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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92화 (292/316)

292화

“이런, 오신지도 모르고 통화를 길게 했군요. 박람회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직원과 통화를 마친 아담은 거실에 있는 수혁을 발견하고 악수를 청했다.

“경영을 회사에서만 하기는 어려운 법이지요. 따님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을 텐데,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언젠가는 한번 뵙고 싶었던 분이라 기회가 될 때 따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대답하는 아담의 표정은 약간 불편해 보였다. 루나의 간청이 없었다면 수혁을 만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 왔나 보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루나는 벨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뭐야? 네가 직접 요리하는 게 아니었어?”

“아빠도 참, 요즘 같은 시대에 불편하게 요리할 필요가 뭐 있어. 뉴욕에서 알아 주는 스테이크 집에서 떠 온 거니까 맛있게들 먹자고.”

그녀는 아담의 볼멘소리를 무시하고 식탁 위에 음식을 세팅했다.

“자, 어서들 먹어.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스테이크 맛이 나쁘지 않을 거야.”

“음, 괜찮은데?”

“제 입맛에도 딱 맞네요.”

수혁과 아담은 스테이크를 썰어 한 점 베어 물고는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봐봐. 비록 직접 굽지 않아 정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맛만큼은 뒤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품질 좋은 고기에는 와인을 곁들여 줘야 풍미가 더 살아나는 법이지.”

루나는 와인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낸 다음 글라스에 따랐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MBA에 보내 줬더니, 술 마시는 법만 배워 온 것 같아서 걱정이군.”

“사람이 즐길 줄 알아야 일하거나 공부할 때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네 말 들어보면 대표님은 뭐든 열심히 한다면서? 너도 옆에 있으면 좀 배우는 게 어때?”

“후, 수혁을 비교 대상으로 삼으면 반칙이나 다름없잖아. 좀 평범한 사람이랑 비교해 주면 안 돼?”

아담의 핀잔에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능청을 떨었다.

“아, 수혁이 아빠한테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고 그러던데?”

“대표님처럼 아시는 것도 많은 분께서 질문 거리가 있을지나 모르겠네.”

“하하,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창피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개발한 메신저도 SH커뮤니케이션이 개발한 지오 챗을 본떠 만든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트렌드를 보는 안목은 대표님을 못 따라간다는 이야기죠.”

“기업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니 창피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타사의 제품을 참고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습니까?”

수혁은 아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배려해 주었다.

“역시, 소문처럼 겸손하시군요.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닐 겁니다. 어떤 게 궁금하셔서 절 보자고 청하신 겁니까?”

아담은 루나가 따른 와인을 마시며 질문을 던졌다.

“제가 트렌드를 잘 아신다고 하셨지만, 누구보다 발 빠르게 포털 사업에 뛰어든 회장님의 안목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미래 향방에 대해서 고견을 들을 수 있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수혁은 사업 이야기를 바로 하면 아담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우회해서 접근하기로 계획을 세워 둔 상태였다.

“흠, 사회, 경제의 발전 방향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은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을 겁니다. 경제 전문가와 과학자 등과 같은 지식인들이 미래에 대해서 논하지만, 적중률은 높지 않은 편이죠. 따라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게 터무니없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너들은 경영적 판단을 위해 나름의 기준을 갖고 미래에 부합하는 기업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곤 합니다.”

“미안한데, 난 들어가서 쉬고 있을 테니까 대화가 끝나면 불러 줘.”

루나는 와인을 연거푸 들이킨 상황에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알았어. 가서 쉬어.”

“루나, 좀 이따 보자.”

대화가 점점 무르익고 있었기에 이들은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루나를 방으로 보냈다.

“저도 회장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경영자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추세를 따라가는 사람도 있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지요. 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너는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유행을 따라가서 성공을 거둘 수도 있겠지만, 위대한 기업가라면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겨야 하는 법이죠. 미래 향방이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힌트를 드리자면 인터넷에 모든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담은 회사 비전을 쉽사리 말할 수 없었기에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인터넷이라…… 힌트치곤 범위가 넓긴 하지만, 굳이 추측을 하자면 인적 네트워크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흠, 그렇게 생각하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전 세계에 레일로라는 네트워크를 까시지 않으셨습니까? 회장님의 경영관을 살펴보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지요.”

‘반응을 보니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아. 적당한 말로 살을 붙여서 살살 구슬려 봐야겠다.’

수혁은 미래에서 왔기에 그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었다. 이는 아담이 추진하는 사업과 레일로의 향후 발전 방향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말이라서 대화를 원활히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과연, 포털을 운영해 보신 분답게 눈썰미가 있으시네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공감, 인정, 가치관의 공유까지 이 모든 것들을 손쉽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고민해 왔습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국이나 대형 언론 매체가 아니더라도 한 개인의 생생한 삶의 흔적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을까 모색했고, 심지어 사업화에도 성공했었죠.”

“그거 정말 놀랍군요. 저 또한 비슷한 목적성을 가진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거든요. 혹시 어떤 사업을 벌이셨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수혁의 이야기를 들은 아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잠시 운영했었습니다. 하지만 한 언론사의 농간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죠.”

“상심이 크셨겠습니다.”

“지나간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편이라 지금은 괜찮습니다.”

“영상 송출을 통한 의사소통이라…… 정말 놀랍습니다. 업계에서는 대표님을 두고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니 성공할 수밖에 없는 통찰력을 가지신 분 같습니다.”

아담은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수혁에게 점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 마음이라는 건 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똑같다니까?’

수혁은 비슷한 것에 끌린다는 심리학의 단순한 원리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부득이하게 인터넷 방송 사이트를 폐쇄한 이후,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기존의 사업을 보완한 새로운 기획안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오, 사업을 포기하지 않으셨군요.”

“따로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있어서 추진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 오늘 마침 기획안을 완성해서 가지고 와 봤는데,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거의 다 넘어온 것 같군. 지금부터는 일사천리겠어.’

아담이 기획안에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아챈 수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애써 만드신 기획안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냥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냥 가볍게 검토한다는 기분으로 보시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 정말 괜찮으니 보시고 평가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담은 못이기는 척하며 수혁의 프린트해 온 문서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종이를 넘기며 기획안을 검토하던 아담의 얼굴에는 경악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왜 그러십니까?”

“내용이 워낙 많아 상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파악한 바로는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려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한다는 콘셉트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고안하셨습니까?”

“한국에서는 블로그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 기왕 할 거면 글이나 사진도 좋지만, 영상을 활용함으로써 전달 효과를 극대화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흠…… 이거 참 공교롭게 됐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발견하셨습니까?”

수혁은 아담이 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짐짓 놀라는 척을 하며 반문했다.

“6개월 전부터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대표님께서 작성한 기획안과 상당히 유사해 보입니다.”

“동영상 플랫폼을 개발하고 계셨군요. 이것 참 신기한 일입니다. 오늘 대화에서도 그렇고 사업 스타일까지 이토록 흡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후,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표님의 기획안이 저희가 개발하는 사이트보다 훨씬 나은 것처럼 보입니다. 번역 기능을 장착하여 외국어로 된 영상도 시청할 수 있게 한 점과 라이브 방송을 가능하게 하여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저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아담은 수혁의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기획안에 적지 않은 아이디어가 몇 가지 더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왠지 대표님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저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저, 근데 죄송하지만, 대표님의 말씀을 조금 적어 가도 되겠습니까? 대화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요.”

“물론입니다. 제 이야기 중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 써먹으셔도 되니 편하게 적으세요.”

‘이 사람은 나를 경쟁사의 오너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고 있구나. 내가 그동안 너무 까칠하게 굴었던 것 같아. 그래, 동종 업계에 종사한다고 경쟁만 할 필요가 뭐 있겠어.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향도 있었던 거야.’

아담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수혁의 모습에 마음이 점점 열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사이트 론칭을 앞두고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나 고민이 되었는데,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워 가네요.”

“저야말로, 회장님의 혜안에 놀랄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와인이 아직 남았는데,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일단은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고 마시겠습니다.”

수혁은 애써 만든 좋은 흐름이 술로 인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싶었다.

“아, 네. 편하게 말씀하시죠.”

아담은 들고 있던 와인 병을 내려놓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가까운 미래에 AI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겁니다. 따라서 플랫폼에 AI 기술을 접목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습니까?”

아담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수혁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29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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