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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304화 (304/316)

304화

“SH커뮤니케이션과 에듀케이션을 상장했을 때도 반응이 뜨거웠는데, 그걸 뛰어넘는 파급 효과라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되지 않네요.”

옆에서 듣던 김민호 지점장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지오스토리의 상장이 이루어지면 우리 SH그룹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날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SH소프트의 약진도 두드러질 거고요.”

수혁은 미래의 양상을 모두 꿰뚫고 있었기에 박유신 사장의 보고에도 차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SH그룹의 수익 구조가 많이 변하겠군요.”

유신은 SH의 수익 중 대부분이 SH커뮤니케이션과 SH에듀케이션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다를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기존 두 기업은 아시아권으로 시장이 국한되어 있으나 지오스토리와 SH소프트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니까요. 물론, SH전자도 제조업 특성상 지역적 한계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잠재력만큼은 여느 자회사에 뒤지지 않으니 분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혁은 두 회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해도 다른 계열사들을 등한시할 생각은 없었다.

“대표님, 최필재 사장님께서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주식 상장도 하자고 그러시는데, 혹시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민호 지점장은 필재가 부탁한 사안들을 수혁에게 전달했다.

“음, 미국에 본사를 세우고 상장을 하게 되면 당장에는 수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국민의 반발이 무척 클 겁니다.”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대표님의 말씀이 옳지만, 기업에 애국심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니, 최필재 사장님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냥 포기하기에는 들어올 수 있는 이익이 엄청납니다.”

“이익을 따라가다가 더 큰 걸 잃을 수도 있습니다.”

박유신 사장이 필재를 거들고 나섰지만, 수혁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 상장할 시 국내에서 할 때보다 수익 면에서 3배 이상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정 직후에는 국민의 비판이 거세겠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국내에 여러 방면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 수습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사장님께서는 마음을 이미 정하셨군요.”

“사실, 그렇습니다. 최종 결정은 대표님의 몫이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저도 여러분들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라서요.”

수혁은 턱에 손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본사와 주식 상장은 그대로 한국에서 진행하는 거로 합시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대표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 사업의 특성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국에서 한들 국제적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장의 경우 나중에 따로 법인을 설립하여 추가로 상장을 하면 사장님들이 아쉬워하는 지점들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 대표님. 그럼, 차라리 미국 법인을 따로 설립해서 두 군데를 동시에 진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김민호 지점장은 지오스토리 뉴욕 지사를 확장시키는 방안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할 시에 현 정부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도움 덕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일이 잘 풀릴 때,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면 훗날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겁니다.”

수혁은 일송그룹과 만평일보와의 마찰을 해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친하게 지내는 회장들과 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을 꼽고 있었다. 이는 SH그룹의 이미지가 승자 독식이 아닌 상생을 추구한다는 이미지 덕분이었는데, 이 결정 하나로 신뢰를 잃게 된다면 회사 입장에서 엄청난 손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대표님께서는 미래 비전 연구소 고문직도 겸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현재 회사가 급속도로 크고 있는 터라 대규모 채용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를 고국이 아닌 미국에서 진행하게 된다면 대통령께서 싫어하실 확률이 높겠지요.”

권성훈 사장은 임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수혁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론이 내려졌으니 다른 안건으로 빠르게 넘어갑시다.”

“네, 다음은 상장 일정과 채용 관련해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최필재 사장님과 자문단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적절한 시기를 12월 중순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혁이 빠르게 화제를 전환하자 박유신 사장은 자연스럽게 다음 안건을 논하기 시작했다. 화상 회의는 이후 30분가량 더 이어졌고, 모든 논의를 마친 수혁은 화상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 * *

“네, 회장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애당초 녹취 파일을 건네줬을 때, 처분은 대표님의 의지에 맡긴 거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이슨의 만행이 모두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수혁은 현명길 회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MK이노베이션이 WG전자와 거성전자를 부당하게 압박했다는 녹취록을 명길로부터 받은 상태였다.

“제이슨의 평소 행실을 봤을 때 우리 외에도 부당한 취급을 받은 분들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 박람회장에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코리 회장과 아담 회장은 업계에 적이 없을 정도로 인품이 보증되신 분들임에도 제이슨을 싫어했던 것을 떠올리면 주위에 적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안 되네요.”

현명길 회장은 수혁의 말에 공감했다.

“방금 언급하신 부분을 잘 활용해서 다시는 경거망동 못 하게 만들어야죠.”

“모리가의 위세가 대단한데, 과연 누가 나서겠습니까? 사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대표님께 피해가 갈까 걱정될 때가 많거든요.”

“꽉 막힌 상황은 물꼬만 터 주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그 역할을 제가 하게 돼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수혁은 명길의 염려에도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후, 최근 들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WG전자를 견제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핸드폰 시장을 홀로 독식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WG전자는 전 세계 모든 전자회사를 통틀어 유례없는 판매고를 올렸고 지난달에는 시가 총액 200조를 돌파했다. 이는 모든 업종을 포함한 랭킹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으로 일송이 갖고 있던 최고라는 타이틀도 WG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세계 1등이라는 수식어를 다는 순간 수많은 기업의 표적이 되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WTO가 건재하고 자유 시장주의가 메인 스트림이라고는 하지만,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상품 선택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결국 소비자입니다. WG전자가 타 기업을 압도할 만한 제품을 계속 만들어 내면 여론이 통제되는 독재 국가가 아닌 이상 매출에는 큰 타격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정확한 시기는 말씀드릴 순 없지만, 회장님이 우려하시는 지점들이 모두 해결되는 순간 곧 도래할 겁니다.”

“호, 저 모르게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수혁의 의미심장한 말은 명길을 호기심을 강하게 부추겼다.

“자세한 건 나중에 차차 알게 되실 테니, 지금처럼 마음 편히 경영에 집중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말씀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명길은 수혁이 당장은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캐묻지 않기로 했다.

“아,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급하게 연락을 드려야 하는 분이 있어서 이만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을 확인한 수혁은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 보세요.”

“네, 안녕히 계십시오.”

‘기다리고 계시겠어.’

전화를 끊은 수혁은 곧바로 김정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오래간만입니다.”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피차 바쁜 사람들인데 그럴 수 있지요. 인사는 이쯤으로 하고 용건을 들어 볼까요?”

“네, 다름이 아니라…….”

수혁은 일전에 MK이노베이션이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가했다는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을 요구했고, 대통령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내부 자료를 이렇게 선뜻 넘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아닙니다. 제이슨 모리라는 친구를 어떻게든 손봐 주고 싶었는데, 대표님께서 대신 나서 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김정협 대통령은 MK그룹이 아무리 거대 기업이긴 하지만, 국가를 상대로 실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큰 유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시는 분께서 사기업 오너와 직접 부딪힐 수는 없는 법이지요.”

“대표님, 자료는 어떻게 활용하실 겁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어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MK그룹의 영향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비책을 세워 뒀습니다. 아마 올해만 지나면 국제 정세에까지 간섭하던 모리가의 행동이 중단될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은 평화당과 공조한다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대표님이 어련히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협은 명길과 마찬가지로 수혁이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는 구태여 알고자 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후에도 몇 가지 주제를 두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 통화를 마무리했다.

‘오늘 평화당 선거 캠프에서 영상을 추가로 공개했으니 늦어도 모레, 이르면 내일부터 MK 측에서 압박이 들어올 거야.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니까 긴장하지 말자. 그냥 계획한 대로만 움직이면 돼.’

수혁은 금일 있었던 존의 기자 회견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영상의 배경에는 케이턴 대학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가득했기에 제이슨이 눈치를 채는 건 시간문제였다.

‘후, 일단 자자. 고민은 일이 벌어지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방과 후 쉬지 않고 업무를 처리했던 수혁은 노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 *

시간은 흘러 이틀이 지났다. 수혁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이슨을 발견했다.

‘어제 바로 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늦게 오네?’

수혁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제이슨을 느긋하게 바라봤다.

- 30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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