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93화 (293/316)

293화

“AI를 통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동영상을 홈페이지 전면에 뜨게 만들면 사용자들의 편의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수혁은 미래의 기억을 토대로 홈 피드 기능을 설명하고 있었다. 홈 피드는 사용자의 취향과 자주 시청했던 동영상과 유사한 콘텐츠를 전면에 띄움으로써 2003년 당시에는 네티즌의 접속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현재 AI의 수준으로는 체스나 바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전부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체스나 바둑 프로그램에 들어간 알고리즘을 살펴보면 기사들 간에 벌어진 수많은 대결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최적의 수를 확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작업이긴 하지만, AI라는 게 생각보다 난해한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럼, 사이트에도 이와 비슷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영상들을 전면에 띄운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훨씬 간단한 작업만으로도 제가 말씀드린 기능을 구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팁을 하나 드리면 모든 영상에는 제목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하루에 적어도 수만 개 이상의 영상들이 올라올 텐데, 그 영상들을 일일이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띄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처음 영상을 올릴 때 간단한 조사만 병행하면 분류는 아주 쉬워집니다. 잠시만요.”

장시간의 대화로 목이 텁텁했던 수혁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설명을 재개했다.

“키워드로 영상을 묶는 방식은 편하긴 하지만, 그만큼 이를 악용하는 자들도 많이 발생할 겁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업로드 전에 짧은 프로세스를 추가하라는 겁니다. 콘텐츠의 종류, 국적, 목적 등을 자체적으로 선택하게 한 다음 AI로 마지막 심사를 하는 거지요.”

“마지막 심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일일이 분석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담은 수혁의 설명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제가 엔지니어는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카테고리별로 공통된 특성이 존재할 겁니다. 그리고 카테고리에 맞지 않는 기능은 신고를 가능하게 하여 엄한 제재를 가하면 악용 사례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습니다.”

“흠, 말씀을 듣고 보니 상당히 괜찮은 프로세스 같습니다.”

“AI를 통한 영상 심사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선정성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함으로 인해 포르노 산업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운영하실 플랫폼이 선정적인 콘텐츠를 가려내지 못하면 폭넓은 고객을 수용하기 어려울 테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조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혁은 마지막까지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줬다.

“기획안을 살펴보면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기능들도 많이 적혀 있습니다. 사이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도 상세히 나와 있으니 갖고 가셔서 참고하세요.”

“네? 그럼, 기획안에 적힌 사업을 정말 포기하시겠다는 겁니까?”

아담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로서는 성공이 보장된 사업 아이템을 타사 오너에게 넘긴다는 행위는 상생을 도모하는 것을 넘어 이상한 행동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기획안 자체는 마음에 드십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만약, 대표님께서 사업 추진 계획이 정말 없으시다면 당장이라도 가져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편하게 가져가세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따로 진행하는 사업이 있어서 그걸 챙기기도 바쁘니까요.”

수혁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프린트한 문서를 아담에게 건넸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그냥 받기에는 찜찜해서 안 되겠습니다. 혹시 저에게 원하시는 게 있나요?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흠, 월말경에 출시를 검토 중인 아이템이 하나 있긴 한데…….”

“현재 개발하시고 계시는 사이트나 제품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SNS라고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요, 처음 듣는 단어입니다.”

SNS의 개념은 2008년에 적립되었기에 아담이 모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현재 미국 청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스페이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넷상에 내 신상을 공개하여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사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셜스페이스와 비슷한 사이트를 제작하고 계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걸 한번 보시겠습니까?”

수혁은 서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낸 다음 지오스토리 프로토타입을 보여 주었다.

“깔끔하고 심플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비슷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거라면 시장에서 충분히 먹힐 수 있겠는데요?”

아담은 10분 동안 사이트를 꼼꼼히 살펴봤고, 짤막한 코멘트를 남겼다.

“레일로에서 영감을 얻어 사이트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한국의 경우 기능과 볼거리를 많이 넣어 고객을 유인하는데, 회장님께서는 원하는 것을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는 데에 주안점을 맞추시더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제가 없었어도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마냥 그런 것도 아닙니다. 막상 사이트를 개설하려고 했지만, 큰 문제에 봉착해서 고민이 적지 않거든요.”

수혁은 조금씩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까? 제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인지 궁금해지는군요.”

“사실, 문제가 뭐냐면…… 네?”

설명을 하려던 수혁은 아담의 말에 벙쪘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레일로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요.”

‘훗, 뭐야 생각보다 일이 술술 풀리잖아?’

수혁은 레일로의 지원을 받으려던 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무척 기뻤다.

“이렇게 먼저 말씀을 해 주시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감사드립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일단 들어 보기로 하죠.”

아담은 SH의 요구 사항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 인사를 받는 건 이르다고 생각했다.

“레일로의 아이디로 지오스토리에 접속할 수 있게 연계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회원들로 시장에 안착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이 외에 더 원하시는 건 없습니까?”

‘깐깐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배포가 큰 사람이었어?’

수혁은 거절하는 상황을 고려한 시나리오까지 짜 온 상태였지만, 예상과 달리 아담은 추가적으로 원하는 게 있는지 묻고 있었다.

“그럼, 레일로에 지오스토리 베너를 한 달만 띄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그동안 유수의 회사로부터 수많은 배너 제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 원칙상 시작 페이지에 배너를 띄우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에 고민이 좀 되는군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어. 이렇게 쉽게 들어줄 사람이었으면 준비를 더 해 올 걸 그랬어.’

수혁은 적절한 요구를 생각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고심하던 아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은 너무 길고 10일은 어떻습니까?”

아담은 향후 수십 년은 써먹을 수 있는 사업 기획안을 선뜻 넘겨준 수혁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한 달이라는 기간을 너무 줄인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첫 번째 부탁을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배너까지 달아 주신다고 하시니 감사하다는 말씀 외에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네요.”

“별말씀을요. 오히려 대표님 덕택에 새로운 수입원을 갖출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받은 게 훨씬 더 크니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이야 내가 준 게 훨씬 커 보이겠지만, 이 SNS가 주는 파급력을 깨닫게 되면 아쉬워하시려나?’

수혁은 기획안에 있던 아이템을 사업화해서 거둘 수 있는 이익보다 SNS 사이트를 운영해서 거둬 드릴 수 있는 수익이 10배 가까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번 거래에 대해서 흡족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럴 게 아니라 약식으로라도 계약서를 작성하면 어떻겠습니까? 저야 문서를 가져가서 활용하면 되지만, 대표님 입장에선 불안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마침, 노트북에 계약서 양식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영어로 번역해서 바로 프린트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하시죠. 전 루나가 뭐 하는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아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갔고, 수혁은 평소 쓰던 계약서 양식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상호가 원하는 계약 내용은 함께 상의하며 채워 나갈 터라 20분도 안 돼서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루나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먼저 자고 있더군요.”

“벌써 10시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양식을 대충 만들어 봤는데,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같이 보시죠.”

경험이 많은 수혁과 아담은 계약서 작성을 빠르게 완료했고, 남은 시간 중 대부분은 우의를 돈독히 다지는 데 할애했다.

* * *

케이턴 대학의 중앙 도서관. 수혁은 중간 평가를 위해 교수들이 만든 학습 자료를 꼼꼼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었지만, 수석 졸업이 목표였기에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후,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

수혁은 몇몇 교직원들이 가진 한국 학생에 대한 편견을 걷어 내기 위해 목표를 높게 설정했다.

‘응? 모르는 번호인데, 누구지?’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자 수혁은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SH소프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권성훈이라고 합니다. 혹시 강수혁 대표님이 맞으신 가요?”

“안 그래도 전화가 왜 안 오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질을 줬음에도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성훈의 전화에 수혁의 목소리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생각을 좀 하느라 연락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누구라도 그런 제안을 받으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 어떻게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수혁은 성훈과 처음 대화를 나눔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 없이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저의 어떤 면을 보고 사장으로 내정하게 됐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워낙 엄청난 제안이라 주변에서는 바로 수락하라고 그랬지만, 이제 1년 차인 신입 사원에게 이런 중차대한 업무를 맡기는 게 이해가 안 돼서요.”

성훈은 개인적인 친분도 없는 데다 사회 생활도 얼마 안 한 자신을 발탁한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이유를 들으시면 좀 허무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께 답변을 드리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라서요.”

그는 만약 합당한 사유가 없다면 제안을 거절할 각오로 물어보고 있었다.

- 294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