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제이슨은 SH 그룹뿐만 아니라 WG 전자,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에까지 압력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수혁은 슬슬 자료를 공개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방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증거는 확보하고 계시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먼저 녹음 파일을 들어 보고 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파일을 실행시켰다.
“금년 10월까지는 기존가로 부품을 공급하겠지만, 이후부터는 가격을 40% 인상시킬 예정입니다.”
“스마트폰 호황으로 공급 단가를 올리는 건 이해가 가지만, 40%는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인상폭을 조금만 낮춰 줄 수 없습니까?”
“흠, 방법이 있긴 한데…….”
파일 안에는 WG 전자와 MK 이노베이션 관계자 간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었는데, SH 소프트에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와 J스토어의 수수료 인하와 설정 초기에 깔려 있는 지오닷컴 어플을 삭제하라는 것들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졌기에 시청자들이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상식선을 벗어난 가격 인상도 주목할 만한 하지만, SH 그룹을 걸고넘어지는 건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MK 이노베이션은 WG 전자와 거래를 끊었을 시 예상되는 피해액은 천억 원대 수준이지만, WG 전자는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피해액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제이슨은 옛날부터 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특허권을 거액을 주고 사들였는데, 그 후 자신이 가진 강점을 활용해서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지요.”
수혁은 앤드류의 말에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MK 그룹 정도 되는 기업이라면 천억 원의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저는 MK 이노베이션과 특허 계약을 맺은 거성 전자를 인수한 다음 내달 초부터 직접 부품 생산에 돌입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네, 계속 말씀하시죠.”
앤드류는 제이슨이 대한민국 정부를 대상으로도 부당한 행위를 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제이슨은 종자 사업과 특허권 사업을 토대로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사기업에만 행하던 갑질을 국가에도 행하는 대담함을 보여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수혁은 김정협 대통령이 건네준 자료를 꺼냄과 동시에 미리 작업한 자막 파일도 함께 틀 준비를 했다. 왜냐하면 MK 관계자와 농림부 장관의 대화 외에도 대통령의 육성이 든 파일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럼, 시간 순서대로 파일을 실행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진 지 얼마 있지 않아, 농촌진흥청장, MK 이노베이션 관계자, 장관 등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한 대화가 방송에 공개되었다.
“이건 파장이 제법 클 것 같군요…….”
앤드류는 녹음 파일의 내용을 듣더니 심각한 투로 말했다.
“MK 그룹은 많은 자본을 토대로 일국의 대통령에게까지 압력을 넣는 대단한 집단입니다. 주중에 방송을 켰어도 됐겠지만, 필 모리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에 중대 발표를 하는 것은 절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 정부와 여당에서 대표님과 SH 그룹에 대해 규탄 성명을 낸 거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SH에서 개인 방송을 통해 해명하는 것보다는 시일이 걸리더라도 정식으로 수사를 받아 검증을 받는 편을 바랐을 겁니다. 그래야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풀 수 있고, 미국의 법 시스템을 신뢰한다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전 미국의 행정부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도 상상치 못한 공작을 펼치는 이들이기에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다행이다. 불법 선거 개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수혁이 개인 방송을 튼 시점은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에 그 저의가 의심받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MK 그룹은 평화당보다는 자유당과 더 깊은 친분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제이슨의 악랄함과 과감한 수법을 언급하며 조속한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역설하며 대중들을 납득시키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저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된 것 같아서 다른 기자님께 순서를 넘기겠습니다.”
앤드류는 타 언론사 기자라고 해서 질문의 구성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기에 미련 없이 발언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감사합니다, 앤드류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월드이코노미의 저스틴 기자입니다. 파일에 녹음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관료들이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통상적으로 기관 내에서 이루어진 의사소통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내부 자료로 분류되지 않습니까?”
월드이코노미는 세계에서 구독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경제 잡지였다.
“김정협 대통령님을 취재해 보신 적이 있다면 마지막에 나온 목소리가 그분의 것이라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시겠죠.”
“그렇습니다. 설사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정부 관계자라고 한들 한쪽의 의견만으로 사실 관계를 확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필 모리 회장이 SH가 불법 선거 개입을 했다고 확언했음에도 방송에 접속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스틴은 녹음 내용만을 두고 MK의 잘못을 확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 수입되는 모든 종자는 MK 이노베이션의 것입니다. 통화 내용을 토대로 가격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며 자신의 말이 신빙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만약, 제이슨이 가격 변동에 대한 합당한 변명을 제공 못 한다면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겠군요.”
“단순히 문제 제기 수준이 아니라 WTO에 제소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한국이 최근 들어 소득이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현재와 같은 가격은 소득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봤을 때 차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대통령은 우방국인 미국과 무역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꾹 참아왔던 겁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가격만 올렸다면 모르겠지만, SH를 거론하며 압박을 넣은 것은 옳지 않은 행위인 것 같습니다.”
“가격을 올리는 것은 판매자의 자유이긴 하지만, 시장의 공급자가 소수거나 혼자일 경우에는 제어 장치가 필요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종자 사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SH 이노베이션의 압력 행사는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부당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수혁은 SH이노베이션의 시장 지위를 고려했을 때 정당하지 않은 가격 인상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네, 지금까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현재 시청자 수가 이백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인터넷 방송을 처음 켠 대표님께서 어떻게 이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는지 해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스틴은 처음에 논의하려다 만 사안을 다시 한번 끄집어냈다.
“너무나 간단한 원리라 굳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지오스토리는 개인 방송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 의원을 제외하면 방송을 시도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그야, 서비스가 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개인 방송이 활성화됐으면 애당초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자유당 지지자들인가? 채팅창이 절반이 다 내 욕이네.’
자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혁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1억이 넘는 회원 수를 보유한 지오스토리가 존과 대표 본인의 개인 방송을 의도적으로 밀어 줬다고 판단했다.
“여러분이 쓰신 채팅 글을 봤는데, 제가 사이트 권한을 남용해서 피드에 제 영상이 뜨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지금부터 그게 사실이 아님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존 그레엄 의원 때도 그렇고 현재도 손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까?”
“저스틴 기자님도 우리 회사가 손을 썼다고 생각하셨나 보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게 오해라는 걸 제가 증명해 보겠습니다.”
수혁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한 뒤 말을 멈추고 컴퓨터를 조작했다.
“임시로 만든 가계정으로 방송을 하나 더 개설해 보았습니다. 모두 피드를 잠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잠시 후, 채팅창에는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대표님께서 가 계정으로 만드신 방송이 피드에 떴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스틴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비결은 바로 제목에 있습니다.”
“제목이요?”
“네. 제목을 보면 제 이름과 대선 개입, 그리고 평화당이라는 단어가 보일 겁니다.”
수혁은 몇 가지 단어들만 도열하여 간단하게 방송 제목을 지었다.
“현재 시청하고 있는 제목에도 해당 단어들이 들어 있군요?”
“잘 캐치 하셨네요. 자, 이제 피드에 뉴스나 개인 영상들이 어떻게 뜨는지 알고리즘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수혁은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지오스토리는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거나 검색하는 단어를 토대로 피드에 띄울 콘텐츠를 자동으로 선별합니다. 즉, 제 방송을 보신 분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으시거나 저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검색해 보셨다는 이야기죠.”
“한마디로 말해서 사용자의 관심사에 따라 피드에 뜨는 콘텐츠가 정해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대선에 관심이 없으시거나 필 모리의 기자 회견을 보지 않아 제 존재를 모르셨다면, 이 방송이 피드에 뜨는 일은 없을 겁니다.”
“존 그레엄 의원의 개인 방송이 어떻게 화제를 끌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이야기를 들은 저스틴은 짐작이 간다는 투로 말했다.
“존 의원은 개인 방송 전에 기자 회견을 통해 이슈를 끌었고,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신선한 모습에 매스컴에서 많이 다뤄졌죠. 따라서 존 의원을 검색하거나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개인 방송의 성공으로 이어졌던 겁니다.”
‘후, 고생한 보람이 있네. 여론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
설명이 있고 얼마 있지 않아 채팅창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수혁은 점점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이것으로 대표님께서 지오스토리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게 어느 정도 입증된 것 같습니다. 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민감한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일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리죠. 자. 그럼, 다음 분 모시겠습니다.”
저스틴과 대화를 마친 수혁은 다른 기자들과도 소통하며 그간 쌓였던 의혹을 푸는 데 열성을 다했다.
“이상으로 기자님들과의 대담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시청자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셨던 것을 집중적으로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자연스럽게 다음 코너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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