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307화 (307/316)

307화

“다행히도 오늘이 토요일이라 우리에게 이틀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대처만 잘한다면 문제 해결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수혁은 불안에 떨고 있는 민호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불법적인 선거 개입은 터무니없는 소리 아닙니까? 차라리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우리가 떳떳하다는 것을 밝힘이 어떻습니까?”

김민호 지점장은 수혁으로부터 선거 관련해서 따로 지시를 받은 적이 없었기에 진실은 지오스토리 편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겠지만, 우리 회사는 복구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겁니다. 게다가 자유당 쪽에서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의혹을 제기하면 그때마다 쓸데없는 소모전을 감수해야 해서 때문에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민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 뾰족한 수라도 갖고 계십니까?”

“네, 존 그레엄 의원처럼 금일 저녁에 인터넷 방송을 켤까 생각 중입니다.”

“가뜩이나 지오스토리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인데,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기자 회견을 열어 해명하는 편이 대중들에게 전달도 훨씬 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민호는 수혁의 대책에 확신을 못 갖는 눈치였다.

“존 의원의 개인 방송이 가진 파급력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준비만 잘하면 어떻게든 풀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존 의원은 오랜 정치 경력과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이점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존 의원이 언제부터 주목받는 대선 후보였다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필 모리 회장과 잭 대통령이 우리를 비판해 준 덕분에 인지도 면에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내에서도 호감 이미지인 존과 대표님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요?”

회사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느낀 민호는 수혁에게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점장님. 저랑 말싸움을 하고 싶은 겁니까?”

“죄송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지점장님 눈에는 회사가 당장 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거겠지요. 존이 언제부터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수혁은 화가 났지만, 평정심을 유지한 채 대화를 이어 갔다.

“지오스토리를 관리하다 보면 특정 인물의 언급 횟수를 알 수 있는데, 인터넷 방송을 한 이후 존을 언급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건 대중들의 관심이 증폭됐던 시점이고, 최초로 주목받았던 때는 제이슨의 영상을 공개했을 때입니다.”

“과연 그렇군요.”

이야기를 듣던 민호는 공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에 동감했다.

“신사답고, 매너 좋은 존이 처음으로 큰 이슈를 끌었던 시점이 타인을 공격했을 때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게 진실입니다. 대중들은 스트레스로 가득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신선한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는 사람에게 주목하기 마련이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네거티브 전략이 대중들에게 잘 먹힌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잭 대통령이 별다른 성과도 없이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자극적인 연설 스타일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점장님이 존과 제가 이미지가 다르다는 비판은 별 의미가 있다는 말이지요.”

수혁은 턱에 손을 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 짧은 생각으로 대표님의 의견에 토를 단 것은 매우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민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아닙니다. 의견 개진이야 본인 자유지요.”

“저…… 그럼, 존 의원의 개인 방송에 참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현재 방송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평화당의 도움도 겸사겸사 받는 거죠.”

그는 방송에 공개된 수혁의 사진을 보고 존과 친분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여론에 기름을 붓는 꼴입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존도 우리와 방송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겁니다. 처음 말한 대로 금일 밤에 개인 방송을 켤 계획이니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전에 저랑 인터뷰했던 기자들 명단 있지요?”

수혁은 지오스토리 설립 당시 많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진 바가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국제 박람회 때 친분을 쌓은 기자들의 명단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지점장님은 지금부터 명단을 참고해서 연락을 돌려 주세요.”

“뭐라고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민호는 연락의 목적을 질문했다.

“제가 개인 방송을 켜면 취재를 좀 해 달라고 부탁드려 보세요. 특종에 목말라 있는 기자들이 많아 호응하는 이들이 제법 될 겁니다.”

“안 그래도 내일 중으로 기자 회견을 어떻게 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방법이라면 굳이 장소를 대관하거나 시간을 조율할 필요가 없겠군요.”

이야기를 들은 민호는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그런데, 계정은 있으십니까?”

“잠시 후에 만들려고 합니다. 그건 왜 물으시죠?”

“기자들이 접속하려면 검색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훗, 시간만 맞춰서 들어오면 알아서 찾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세요.”

수혁은 민호의 물음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 저희가 따로 도와드릴 필요가 없는 겁니까?”

“두고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지금이 11시니까 방송 시간은 오후 6시로 잡겠습니다. 그전까지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리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김민호 지점장은 수혁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저 시키는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조금 쫄리는데?’

대표실에 홀로 남은 수혁은 상대가 강경하게 나오자 긴장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마음을 비우고 방송 준비나 하자.’

수혁은 컴퓨터를 켠 뒤 지오스토리 계정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 오후 5시 50분이 되었다. 김민호 지점장은 초조한 기색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도와드릴 일은 따로 없습니까?”

“실시간 방송 때 렉이 걸리지 않게 서버 관리에만 신경 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 기자들하고는 연락이 잘됐습니까?”

“네, 몇몇 기자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대부분은 알려 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 이만 방송을 켜야겠네요.”

“알겠습니다, 오늘 밤은 당직을 설 예정이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민호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대표실을 나갔다.

‘연락이 잘 이루어졌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보도가 나갈 수도 있겠어.’

국제 박람회 때, 쌓은 인맥은 미국 언론사로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혁의 기대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SH 대표 강수혁입니다.”

6시가 된 것을 확인한 수혁은 방송을 켜고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예상대로야.’

실시간 방송을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접속자 수는 폭증하기 시작했고, 채팅창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오스토리가 평화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하기 위해 개인 방송을 켜게 됐습니다. 방송은 지금부터 무제한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채팅창을 보니 하고 싶은 말씀들이 워낙 많으신 것 같아 초청한 기자님들 먼저 발언권을 드리고 다음으로 시청자님들께 질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대중들이 가장 궁금할 만한 것들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로 해소한 다음 세세한 사안들은 시청자들과 처리하기로 계획했다.

“네, UBC의 앤드류 기자님 제가 메시지를 보냈으니 전화 주시길 바랍니다.”

UBC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언론사로, 수혁은 맨 첫 번째 질문자로 소속 기자인 앤드류를 뽑았다.

“채팅창에서 많이 올라오는 내용 중 하나인데, 어떻게 사람들의 피드에 대표님의 영상이 뜨는지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서 존 그레엄 후보의 방송이 화제몰이를 한 이유도 함께 설명하기를 바라시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현재 대표님께서는 사이트를 조작하여 존 후보를 의도적으로 도와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청자들도 궁금해할 사안이니 적절한 해명 부탁드립니다.”

앤드류는 초장부터 강한 질문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은 잠시 후에 설명드리겠습니다. 대신 필 모리 회장이 증거물로 제시한 사진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죠.”

수혁은 방송 접속자 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존 후보를 의도적으로 미뤄 줬다는 의혹은 나중에 해명하기로 했다.

“어차피 두 번째로 물어볼 질문이었습니다. 순서는 상관없으니 편한 대로 답변해 주세요.”

“전 미국에서 케이턴 대학에 재학 중이고, 같이 수학하는 동기 중에 제이슨 모리가 있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제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해 왔던 인물이죠.”

“제이슨 모리면 필 모리 회장의 아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제이슨은 본인이 운영하는 MK이노베이션의 시장 지위를 남용하여 저를 끊임없이 압박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만행이 기록된 자료들을 틈틈이 모았고, 제보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수혁은 제이슨을 언급하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존과의 유착 의혹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차라리 수사 기관에 제보하거나 변호사를 고용하여 고발해도 될 일을 평화당 캠프에 가져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송합니다, 배경을 설명하려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기회를 보던 와중에 존의 기자 회견을 보게 되었고, 의원님이 MK 그룹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아버지인 필 모리가 잭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라는 점도 존 후보를 찾아가는 데 한몫했습니다.”

“필이 후원 회장과 자유당에 당적을 둔 사실이 마음에 걸리셨군요.”

앤드류는 공감이 간다는 투로 수혁의 답변에 반응했다.

“맞습니다. 게다가 제이슨이 자유당 의원과 친분을 자랑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여당의 입김이 닿을 수 있는 행정 기관보단 야당을 선택한 겁니다.”

존이 공개한 영상에는 자유당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됐기에 수혁은 방금 발언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제이슨의 횡포에 불만이 있던 대표님께서 사안을 객관적으로 다뤄 줄 단체로 현 정부나 여당보다는 평화당을 꼽으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대표님께서 건네준 자료에는 대표님이나 SH 그룹을 괴롭혔다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앤드류는 케이턴 대학을 배경으로 한 영상에는 제이슨의 말실수만 있을 뿐, 수혁과 연관된 내용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숫자면, 언론에서 쉬쉬해도 내 발언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없겠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방송 시청자 수가 백만을 돌파한 것을 확인한 수혁은 제이슨과 MK 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 308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