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74화 (274/316)

274화

“저 대표님, 실례가 안 된다면 SNS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런, 하도 익숙한 개념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냥 튀어나와 버렸군.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박유신 사장이 궁금해하는 임원들을 대신해서 질문하자 수혁은 순간적으로 입이 굳어 버렸다. 그는 미래의 개념을 과거에서 불쑥 쓰는 것에 대해 항상 조심하고 있던 터라 당황했던 것이다.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약자로 특정한 활동이나 관심사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약칭하는 말입니다.”

“흠, 얼핏 들었을 땐 미니 홈피와 비슷한 개념처럼 보입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북미와 유럽 쪽에는 미니 홈피와 같은 것들이 활성화되지 않아 고객들이 다소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아 임의적으로 만든 단어이니 굳이 집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혁은 SNS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콘셉트로 제품 개발에 들어가면 좋을까요?”

최필재 팀장은 개발에 관한 책무는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걸 알았기에 서슴없이 질문을 던졌다.

“아이템 콘셉트는 이미 다 짜둔 상태입니다. 크게 두 가지 프로그램을 고안해 봤는데요. 하나는 미니 홈피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모방하되 심플함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해 봤습니다. 잠시만요.”

수혁은 말을 멈추고 USB를 컴퓨터에 연결한 뒤 화면을 띄웠고, 직접 스케치한 콘셉트 파일을 실행시켰다.

“이틀 전에 간단히 그려 본 거니까 살펴들 보세요.”

“…….”

회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수혁은 얼추 다 봤다 싶으면 적절하게 페이지를 넘겨 주었다.

“자, 어떻습니까?”

“저 I스테이보다 못하다는 건 아니지만, 구성이 너무 단순해 보여서 고객들의 취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SH에듀케이션의 박찬명 사장은 수혁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찬명이 형이 총대를 메고 나섰네?’

수혁은 콘셉트안을 살펴보는 임원들의 표정이 복잡미묘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부정적인 피드백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드신 거죠?”

“국내 고객들이 미니 홈피를 가상의 작은 집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반해 대표님의 안은 메시지 전달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배경 음악을 넣을 수 있고, 피드 기능을 첨가한 건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부족해 보입니다.”

“두 번째 기획안은 이것보다 훨씬 단순한데, 사장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정말 궁금하네요.”

찬명은 평소에도 직언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종종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수혁은 이번만큼은 감정의 동요 없이 느긋하게 대응하는 중이었다.

“실패 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될 수 있는 사업입니다. 이런 말씀 드려서 외람되지만, 상품 콘셉트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아니요. 전 이대로 쭉 갈 겁니다. 최필재 사장님 기획안을 조금 더 보완해서 보내 드릴 테니 바로 작업에 들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필재는 수혁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박찬명 사장님께는 미안하지만, 이건 이미 미래에서 검증된 것들이야.’

수혁은 회귀하기 전에 전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SNS를 참고해서 기획안을 만들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윌리엄 페이지라는 미국 벤처 사업가가 고안했는데, 수혁이 스케치한 2개의 상품은 모두 윌리엄네 회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이런, 사장님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또 대화가 길어질 것 같군요. 콘셉트안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찬명 사장이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수혁은 말을 끊고 대화를 주도했다. 이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간의 경험상 찬명과 토론을 벌이면 결국 쓴소리를 마감되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기업인 A마트와 레일로를 적절한 예를 들 수 있지요.”

A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트를 운영하는 회사로 오너인 제이크 쉴즈는 MC소프트의 스티브 콜 다음 가는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을 단순히 구매 장소로 여기기보다는 여가나 여흥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포털과 엘마트만 떠올려도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반면에 A마트나 레일로의 경우에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빨리 찾을 수 있게 만드는 데 포커스를 맞추는 편입니다.”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A마트는 매장 분위기도 조용하고, 구매의 편의성을 올리는 데 중점을 둘 뿐이지. 그 외의 다른 서비스들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임원 하나가 수혁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대학에서 논문을 하나 읽은 적이 있는데, 서양을 대표하는 단어로는 개인주의, 합리성, 논리성이 있고. 동양을 대표하는 단어로는 감성, 질서, 집단주의 등이 있었습니다. 즉, 고객의 니즈는 문화마다 다르기에 한국 고객들의 취향이 꼭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표님의 기획안이 전 세계 고객들을 타겟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국내를 평정해야 그다음에 세계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국내 버전을 따로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이렇게 쉽게 포기할 분이 아니지.’

수혁은 박찬명 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미국을 중심으로 사용자가 늘어나면 전 세계 사람들은 따라 쓰게 되어 있는데요. 우리도 이제 스케일을 키웁시다. 제가 볼 땐 지오닷컴이 레일로에 비해 뒤지는 부분은 거의 없지만, 매출 차이는 10배 가까이 나지 않습니까?”

“최근 해외법인에서 활발히 움직여 준 덕분에 우리 포털의 웹툰들이 중국과 일본에 곧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오닷컴이 비록 지금은 국내 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지만, 멀지 않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민은 수혁의 의도와 달리 본인의 회사가 비판받았다는 생각에 소심하게 항변했다.

“그냥 예시로 지오닷컴을 거론한 것일 뿐이니, 마음에 안 담아 두셔도 됩니다.”

수혁은 용민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으며 말했다.

“차분히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회의 진행을 계속 끊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박찬명 사장은 논리적인 수혁의 설명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됐지만, 궁금증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 상품 출시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미국과 유럽 고객들의 마음은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적절할 때 좋은 질문해 주셨습니다.”

‘호통이라도 치실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박찬명 사장도 그만 좀 하지, 자꾸 왜 저런데?’

임원들은 이쯤 되면 수혁이 화를 낼 타이밍이라고 여겼지만, 의외로 덤덤한 모습을 보여 줘 의외라고 생각했다.

“최근 한국대에서 저를 케이턴 대학 MBA 과정에 지원할 수 있게 추천해 준 적이 있습니다.”

“네? 아,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케이턴 대학이라면 경영학으로는 최고로 불리는 교육 기관 아닙니까? 축하드립니다.”

이야기를 들은 임원들은 크게 당황했지만, 경사스러운 소식에 초를 칠까 두려워 표정을 관리했다.

“회사가 한창 성장하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북미 지역과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혁은 회사 임원들이 자신에게 크게 의지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조금 들었다.

“그럼, 2년 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닙니다. 학교 측에서 회사 경영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 2년 과정을 1년으로 줄였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핸드폰이나 PC로 원격 경영이 가능하기에 1년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박유신 사장의 우려 섞인 물음에 수혁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언제쯤 떠나시는 겁니까?”

“9월 중순부터 학기가 시작된다고 하니, 9월 초경에는 미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서 집도 알아보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좀 있어서요. 아, 그리고 김찬식 팀장님께서 저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급하게 전달할 사안이 있으면, 팀장님께 연락드려도 됩니다.”

“대표님께서 학업이나 여러 일정상 연락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판단돼서 대표님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여러분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찬명 팀장은 임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왕 가시는 거 편한 마음으로 다녀오십쇼. 임원님들과 논의하여 회사가 잘 굴러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SH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만 있다면 1년이 아니라 2년, 3년이라도 외국에 다녀오셔야지요.”

임원들은 수혁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배려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지지해 주신 만큼 좋은 성과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수혁은 흐뭇해하며 말했다.

‘그런데, 유리가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흠, 조금 이따 회의 끝나고 물어봐야겠다.’

SH재단의 김유리 이사장은 평소 회의 때도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가라앉아 보였다.

“박찬명 사장님, 할 말을 모두 마쳤으니 회의를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다음으로 사장단의 보고 순서가 있겠습니다. SH커뮤니케이션의 김용민 사장님, 나와서 발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김용민 사장입니다. 저희 SH커뮤니케이션은 지난 상반기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포털 앱을 통한 회원 수 증가와 지오웹툰의 약진도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었지만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는 지오 챗의 출시에 있었습니다. 앞서 김찬식 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용민을 필두로 하여 사장단을 비롯한 최고 간부들의 상반기 보고가 이어졌고, 2시간 후에 회의는 종료되었다.

“회의를 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확히 30분간 휴식을 취한 뒤 저녁 식사가 있을 예정이니 어디 가지 마시고 근처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찬명 사장이 휴식 시간을 알리자 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등 개인 용무를 보기 시작했다.

‘수혁이가 한국을 떠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바쁘긴 해도 회사에서 종종 볼 수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회의실을 나온 김유리 이사장은 복도를 걸으며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 27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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