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어제까지만 해도 추웠던 날씨가 확 풀린 걸 보니 회사의 앞날이 밝을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박찬명 사장은 건물 앞에 서 있는 수혁을 발견하고 다가와 말을 건넸다.
“예정보다 2주 정도 빨리 완공돼서 다행입니다. 아직은 학기 초라 바쁘지 않거든요.”
“아, 아직 졸업을 안 하셨군요? 회사에 매일 출근하셔서 다니시는 걸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대 수업 중에 만만한 것들은 없을 텐데, 업무가 지연되거나 소홀하신 적이 거의 없으셨던 것 같아.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분이야.’
찬명은 학업에 열중함과 동시에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수혁의 모습에 내심 감탄했다.
“대표님, 성남 시장과 국회의원들이 도착했습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직원 하나가 수혁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현재, 커팅식을 하기 위해 정문에서 대기 중이십니다. 대표님만 오시면 행사를 바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
“바로 가도록 하죠.”
수혁은 찬명과 함께 건물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십니까? SH그룹의 대표 강수혁입니다. 민생을 살피느라 다들 바쁘실 텐데, 귀한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성남시에 SH의 그룹 본사가 생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시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기업 하나가 도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지요.”
“이미, 지자체들 사이에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굉장합니다. 이런 시국에 SH그룹의 본사가 온 것은 시민으로서는 참 기쁜 일입니다.”
시장이 먼저 덕담을 꺼내자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발 빠르게 동조하고 나섰다.
‘처음 본사를 설립한다고 했을 땐 관심도 안 보였던 사람들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아니꼬우면 성공하라는 거겠지.’
수혁이 성남에 본사를 짓는다고 발표했을 때 성남시에서는 늦은 행정 처리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고, 국회의원들은 판교에 들어온 수많은 기업 중 하나 정도로 판단했었다. 그러나 SH 계열사들의 대약진과 국제제품박람회 이후 엄청난 인지도를 얻은 상태였기에 회사의 초대에 금방 응할 수밖에 없었다.
‘정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통령께서 주의 깊게 보신다던데……. 기왕 온 거 친분을 좀 쌓아야겠어.’
‘핵심 경제인들만 참여할 수 있는 미래 비전 연구소장 자리도 마다한 사람이라고 들었어. 현재 강수혁 대표와 SH는 뜨거운 감자야. 다른 행사를 좀 미루더라도 안면을 익힐 필요가 있어.’
정치인들은 최근 급부상한 수혁에게 잘 보이려 무진장 애를 쓰고 있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SH그룹이 처음으로 본사다운 본사를 갖게 되었는데, 시장님과 의원님들이 참석해 주신 덕분에 자리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커팅식을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기자님들은 이쪽에 오셔서 사진을 찍어 주시길 바랍니다.”
“내빈분들은 모두 지정된 자리에 서 주시다가 신호가 들어오면 잘라 주시면 됩니다.”
수혁의 지시가 떨어지자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커팅식을 진행했다. 잠시 후 행사는 모두 끝이 났고, 기자들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표님. 오늘 SH에듀케이션과 커뮤니케이션이 상장했는데, 엄청난 기세로 주가가 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투자자분들께서 뜨거운 성원을 보내 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실, 오늘 아침부터 커팅식을 준비하느라 주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한 상황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현재 SH그룹이 중국과 일본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는데요. 국민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일본의 경우 법인이 이미 설립되어 영업 개시를 앞두고 있고, 중국은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날짜를 말씀드릴 순 없지만, 하반기 전에는 사업을 개시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자들은 돌아가며 궁금한 사안들을 질문했고, 수혁은 능수능란하게 답변을 했다.
“대표님, 시간이 다 됐습니다.”
“죄송하지만,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세요.”
예정된 15분이 모두 지나자 박유신 사장은 귓속말로 이를 알려 줬고, 수혁은 기자들에게 인터뷰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저희 성남시는 SH그룹을 비롯한 일류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SH그룹이 유명하기 전부터 그 잠재성을 알아보고 본사 설립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온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항간에 정치인들만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없다 하던데, 저 모습을 보니 딱 들어맞는 말이군. 적어도 방해는 안 했으니 완전 거짓말은 아니네. 후, 지지든 볶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자.’
수혁은 SH에 관심이 없었던 시장이 마치 본인이 유치에 큰 기여를 한 것처럼 사실 관계를 왜곡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의원들도 인터뷰하기에 바쁘구나,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내키지 않네.’
SH를 자신들과 결부시켜 치적을 세운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혁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다가 회사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표님, 시장님과 의원님들께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찬명 사장은 정치인들이 행여나 기분이 상할까 염려되었다.
“지금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거 안 보이십니까? 저자들은 우리에게 콩고물을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이지 도움을 줄 만한 위인들은 아닙니다. 임원 중 하나를 시켜 일정이 바빠 먼저 갔다고 전해 주면 별 불만 없을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적절히 조치하겠습니다.”
찬명은 수혁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알아채고, 지시에 토를 달지 않았다.
“대표님, 바로 회의실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네, 정확히 30분 후에 회의를 시작할 거니까 임원들에게 시간 맞춰 오라고 전해 주세요.”
“넵, 대표님.”
박유신 사장은 수혁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임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새 본사의 회의실은 이전에 그룹 회의가 열렸던 SH커뮤니케이션의 회의실보다 더 넓고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돈 꽤나 들었겠는데?’
회의 탁상 정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는데, 기존에는 발표 용도로만 썼으나 지금의 것은 원거리에 있는 사람과 즉석에서 화상 미팅을 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임원들이 앉는 탁상 앞엔 스크린과 연결된 작은 모니터들이 달려 있어 편하게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안배가 된 상태였다.
“대표님, 임원들이 오고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박찬명 사장은 수혁에게 귀띔을 한 뒤, 사회를 보러 단상으로 이동했다.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편안히 지내셨습니까?”
“최근 회사에 경사가 겹쳐 마음이 편안하시겠습니다.”
회의실에 들어온 임원들은 저마다 인사를 건넸고, 수혁은 적절히 화답하며 친목을 다졌다.
“시간이 됐으므로 회의를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안건 보고에 앞서 대표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보고를 듣기에 앞서 임원들과 긴급 사안을 처리하는 습관이 있었고, 회의 경험이 많은 찬명은 이를 정례화 시켰다.
“다사다난했던 2002년과 달리, 2003년은 기쁜 소식으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제가 세세히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음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임원 여러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혁은 유려한 언변으로 회의 서두를 장식했다.
“조금 전 기자에게 증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실 분 없으신가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장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박찬명 사장이 발 빠르게 반응했다.
“금일 아침부터 SH커뮤니케이션과 SH에듀케이션의 주식 거래가 시작됐는데, 방금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20분 전에 이미 상한가를 치고, 장이 마감되었다고 합니다.”
“오, 벌써요?”
이야기를 들은 수혁은 손목시계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시각은 오전 11시경으로 장이 마감되기에는 굉장히 이른 때였다.
“평가 기관에서 우리 기업의 재정 건전도를 높게 평가한 데다 자산 규모에 비해 매출이 많이 나오는 짐이 호재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박찬명 사장님의 말씀에 첨언을 하자면 Z1의 출시가 SH그룹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대중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유신 사장은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했다. 그는 증권사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SH관련 여러 정보를 들은 터라 아는 것이 적지 않았다.
“그 말씀은 우리 그룹의 주가 상황이 과열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회의 전에 잠깐 알아보니 우리 그룹의 시가 총액이 벌써 8조 원을 넘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승세라면 우리 회사가 대기업 소리를 듣는 날이 곧 오겠습니다.”
“해외 법인들도 곧 영업을 개시하는 것으로 압니다. 만약, 중국과 일본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유신의 말을 들은 임원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에 벅찬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수혁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가만히 좌중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잠시만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수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현재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에 여러분들이 도취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새롭게 개편되는 시장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려면 이전과 같은 긴장감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SH는 이제 막 세계 무대를 향한 발걸음을 뗐을 뿐입니다. 일전에 말씀하신 계획들을 검토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살펴봤는데, 당분간은 쉬지 않고 업무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당초 최고가 아니면 인정을 하지 않는 최필재 사장은 수혁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아, 마침 사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잠시만요. 네, 말씀하시죠.”
필재는 메모장을 꺼내 수혁의 지시를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Z1이 출현하게 되면 일상생활부터 회사 업무 처리 방식까지 삶의 전 분야에서 큰 변화가 발생할 겁니다. 사장님께서는 이에 발맞춰 수익을 낼 수 있는 어플을 제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스마트 폰이 조성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회의가 끝나는 즉시 앱 제작을 전담하는 개발팀을 새로 꾸리겠습니다.”
최필재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의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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