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03화 (203/316)

203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너야 뭐, 사업하느라 바쁘니까 학교 일에는 관심을 두기 힘들지.”

찬식은 수혁의 무관심한 태도를 충분히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한 학생회가 계속 투표에서 승리한 게 뭐가 잘못된 거야? 내가 알기로 그런 학교들이 꽤 많은 거로 아는데?”

“현재 학생회 단원들은 다른 후보자가 있었던 2000년을 제외하면 2001년과 올해는 단독으로 나와서 선출된 조직이야. 2년 연속 단독 후보로 나온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뭔가 수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린 점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

“다른 학교들 보면 학생회가 단독 후보로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던데?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수혁은 회귀하기 전에 다녔던 대학에서 한 학생회가 수년간 독점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다른 대학들은 몰라도 한국대 총학생회장은 출세가 보장된 자리야. 유력 정당에서 한국대 학생회장 출신들은 스카우트한다는 이야기 못 들어 봤어?”

“흠, 나야 뭐 정치 쪽에는 문외한이잖아.”

“회장이 되면 최소 유력 정당의 간부가 될 수 있고 국회의원까지 할 수 있는 자리를 누가 마다하겠어. 실제로 1999년까지만 해도 회장 선거에는 적어도 3~4개의 학생회가 도전했고, 분위기도 엄청 치열했었어.”

“입학하기 전 일까지 다 꿰고 있는 거야?”

“나도 최근에 조사하면서 알게 된 일이야. 아무튼 99년까지 난립하던 학생회 후보들이 2000년에 되면서부터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현우의 독주가 계속됐어.”

‘현우’는 현 학생회의 이름으로, 신생 학생회로는 드물게 3회 연속 학생회장이 선출된 조직이었다.

“그래도 잘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문제라도 있어?”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형이 한 명 있는데, 그 형이 지난 학기까지 학생회에 있다가 나와서 내부사정을 다 알게 됐어.”

“그분한테 내막에 관한 것들은 다 들었겠네?”

“응. 들어 보니까, 현우는 원래 작은 봉사동아리였는데 거기 있던 구성원들이 타 동아리로 가서 하나둘 점령을 했나 봐. 2000년도 회장이었던 김수빈이라는 사람이 초창기 멤버였는데, 사이비 종교에 심취했던 모양이더라고.”

“설마…… 사람들을 전도해서 동아리들을 장악한 건가?”

“그렇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현우에서 동원할 수 있는 학생들만 500명이 넘는다고 들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되다 보니까 타 단체에서는 경쟁할 엄두도 못 냈던 거지. 규모부터 차원이 다르니까 말이야.”

찬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들어보니까 보통 일이 아닌데? 그럼 지금 학생회도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거야?”

“김수빈이 나간 후로는 돈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거로 알고 있어. 물론 그 돈의 출처가 어딘지는 너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학생회비를 무단으로 쓰고 있나 보네?”

“맞아. 간부급 인력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 같더라고.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지, 현우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더라도 삽시간에 해명이 되거나 다른 소문으로 대체되곤 했어.”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네.”

수혁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창 학생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그때, 어플이 활성화되더니 수혁의 눈앞에 화면이 떴다.

<히든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퀘스트가 뜰 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일단 수락할 테니까 내용은 나중에 알려 줘.’

<알겠습니다.>

그는 찬식과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퀘스트를 승낙한 후 어플을 종료했다.

“휴, 일단 너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아. 더 개입했다가는 너만 피곤해질 테니 말이야.”

“아니야. 남은 게 있으면 더 말해 줘. 들어 보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줄게.”

“진짜? 그럼 나야 고맙지. 나 지금 그 형 만나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자세한 이야기도 듣고 나쁠 거 없잖아?”

찬식은 수혁의 말에 반색을 드러냈다.

“그래, 바로 출발하자.”

수혁은 축제를 망친 것으로도 모자라 학교를 독점하려는 이들의 행위에 큰 분노를 느꼈다.

‘어딜 가나 암 덩어리들은 꼭 있구나. 다행히 요 며칠 동안 일을 많이 해 놨으니까 잠깐 짬을 내는 건 괜찮을 거야.’

생각을 정리한 수혁은 말없이 찬식의 뒤를 따라갔다.

‘역시, 예상대로 학생회 문제를 해결하라는 퀘스트였어. 벌써 다 왔나 보네? 대학가에 이런 데도 있었구나.’

그는 찬식의 뒤를 쫓으며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던 중 처음 보는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찬식아, 여긴 어디야?”

“이곳이 내가 아까 말했던 형이 사는 집이야. 현재 나를 포함해서 몇몇 사람들이 학생회의 비리를 캐고 있는데, 학교나 대학가 쪽은 듣는 귀가 많아서 중요한 논의를 할 때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고.”

이들이 당도한 곳은 대학가에서 살짝 벗어난 외곽 지역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적했다.

“가자.”

“응.”

찬식을 수혁을 데리고 빨간 벽돌로 지어진 허름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 * *

“형, 저 왔어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야?”

더벅머리를 한 남자는 문을 열자마자 수혁을 보고 대뜸 물었다.

“저랑 친한 친구인데, 믿을 수 있는 애라서 데려온 거니까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수혁이라고 합니다. 찬식이한테 이야기를 듣고 도울 게 있나 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진태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희를 왜 도우려고 하시는 거죠? 찬식이가 친구라고는 했지만 제가 사람을 잘 안 믿어서요.”

진태는 학생회에서 나오는 과정 중에 믿었던 지인들로부터의 배신과 온갖 모함을 겪은 탓에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상태였다.

“이유라고 하기엔 조금 빈약하지만, 저는 단지 대학 축제가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찬식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 일을 해결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거고요.”

“흠…….”

그는 수혁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을 꽉 다문 채 한동안 고민했다.

“저, 내키지 않으시면 다음에 오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미리 언질도 없이 불쑥 집에 찾아온 것도 실례였네요. 전 가 볼 테니 찬식이랑 대화 나누시죠.”

“아니야, 수혁아. 조금 더 있다가는 건 어때?”

수혁은 사건 해결을 위해 굳이 타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불필요한 소모전은 하고 싶지 않아 바로 떠나려 했지만, 찬식이 그를 붙잡았다.

“……들어오세요. 초면인데 제가 무례했던 것 같습니다. 원체 사람한테 많이 데이다 보니까 조금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들어가시죠.”

진태는 아무런 미련 없이 자리를 뜨려는 모습에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는 수혁의 높은 매력 수치가 영향을 끼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름대로 조사를 많이 했나 보네?’

방 안에 들어간 수혁은 화이트보드에 빽빽하게 적힌 글씨들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수혁 씨한테는 어디까지 말씀드렸어?”

“전반적인 것들은 대충 다 알려 줬어요.”

“그럼 이야기가 더 쉽겠네요. 저는 학교에 있는 주요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여 학생회의 비리를 폭로했고, 그 결과 현우에서 쫓겨났습니다.”

“대자보를 붙이셨다고요? 제가 비록 학교 일에 관심이 없기는 하지만, 학생회에 관한 어떤 대자보도 읽은 적이 없는데요?”

주중에는 매일 학교를 나왔던 수혁은 단과 대학마다 설치된 어떤 게시판에서도 그가 말한 대자보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학생회 사람들이 게시된 지 채 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모두 수거해갔습니다. 담벼락이나 건물 벽면에 붙인 것들까지 모두 말이죠.”

“그들이 아무리 게시판을 관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지만 다른 곳에 붙인 대자보까지 건드려도 되는 겁니까?”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 그래도 대자보를 떼가려는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쳐 항의를 해 봤지만, 학교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게시물은 규정에 어긋난다며 오히려 저를 질타하더군요.”

“아무리 한국대가 학교와 학생회의 관리하에 돌아간다고 하지만 학생 개개인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건데 부착하자마자 강제로 뜯어가는 건 너무하네요. 사적인 용도도 아니고, 개선되어야 할 점을 꼬집은 건데. 차라리 학교 행정실에 그런 일들을 직접 말씀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들이 승인 운운하는 걸 오히려 이용하는 거죠.”

“휴, 이건 최근에 안 사실인데 학생처와 교학처가 학생회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각 부서에 학생회의 만행들을 보고하고 면담을 요청했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그렇군요.”

‘학교까지 개입되어 있다면 학생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진태의 이야기를 들은 수혁은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소문을 퍼뜨리는 건 어떻습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문제가 다루어진다면 학교 측에서도 두고 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야기도 해 보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글을 올려 여론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미 학교에는 학생회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모두 묻히고 말았습니다. 되려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최근에는 학생회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상황이라 움직임을 가져가는 게 쉽지 않아. 게시글들은 모두 삭제되고 학교도 저놈들 편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지. 후, 어쩌다가 학교가 이 지경이 됐는지 참…….”

대화를 지켜보던 찬식은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쭉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학생들 몇 명이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네요. 이럴 때는 내부에서 방안을 찾기보다는 외부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괜찮은 방법만 제시해 주시면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태는 처음에 경계하던 눈빛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완전한 해결까지는 장담하지 못해도 학생회 관련된 사안을 이슈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

“잘됐다! 사안이 이슈화가 돼서 학생들이 관심만 가져줘도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될 거야.”

찬식은 들뜬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학생회가 언로를 막고 법으로 협박을 해 온다면, 우리도 똑같이 대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다행히도 신평 법무법인이랑 투데이 서울에 잘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있는데, 오늘 밤에라도 당장 연락을 드려서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할까 하는데 어때?”

수혁은 오래전에 만났던 투데이 서울의 이혜선 기자와 신평의 대표 변호사인 김형석을 떠올리며 말했다.

“학교에서는 일이 커지길 바라지 않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괜히 나서셨다가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습니다.”

진태는 행여나 수혁이 피해를 보게 될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못은 학교 내에 벌어지는 만행들을 외면한 그들에게 있는 거지, 비위 사실을 고발하는 우리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움받는 것을 신경 썼다면 애당초 이 일에 개입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수혁은 진태의 우려 섞인 말에도 담담한 태도를 보여 줬다.

- 204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