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44화 (244/316)

244화

“여길 보시면, 폴더 같은 것들이 화면에 뜬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걸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를 클릭하면 특정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혁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스마트 폰을 다루었다.

‘액정이 커 보여도 통상적인 핸드폰이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어.’

‘컴퓨터에 깔린 운영체계랑 비슷해서 조작이 간편해 보여. 게다가 터치 방식이라 이용하기도 편리할 것 같고.’

발표 내내 지루해하던 기자들은 스크린에 뜬 스마트 폰 화면을 보곤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재 센터 내에 무선 인터넷망이 깔려 있지 않은 관계로, 인터넷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실행시켜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수혁은 게임을 실행했다. 김용민 본부장이 팀장 시절에 제작한 게임은 애니메이션 회사에 캐릭터 제작을 의뢰하고, 회귀하기 전에 인기를 끌던 핸드폰 게임을 모티브로 하여 상당히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지금은 Z1을 공개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게임 시연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SH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웹브라우저 앱이 있어 인터넷에 사용할 수 있게 했고, 다양한 기능들이 탑재된 앱이 있지만…… 이는 추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이랑 반응이 많이 다르네? 하긴 스마트 폰을 처음 봤으니 당연한 건가?’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어댔고, 급기야 촬영 기기로 녹화를 하는 언론사도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그 시각, A룸에서는 일송의 신제품 공개로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일송전자의 이정찬 부회장은 유학파 출신답게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며 신상 핸드폰 소개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3월에 출시될 스타일 폰의 외양을 살펴보면, 기존 제품들과 달리 곡선미가 살아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셜리 장의 자문을 참고한 것으로, 전자기기와 예술품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전문가의 평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찬은 일송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신상품을 자신 있게 선보이고 있었다.

“C룸으로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왜요?”

“나도 몰라, 대단한 제품이 나왔다며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나 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의 없게 뭐 하는 거야?’

이정찬 부회장은 발표자를 앞에 두고 쑥덕거리는 기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표정을 애써 유지하며 발표를 이어 갔다.

“작년 가을에 출시한 핸드폰과의 차이를 이야기하면, 화면이 이전보다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무게는 300g 덜 나아가서 실용성 측면에서도 큰 향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장점들을 열거하며 차분히 설명하던 정찬은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는 기자들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일송의 제품 설명회는 매번 성공적이었고, 특히 핸드폰의 경우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했기에 이러한 현상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스타일 폰은 출시가는 550달러로 소비자들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고사양의 카메라 및 MP3 기능의 탑재로 타사 기기들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30분 정도 휴식 시간을 갖은 후 프레스 룸에서 받을 예정이니 급히 마무리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절반 이상의 기자들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정찬은 약속된 시간보다 10분 일찍 발표를 마쳤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회장님.”

일송의 이현성 전무는 정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회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현재 타사 대표님들과 오찬 자리를 갖고 계시는 중이십니다.”

이경욱 회장은 통역사를 대동하고 다국적 기업들의 오너들과 인맥을 쌓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 시국에 뭐하고 계시는 건지…… 하, 전무님. 기자들이 왜 저러는 겁니까?”

“그게…… 제가 방금 알아보니 기자들이 C룸으로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

“C룸이면 강수혁 대표가 있는 곳이 아닙니까?”

전무의 보고를 들은 정찬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네, 그렇습니다.”

“WG가 내놓은 핸드폰 때문에 그런 겁니까?”

“기자들이 수군대는 걸 들었는데 이전에 출시된 제품들과 결을 달리하는 혁신적인 핸드폰이 공개됐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길래 다들 그렇게 호들갑인 겁니까?”

“송구스럽지만 방이 사람들로 가득 찬 상황이라 자세한 사안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현성 전무는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대답했다.

“쯧쯧, 꼭 룸 안으로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는 겁니까? 전무쯤이나 됐으면 기자들 한둘쯤은 아실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기자들이라고 해 봤자 국내 언론사 소속 직원들인데 모두 일송의 제품을 취재하느라 정보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만평일보를 비롯한 유수의 언론사들은 일송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한국기업의 제품을 취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제가 이 전무를 이곳에 데려왔을 땐 나름의 역할을 기대했는데 참 한심하네요. 최고로 대우를 해 주면 뭐 합니까? 돈값을 못 하는데.”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뭐하고 계십니까? 당장 가서 상황을 파악하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정찬이 계속 화풀이하듯 말하자, 현성은 쩔쩔매며 방을 빠져나갔다.

‘이런 젠장, 박람회가 열린 이래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WG가 나름 기술력이 있다곤 하지만 일송을 능가할 만한 제품을 만들 능력은 없었잖아?’

평소 교양 있고 품격 있다는 평을 듣는 이정찬이었지만, 자제력을 잃으면 성격이 돌변하여 부하 직원들을 모욕하는 버릇이 있었다.

‘후, 강수혁 이놈…… 예전부터 묘하게 거슬린단 말이야. 명학이랑 정수 때고 그렇고, 자꾸 신경을 건들인단 말이야. 열 받아 죽겠네.’

그는 찬물을 들이키며 분을 삭였다.

* * *

‘입소문이 퍼진 모양이군, 사람들이 이렇게 꽉 찼으니 일송에서 배가 많이 아프겠는데?’

수혁은 물밀 듯이 들어오는 기자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Z1 출시에 맞춰 우리 SH에서는 국민들의 편리한 생활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지오헬스케어’라는 프로그램인데, 만보기 기능과 간단한 수치 입력으로 내 건강상태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앱입니다. 이외에도 메신저, 포털 등 다양한 앱도 곧 나올 예정이니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본격적으로 SH 홍보에 들어갔다.

“앱을 깔고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Z1의 운영체제를 개발한 회사가 다름 아닌 우리 SH입니다. 저희는 소비자들이 핸드폰을 통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제를 전환함과 동시에 스마트 폰 화면을 끌고 다시 피피티를 띄웠다.

“초두에 PC를 언급했던 이유는 우리가 개발한 이 핸드폰이 컴퓨터에 탑재되어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모두 소화할 만한 잠재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음…… 이해하기 쉽게 직장생활을 예로 들겠습니다. 인터넷이 발달됨에 따라 회사 간 원격 화상 회의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는데, Z1이 있으면 회사가 아닌 밖에서도 자료를 주고받으며 화상회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수혁은 화상 앱에 파일 첨부 기능을 넣으면 굉장히 편리하다는 점을 언급하는 등 스마트 폰이 회사 생활에 초래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시간 관계상 모두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이 핸드폰 하나면 육아는 물론 건강 관리, 교육 등 삶의 전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그 외 사항들에 관해선 프레스 룸에서 전달 드릴 계획이지만, 그전에 잠시 5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마무리까지 불과 7분여밖에 남지 않았기에 질의응답은 간략히 하고, 못다 한 이야기는 프레스 룸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질문 있습니다.”

“WG에서 선보인 이 핸드폰은 단순한 통신기기가 아닌 거로 보여지는데…….”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누가 고안하신 겁니까?”

“자, 자, 스케줄 상 모든 질문은 받기 어려우니 딱 두 분만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궁금한 사안이 있으면 바로 뒤편에 프레스 룸이 있으니 차분히 순서를 기다려 주세요.”

수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퍼붓자 사회자는 능숙하게 분위기를 정리했다.

“안녕하십니까? UBC의 앤드류 기자입니다. 지금까지 신상품에 들어있는 다양한 개념들을 소개해주셨는데, 일반 대중들이 핸드폰을 구매하게 되면 프로그램을 어디서 다운 받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UBC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사로 방송,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 세계의 소식을 알리는 회사였다.

“안 그래도 설명드리려 했던 부분인데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켜게 되면 ‘J스토어’라는 앱이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들어가시면 클릭 한 번 으로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올린 앱을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P2P 방식의 플랫폼으로 보여지는데, 운영의 주체는 어느 회사입니까?”

P2P는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파일을 공유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공유사이트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가상의 공간에 파일을 올려놓으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운받는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P2P 방식과는 조금은 다릅니다. J스토어를 운영하는 회사는 우리 SH이며, 합리적인 수수료를 받을 예정이라 고객 부담은 크지 않을 겁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대답을 들은 앤드류는 자리에 앉았고, 기자들은 질문을 하기 위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Z1의 강점은 핸드폰에 다채로운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앱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커다란 화면에 터치 기능을 넣어 마우스와 키보드가 없이도 핸드폰을 컴퓨터처럼 사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도 큰 장점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느 회사에서 나온 겁니까?”

영국의 유명 방송사인 JP통신의 기자가 발언권을 얻고 질문했다.

“하드웨어에 대해서 우리 직원과 WG의 관계자가 상의한 적은 있지만, 터치 방식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하자는 아이디어는 현명길 회장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수혁은 모든 이슈가 SH로 몰리면 WG 측에서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명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강수혁 대표님과 질문이 남은 기자님들은 프레스 룸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훗, 다들 방으로 가느라 정신이 없네. 정확한 건 보도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기자들 반응이 나쁘지 않군.’

대다수의 기자들은 두 번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잡으려 빠져나가고 있었고, 수혁은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료들은 제가 따로 챙길 테니 먼저 가셔도 됩니다.”

“사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 뵙도록 하죠.”

수혁은 박찬명 사장을 뒤로하고 프레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24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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