컴과 엘마트를 경제면에 크게 싣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모 교수가 칼럼을 썼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서울 전역에 있는 엘마트에서 온라인 판매를 실시한 이후 고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자 지오쇼핑에 대해 언급하는 언론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긍정적인 기사를 실어 주었지만 유독 만평일보만은 고객 편리라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소상공인과 다른 유통 업체들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업이라며 비판을 하더군요.”

“후, 일송유통에서 귀찮게 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이제 언론까지 우리를 공격하네요.”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만평일보 사주가 이정수 회장의 외갓집 식구라는 걸 생각하면 크게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안사람끼리 서로 돕는 거라고 봐야지, 객관적인 보도로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이경욱 회장의 사모께서 만평일보와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네, 그분의 오빠가 현재 만평일보의 대표이사입니다. 이정수 회장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거지요.”

“정관계를 넘어 언론까지 손에 쥐고 있으니 무서울 게 없겠네요.”

만평일보는 국내 최대의 일간지로, 언론계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회사였다.

“기사 하나하나에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보단, 다른 회사 오너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사업이 더 커질수록 지오쇼핑으로선 좋겠지만 업계 사람들의 질투심은 더 강해질 테니까요.”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연락을 드렸는데요. 혹시, 다음 협회 모임이 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9월 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임 날짜를 물으시는 걸 보니, 뭔가 방법을 찾으신 모양이군요.”

석호는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수혁이 아무 용건 없이 전화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일전에 찻집에서 같이 대화를 나눈 이후로 끊임없이 고민했고,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모임 식순을 짤 때 20분 정도의 짧은 발표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업계 대표님들과 오해를 풀 생각이거든요.”

“음, 검토를 해봐야 되는데…… 생각해보니 협회 총회나 모임이 있을 때 종종 초청 강연이 있기도 했습니다. 과거 사례를 비춰 봤을 때 크게 무리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내심 어떤 대책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나중에 차차 알아가기로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지도 안 좋은 상황인데, 괜히 회장님께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수혁은 협회 모임에서 그를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드는 게 석호의 입장에선 부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자리가 좋다는 게 뭡니까? 명색이 회장인 만큼 그 정도 권한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냥 회원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내용으로만 잘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네, 회장님께서 곤란해지실 만한 상황은 절대 만들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혁은 석호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전화기 너머로나마 감사를 표했다.

“모임 날짜와 식순이 정해지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제공해 주신 기회를 잘 살려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용건을 마친 수혁은 전화를 끊었다.

‘9월 말이라고 했으니까 지금부터 바로 작업에 들어가야겠네. 그건 그렇고, 만평일보 건은 좀 의외인걸? 지오쇼핑은 아직 거대 기업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거지?’

SH를 견제하는 모든 움직임의 배후에는 이명학이 있었다. 그는 친척이나 지인을 만날 때면 강수혁을 모함하느라 바빴다.

‘회장님은 개의치 말라고 하셨지만 가만히 두면 언제 또 곪을지 몰라.’

수혁은 여론이 한번 형성되면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톡톡히 느꼈기 때문에 방안을 모색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벌써 축제 기간이구나.’

9월 중순의 어느 날, 캠퍼스를 걷던 수혁은 학교 곳곳에 걸린 축제 홍보 현수막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기 졸업하게 되면 내년 봄이 마지막 학기가 될 텐데…….’

그는 사업에만 매진하느라 축제를 즐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찬식과 몇몇 동기들이 함께 놀자고 한 적은 있었지만, 매번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내빼곤 했던 수혁이었다.

“이런 젠장,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축제를 개판으로 하는 거야?”

“휴, 말도 마라. 가수랍시고 초청한 사람들 중에 유명 연예인은 하나도 없더라.”

“한국대 출신 선배 중에 언더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나 봐. 후배들이 챙겨 줘야지, 누가 챙겨 주냐고 하면서 학생들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우리 학교 학생회 놈들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다른 학교들 보면 유명 연예인들이 잘만 오는데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곳은 이 꼴이니 참…….”

학생들은 경영대 1층에 붙여진 홍보 포스터를 보며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포스터에는 3일 동안 진행되는 축제 일정이 인쇄돼 있었는데,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초청 공연 라인업에 만족할 만한 연예인이 오지 않자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상하네? 한국대 정도면 톱스타들을 부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텐데 일을 왜 저렇게 처리했지?’

과중한 업무로 바쁜 상황이었지만 대학 생활 중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축제였기에, 수혁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봐봐. 내가 뭐랬어? 우리가 내는 학생회비면 충분히 다른 연예인들을 부를 수 있는데 계속 이런 식이라니까?”

“아는 학생회 형 말로는 한국대가 국립대라 돈이 많이 없어서 어쩔 수 없대. 그리고 선배들을 챙겨 주자는 취지라 사람들도 대놓고 비판은 못하더라고.”

“국립대가 한국대 하나야? 근처에 있는 한국시립대는 매년 유명 연예인들이 오잖아. 너희들한테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알아보니까…….”

“찬식아,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수혁은 열변을 토하고 있는 찬식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어? 네가 여긴 웬일이야? 애들아,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찬식은 친구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수혁에게 다가갔다.

“지금 시간이면 보통 학교에 없는 게 정상이잖아?”

“2주 뒤에 축제라고 해서 정보 좀 알아보려고 왔지.”

“후, 올해 축제도 허접하게 하다 끝날 거니까 너무 기대하지 마라.”

“아까 보니까 사람들이 학생회를 두고 한마디씩 하던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수혁은 진상을 파악하고 싶은 마음에 질문했다.

“크흠, 여기서 말하기 그렇고 좀 걸을까? 경영대 근처엔 학생회 사람들이 있거든.”

“어, 알겠어.”

찬식이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하게 이야기하자, 수혁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조심하는 거야?”

“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으려나…….”

경영대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온 찬식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우리가 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학생회가 한 번도 안 바뀐 건 알고 있어?”

“그랬나? 나야 원체 학교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줄도 몰랐네.”

수혁은 학생회 투표 날이 언젠지 모를 정도로 학생회나 학교 일에는 무관심했다.

- 20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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