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08화 (208/316)

208화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녹음 파일은 집에 가서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하하, 대표님과 기자님이 고생 많으셨지요. 저는 뒤에서 보조만 했을 뿐입니다.”

박정철 변호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 당장 기사를 작성하고, 최대한 빨리 보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저, 대표님. 처장들은 어떻게 처리할 건가요?”

“학생들하고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변호사님께서 고발장을 쓰실 때 처장들의 혐의도 자세히 서술하실 겁니다.”

“대표님, 기자님께서는 학교에서의 행정 처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염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정철이 첨언을 했다.

“변호사님 말씀처럼, 이번 사건에 연루된 처장들과 학생들에 대해서 적절한 행정 처분이 내려져야 하는데, 학교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수혁은 혜선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통상적으로 학교 안에서 비위 사실이 적발되면 징계위원회가 구성되고, 징계 수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위원회를 총괄하는 사람이 보통 교무처장이거든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본인의 비리에 대해서 은폐할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군요.”

“기사를 통해 이슈화가 되고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사건을 덮기 어렵겠지만, 징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동감합니다. 교무처는 학교의 통상적인 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에 비리 제보가 접수되더라도 교무처장이 일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정철이 혜선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교무처장 하나 때문에 차질이 생기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이 상황에선 진정서를 넣어 봤자 큰 효과가 없을 거예요.”

“한국대 내부 규정을 살펴보는 건 어때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조항이 있을 것 같은데?”

혜선과 정철은 대책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대화를 나누었다.

“흠,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해 볼 테니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 주세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경률 총장님을 직접 찾아뵈려고요. 예전에 뵌 적이 있어서 안면도 있고, 연락처도 가지고 있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신중하셔야 합니다. 총장과 교무처장이 서로 친할 수도 있잖아요.”

기자 생활을 하며 매사 의심하는 버릇이 생긴 혜선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제가 본 총장님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업무를 처리할 분으로 보이시지는 않았습니다.”

“기자님, 일단은 대표님을 믿어 보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뾰족한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정철은 수혁에게 힘을 실어 줬다.

“죄송해요. 기껏 증거들을 다 수집했는데 일이 허사가 될까 봐 좀 예민해졌던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죠.”

혜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들은 이후에도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 세부적인 논의를 하다가 밤 11시가 다 돼서야 헤어졌다.

다음날이 되었다.

“총장님, 학생이 한 명 찾아왔는데요?”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경률은 아침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한 상태였다.

‘강 대표가 헛소리를 할 인물은 아니지만…… 믿기지 않는군. 한국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간밤에 연락을 받은 이경률 총장은 수혁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셨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스케줄이 있으셨을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처장들과 학생회가 결탁해서 조직적인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보통 때라면 차라도 한잔하며 대화를 나눴을 테지만, 경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학생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아침에 말씀드렸던 혐의들 중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수혁은 말을 함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낸 뒤 파일을 실행시켰다.

“음……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겠군요. 물론 처장과 학생회 임원들을 따로 불러 의견을 들어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현재 몇몇 학생들이 비대위를 만들었는데, 조만간 이 비리 사실들을 토대로 고발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경률은 학교 내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사건이 커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총장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그리고 학생회가 연루된 이 사안은 내부적으로 처리하기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관련자만 이 정도지, 교내에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후,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몰래 뒤에서 이런 짓거리들을 하고 있었다니…… 자괴감이 드는군요.”

“잘못은 총장님이 아니라 저들이 저지른 겁니다. 앞으로 3~4일 이내에 투데이 서울에서 특집 기사를 낼 예정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허허, 인생 말년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임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책임지고 사안을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수혁은 본인이 피해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은 결의를 보인 경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저, 이 일에 이명학이 연루되어 있는데 일을 진행하는 데 차질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아마 일송 측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분명 있을 겁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총장님은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지켜야겠지요.”

경률은 결의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이 내려져야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총장님만 힘써 주신다면 저도 어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순리대로 처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 이야기해 볼까요?”

서로의 굳은 의지를 확인한 수혁과 경률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띤 논의를 이어 갔다.

총장과의 만남이 있은 지 3일이 지났다. 시간은 오전 9시, 영업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샤인스타에는 남자 둘이 앉아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후, 어떻게 하냐? 어제 투데이 서울에서 너랑 나에 관한 기사를 냈는데…… 사람들 반응이 심상치 않다.”

“넌 솔직히 잃을 것도 없잖아? 난 어제 아버지한테 개박살 났어, 새끼야.”

이명학과 정성우는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서 양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래도 일송에서 힘을 써 줬나 봐. 난 오늘 대대적으로 보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투데이 서울 외에는 다루지 않더라고.”

“우리 외삼촌이 어제 언론사들한테 전화를 돌렸다고 들었어. 투데이 서울에서 특집 기사를 낸 기자 년이 꽤나 독한 모양이야. 투데이 서울 편집장이 외삼촌 후배라서 잘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말을 안 듣는다더라고.”

만평일보의 부사장인 명학의 외삼촌은 사건이 터지기 무섭게 후속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급한 불은 끈 상황이었다.

“명학아, 미안한데……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학생들 중심으로 회계 내역을 밝히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데 수중에 돈이 없는 상황이라 많이 곤란하거든.”

“그건 안 돼. 내 돈이 학생회에 흘러갔다는 정황이 밝혀지면 그때는 정말 끝이야. 그리고 당분간은 서로 연락하지 말자. 우리 둘이 지금 이렇게 만나는 것도 되게 위험한 행동이야.”

명학은 그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어차피 나중엔 다 밝혀질 건데 이 판국에 조심할 게 뭐가 있어?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거 아니야?”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난 이 상황만 잘 넘기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일송에서 너희들까지 챙겨 줄 여유는 없다는 거야. 일단 나라도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

성우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어이가 없었는지, 입을 벌린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야, 그렇게 놀라지 마. 나중에 내가 다 챙겨 줄 테니까. 애들한테 전해. 허튼소리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이야.”

“알겠어…….”

어쩔 도리가 없는 성우는 그저 명학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포털 사이트들에 올라가 있던 한국대 비리에 관한 기사 글이 모두 내려진 것을 확인한 수혁은 SH커뮤니케이션 사무실로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네, 강수혁입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은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

“오전에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정신이 없어서 지금에야 확인했습니다.”

“투데이 서울 기사가 싹 내려갔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휴, 어젯밤부터 편집장이 기사를 내리라고 독촉하는 걸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오늘은 급기야 사주가 직접 연락 와서 압박을 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글을 삭제했어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대답하는 혜선의 목소리에 우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기자님께서 잘못하신 것도 없는데요, 뭘.”

“일송에서 언론사뿐만 아니라 포털 업체들에도 손을 쓴 것 같더라고요. 제가 글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제 기사가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다른 포털은 몰라도 지오닷컴은 기자님을 지켜 드릴 수 있습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지금부터 대책을 마련해 보죠.”

“그러고는 싶은데…… 제가 마음에 여유가 없네요. 사실, 조금 전에 일송 그룹 법무팀장하고 계속 통화를 했거든요.”

“법무팀장이 직접 전화를 했다고요?”

“기사를 내리는 건 물론, 정정 보도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리고 만약 제안에 응하지 않을 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함은 물론이고 별도로 손해배상도 청구한다고 했어요.”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수혁은 본인 때문에 혜선이 난처해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자라면 취재 중에 상대로부터 고소, 고발이 들어오는 경우는 적지 않게 있어요. 전 단지 일송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 뿐이에요.”

“흠…… 우선은 우리 쪽에서도 빠르게 대처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법적인 문제는 신평에서 담당할 거니까, 법무팀에서 또 연락이 오면 박정철 변호사님 번호를 알려 주세요.”

“네, 알겠어요.”

“그리고 직원들에게 지시해서 포털에 있는 기사들이 삭제되지 않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상사들의 눈치가 덜 보일 거예요.”

수혁은 서버 문제를 핑계로 당분간 기사가 내려가지 않게 하여, 그녀에게 변명거리를 주려고 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아무리 일송이 대단하다고 해도, 진실은 우리의 편입니다. 총장님께도 잘 말씀드려 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만큼은 일송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수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 20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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