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301화 (301/316)

301화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의원님.”

존이 다가와 인사하자 수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례했다.

‘실시간 방송이 처음이다 보니 긴장을 잔뜩 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분 전환을 좀 시켜 줘야겠어.’

수혁은 공식 석상에나 어울리는 어두운 톤의 정장을 입은 채 자신이 준 답변 자료를 끊임없이 읽고 있는 존을 보며 생각했다.

“30분 후면 지지자들과 만나게 되는데,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어 만남을 청했습니다.”

“접속하는 사람들이 지지자들만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아마 자유당 지지자들도 방송에 들어와 비판적인 메시지를 날릴 거니까요.”

“그렇습니까?”

수혁의 이야기에 존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마음을 굳게 먹으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중들이 인터넷 방송에서 기대하는 것은 공중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니까요.”

“말씀만 들어도 큰 도움이 됩니다. 홍보실장을 비롯해서 여러 참모가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의 소통은 다들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언을 듣기가 상당히 어려웠거든요.”

존은 자신감 넘치는 수혁의 태도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일단 의상부터 바꾸시는 게 어떻습니까?”

“의상을요?”

“네, 방송에 들어올 사람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일 겁니다. 이들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진중하고 신뢰감이 넘치는 스타일보다는 옆집 아저씨처럼 친숙하고 다가가기 편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수혁은 회귀하기 전에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주관하는 개인 방송을 많이 시청했기에 시청자들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전략실장님.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의상팀을 빨리 불러 주세요.”

“네, 의원님.”

“아니에요. 지금 이 차림에서 살짝만 변화를 줘도 충분하니 굳이 의상팀을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의상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메디슨을 멈춰 세웠다.

“잠시만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아, 네.”

존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갔다. 그러자 수혁은 겉옷을 먼저 벗긴 다음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저, 뭐 하시는 겁니까?”

“최소한의 형식은 갖추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겁니다. 실장님, 혹시 커피나 마실 것을 테이블 위에 세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배경에 화이트보드를 놓아서 의원님이 사용할 수 있게 배치해 주세요.”

수혁은 방송국 세트장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튜디오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보드를 활용하면 시각적인 효과도 줄 수 있고, 긴장감도 다스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여러모로 좋을 것 같습니다.”

존은 수혁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을 보며 말했다.

“공중파 방송은 시간의 제약과 사회자가 제시하는 규격 등과 같이 주어진 형식이 존재하지만, 개인 방송은 의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 가셔도 무방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긴장이 조절되지 않으시다면 제가 드린 모범 답안을 테이블 위에 놓고 틈틈이 읽으면서 진행을 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짧은 시간에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숙지하려다 보니까 마음 안에 불안감이 올라오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진행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요? 대중들이 원하는 건 삶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완성된 정치인이지 준비가 필요한 정치인은 아니니까요.”

존은 나름의 견해를 펼치며 의구심을 표현했다.

“완성되어 보인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유연함이 부족하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대중들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포용력과 수용력이 있는 사람을 원하지 본인 잘난 맛에 정치하는 사람은 무척 싫어합니다.”

“적절하게 빈틈을 보여야 유권자들이 편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거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해 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수혁은 대화를 하던 도중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색다른 방식이요?”

“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몇몇 정책들을 함께 논의하는 겁니다. 초두에 의원님의 설명하시는 것은 같으나 이후, 즉석에서 의견을 받아 수정에 들어가는 거지요.”

“오, 그거참 괜찮은 생각이십니다. 시민의 목소리를 수렴하면 현실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정책을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일 겁니다.”

존은 수혁의 제안에 화색을 드러냈다. 그는 엘리트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정책 수립이 전문가와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진행을 하면 무수히 많은 의견이 난립할 텐데, 최종 선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만약, 선택 기준이 모호하다면 대중들의 환호는 비난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대화 내내 침묵을 지키던 메디슨 전략실장은 네티즌들이 참여하는 진행 방식에 우려를 표했다.

“우선, 안보나 복지 정책과 같은 민감한 주제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부정부패 정치인 사안과 같이 자유당 지지자든, 평화당 지지자든 합리적인 의견으로 수렴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야 잡음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실장님, 대표님의 말씀을 참고해서 쓸 만한 정책들을 몇 개만 골라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존은 수혁의 말을 듣자마자 메디슨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정책에 반영될 의견은 투표로 선정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투표요?”

“네, 지오스토리 라이브 방송에는 즉석 투표 기능이 장착되어 있거든요. 의원님만 허락하신다면 제가 옆에서 직접 도와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방송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옆에 있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데, 직접 나서 주시니 참 든든하네요.”

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그런데, 현재 팔로워가 1만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겠습니까?”

“훗,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조치를 해 두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엄청난 수의 이용자들이 의원님의 방송을 시청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혁은 방송 개시와 동시에 이용자들의 피드에 영상이 뜨도록 손을 써 놓은 상태였다.

“하하, 이거 저만 잘하면 되는 문제였군요.”

“저와 참모들이 의원님을 지속적으로 도와드릴 예정이니 긴장하지 마시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이제 슬슬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방송 시작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네요.”

“네, 안 그래도 자리에 돌아가 마지막으로 자료들을 검토하려 했습니다.”

존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환경 현안같이 양당 지지자들 간에 첨예한 대립이 발생할 만한 사안은 조금 섬세하게 다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사실 이 사안은 방송에서 거론을 안 하려고 합니다. 괜히 꺼냈다가는 긁어 부스럼이니까요.”

“이슈를 끌려면 그런 주제도 안 두 개씩 건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자유당 지지자 중 하나가 민감한 질문을 던진다면…….”

수혁은 캠프에 오기 전에 생각해 둔 것들을 차분히 존에게 일러 줬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존은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착석했고, 수혁은 테이블 모니터와 연결된 컴퓨터 앞에 앉아 도와줄 준비를 마쳤다.

“의원님 5초 후면 시작하겠습니다.”

수혁이 손가락을 피며 말하자 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이 켜졌습니다. 현재 접속자는 53명으로 자연스럽게 인사말을 해 주시면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평화당의 존 그레엄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눠 볼까 합니다. 제 약력이야 인터넷에 검색하면 모두 나오니, 자질구레한 것은 생략하고 방송이 어떻게 진행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존은 수혁의 큐사인에 맞춰 입을 열었다. 그의 눈앞에는 수혁이나 참모들의 의견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모니터가 있어 상호 간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잘하는데?’

수혁은 예상 밖의 자연스러운 오프닝 멘트에 속으로 감탄했다.

“먼저 저희 평화당이 이번 대선을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정책들을 소개한 뒤, 여러분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원님, 최근 MK그룹 이슈로 자유당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든 겁니다. 채팅창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진행해 주세요. 현재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 오히려 호재입니다.]

방송을 개시한 지 불과 3분이 채 되지도 않았지만 접속자 수는 만 명을 넘었고, 채팅창은 당 관리나 제대로 하라는 비난 글로 도배되고 있었다.

‘이거 잘하면 내 예상보다 훨씬 대박 날 수도 있겠는데?’

수혁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는 접속자 수를 보고 존의 방송이 이슈 몰이에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이번 방송은 단순히 저 혼자 떠드는 자리가 아니라 중간중간 틈틈이 질문도 받을 예정이니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에게 유리한 질문만 받는 치사한 행동은 안 할 거니까 괜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존은 수혁이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잠시 흔들렸던 감정을 다스리는 데 성공했고, 적절하게 농담도 던지는 여유도 보여 줬다.

“여기 계신 분들과 첫 번째로 논의하고 싶은 안건은 환경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도쿄 협정 이후로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개발 도상국들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지구를 황폐화시킨 책임을 지라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데요.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우리 미국의 역할에 대해 여러분들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젠틀 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 덕분에 자유당 지지자들도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분위기를 주도해 주는 바람에 진행하기에 한결 편해졌어.’

수혁은 평화당 지지자들과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채팅창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며 방송이 점점 안정감을 갖추고 있음을 느꼈다.

“따라서 석유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 세계의 안정과 경제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의 리더십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고, 시청자와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가장 먼저 질문을 신청한 밀너님께 번호를 드릴 테니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존은 수혁의 충고에 따라 전화로 질의응답 코너를 진행했다. 이는 시청자들과 좀 더 생생하게 소통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목소리를 공개함으로써 질문자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의원님, 방금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신호를 주시면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오, 말씀을 드리는 순간 밀너님이 전화를 하셨나 봅니다. 연결 부탁드리겠습니다.”

존은 내심 긴장되었지만, 표정을 관리하며 차분히 기다렸다.

- 302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