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작년 그룹 회의 때부터 2003년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 해가 될 거라고 거듭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변화한 시장 환경에 긴밀히 대응하기 위해 앱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핸드폰에 들어가는 운영 체제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지금부터 회사별로 보고를 들을 건데, 그에 앞서 그룹 협력팀장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계열사 현황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룹 협력팀이라는 새로운 부서를 신설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룹 협력팀에서 일하게 된 김찬식 팀장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찬식은 수혁과 학교생활 내내 붙어 다녔던 단짝 친구로 평소 활발한 성격과 붙임성을 보여 줘 직원으로 채용했다.
‘풋, 맨날 나한테 같이 일하고 싶다며 조르더니 제법 잘 어울리잖아?’
수혁은 친구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찬식은 정식적인 채용절차 없이 친분으로 고용됐긴 했지만, 팀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특유의 넉살과 친화력으로 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다른 회사 간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는 데에 성공하여 적응이 완료된 상태였다.
“김찬식 팀장님이 취임하신 지 아직 2주 정도밖에 안 됐으니, 여러분들께서 이것저것 잘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격이 워낙 좋으셔서 협력 업무 파악부터 조직 문화까지 안 가르쳐 드릴 수가 없더라고요.”
“확실히 김찬식 팀장님께서 부임하신 이래로 계열사 간의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임원들은 이미 찬식의 매력에 매료된 것처럼 보였다.
“제가 부재중이거나 연락을 못 받을 땐 김찬식 팀장님께서 업무 요청을 받거나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서로 친하게들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주 업무는 회사 간 조율과 협력 추진이고, 항상 그렇듯 모든 일은 제가 처리할 예정이니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수혁은 임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김찬식 팀장님, 최근 진행된 협력 사안들이나 주요 소식들을 보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는 SH소프트의 앱 제작 개발과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있겠습니다. 각 회사에서 필요한 앱을 주문하면 최필재 사장님께서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손수 관리를 하고 계십니다.”
“아직 초반이니 최필재 사장님께 의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은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장님들께서도 자체적으로 관리팀의 역량을 키워 불편함을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대표님.”
“현재 전문 인력 채용을 진행 중인데, 최대한 신속히 자생력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박유신 사장과 박찬명 사장은 거의 동시에 대답을 했다.
“해외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수혁은 일본과 중국에 진출한 법인들의 근황이 궁금했다.
“안 그래도 왕진량 대표님과 한정길 대표님께서 현황 보고서를 보내 주셨습니다.”
찬식은 서류철에서 문서들을 꺼낸 다음 수혁에게 건네주었다.
“보고서 내용이 상당히 짧군요.”
“회의 중에 읽으실 것 같아, 내용을 요약해 놨습니다. 전체 내용은 나중에 편히 읽으시라고 메일로 보내 두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잠시 살펴볼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찬식의 조치에 만족해하며 보고서를 읽었다.
“일본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동남아에서도 지오 챗 사용률이 80%에 육박하다니, 정말 놀랍군요.”
메신저 사업이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 수혁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Z1이 발매됐을 당시 메신저 앱이 지오챗밖에 없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왕진량 대표님 집안에서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에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계신 점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수혁은 중국에서 포털과 메신저 사업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국가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왕진량 대표님께서 동남아에 거주하는 화교분들에게 지오 챗을 사용하라며 권했다고 들었습니다.”
“동남아에 부유한 화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화교들을 중심으로 이용이 확산되자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비록 몇몇 국가의 경우 Z1이 너무 비싸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구가 부족하긴 하지만,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안배를 해 놓아서 이용률은 점진적으로 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찬식 팀장은 보고서를 샅샅이 읽은 상태였기에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상당히 고무적인 소식이네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은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보유하여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나라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눈앞의 일본, 중국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뜻밖의 희소식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북미와 유럽의 경우에는 레일로에서 개발한 메신저 앱이 유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가 인구는 많지만, 아직 구매력 측면에서는 서양에 뒤지는 상황이라 무척 아쉬웠습니다.”
“레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원 수를 보유한 포털 업체입니다. 메신저 개발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일반인들도 예상할 수 있는 사안이었죠.”
최필재 사장이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수혁은 담담한 반응을 보여 줬다.
“SH소프트가 앱 개발의 선두 주자라곤 하지만, 레일로는 세계적인 수준의 개발진을 보유했기 때문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퀄리티 있는 앱을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타이틀 덕분에 이득을 많이 보았으나 이제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수혁은 선발 주자로서 취할 수 있는 이익은 모두 얻어 냈음을 지적했다.
“대표님 말씀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우리 SH소프트는 소득이 높아진 국민의 취향을 고려한 헬스케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문 의료인도 개발에 참여한 상황이라 기존의 것들보다 훨씬 유익한 앱이 만들어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필재는 한 달 전에 사립 명문인 한세대학교와 MOU를 맺었고, 한세병원에서는 기초의학을 전공한 전문 의료진들을 파견하여 SH소프트 개발팀과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의료에도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만약 고객의 신체 컨디션이 실시간으로 체크된 자료가 있으면 의사들도 진료를 보기에 훨씬 편할 겁니다.”
“대표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가 먼저 제안을 하는 입장이라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협조적으로 나와 준 덕분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른 임원들도 최필재 사장님처럼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뭐든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확신이 안 드시면 저에게 기획안을 보내 주세요. 사업성이 있는지 없는지 검토한 뒤 알려 주겠습니다.”
수혁은 다른 임원들이 필재의 적극적인 태도를 본받기를 바랐다.
“최필재 사장님이 소개한 제품 외에도 여러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우알려주다리 회사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회의가 끝나면 돌아가는 대로 직원들과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마침 검토하고 있던 사업안이 있었는데, 곧바로 대표님께 보내겠습니다.”
수혁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임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하, 제가 여러분들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잠시 잊었나 봅니다. 편하실 때 양껏 보내 주세요. 하지만, 그전에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J스테이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J스테이는 모 대기업에서 제작한 미니 홈페이지로 젊은 연령층에서는 대부분 이용하고 있었다.
“제 아들과 딸도 컴퓨터로 맨 날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더군요.”
“현재 국내 메신저는 J톡과 지오챗이 양분하고 있는데, J스테이의 이용자 중 상당수는 아직도 J톡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임원들은 J스테이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다들 잘 알고 계시네요. 이처럼 미니 홈피라고 불리는 J스테이가 큰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요?”
“제 생각에는 인간이라면 모두 가진 인정 욕구와 표현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SH커뮤니케이션의 김용민 사장은 회의 중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을 사장님께서 정확히 해 주셨네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용민의 말에 공감했다. 미니 홈피는 인터넷 블로그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매체로 자신의 일상과 개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매체들보다 월등함과 편리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는 J스테이가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우리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면 어떨까 고민해 봤습니다.”
“대표님 말씀은 공감하지만, J스테이가 구축해 놓은 아성이 워낙 견고하여 섣불리 사업을 벌이기에는 위험한 감이 있습니다.”
“사장님이 보시기엔 지금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늦었다고 보시는 겁니까?”
수혁은 용민이 반대 의견을 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이미 J스테이를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단단히 형성됐기 때문에 더 나은 상품이 출시되더라도 대중들이 쉽게 갈아타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 일송에서도 미니 홈피 시장에 뛰어든 바 있었지만, 수백억의 손실만 입고 철수한 사례도 있고요.”
김용민 사장은 지오챗을 제작하며 경쟁사에 대한 분석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참 흥미롭네요. 저는 사장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점 때문에 J스테이가 경쟁력을 상실할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사람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구성이라면 이에 변화를 주기가 더욱 어려운 법입니다. 두고 보세요. J스테이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거니까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사업을 추진해 보심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용민은 수혁의 말이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한 번도 틀린 결정을 내린 적이 없었기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지금은 납득이 잘 안되시겠지만, 나중에 보시면 저절로 알게 되시는 게 있을 겁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는 PC와 스마트폰 양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SNS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SNS? 그게 뭐지?
‘대표님께서는 항상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져오시곤 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는 걸까?’
2003년 당시에는 SNS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임원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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