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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64화 (264/316)

264화

“방금 아주 잘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자의 의혹 제기 자체는 사회에 자정 작용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사에는 사실 관계를 확정 짓는 거짓 내용이 난무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표님께서 과하신 면이 있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 만평일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거부하신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배석현 기자는 대화가 불리하게 흘러가자 화제를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수혁은 더 이상 그런 수에 놀아날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조금 전에 한국대 학생들만 혜택을 준 건 잘못된 게 아니냐고 물으신 것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저는 지방에 있는 거점국립대학의 학생들에게도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우리 회사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논의 중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증명이 가능하십니까?”

“회사에서 이를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내부 자료만으로는 납득이 안 가시겠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수혁은 품속에서 김정협 대통령에게 보여 줬던 서류들을 꺼냈다.

“이 서신들은 주요 국립대학 총장님들이 보내 주신 답변입니다. 아직 학교에 찾아가지 못해 협약을 맺지는 못했지만, SH가 지방 인재들에게 기회를 부여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기자들이 보이게 서신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카메라 플래시가 수혁을 뒤덮었고, 배석현 기자는 이를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고교 시절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들의 노력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성공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지방대생의 현실을 고려하여 결정한 사안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석현을 외면하고, 기자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2003년에는 지역 할당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훗날에도 공기업을 중심으로만 적용이 된 것을 생각하면 사기업인 SH의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표님, 궁금한 게 더 있습니다.”

“앞으로 만평일보의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짜 뉴스를 직접 작성하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호응한 몇몇 언론사들도 잊지 않고 있으니 유의하시고 질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석현 기자가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지만, 수혁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기세가 장난이 아닌데?’

‘작년에도 억울한 일이 있었지만, 발언에 주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기자들은 수혁의 거침없는 언사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경민일보의 이구현 기자입니다.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현혹한 뒤 인재 채용을 감행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혹시 이에 대한 입장이 있으십니까?”

“해당 의혹은 만평일보에서 제기한 것으로 국민께서 많이 궁금해하는 사안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장학금을 받는 학생 중 우리 회사에 입사할 의무가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듭 이야기하지만, 채용 과정은 어떠한 강제성도 띠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 옆에 계시는 기자님 질문해 주세요.”

“민족일보의 김지현입니다. 만평일보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조치를 취할 예정이신지요?”

“작년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특정 언론사를 중심으로 권력을 남용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가짜 뉴스로 피해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것에 반해 만평일보 같은 언론사는 형식적인 사과 한 번이면 모든 게 덮어졌지요.”

수혁은 만평일보 때문에 본인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마음고생 한 것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에 저는 지오닷컴에 올려진 만평일보의 모든 기사를 내리고, 향후 작성된 기사들도 모두 거부할 것을 선언하겠습니다.”

“대표님, 질문 있습니다.”

“제 질문 먼저 받아 주십쇼!”

수혁의 말을 들은 기자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며 발언권을 얻으려 애를 썼다.

“아직 민족일보 기자님의 차례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하세요.”

“답변 잘 들었습니다. 현재 지오닷컴은 국내 포털 시장을 석권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특정 언론사의 기사를 거부하는 행위는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서 탄압했다는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지현 기자는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 갔다.

“많은 고객께서 지오닷컴을 사랑해 주신 덕분에 유리한 지위에 있다는 말씀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신문사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자랑하는 만평일보의 만행에 대해서는 누가 심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만평일보가 오보를 냈음에도 정정 보도를 낸 경우는 30%가 채 되지 않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아냈습니다.”

수혁은 거대 언론사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설명한 논문의 자료를 인용하며 말했다.

‘옳은 이야기인 건 맞지만, 발언이 너무 위험해.’

‘만평일보를 대상으로 전쟁이라도 벌일 참인가? 너무 무모한데?’

‘역대 대통령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한 게 만평일보인데, 무슨 배짱이지?’

기자들은 수혁의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언론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리한 지위에서 사람들을 핍박하고, 권력을 남용한 주체가 누구인지 제대로 살펴봐 주시길 바라며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김지현 기자의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손을 들었고, 수혁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른 기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만평일보 측에서 법원에 문제를 제기하면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

“같이 맞대응을 해야겠지요.”

“비록 대표님께서 기업 경영의 자유를 갖고 계시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보다 더 앞선 가치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법원이나 헌법 재판소에서 사안이 다뤄지면 좋은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에 대해 한 말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과거, 법원이나 검찰에 출입하며 나름의 법 상식을 갖고 있던 기자는 소송에 들어가면 SH그룹이 불리하다는 것을 꼬집고 있었다.

“SH는 법원에서 내리는 사법 판단을 존중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답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헌재나 법원에서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만평일보가 표현의 자유를 넘어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만평일보가 소를 제기할 시 있는 힘껏 대응하겠다는 것을 끝으로 답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후에도 수혁은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고, 그때마다 단호한 입장을 내비치며 이전과 달리 강경한 태도를 견지했다.

‘후, 나도 모르게 조금 흥분한 것 같아. 잠깐 쉬었다가 업무를 시작해야겠어.’

기자 회견을 마친 수혁은 대표실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의자에 기댄 채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하던 그는 품속의 핸드폰이 울려 대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대표님, 김형석 변호사입니다.”

신평 법무법인의 김형석 대표 변호사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수혁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변호사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야, 항상 잘 지내고 있지요. 것보다 만평일보와 전면전을 선언하셨다면서요?”

“벌써 기사가 떴습니까?”

“현재 포털 뉴스란이 SH와 만평일보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이셨습니까?”

“이제까지 많이 참다가 내린 결정입니다. 만평일보도 세상 무서운 줄은 알아야 하지요.”

“그래도 최소한 저와 상의는 하시고 하셨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어도 제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을 거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석은 사태의 심각성을 주지시키려 노력했지만, 수혁은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지금이라도 기사를 거부하겠다는 발언은 취소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만약, 만평일보의 기사를 모두 내리면 헌재와 일반 법원 양쪽에서 소가 제기될 겁니다. 물론 신평에서 SH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겠지만, 승소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무방하고요.”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럼, 왜…….”

수혁의 말을 들은 김형석 변호사는 할 말을 잊은 채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송에 들어가면 제가 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내린 결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최대한 오래 소를 끌 계획이니까, 철저히 대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가 길어지는 만큼 손해 배상액도 엄청나게 커질 겁니다. 만약 법원이 SH가 만평일보의 영업을 부당하게 방해했다고 판단하면 배상액의 규모가 백억 단위는 훌쩍 넘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100억이든 1,000억이든 대가를 지불하게 할 수만 있다면 천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대표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만평일보에서 움직이면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 놓겠습니다.”

수혁의 각오가 예상보다 굳건한 것을 확인한 형석은 더 이상의 설득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만평일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인 만큼 이들에게 우호적인 인사들이 각계각층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런저런 거 다 따졌으면 애당초 시작하지도 않았을 싸움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 뒀으니, 변호사님은 송사만 신경 써 주셔도 충분합니다.”

수혁은 김형석 변호사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만평일보의 버릇을 단단히 고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 최대한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전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네, 나중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군. 예전이야 힘이 부족해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히 끝장을 봐야겠어. 흠,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까?’

전화를 끊은 수혁은 다음 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정도면 만평일보라도 별수 없을 거야.’

생각을 정리한 수혁은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낸 후 이경률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장님, 강수혁입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대표님께서 전화를 주셨네요.”

“신기하네요. 저도 긴히 드릴 말씀이 있었거든요. 먼저 말씀하시죠.”

“조금 전에 동문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동문회장님께서요?”

‘만평일보의 기사를 보고, 총장님께 전화를 한 걸 거야.’

경률의 말에 수혁은 다소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 26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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