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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22화 (222/316)

222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거라면 협회의 압박에서 벗어나기에도 매우 용이할 것 같네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수혁의 칭찬에 도균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협회 직원이 스스로 일송과 만평일보를 들먹이게 만드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들으시면서 눈치 채셨겠지만, 녹화 영상이 송출되니 평정심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슬슬 약을 올리며 실언이 나올 수 있게 유도했지요.”

“이혜선 사장님과 SH를 언급하며 곤란해하는 척하시는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도균은 SH에서 자료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방송을 끝까지 하기로 약속했다는 둥, 이대로 영상을 내리면 사장님이 노해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등 갖가지 핑계를 대며 협회 관계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하, 그렇게 말하니 금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히며 절 압박하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았습니다. 평소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아마 전화를 끊고 아차 했을 겁니다.”

“심리를 이용한 기자님의 기지가 먹힌 거지요.”

“저, 대표님. 괜찮으시다면 염치 불고하고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내내 활기차게 이야기하던 도균은 수혁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영상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시 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데…… 이게 조금 걱정입니다. 디지털 데일리 이전에 다른 언론사에서 일할 때도 종종 고소·고발을 당한 적이 있지만, 이들은 법 위에 선 사람들이라 없는 죄도 만들어 낼 것 같아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도균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저도 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회사를 매장시키려고 하는 저들에겐 꼼짝도 못 하면서 기자님께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게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감사합니다. 소송이 길어질 걸 고려해서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습니다.”

“소송이 얼마나 길어지든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소송까지 가지 않고도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게 조치할 겁니다.”

수혁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그의 기분을 헤아리며 말했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네, 원래는 기자회견이 끝나면 당분간 조용히 있을 계획이었는데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응하든 저들은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드니까요.”

“맞습니다. 아예 회복이 불능할 정도로 뿌리를 뽑아야 다시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도균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우선, 피곤하실 테니 푹 쉬세요. 그리고 저쪽에서 소를 제기하면 바로 연락 주세요. 유능한 변호사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배려는 오히려 기자님께서 차고 넘치게 해 주셨습니다. 괜찮다면 제 메일로 녹화 파일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집에 돌아가면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이외에도 녹화 파일을 만평일보에 대항하는 데 쓰겠다는 허락을 받은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영상이 퍼진 지 이틀이 지났다. 수혁의 지시를 받은 용민은 기자회견에 관련된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노출 정도가 가장 큰 상단 배너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직원을 시켜 영상을 12분 남짓으로 적절히 편집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사이트 이곳저곳에 올리고 있었다.

“본부장님, 네티즌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베스트 게시글 중 대부분이 만평일보와 우리 회사에 관련된 것일 정도로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렇군요.”

고무적인 결과에 다소 흥분한 기색을 보이는 용민과 달리 수혁은 차분했다.

“초반에는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현재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30대, 40대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10대와 20대와 같은 학생들이 이슈를 만들어 주는 것도 고맙지만,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는 중년층이 관심을 가져 줘야 파급력이 훨씬 클 겁니다.”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수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묻어나왔다.

“포털 뉴스란은 적절히 관리되고 있습니까?”

뉴스의 배치를 임의로 조정하는 것은 언론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였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호적인 기사가 뜰 시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었다.

‘디지털 데일리와 소수의 언론사를 제외하면 우리의 입장을 써 주는 기사는 거의 없을 거고, 인터넷 뉴스에 관한 규정도 정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될 거야.’

수혁은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에선 마냥 신사처럼 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디지털 데일리의 기사를 간간이 메인에 올리고 있긴 하지만, 대놓고 도와주는 티를 안 내려다 보니 관련 기사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죄다 우리를 응원하고 있어 희망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른 언론사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영상이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SH에 관한 기사를 하나도 싣지 않고 있습니다.”

“본인들에게 불리해지니 대중들이 잊기를 바라는 거겠지요.”

“정말 분하군요. 타인의 티끌은 엄청나게 과장해서 보도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에는 이토록 관대하다니…….”

언론의 거센 공세에 시달렸던 용민은 화가 나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이대로 넘어가실 생각이십니까?”

“마음 같아선 이 상태로 매듭을 짓고 싶지만 이정수 회장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수혁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 강수혁입니다.”

“대표님, 대외업무팀장 김현수입니다. 대한언론인협회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쪽으로 전화 돌리세요.”

잠시 후, 인터폰은 다시 울렸고 수혁은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SH 그룹의 강수혁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한언론인협회의 임학규 협회장입니다.”

‘협회장이 직접?’

기껏해야 일반 직원의 전화가 올 줄 알았던 수혁은 뜻밖의 상황에 살짝 당황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이렇게 전화를 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오너와 직접 통화를 할 거라곤 예상 못 했습니다.”

임학규 협회장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렇게라도 연락이 되니 일단 반갑습니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주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SH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언론계가 시끄러운 걸 알고 계십니까? 현재 협회는 들어오는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수혁이 예의를 갖추고 점잖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임학규는 퉁명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지오닷컴에서 지오라이브라는 서비스를 개시하셨다면서요?”

“그렇습니다만?”

“난 나이가 많아 인터넷에 관해서는 무지한 터라 무심코 넘겼지만, 언론의 역할을 빼앗아가려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오라이브를 폐쇄하라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그저 사이트 안에 불순한 방송을 하는 자들만 선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별이라면…… 설마 검열을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수혁은 황당한 요구에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화를 이어 갔다.

“이봐요. 저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잘 압니다. 솔직히 대표님께서 거절하신다면 강제할 수 있는 명분도 없고요. 하지만 이쪽도 사정을 좀 봐주시오. 주요 언론사들이 날이면 날마다 항의를 해대는데, 서로 좋게 지내면 어떻겠냐 이 말이오.”

임학규 협회장은 SH를 견제하라는 몇몇 이사들의 의견과 언론사들의 규탄성명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저도 좋게 지내고 싶긴 하지만 만평일보와 성동일보에서 가짜 기사들을 써대는 데 가만히 있기는 어려운 노릇 아니겠습니까?”

“……강 대표, 내가 올해로 일흔 하고도 넷이오. 내 연배가 적지 않으니 말투가 거슬려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말씀하시죠.”

수혁은 그의 말에 조금 불쾌해졌지만, 한층 낮아진 목소리와 부드러워진 말투에 한번 들어 보기로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허심탄회하게 말하겠습니다. 강 대표의 회사는 지금 만평일보에게 밉보인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마음을 먹으면 대통령이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내가 협회장으로 있기에 이 정도지, 현직에 몸담았던 자가 회장으로 있었으면 더 큰 곤욕을 당했을 거요. 그리고 들어 보니 대표님께서도 실수를 하셨던데…….”

“어떤 실수를 했을까요?”

수혁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비록 디지털 데일리 측에서 녹화한 거라고는 하지만, 기자회견을 할 땐 기자들에게 사전에 공지를 해 줘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따로 녹화를 하는 행위까지 일일이 점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제가 양측의 입장을 쭉 살펴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디지털 데일리와 SH와의 관계는 발뺌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자존심이 상하시겠지만 사과 성명을 한번 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사과 성명이요?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수혁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강 대 강으로 부딪히면 그쪽만 손해라는 건 내 장담하지요. 물론 강 대표에게 억울한 면이 있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게 뜻대로만 될 수는 없는 거지요.”

학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탓에 말을 꺼내긴 했지만, 수혁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회사가 억울하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점은 알고 계신가요?”

“영상까지 퍼진 마당에 누가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내 경험상,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무모한 행동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군요. 대표님껜 굴욕적일 수도 있다는 거 잘 압니다. 만약 이번만 고개를 숙여 주시면 배려해주신 걸 잊지 않겠습니다.”

“후…….”

임학규의 진심 어린 말에도 수혁은 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적이기보단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해. 보아하니 협회장은 중립적인 사람이야. 어떻게 하면 판을 바꿀 수 있을까?’

30초가량의 시간 동안 머리를 굴리던 수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협회장님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협회장님께서 진심 어린 조언 덕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간의 소문에 결단력도 강하시고 현명하시다고 들었는데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타협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수혁이 돌연 수용적인 자세를 보이자, 임학규 협회장도 크게 기뻐했다.

‘일단은 들어주는 척을 하면서 슬슬 간을 보자.’

수혁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를 무시한 채, 다음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 22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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