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39화 (239/316)

239화

“주요 임원이라 하시면 이전에 언론사 관련해 소집되었던 임원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김유리 이사장도 이번 회의에 참석시키도록 하세요.”

“안 그래도 여쭤보려 했는데 먼저 말씀해 주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박유신 사장은 수혁이 유리를 많이 신경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류센터 건립은 잘되어 가고 있습니까?”

“내년 5월 중에 완공된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바빠 지오쇼핑을 신경 쓰지 못했는데,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소폭이긴 하나 월 매출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 사업들에 비해서 괄목할 만한 모습은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유신은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이번 임원 회의 때 우리 회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말씀드릴 겁니다.”

“어플과 관련된 사안을 말씀하시려는 모양이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밝혔다.

“보고할 사안이 남아 있습니까?”

“다 끝났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죠.”

유신은 아직 보고할 것이 남았지만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서류들을 보고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결정했다.

‘회의까지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그동안 밀린 것들부터 빨리 처리하자.’

수혁은 유신이 나간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1월 4일 토요일 아침, SH커뮤니케이션 본사 앞에는 여러 대의 고급 세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다들 도착했나 보네.’

지난 이틀간 격무에 시달렸던 수혁은 예정된 회의 시간보다 5분가량 지각한 상태였다. 그는 급히 엘리베이터를 탄 후 회의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수혁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임원들은 수혁이 조금 늦었음에도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유리도 왔네? 첫 미팅이라서 그런가, 왠지 어색해하는 것 같은데?’

수혁은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발견하곤 미소를 지었다. 유리는 수혁이 들어왔음에도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었으나 눈이 마주치자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할 이야기가 적지 않으니 회의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아, 죄송합니다. 그전에 김유리 이사장님을 먼저 소개해야겠네요. 이사장님, 일어나셔서 한 말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지난달에 SH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유리라고 합니다. 선배님들께 처음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아시겠지만, SH재단은 각 회사가 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대신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서로 안면을 익혀 친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박찬명 사장님, 회의 진행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발언을 마친 수혁은 마이크를 찬명에게 넘겼다.

“다음으로 최필재 팀장님의 사안 보고가 있겠습니다.”

“최필재 팀장님과 김용민 본부장님에 대한 인사 조치가 아직 시행되지 않았나 보군요. 이 부분은 조만간 제가 직접 챙길 테니 서운해하지 마세요.”

수혁은 지난 그룹회의 때 언급한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이들의 직함이 회사에 세운 공을 고려했을 때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괜찮습니다. 비록 본부장의 자리이지만 사장급 임원들과 동급의 대우를 받고 있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저도 프로그램 개발에만 집중하면 되지, 직함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SH커뮤니케이션에선 상관없겠지만 타 계열사 직원들과 접촉할 땐 명함에 적힌 직함이 꽤나 중요한 법입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최필재 팀장님. 보고 시작하시죠.”

“네, 대표님.”

필재는 대답과 함께 PPT를 화면에 띄웠다.

“제가 발표할 것들은, 김유리 이사장님을 제외하면 일전에 이사장님과 어느 정도 공유가 이루어졌던 내용들입니다. 먼저 스마트 폰 소프트웨어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스 코드를 보내 준 지 한 달도 채 안 지났는데…… 벌써 작업을 완료했구나.’

화면에 뜬 PPT를 살핀 수혁은 필재의 역량에 감탄하고 있었다.

“2주 전에 WG전자의 황정명 부회장으로부터 스마트 폰 프로토타입을 전달받았습니다.”

“WG는 출시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요. 우리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지만 이렇게 빨리 실현할 줄이야…….”

“WG전자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일반 기업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현명길 회장님께서 WG의 모든 역량을 스마트 폰 개발에 쏟아부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쩐지, 일송전자는 가전제품이고 핸드폰이고 분기마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데 비해 WG전자는 잠잠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혁은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몇 가지 성능 검사만 하면 시중에 출시해도 될 수준이라 하니, 우리 팀도 속도를 맞추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면서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습니까?”

“기기에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보았는데 결과는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필재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품속에서 기기를 꺼냈고, 스마트 폰인 걸 알아본 수혁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니, 그건…… 혹시 스마트 폰을 가져오신 겁니까?”

“네, 맞습니다. 한번 살펴보시죠.”

기대에 부푼 수혁의 표정을 본 필재는 그에게 다가가 기기를 건넸다.

“오, 조작법을 아시네요? 하긴 애당초 기기의 작동 방식을 설계하신 분이 대표님이셨으니, 무리는 아니지요.”

필재는 능숙하게 기기를 만지는 수혁을 보며 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공하셨군요.”

“네, 바탕화면에 보시면 임시로 만든 어플들이 있는데 한번 실행 보시길 바랍니다.”

“지오닷컴에 업로드된 게임들이네요?”

“인기를 끄는 것들 중 몇 개만 시범적으로 앱을 만들었습니다.”

수혁은 바탕화면에 깔린 게임 하나를 실행시켰다.

‘비록 현대의 게임과 괴리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시대를 앞서가는 결과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어.’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3분여간 게임을 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앱을 잘 구현해 주셨습니다. 출시 전까지 미흡한 부분만 조금 가다듬으면 완벽할 것 같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SH에듀케이션, 지오닷컴 앱도 있지만 시간 관계상 보여드리지 못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필재는 수혁의 칭찬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우리 SH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군요.”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우리의 오랜 염원이 드디어 빛을 발하네요.”

임원들은 활짝 웃으며 수혁에게 덕담을 건넸다.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만, 스마트 폰 개발이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외부에 새어나가면 안 됩니다. 제가 회의에 주요 임원들만 참석시킨 데 보안상의 이유가 있다는 건 모두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혁은 성공이 목전에 다가온 상황에서 너무 들떠 있는 것을 경계했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김용민 본부장의 목소리를 들은 수혁은 몸을 돌렸다.

“어제 황정명 부회장님께서 연락이 오셨는데 대표님과 스마트 폰 출시 일정을 논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음, 2월 초나 중순쯤으로 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혁은 개발을 총괄했던 필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한국대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3월이 되기 전에 출시하기를 바랐다.

“2월까지 아직 한 달가량 남았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황정명 부회장님께 2월 초중순경에 하되 구체적인 날짜는 알아서 정해도 된다고 전달하세요.”

“네, 대표님.”

용민은 지시 사안을 메모하며 대답했다.

“박찬명 사장님. 주식 상장을 위한 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상장에 관한 작업은 원래 한정길 사장이 맡고 있었으나 일본 법인의 총 책임자가 된 이후 찬명에게 모두 인계했다.

“액면가 평가는 끝났고, 회사 규모가 충분히 크기 때문에 따로 투자 유치를 받을 필요가 없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평가가 끝났다고 하셨는데 그럼 이미 주식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액면가 평가가 이루어진 주식은 상장하지 않더라도 거래가 가능했기에 묻는 것이었다.

“투자 유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분은 법인소유이거나 대표님의 소유라서 아직 주주들에게 배당된 주식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상장 일정은 정하셨습니까?”

“오늘 대표님과 상의하고 일정을 조율할 예정입니다.”

“2월 말경에 SH에듀케이션과 SH커뮤니케이션을 상장시키도록 하세요.”

“스마트 폰이 출시되면 상장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박찬명 사장은 수혁의 말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물론 그전에 상장을 해도 좋지만. 호재를 끼고 상장을 하게 되면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거든요.”

“확실히 그렇게 하면 회사 자본이 훨씬 큰 규모로 불어날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스마트 폰 출시에 맞춰 계열사에 앱이 지원될 예정이니, 2월 말이 되기 전에 앱 관리팀을 따로 창설하세요.”

수혁은 임원진에게 제품이 출시됨과 동시에 기민한 대응을 요구했다.

“저희의 경우에는 앱 개발을 주도했던 인력들 중 몇몇을 차출해서 팀을 꾸리면 될 것 같습니다.”

“SH에듀케이션도 서버 관리를 하는 직원들 중에 프로그래밍에 해박한 인력이 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김용민 본부장과 박찬명 사장은 새로운 팀을 꾸리는 데 문제가 없음을 밝혔다.

“저, 최필재 팀장님. 지오쇼핑을 위해 따로 개발된 앱은 없습니까?”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던 유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오쇼핑은 신생 회사인 데다 다른 계열사에 비해 수익도 적었고 자체적으로 앱을 개발할 능력도 없었기에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지오쇼핑 앱은 물류창고가 완성되는 시기에 맞춰 개발이 완료되도록 조치를 취해 놨습니다.”

“아, 대표님께서 이미 안배를 해 놓으셨군요.”

“전 SH그룹 대표면서 지오쇼핑의 회장이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어떤 회사들보다 최우선으로 챙기고 있으니까요.”

수혁은 자신의 회사가 동료들의 회사들에게 뒤처질까 초조해하는 유신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궁금해서 여쭤본 것뿐입니다.”

속마음을 들킨 유신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대표님, 연말에 중국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말씀 잘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게 있었거든요.”

한정길 사장이 중국을 언급하자 수혁은 무릎을 탁치며 대화를 이어 갔다.

- 240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