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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303화 (303/316)

303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회의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메디슨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어딜 가십니까?”

“회의 전에 미리 히터도 켜고, 세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럴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길게 이야기할 것도 아니니 이곳에서 하도록 하죠.”

존은 메디슨을 불러세웠다.

“그럼, 따로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그냥 같이 마실 커피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저는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존과 스탭들이 편하게 회의할 수 있게 선거 캠프를 떠나려고 했다.

“대표님, 실례가 안 된다면 오늘 회의에 참석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예 캠프에 합류하시면 더 좋고요.”

“그게 저…….”

뜻밖의 발언을 들은 수혁은 당황한 나머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말이 회의지 커피를 마시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원님 죄송하지만, 이 이상 발을 더 들였다가는 우리 회사에 정치적 색깔에 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용케 걸리지 않았지만, 언론사들이 눈치를 채는 건 시간문제이니까요.”

수혁은 뒤에서 적당히 지원해 주는 것과 아예 캠프에 소속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제 생각도 대표님과 같습니다. MK 측에서 현재 보도되는 영상의 출처를 밝히고자 애를 쓰고 있을 시점에서 타국 기업의 오너를 캠프에 불러들이면 선거에 이기려고 자국 기업을 핍박했다는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메디슨도 수혁을 영입하는 건 무모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표님이 오신 이래로 선거 판세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언론과 대중들이 우리 당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제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존은 수혁이 세운 공을 자신이 독식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의원님께서는 메신저로서의 가치가 훌륭하신 분입니다. 제가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 내도 이를 이행하는 사람이 신뢰감과 호감이 부족하다면, 공염불에 불과할 겁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 부분이 더 크니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됐다고 말씀하시니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어쨌든, 캠프에 오시는 건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존은 수혁의 역량을 높게 평가했기에 늘 곁에 두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지금과 같은 관계가 서로에게 최선입니다.”

“휴, 알겠습니다. 마침 커피가 도착했군요. 저쪽 테이블에 가서 MK 그룹에 대한 안건을 논의해 봅시다.”

그의 얼굴은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감정을 정리한 뒤 회의를 진행했다.

“내일 이 영상을 올리게 되면 제이슨이 대표님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원치 않으시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존과 스태프들은 내일 오전 자유당 의원이 언급된 영상 하나를 공개하기로 했는데, 영상 배경이 케이턴 대학임을 짐작하게 하는 요소가 적지 않아 제이슨의 레이더망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주변 배경을 모자이크 처리할까요?”

“아닙니다. 멍청한 놈이 아니면 본인이 해당 발언을 어디에서 했는지는 금세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공개할 영상들이면 내일이라도 큰 상관은 없지요.”

수혁의 메디슨의 제안을 가볍게 거절했다.

“영상 파일 말고 음성 파일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것들도 저희에게 넘겨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본 거지 강요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존은 메신저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는 본인에게 기꺼이 넘겨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생각과 달리 거절을 당하자 황급히 수혁의 기분을 살폈다.

“자료의 성질상 드리기 곤란해서 그런 것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해당 파일들은 그냥 묵혀 둘 생각이신 겁니까?”

메디슨은 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자료들의 활용 여부가 궁금하여 질문했다.

“우선, 파일을 준 당사자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이 부분은 일단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고, MK 대응 건을 조속히 마무리 짓는 게 어떻습니까?”

“이런, 벌써 12시가 넘었군요. 알겠습니다. 30분 내로 마칠 수 있게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들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존은 수혁의 말에 공감하며 회의를 재개했다. 대화는 1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끝이 났고,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수업을 마친 수혁은 여느 때처럼 업무를 보기 위해 지오스토리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자택에서 주로 작업했지만,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오후 5시가 가까운 시간임에도 출근을 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30분 후에 권성훈 사장님과 박유신 사장님께서 화상 회의에 참석하신답니다.”

김찬식 팀장은 수혁을 보고 다가가 인사말을 건넸다.

“한국은 아직 아침일 텐데, 왠지 미안하군요.”

“대표님께서 금일 밤에 처리하실 일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다들 개의치 않는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요즘 매일 회사에 나오시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찬식이 맡은 임무는 그룹 안건 전달과 잡무가 전부였기에 집에서 편하게 업무를 봐도 된다고 누차 이야기했었다.

“하하, 혼자 산책하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하다 보면 오히려 회사가 그리워지더라고요.”

“훗,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아, 김민호 지점장님께는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전, 이만 방에 들어가서 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찬식을 뒤로하고 대표실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오늘 하루도 무척 바쁘겠어. 후, 이번 선거가 끝나면 잠깐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케이턴 MBA의 개강 이래로 두 개의 사업을 론칭하고 평화당을 도와주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만 매몰됐던 수혁은 임원들의 접속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새 법인이 연달아 설립되는 바람에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과로하기 쉬우니 건강 관리에 신경을 더 쓰셔야 할 겁니다.”

프로그램에 접속한 권성훈 사장과 박유신 사장의 안부 인사로 회의는 자연스럽게 개시되었다.

“사장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건강에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회의는 사장님, SH전자 현황에 대해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대표님께서 보내 주신 부품 도안과 생산 공정도가 생각보다 정교하여 이달 말부터는 생산에 들어가기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성훈은 취임하자마자 수혁이 보내 준 자료를 토대로 테스트를 시행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허권 신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변리사와 변호사로부터 특허권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췄다는 보고를 들은 이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국내의 경우 신속하게 일이 처리된 덕분에 특허권이 바로 나왔지만, 다른 나라들은 시일이 좀 걸리는 상황이라 12월 초나 중순쯤에야 특허권이 발급될 것 같습니다.”

“잘하셨습니다. WG전자 측과는 이야기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수혁은 WG전자에서 부품 조달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만약 이미 타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면, SH전자가 생산에 돌입한다 해도 판매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MK 측의 가격 인상 통보가 있고 난 뒤 부품을 대량을 구매해 놓은 터라 12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에 WG전자에서 제품을 보러 오겠다고 연락도 왔었습니다.”

“현명길 회장님께서 저에게 매입 의사를 밝히긴 하셨지만, 사업이라는 게 인간적인 정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대비하셔서 우리가 생산하는 부품이 최고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세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개발부 직원들과 제품 분석을 했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부품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는 평가가 나왔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직원들에게 생산 공정도의 출처를 이야기하니 다들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권성훈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WG전자 외에는 다른 판매처는 알아보셨습니까?”

“아, 일송전자의 이경욱 회장님께서 우리 회사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일송전자는 내년 1월에 신상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일송전자와의 계약은 SH전자 입장에선 엄청난 호재이지만, 저들의 전과를 떠올리면 그렇게 내키지는 않네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박유신 사장은 일송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저 또한 일송전자가 좋은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회사에 득이 될 만한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송을 WG전자 못지않은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수혁은 과거지사는 잠시 접어 두고 SH전자의 안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품 생산에 치중하여 사양 업그레이드와 새 제품 개발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안 그래도 방금 말씀하신 사안들을 위해 연구 인력을 대폭 늘릴 계획이었습니다. 저, 대표님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임원들에게 들었는데, 대표님께서 SH그룹의 주요 상품들을 모두 기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기획안을 보내면 검토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성훈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혁의 활약상을 들은 상태였다.

“물론이지요. 기획안 검토뿐만 아니라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때그때 사장님과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원해 주신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혁의 흔쾌한 태도에 성훈은 반색을 드러냈다.

“하하, 어차피 알아서 잘하시지 않습니까? 자, 다음은 박유신 사장님과 김민호 지점장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유신과 민호는 지오스토리의 주식 상장에 관한 보고를 함께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최필재 사장님과 논의는 충분히 하셨습니까?”

“네, 대표님. 어제 두 시간에 걸쳐 보고에 필요한 사안들을 모두 전달받았습니다.”

김민호 지점장은 수혁의 질문에 대답했다. 최필재 사장은 지오스토리 대표 대리로 원래라면 회의에 참석했어야 했지만, SH소프트에서의 일이 워낙 바쁜 관계로 민호가 대신 역할을 맡기로 했다.

“잘됐군요. 그럼, 박유신 사장님부터 말씀해 주세요.”

“지오스토리는 국내 투자자는 물론이고,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상장을 위한 기초 작업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는데,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상장 시 파급 효과는 올 3월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클 거랍니다.”

박유신 사장은 차분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 30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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