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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15화 (215/316)

215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시간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건데…… 이 정도 사안으로 방송국에서 움직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휴, 일이 좀 풀리나 싶었는데 산 넘어 산이네요.”

유신은 한숨을 쉬며 답답한 심정을 표현했다.

“아니요,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실시간 중계로 진행하면 우리의 입장이 곡해 없이 대중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수혁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하지만 저희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사들은 실시간 중계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기자회견의 형식은 주체자인 우리가 결정하는 건데, 기자들이 무엇을 근거로 거부한단 말입니까?”

“대놓고 거부라기보단 참석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들이 생각이 있다면 본인들의 보도가 억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국민들 앞에 부족한 모습이 공개되는 건데 참석할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유신은 수혁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흠, 사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생중계를 하되 기자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봐야겠군요.”

“네, 하지만 회견 도중에 생중계 형식이었다고 공개를 하면 기자들의 반발이 거셀 겁니다.”

“동감합니다. 사장님, 우리끼리 대화할 게 아니라 한정길 사장님과 김용민 본부장을 불러서 함께 상의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백지장도 맞대면 낫다고, 함께 궁리하다 보면 더 나은 대책이 나올 테니까요.”

유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조만간 일정을 잡을 테니, 그전까지 대비책을 모색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논의를 마친 수혁과 유신은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광화문에 위치한 만평일보 본사, 부사장실에는 중년남성 둘이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 이번에 도와준 건 잊지 않을게. 그러니까 SH에듀케이션에 대한 후속 기사만 계속 써 줘.”

이정수는 만평일보의 부사장이자 자신의 외사촌 형인 장형욱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안 그래도, 명학이 사건 때부터 강 대표 그 애송이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야. 협회 일 때문에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주 막 나가더라고.”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거지. 자, 술이나 한잔하자.”

술잔을 든 형욱과 정수는 목구멍에 술을 털어 넣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공정위에서 오래 근무했던 사람을 1년 전에 사외이사로 영입했었지.”

“오, 그러면 기관에 아는 사람이 제법 많겠네?”

정수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옷을 벗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아서 내부에 연락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봐.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SH에듀케이션에 내린 경고에도, 이사님의 역할이 작지 않았고.”

“더 강한 조치를 취할 수 없을까? 구두 경고 정도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단 말이야.”

“올 초에 새로운 공정거래위원장이 임명됐는데 이사님께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 손을 쓰는 데 한계가 있나 봐. 너도 알잖아, 그런 자리는 정권 영향을 많이 받는 거.”

일송과 만평일보는 정계에도 많은 인맥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야당 인사였다.

“쥐새끼 같은 놈, 함정을 놓아도 매번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단 말이야.”

“그것보다, 학원 원장들은 어떻게 설득한 거야? 이사님 말로는 원장들이 제출한 진정서가 제대로 먹힌 모양이던데?”

“사람을 풀어서 알아보니까 강수혁한테 원한을 가진 자들이 꽤 되더라고. 돈 좀 쥐어주면서 같이 일해 보자고 하니까 바로 호응하던데?”

정수는 SH스터디의 등장으로 인해 몰락한 명성학원과 신일학원 출신 잔당들에게 접근하여 작업을 쳐 놓은 상태였다.

“역시,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단 말이야? 강수혁 대표가 사람을 잘못 건드렸군.”

“아니, 이 정도로는 부족해. 좀 더 확실한 수가 없으면 역으로 반격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야.”

“이야, 네가 그렇게까지 표현한 사람은 처음인데?”

어렸을 때부터 정수와 친하게 지냈던 형욱은 그가 상대를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흠, 명학이가 생각나는군. 예전에 나한테 강수혁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했던가? 그땐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어. 일송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회장, 대표들이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어?’

수혁을 조심하라는 이명학의 조언을 무시하기 일쑤였던 정수는 씁쓸한 얼굴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유통업계 내에서 확연히 달라진 여론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고민이라도 있어?”

“훗, 고민은 무슨. 잠시 옛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야. 형 뭐 해? 술잔이 비었잖아.”

“쳇, 네가 이야기하는 동안 난 계속 마시고 있었다고.”

정수와 형욱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 * *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이렇게 모이긴 오랜만이군요.”

한정길은 공손한 태도로 수혁을 맞이했다.

“한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고생 많으시죠?”

수혁은 SH에듀케이션 본사로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그룹 회의를 열어 임직원들과 공유하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제는 SH에듀케이션의 자회사가 된 SH스터디의 사장, 박찬명이 질문을 던졌다.

“일송과 관련된 일을 진행할 땐 두 번 세 번 조심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한 달 전쯤에 지오쇼핑에서…….”

수혁은 명학과 내통한 직원을 색출했던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확실히 조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렇다면, 공정위에서 움직이는 거도 무리가 아니지요.”

정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에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아는 분이 있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쭤봤는데, 공정위에서는 우리 회사에 대한 어떤 혐의점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혁은 임원들과의 일정을 잡은 뒤 강현제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공정위의 내부 사정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트집을 잡는 겁니까?”

“언론에서 계속 비집고 들어오니까 국민들의 눈치가 보이는 게지요. 학원 원장들 몇몇이 합심해서 진정서를 보내고 대대적인 보도가 계속 이어지니, 뭔가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찬명의 물음에 수혁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황당하군요. 있지도 않은 일을 우리가 해명해야 한다니…… 아무리 일송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만평일보가 이 사달을 주도했다고 들었는데, 차라리 고소를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용민을 비롯한 사람들은 수혁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고소하는 순간, 언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짓밟으려는 몰상식한 기업으로 매도할 겁니다. 이들에겐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든 대중들 사이에서 논란거리로 만들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히려는 거죠.”

“대표님, 말씀을 들어 보니 사태가 심각한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은 악의적인 보도에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하여 대응하는 방법과 재단을 만들어 이미지를 회복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평소 수혁과 많은 대화를 나눈 유신은 찬명에게 대신 답변해 주었다.

“대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단의 경우에는 올 연말에 발족할 예정이고, 이사장으로 올 사람도 이미 내정해 두었습니다. 남은 건 우리의 입장을 대중들에게 어필할 방법을 찾는 거지요.”

“대표님께서 기자회견을 실시간 브리핑하는 방안을 생각해 주셨지만, 그렇게 되면 기자들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거라며 걱정하고 계십니다.”

유신은 적절한 타이밍에 수혁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흠, 안 그래도 조만간 지오닷컴에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려고 하는데 이번 기회에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흘러가는 이야기로 말씀드린 건데 고생하셨습니다. 회사 전반적인 것을 모두 살피느라 여유가 없으셨을 텐데 이렇게 챙겨 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혁은 오래전에 가볍게 말했던 사안을 용민이 추진한 것을 듣고는 흐뭇해하였다.

“실시간 스트리밍이 구현될 수 있는 플랫폼이 제작 중에 있어 시일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중계를 보내는 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음, 이거 참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도구는 준비되어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입니다.”

대화를 듣던 정길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진실은 우리의 편이고 기자들은 어떻게든 논란을 생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입장에선 본인들에게 불리한 실시간 기자회견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들의 동의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면…… 기자들을 속이고 몰래 실시간 중계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정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들이 거짓 뉴스를 양산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편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부장님.”

“네, 대표님.”

“최필재 팀장님한테 실시간 브로드캐스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베타 서버를 제작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홍보팀장에게는 해당 서비스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를 지시하시고요.”

“마감은 언제까지 하면 좋을까요?”

“고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니, 일주일 안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묘수가 떠오른 수혁은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박유신 사장님은 10월 중순이나 말경에 기자회견이 열릴 수 있게 언론사에 연락을 돌리세요. 단, 실시간 중계에 관한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마시고요.”

“네, 대표님.”

유신은 진지한 얼굴로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한정길 사장님은 악의적인 보도에 대한 SH에듀케이션의 입장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견 자리에서 쓸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있으면 같이 보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오늘 회사로 돌아가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박찬명 사장님은 언론에서 양산하고 있는 가짜 정보에 관한 이슈를 학생들이 알 수 있게 해 주세요.”

“안 그래도 학원 내부에도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강사들에게 적절히 지시해 두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임원들은 수혁의 생각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떤 난관도 훌륭히 극복해 온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었기에 한 치의 의심도 품고 있지 않았다.

‘얼마 전 학생회 사건 때도 그렇고, 신사답게만 해결하려다가는 너무 늦어. 내일부터 당장 사람을 구해 봐야겠다.’

수혁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 21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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