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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18화 (218/316)

218화

“저는 SH가 향후 어떤 행보를 걸을지가 궁금한 게 아닙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대표님의 말씀과 설문 결과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싶었지만, 집요하게 물으시니 답변해 드리죠.”

석현의 말을 들은 수혁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특정 언론사가 기사를 만들면 타 소속 기자님들께선 기사 내용을 신뢰하고 2차 기사를 쓸 때가 있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뭐죠?”

“처음 소스를 제공한 언론사가 대중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었다는 이야기죠. 특히나 그 회사가 타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 파급력은 무척 클 겁니다.”

수혁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느긋하게 말했다.

‘잘됐어. 이거라면 후속 기사를 쓰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제목은 <강수혁 대표, 음모론을 제기하며 모든 의혹을 부인하다>로 하면 좋겠는데?’

석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사 타이틀을 타이핑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상으로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조금 전 언론에 의해서 여론이 조작됐다는 의견을 내셨는데 더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언론이 아니라 특정 언론사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뻔뻔한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수혁은 석현을 바라보며 냉소를 짓더니 천천히 연단 위에서 내려왔다.

“원래는 30분 전에 회견을 마쳐야 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던 탓에 시간이 다소 지연됐습니다. 금일 참석해 주신 기자님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찬명은 수혁이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기자회견이 끝났음을 알렸고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역시, 소문에는 항상 과장이 섞여 있기 마련이라니까?”

“우리한테나 그랬지 성동일보랑 만평일보에는 얄짤없던데요? 말투는 부드러워도 할 말은 다 하더라고요.”

“솔직히 언론사들한테 찍혀서 그렇지, SH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내 눈에는 무모해 보였어. 만평일보의 표적이 된 사람 치고 멀쩡히 돌아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잖아?”

기자들은 짐을 챙기며 수혁을 두고 설왕설래하였다.

‘……오늘이라도 마음껏 여유를 즐겨라. 내일부터 지옥을 맛보게 해 줄 테니까.’

이미 헤드라인을 장식할 제목까지 뽑아둔 석현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 * *

“대표님, 김용민 본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기자들이 나간 것을 확인한 찬명이 수혁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네, 본부장님.”

“금일 오후 3시부터 서버를 열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개인 방송을 시작한 사람이 아직 많진 않지만 벌써 20개 이상의 방이 생성되었습니다.”

“하하, 회견이 막 끝난 터라 조금 피곤했는데 기운이 나는군요.”

수혁은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녹화는 잘 마치셨습니까?”

“오늘 밤 중에 디지털 데일리에서 파일을 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대중들에게 언제쯤 공개할 계획이십니까?”

“원래는 오늘 밤이나 내일 점심쯤에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언론의 반응을 살펴보고 시기를 조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은 자신을 먹잇감처럼 노려보던 몇몇 기자들의 눈빛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갖고 있는 무기를 상대에게 알려 주기보단 적절한 타이밍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방송 시작 시간만 알려 주시면 가장 노출이 많이 되는 곳에 바로 올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안이 결정되면 바로 알려 드리죠.”

“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용건을 마친 수혁이 전화를 끊었다.

“디지털 데일리 기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사람들이 보기 좋게 편집하겠다며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군요. 기자한테 연락해서 중요한 내용이 잘려나가지 않게 신경 좀 써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타 언론사들의 동태를 살핀 후 기사를 실어야 하니, 기사 작성을 잠시 보류할 수 있냐고도 여쭤봐 주시고요.”

“아, 분위기를 보고 터뜨리시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기자에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찬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보니 건수 잡으려고 환장한 기자들이 몇 보였습니다. 우리의 수를 미리 보였다가는 자칫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특히 만평일보와 성동일보 소속 기자들의 질문 속에 뼈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혁은 사회를 보느라 고생한 찬명의 노고를 알았기에 먼저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학교에 다닐 때처럼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죠. 형이랑 즐겁게 놀던 때가 가끔 그립습니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컨벤션 센터를 빠져나오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회장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지오쇼핑에서 집무를 보던 수혁은 노크 소리를 듣자 몸을 일으켰다.

“만평일보랑 성동일보에서 우리 회사를 엿 먹이려고 아예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유신은 들어오자마자 잔뜩 흥분한 얼굴로 신문을 펼쳐 보였다.

“이것 좀 보십시오. SH그룹의 강수혁 대표는 지난 기자회견 때 언론과 대중들이 잘못된 정보를 맹신한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통상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회사라면 의례적인 사과라도 해야 하는데, 이날 보여 준 모습은 언론과 국민을 꾸짖는 선생님과도 같았다.”

“저도 오늘 아침에 모두 읽었습니다.”

수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신문을 읽는 유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정길 사장님과 박찬명 사장님도 매우 분노하고 계십니다. 이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좀 더 두고 볼 생각입니다.”

“…….”

유신은 태연자약한 수혁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지금 언론에서 보여 주는 행태는 다 제 예상범위 안에 있습니다. 빠르면 금일 저녁, 늦으면 내일 중에 대응을 시작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후, 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그것보다, 엘마트와의 인계 작업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11월 말에 사업을 양도하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할 텐데요.”

“네, 사이트 관리 권한과 운송 인력에 대한 부분까지 원활하게 인계되고 있습니다.”

수혁은 스트레스가 극심해 보이는 유신을 위해 화제를 바꿨다.

“잘하셨습니다. 어제 듣기로는 개인 방송 플랫폼도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던데요?”

“그렇습니다. 서비스를 개시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방문자 수가 벌써 100만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유신은 지오쇼핑을 관리하느라 그룹 경영에 신경 쓰지 못하는 수혁을 위해 타 계열사의 현황을 종종 보고하곤 했다.

“아, 맞다. 오늘 새벽에 디지털 데일리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기자회견 영상이 도착한 모양이군요.”

“방금까지 녹화 파일을 검토했는데 저들이 스스로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그냥 당하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혁은 유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사장님.”

“대표님, 잠깐 통화 가능하십니까?”

전화를 건 사람은 한정길 사장이었는데 목소리가 다급한 걸 보니 큰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물론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현재 대한언론인협회에서 SH그룹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 협회 관계자가 방송국 기자들을 불러놓고 성명서를 읽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길의 이야기를 들은 수혁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티비를 틀었다.

“……우리 언론인들은 SH그룹 강수혁 대표가 최근 보도들을 두고 가짜 뉴스라고 폄하한 사실을 강력하게 규탄합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발언으로…….”

‘나에 대한 적대감이 이리 강했나? 판이 커져서 나쁠 건 없지만……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수혁은 성명서를 낭독하는 관계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표님, 보고 계십니까?”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오후에 긴급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참석 멤버는 지난번과 동일하니 박찬명 사장님께 말씀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길의 대답을 듣자마자 수혁은 곧장 전화를 끊었다.

“회장님…….”

“침착하세요. 언론인 협회가 아니라 더한 곳에서 우리를 압박해도 진실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수혁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

‘일단 진정하고 조금 더 기다리자. 상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카드를 가졌는지 모르는 게 확실해.’

그는 당장 대응하기보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조금 있다 임원들과 만나기로 했으니까 오후 일정은 비워 두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안은 모임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따로 지시할 사안은 없으십니까?”

“흠, 지금은 딱히 없네요. 가서 일 보세요.”

“네, 회장님.”

유신은 힘없이 대답한 뒤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사장님, 접니다. 혹시 점심 먹고 잠깐…….”

방에 홀로 남은 수혁은 핸드폰을 꺼내 혜선에게 연락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 * *

당일 오후, 사무실을 나온 수혁은 이혜선 사장과 함께 SH커뮤니케이션 본사에 도착했다.

“다들 식사는 하셨습니까?”

회의실 테이블에 착석한 수혁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임원들을 둘러보며 짐짓 밝게 물었다.

“간단히 먹고 왔습니다.”

“끼니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거라 생략하고 왔습니다.”

정길을 비롯한 대다수는 대책을 강구하느라 식사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이혜선 사장님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지털 데일리의 이혜선입니다. 대표님께 대략적인 상황은 모두 들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전에 대표님께 사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혜선이 정중히 인사하며 말을 건네자, 임원진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서로 안면도 익혔으니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만평일보와 성동일보에서 금일 자 신문을 통해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급기야 대한언론인협회까지 움직여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나름의 대책을 세워 봤는데 그전에 여러분의 의견이 있으시다면 먼저 듣고 싶습니다.”

수혁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자세로 회의를 시작했다.

“마침 이혜선 사장님께서 참석해 주신 덕분에 이야기가 더 쉬워지겠습니다. 전 우리가 갖고 있는 인프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하는 내내 대응방안을 고민했던 유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 21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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