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네, 회장님.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이슨이 기본 부품을 건드릴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이번 기회에 저희도 자체 개발에 들어갈까 합니다.”
직원들을 통해 제이슨의 만행을 알아보던 수혁은 마지막으로 현명길 회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완제품에 들어가는 우리나라 부품은 20%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라 족히 수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MK이노베이션 측에서 부품 가격을 몇 퍼센트 인상했습니까?”
“WG는 저들의 최대 거래처기 때문에 15%만 올렸습니다. 하지만 전체 비용의 측면에선 적지 않은 손실이 발생할 예정이고요.”
WG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했기에 제이슨으로서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주요 고객이었다.
“비용은 저희가 보전해 드릴 테니, 제 편으로 청구서를 하나 보내 주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로 인해 사업적으로 피해를 보셨으니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 겁니다. 15%만 인상된 거면 제 사비로 충분히 메꿀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수혁은 농업 회사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WG에 금전적 지원을 할 계획이 있었다.
“허허. 대표님 덕분에 Z1이 세상에 나왔고, 심지어 후속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도 보내 주시지 않았습니까? 부품비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고작해야 수백억 수준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얻은 영업 이익은 20조에 달합니다. 이 정도는 우리 회사에 아무것도 아니니 개의치 마세요. 그리고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WG전자가 MK코퍼레이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눈치 보지 않을 정도는 되니까요.”
MK코퍼레이션은 제이슨 모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로 MK그룹의 근간이 되는 기업이었다.
‘대통령님도 그렇고, 회장님까지 다들 고마운 분들이야. 이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MK그룹과 승부를 피하지 말아야겠어.’
수혁은 제이슨을 생각하며 결의를 다졌다.
“말씀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그런데 회장님, 갑자기 뜬금없긴 하지만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조금 전에 뭐라고 했습니까? 대표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현명길 회장은 수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랐지만, 회사가 크게 성장한 만큼 어지간한 것은 지원할 역량이 된다고 자신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MK이노베이션이 생산하거나 특허권을 갖고 있는 기본 부품 목록을 저에게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거야 직원을 시키면 지금 당장이라도 보내 드릴 수 있긴 합니다만, 그걸 왜 아시려고 하는 겁니까?”
금전적인 지원을 고려하던 명길은 수혁의 발언이 뜬금없게 여겨졌다.
“회장님만 괜찮으시면 기본 부품 생산을 제가 직접 해 볼까 해서요.”
“대표님께서요?”
“네. 당장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저한테 계획이 있어서요.”
전화상이긴 했지만, 명길의 많이 놀랐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휴,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불과 4년 만에 회사를 엄청나게 성장시킨 대표님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기본적인 노하우 없이 패기만 갖고 덤벼드는 건 미련한 행동입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도 무턱대고 제조업에 도전하는 건 아닙니다. 절 오랫동안 지켜보셨다면 승산 없는 싸움은 안 한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흠…… Z1의 경우만 살펴봐도 대표님께서 허풍을 떠실 분은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러나 SH는 기껏해야 간단한 문구류 생산만 해 보지 않았습니까? 핸드폰 기본 부품이 얼핏 봤을 땐 간단해 보여도 첨단 기술이 필요한 분야라 생각처럼 녹록지는 않을 겁니다.”
현명길 회장은 수혁이 스마트폰 개발, 언론과의 전면전과 같이 남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과업을 이뤄 낸 것을 목격했기에 반박의 수위가 한층 낮아졌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올해 안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물론 생산까지 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능하다는 건 증명할 자신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회사를 설립하실 때 알려 주시면 회사 차원에서 해 드릴 수 있는 게 있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작업에 바로 착수할 예정이니 목록을 먼저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수혁의 의지가 굳건함을 확인한 명길은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강수혁 대표라면, 뭔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상황을 더 지켜보자.’
명길의 마음속에는 회의적인 감정이 가득했지만, 한쪽 구석에는 수혁에 대한 묘한 기대감도 공존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파악이 되는 대로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회장님.”
용건을 마친 수혁은 통화를 종료했다.
“찬식아!”
“어, 수혁아.”
김찬식 팀장은 수혁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아채고, 어느 순간부터는 근처에 서 있었다.
“조금 있다가 현명길 회장님께서 내 메일로 필요한 부품들이 적힌 문서를 하나 보내 주실 건데, 확인하고 나면 관련 제조 회사가 어디 어디 있는지 찾아봤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되도록 국내 기업 위주로 알아봐 줘.”
‘제조업 베이스가 없다면 그 베이스마저 사들이면 그만이야.’
수혁은 MK이노베이션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본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을 찾아내어 인수할 계획이 있었다.
“알겠어. 다른 건 더 시킬 거 없어?”
“음…… 일단은 그게 단데, 아마 앞으로 여유 부릴 시간은 없을 거야. 난 잠깐 찾아볼 게 있어서 방에 들어가 있을 거니까, 조사가 끝나면 프린트해서 책상 위에 올려놔 줘.”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근무 시작이구나? 오케이. 그럼, 바로 시작할게.”
찬식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여기다 뒀던 것 같은데…… 찾았다!’
방에 들어온 수혁은 여행 가방을 뒤지더니 미래에서 가져온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플이라면 스마트폰 안에 들어간 부품들을 분석할 수 있을 거야.’
수혁은 일전에 Z1 기획안을 만들 때 어플의 도움을 받아 스마트폰에 들어간 부품들의 최소 사양을 파악한 바가 있었다. 그는 이번엔 아예 생산 공정을 알아내어 인수한 기업에서 기본 부품들을 직접 생산할 계획이었다.
<사용자의 욕망을 읽어 도움말이 자동 실행되었습니다.>
‘마침 잘됐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들어간 부품들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알 수 있을까?’
<스마트폰에는 CPU, 카메라, 배터리, 통신 칩, 센서 등 수백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갑니다. 이 중에는 비교적 생산이 쉬운 것들도 존재하지만, 수조 원에 달하는 개발 비용이 드는 부품들도 존재합니다.>
‘CPU나 배터리 같은 메인 부품들은 어차피 유명 전자 회사들이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MK이노베이션과 큰 상관이 없어. 그러니 난이도를 떠나서 생산 공정을 알아낼 수 있는 거야?’
수혁은 2020년에 생산된 스마트폰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기존 특허권에 저촉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기계 분석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야 합니다.>
‘처음 듣는 프로그램인데?’
그는 언어 이해 프로그램과 도구 이용 프로그램 덕을 톡톡히 봤기에 어플 내에 깔린 다른 프로그램들도 모두 알아봤다. 그러나 주어지는 페널티에 비해서 유용한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딱히 다운을 안 받던 상황이었다.
<사용자의 욕망 실현을 위해 방금 프로그램이 제작되었습니다.>
‘잘됐네. 그럼 우선 페널티가 뭔지 알려 줘.’
수혁은 프로그램을 통해 얻는 이득과 페널티를 비교한 뒤 활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기계 분석 프로그램은 기존의 프로그램들에 비해 상위 기능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필요 스탯이 설정되었습니다. 물론 페널티는 별도로 부과되고요.>
‘필요 스탯? 흠, 미국까지 와서 스탯 퀘스트를 수행하긴 싫지만, 어쩔 수가 없네.’
과거 조성준을 상대한 이후 스탯 향상을 목적으로 한 퀘스트를 진행한 바가 없었기에 내키지 않았으나 MK그룹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었다.
<요구되는 스탯으로 지능과 통찰력이 있는데, 통찰력의 경우 요구치를 충족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지능 스탯만 46에서 50으로 올리시면 됩니다.>
‘
페널티는 뭔데?’
<앞으로 1년 동안 모든 스탯의 성장이 멈출 겁니다.>
‘스탯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올렸으니까, 괜찮아. 프로그램을 사용할 거니까 바로 진행해 줘.’
<네, 알겠습니다.>
어플은 수혁의 생각을 읽자마자 기계 분석 프로그램을 다운 받기 시작했다.
‘다운은 완료됐으니까 바로 스탯 퀘스트를 수행하자.’
<사용자에게 지능 향상 퀘스트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어플은 도움말 창을 끄더니 곧바로 퀘스트 창을 실행시켜 수혁의 눈앞에 띄웠다.
‘응, 확인할게.’
<케이턴 대학 MBA 과정에 도움이 되는 논문이나 전공 서적을 탐독하시오.>
창의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지체없이 수락 버튼을 눌렀다.
똑-똑
“어, 들어와.”
수혁은 노크 소리가 들리자 어플을 종료한 뒤 찬식을 맞았다.
“조금 전에 부품 목록이 도착했는데, MK이노베이션에서 제공하거나 특허권을 가진 부품이 총 8개더라고.”
“회사들은 알아봤어?”
“다행히, MK이노베이션이 직접 생산하는 3개의 부품 빼고는 거성전자라는 국내 중견 기업에서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걸 발견했어. 보니까 WG전자에도 이미 납품하고 있던 회사던데?”
“MK이노베이션이 로열티를 올리면 그 회사에서 납품 단가를 더 올리는 식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걸 거야. 수고한 김에 거성전자 시장 평가액이랑 대표 연락처 좀 알아봐 줄래?”
“알겠어, 수혁아.”
“오늘은 늦었으니까, 일은 여기까지만 하자.”
“내일부터는 엄청 바쁘겠네?”
“아마 고생 꽤 나 하게 될 거야. 수고했고 들어가서 쉬어.”
“너도 잘자.”
‘스탯 퀘스트를 하면서 인수 작업을 병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거성전자 건은 박유신 사장님께 맡기고, 난 학교생활과 퀘스트에 전념해야겠어.’
수혁은 찬식이 방을 나간 후에도 고민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 * *
시간은 흘러 일주일이 지났다.
“너 요즘 이상한 것 같아.”
“뭐가?”
수업을 마친 수혁과 루나는 평소처럼 함께 하교하는 중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맨 날 논문만 읽고, 나랑 대화도 잘 안 하잖아.”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봐 줘. 그래도 오늘만 지나면 앞으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일은 없을 거니까, 조금만 참아 줘.”
수혁은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결과, 지능 스탯을 49까지 찍었기에 오늘 안으로 50까지 올릴 자신이 있었다.
“진짜? 휴, 다행이다. 난 또 이걸 언제까지 이러려나 걱정했거든.”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미안한데, 나 먼저 들어갈게.”
수혁은 박유신 사장과의 화상 미팅 일정이 잡혀 있었고, 약속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음을 깨달았다.
“참나,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저렇게 빨리 뛰어가는 거야?”
루나는 사라져 가는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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