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알았어, 그런데 이거 소셜스페이스랑 콘셉트가 좀 비슷해 보이는데?”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일상을 공유한다는 점은 똑같지만, 너희들이 이용하기에는 지오스토리가 훨씬 편리할 거야.”
수혁은 자신의 계정으로 로그인한 다음, 이런저런 기능들을 보여 주었다.
“선호하는 콘텐츠가 피드에 자동으로 띄워지는 건 참 마음에 드네.”
“특정 콘텐츠에 ‘좋아요’를 반복적으로 누르면 연관 콘텐츠가 뜨는 방식을 활용해 봤어.”
세레나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자 수혁은 친절히 설명해 줬다.
“그 말은 우리가 올리는 영상과 메시지를 팬들이 수시로 볼 수 있다는 거잖아?”
“맞아. 그리고 너희들처럼 팬이 많은 연예인을 위해 시크릿 모드도 구비해 놨어. 오른쪽 상단에 시크릿이란 버튼을 클릭하면 기능이 켜지는데…….”
수혁이 버튼을 클릭하자 새로운 창이 켜지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란이 생성되었다.
“이곳에다 사진을 올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네가 허락해 준 사람이 아니면 여기 올린 콘텐츠는 보지 못하는 거지. 경우에 따라서는 네 개인 공간으로만 활용해도 되고.”
“오,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이구나.”
저스틴은 수혁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응, 계정을 만들게 되면 너희들의 개인 홈페이지는 팬들을 위한 공간이 될 확률이 높잖아. 그리고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이나 화제의 인물들같이 유명 인사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서 고안해 봤어.”
수혁은 회귀하기 전에 사용하던 SNS의 기능을 그대로 차용해서 쓰고 있었다.
‘훗, 어쩐지……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내 친구들과 줄줄이 약속을 잡아 달라고 하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사이트를 홍보하기 위해서였구나.’
스콧은 열심히 설명하는 수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오스토리가 소셜스페이스보다 나은 점은 이뿐이 아니야. 다들 이것 좀 확인해 볼래?”
수혁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지오스토리 앱을 실행시켰다.
“와, 스마트폰으로도 소식 체크가 가능한 거야?”
“대박이다. 오늘 당장 다운을 받아야겠어. 한눈에 봐도 PC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해 보여.”
세레나는 수혁이 켠 앱을 면밀히 살피며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도 PC로 보는 게 훨씬 편하지 않나? 화면도 크고 볼거리도 더 많잖아.”
“저스틴 말도 일리가 있지만, 세레나가 제대로 봤네. 애당초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주 고객층을 스마트폰 이용자로 설정했거든.”
수혁은 세레나의 눈썰미를 칭찬해줬다.
“나도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다고. 그것보다 앱을 다운받아서 사용만 해 주면 되는 거야?”
“이왕 사용해 주면서 주변 동료들에게 홍보를 해 줬으면 좋겠는데?”
“오케이, 내가 아는 사람들한테 모두 추천해 줄게”
세레나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어? 벌써 가입이 되네?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것 같은데?”
저스틴은 이미 앱을 깔고 회원 가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응, 서비스는 금일 오후부터 개시된 상태야.”
“본격적인 홍보는 수요일부터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어?”
“일단은 지인들을 중심으로 가볍게 홍보하고 있어. 어차피, 너희들이 사용한다 해도 지금 당장은 이슈가 되지 않을 거야.”
수혁은 술을 마시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대중들이 본격적으로 유입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스콧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바라봤다.
“그 부분은 술 마시다가 늦게 이야기해 주려고 했는데, 들켜 버렸네?”
“네가 나한테 기자들을 소개해 달라고 할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훗, 이렇게 눈치가 빠르니 뭘 숨길 수가 없잖아.”
수혁은 넉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는 스콧의 말대로 레일로에 홍보가 들어감과 동시에 연예인들이 많이 쓰는 어플인 것을 강조하여 추가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유명세를 좀 이용해야겠어. 레일로에 배너를 다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서 말이야.”
“마음대로 하셔. 대신 나중에 우리한테 한턱내야 된다?”
“나중은 무슨 나중이야, 그냥 오늘 쏘지 뭐.”
“다들 이 클럽의 주인이 누군지 잊었나 본대? 여기서 먹고 마시는 건 내가 계산할 거니까 돈 낼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스콧은 저스틴과 수혁 간의 대화에 끼어들어 첨언했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계산해. 그럼, 나 술 더 시켜도 되지?”
“좋아, 나도 한 잔 더 해야겠어.”
“하하, 그래. 마음껏 마셔라.”
수혁과 일행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 * *
2003년 11월 12일 수요일, 수혁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지오스토리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속보가 계속 뜨는 것을 보면 잘 진행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구체적으로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니 답답하네.’
수혁은 스마트폰으로 지오스토리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레일로는 오전 8시부터 배너를 걸었고, 이에 맞춰 SH그룹은 전면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연예면에 할리우드 배우들과 팝스타들도 지오스토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뜨면서 화제성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김민호 지점장은 사무실에 들어오는 수혁을 발견하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수혁은 인사를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물었다.
“고객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조금 전에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수가 천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민호는 엄청난 성과에 고무됐는지, 얼굴은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언론에서 기사를 쏟아 내고, 레일로에서 도와주는 시점에서 이와 같은 초반 유입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보다 중요한 건 상승세를 얼마나 끌 수 있냐는 거겠지요.”
수혁은 과거에 쓰던 SNS 사이트의 회원 수가 23억 명에 달했던 것을 기억했기에 회원 수가 천만을 돌파했음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눈앞의 성과로 부하뇌동하는 일이 없게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지점장님, 대표님께서는 최고가 아니면 칭찬에 인색하신 분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민호는 1시간 전부터 최필재 사장과 화상 프로그램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SH소프트랑 지오스토리를 함께 챙기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수혁은 모니터를 보며 덕담을 건넸다.
“대표님께서도 일전에 그룹 업무와 지오 쇼핑 경영을 동시에 하시지 않았습니까? 회사가 중요한 시기를 맞았는데, 힘들다고 외면할 수는 없지요.”
“감사드립니다, 사장님. 나중에 귀국하게 되면 적절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하하,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까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니 오늘 유입한 고객의 수가 만족스럽지 않은가 봅니다.”
“세계 최대 포털인 레일로가 지원하고 있고, 영향력 있는 유명인들까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수치는 아니니까요.”
필재의 질문에 수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지난 일요일부터 어제까지 스콧이 주관하는 파티와 모임에 참석하여 스타들과 친분을 맺고, 앱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지오스토리는 셀럽들이 선호하는 사이트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그러기에 기대치 또한 더 높아진 상태였다.
“비록 대표님 입장에서는 부족한 수치이긴 하나 긍정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긍정적인 부분이요?”
“조금 전에 회원들의 국적 분포도를 살펴봤는데, 고객 중 40%는 북미 지역에 살고 있고, 60%는 남은 대륙들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수혁은 필재의 보고에 화색을 드러냈다.
“우리 SH그룹은 이제까지 아시아에 국한되어 있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지오스토리를 통해 세계인이 아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보고가 들어왔는데, 회원 수가 벌써 1,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민호 지점장은 감탄했다.
“북미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긴 하지만, 인구로 볼 때는 아시아에 미치지 못합니다. 두고 보세요. 오늘이랑 내일까지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일 테니까요. 아마 지금쯤이면 아시아 지역에 지오스토리가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을 겁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사장님 말씀을 들어 보니 제 판단이 좀 섣부른 감이 있었네요.”
수혁은 필재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시간 전쯤에 학교에서 서버가 다운됐다는 뉴스를 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이트에 동시 접속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바람에 서버 트래픽이 폭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필재 사장님께서 신속하게 대처하신 덕분에 사태를 금방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민호는 머리를 긁으며 멋쩍어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충분히 대비했음에도 서버가 견디지 못한 건데, 그게 어떻게 지점장님 잘못이겠습니까? 전 오히려 두 분께서 기민히 대응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수혁은 업무에 있어서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을 보여 주는 민호가 기죽지 않게 적절히 격려해 주었다.
“앞으로는 더 꼼꼼히 체크해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장님과 지점장님께서 잘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저, 대표님. 벌써부터 몇몇 업체들이 광고를 넣을 수 있겠냐며 문의 전화가 오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오스토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잠재력을 알아본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별도로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전해 주세요. 대신, 본인들이 회사 계정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자유라는 점도 일러 주시고요.”
“아, 지오스토리에 사기업 홍보를 허용할 계획이시군요.”
“사기업뿐만 아니라 정치인부터 대한민국 정부와 같은 행정 기관까지 공인, 사인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겁니다. 대신, 사행성 광고나 선정성이 짙은 문구들은 적절하게 제재할 계획이고요.”
“저도 나름 남들보다 앞서간다고 자부하는데, 대표님의 생각은 감히 따라갈 수가 없겠네요.”
서울특별시나 인천광역시와 같은 자치 단체가 개정을 만든다는 건 미래를 살고 온 수혁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2003년 당시에는 파격적인 발상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지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5년만 지나면 너도나도 지오스토리를 통해 정치도 하고 정책 홍보도 하고 그럴 겁니다. 어쨌든 지오스토리가 특정 기업을 광고하는 일은 없을 거니까 사장님께서 업체 관계자들에게 잘 이야기해 주세요.”
“아예 공지를 띄워 이런 문의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게 조치하겠습니다.”
필재는 수혁이 했던 말들을 메모하며 공지 사항에 쓸 문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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