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04화 (204/316)

204화

“투데이 서울이면 최근 인터넷 신문에서 많이 보이는 언론사군요. 한국대에 관한 보도를 실어 줄 수만 있으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연결까지 시켜 드릴 수는 있지만, 우리 쪽에서도 보도를 할 수 있게 증거와 증인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가능성이라도 생긴 게 어딥니까? 그동안 참 답답했는데, 수혁 씨 덕분에 체증이 가시는 기분입니다.”

진태는 수혁의 등장으로 인해 학생회에 반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에 대해 감사해하고 있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투데이 서울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법무법인 신평의 대표 변호사님은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쉽게 알 만한 분들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 보이자 수혁의 정체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건 제가 대신 말해 줄게요. 수혁이는 SH에듀케이션과 지오닷컴의 CEO예요. 언급하신 분들은 아마 사업을 하다가 알게 된 사람들일 거예요.”

“한국대에 잘나가는 청년 CEO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수혁 씨였구나. SH를 운영하실 정도면 기자나 변호사님을 아는 게 무리는 아니지.”

찬식의 설명을 들은 진태는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이야기할까요? 사실, 이런 일은 우리끼리 상의하는 것보단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편이 더 낫거든요.”

수혁은 사건을 취재하고 파악하는 데에는 일반인들보단 기자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각에 다시 뵈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전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찬식아, 먼저 갈게.”

“응. 네 일도 아닌데 참여해 줘서 고마워 수혁아.”

“내 모교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나랑 무관하다고 볼 수 없지. 어쨌든 내일 보자.”

수혁은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학교로 돌아와 차를 타고 지오쇼핑 사무실로 향했다.

‘가자마자 기자님하고 변호사님한테 바로 연락을 드려야겠어. 시간 끌어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 마무리 짓자.’

수혁은 액셀을 밟고 차를 빠르게 몰았다.

* * *

“어? 그동안 통 연락이 없으시더니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셨어요?”

“하하, 경황이 없어서 연락드릴 틈이 없었네요. 죄송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한 수혁은 회장실로 들어가 혜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이 식사하자고 연락할 분은 아닌 것 같고……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크흠, 뭐 어떻게 보면 부탁일 수도 있고, 다르게 말하면 제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수혁은 혜선의 직설적인 물음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호, 말은 제보지 기사를 써 달라는 청탁으로 들리는데요?”

“강제하는 건 아니니 들어 보시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참고로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특종이 될 수 있는 사안이거든요.”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 보니 뭔가 있나 보네요? 하지만 특종인지 아닌지는 들어 보고 판단할 겁니다.”

무관심한듯 내뱉는 말과 달리, 그녀는 점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한국대에 있는 현우라는 학생회가 최근 3년 동안 공금을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사이비 종교의 교리를 통해 동아리들을 장악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물론 진짜 사이비인지는 저도 전해들은 이야기라 확인해 봐야겠지만요.”

“사이비 종교인지 아닌지는 취재해 보면 나오겠죠. 그것보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의 학생회가 비리를 저지른 사건이라 괜찮은 소재이긴 하지만 특종이라고 볼 정도는 아닌데요?”

대학 내의 학생회 비리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특종들을 많이 다뤄 본 혜선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었다.

“한국대에 있는 동아리 곳곳에 침투해서 많은 학생들을 동원할 힘을 갖춘 현우는 현재 어떤 견제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학생처장과 교무처장도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있고요. 기자님 입장에서 특종이 아니라는 점은 알겠습니다만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씀은 처장들이 학생회와 함께 비리에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정확한 사실관계는 지인에게 더 물어봐야 확실해 지겠지만, 대충 들어도 수상해 보이긴 했습니다.”

“이거, 잘만 다루면 특종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김빠진 반응을 보이던 그녀는 갑자기 사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처장급 인사가 개입이 되니 무게가 확 달라지는 모양이군요?”

“한국대와 같이 국내 최고 명문대이면서 국립대학의 처장은 여타 대학의 교수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고 인식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교무처장이면 서열상 부총장 다음이지만, 학교에선 총장 다음으로 권력이 막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교무처장이 생각보다 대단한 자리인가 보네요?”

“예를 하나 들자면, 교무처장은 학생이나 교수를 징계하기 위해 열리는 징계위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막말로 교무처장이 뒤를 봐주면 학생회의 비리가 적발돼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혜선은 수혁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제보자들은 누군가요? 한번 만나보고 사건 진상을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요?”

“취재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직접적인 취재는 제보자로부터 확인한 후에 결정할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에요. 대표님과의 사적인 관계를 떠나서 언론인으로서는 당연히 취재해야 하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편한 시간만 말씀해 주시면 제보자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전 당장 내일도 괜찮으니까 약속 잡히시면 문자로 알려 주세요.”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감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수혁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용건을 마친 수혁은 전화를 끊었다.

‘후, 우선 하나는 처리했으니까 이젠 변호사님만 연락드리면 되겠다.’

그는 곧장 김형석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접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변호사 일이라는 게 매일 똑같지요. 대표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궁금한 것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는데…….”

수혁은 한국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회의 농단을 자세히 이야기해 줬다.

“학생회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안은 횡령죄에 해당하고, 처장들의 경우에는 권한남용죄와 뇌물수수죄가 검토될 수 있겠네요. 학생회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압박을 한다고 그랬나요?”

“네, 그렇습니다.”

“학생회의 만행에 대해 널리 알린 행위는 공공의 이익과 결부가 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만 있으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지인분께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제 밑에 유능한 변호사가 한 명 있는데 연락처를 드릴 테니, 법률적인 사항들은 저희와 상의하시면 될 듯합니다.”

“이 일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모두 제가 부담할 테니 괜찮은 분으로 소개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후로도 수혁은 오랜 시간 형석과 통화했고, 사건을 처리할 만반의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후, 내일 하루는 엄청 바쁘겠어.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가서 좀 쉬자.’

상의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회사에 있던 수혁은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대학가의 한 룸 카페에서 4인의 남녀가 자리를 잡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쪽은 제 친구인 김찬식,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학생회 비리를 제보하신 이진태 씨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투데이 서울의 이혜선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들은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안면을 트는 중이었다.

“학교 사건보다 중차대한 제보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이렇게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특종을 취재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죠. 흔해 빠진 비리 사건보다 스케일이 큰 것 같던데요?”

찬식이 고마운 마음을 표하자 이혜선 기자는 손을 저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인사는 이쯤으로 마무리하고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죠. 어제 대표님한테 대충 들었는데 확보하신 증거나 진상에 대해 증언해 줄 증인이 있습니까?”

혜선은 진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목격한 비리는 대부분 학생회 활동에서 비롯된 건데 안타깝게도 우리를 위해서 나서 줄 증인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증도 돈 관리를 하는 인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먼 길 오셨는데 이런 말씀이나 드리게 돼서 죄송스럽네요.”

진태는 고개를 숙이며 조그맣게 말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주눅이 드시면 어떻게 해요? 비리를 목격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서 무엇을 보신 겁니까?”

혜선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는지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 갔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로 무분별한 회식입니다. 학생회 임원들은 학생 신분으로는 가기 어려운 고급 술집과 룸살롱에서 거침없이 다녔는데 왠지 학생회비로 결제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소소한 거일 수도 있는데요. 대학가에 계시는 사장님들에게 갑질하는 것도 본 적이 있어요.”

“갑질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거죠?”

“술집이나 음식점의 경우 각 과 혹은 학생회에서 회식을 한다고 하면 높은 매출이 나와서 잘 봐달라는 의미로 서비스를 주곤 했는데, 몇몇 임원들이 수시로 찾아가 술과 음식을 공짜로 먹고 항의를 하려고 하면 회식을 안 하겠다. 안 좋은 소문을 내겠다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더라고요.”

단대 학생회는 총학생회와 같은 소속인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상인들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을 만한 언행이었다.

“또 뭐가 있죠?”

“직접 준 것은 못 봤지만, 몇몇 임원들이 처장들을 비롯한 타 동아리 회장들에게 돈을 전달하러 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음, 대충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갔는지 알겠네요.”

메모를 하며 경청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파악이 끝나신 거 같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대화를 지켜보던 수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 증거를 확보하러 가야죠. 학생회가 출입했던 룸살롱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네, 대학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현장을 둘러보면서 증인과 증거를 얻을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게 급선무니까요.”

혜선의 말을 들은 일행들은 옷가지를 챙긴 뒤 카페를 빠져나왔고 진태를 따라 룸살롱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저기가 임원들이 자주 들락거렸던 룸살롱이에요.”

진태는 손가락으로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학가 근방에 위치한 건물 지하 1층에는 샤인스타라는 룸살롱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바로 들어가서 직원들하고 인터뷰라도 해야 하나요?”

“잠시만요. 영업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으니까 계획을 세우고 들어가도록 하죠.”

그녀는 전략을 세우고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어? 저 자식이 왜 룸살롱에 들어가는 거지?’

룸살롱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동태를 살피고 있던 수혁은 낯익은 인물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어? 저 자식, 이명학 아니야?”

찬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해.”

수혁은 행여 그가 들을까 싶어 찬식의 입을 막았다.

- 20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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