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화 돌아오다
"흐어억!!"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현시운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악몽이라도 꾼 듯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쾅! 쾅!
- 좀 조용히 합시다!
벽을 두드리며 옆방 사람이 고함쳤다.
시운은 두 눈만 연신 끔뻑이며 지금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나직이 읊조린다.
"어떻게 된 거야? 난 분명 죽었는데……."
그것도 달려오던 트럭에 치여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헤드라이트와 귀를 긁어대던 타이어의 마찰음.
차디찬 트럭 범퍼의 감촉까지 기억에 생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났다고?
어떻게?
"여긴 또 어디야?"
4평 남짓의 좁은 방.
창가를 향해 놓인 책상과 의자, 작은 침대, 맞은 편의 불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변기와 세면대가 보인다.
마치 자신이 젊은 시절 생활했던 고시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사후세계치고는 너무 현실적이잖아?"
무심코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다리를 빼던 시운은 놀랐다.
몇 년간이나 고질병처럼 달고 살았던 무릎관절의 통증이 전혀 없어서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당황스러운 마음에 무릎을 두 손으로 만져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뭐야?!"
건설 일용직으로 수년간 일하면서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이 아니다.
상처 하나 없는 희고 고운 손.
쾅! 쾅!
- 시끄럽다니깐요!
외마디 외침에 옆방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본인 목소리가 더 큰 걸 모르는 걸까?
뭐, 본인이 잘못한 거니 그 사실을 콕 집어 따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손과 다리를 보고 또 연신 만져보던 시운은 어떤 기이한 예감에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세면대 앞에 선 시운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기겁했다.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던 마흔네 살의 현시운이 아니었다.
마주 본 거울 속에는 본인 나이보다 이십 년은 젋어 보이는 과거의 모습이 비쳤다.
털썩.
놀란 시운은 화장실 바닥에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 * *
겨우 정신을 수습한 시운은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여긴 내가 예전에 살았던 희망고시원이 분명해!'
좁은 공간에 침대, 책상, 의자와 미니 냉장고, 욕실까지 완비된.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보려 젊을 시절 몇 년간 잠자리를 해결했던 곳이다.
거의 20년이 지나 희미했지만, 막상 눈앞에 마주하고 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 날짜가…."
시운의 시선이 책상 위에 올려진 스마트폰을 향했다.
최근까지 사용했던 홀로그램폰에 익숙해서인지 시운은 한참을 버벅대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 액정 위로 현재 시각과 날짜가 떠올랐다.
2018년 3월 3일 토요일.
지금 자신이 겪는 일들이 실재라고 가정한다면, 현시운은 무려 20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말이다.
"…회귀?"
2010년대 중반부터 십여 년간 인기를 끌었던 웹소설에 나오던 소재처럼 말이다.
그 뒤를 빙의와 환생이 이었지, 아마도?
"말도 안 돼."
과거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될 법한 소재와 플롯을 세팅하는 2037년형 작문 보조 AI도 거르는 게 회빙환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현실이라니!
눈앞에 처한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시운은 옷을 걸치고 고시원을 나섰다.
바깥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
익숙한 상점들이 늘어선 신림동의 고시원 골목을 바라보며 시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자신이 알던 것과 정확히 일치함을 확인한 그는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정말로 회귀한 건가?"
그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동시에 의심도 들었다.
사실 마흔네 살까지의 삶이 한바탕 길게 꿨던 악몽은 아니었을지.
그렇지만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기억이다.
누명 쓰고, 쫓겨나고, 또 사기당한 그 모든 기억이.
또한, 여전히 가슴 한편에 자리한 억울한 마음과 분노 역시!
"…장기우!!"
녀석을 떠올리자 주체할 수 없는 불길이 속에서부터 치솟았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자신이 녀석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을 못했던 거로 봐선 보잘것없는 일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녀석이 장난스레 던진 돌에 개구리처럼 맞아 죽은 거다, 자신은.
"…용서할 수 없어!"
이유가 뭐였고, 그럴 만 했는지 아닌지도 이젠 중요하지 않다.
장기우, 그놈에 의해 자신의 삶은 한껏 농락당했다.
이제 와서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이미 회귀한 시점이 시험지 도둑으로 몰려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공장에 갓 들어가 일을 한창 배우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이 울분을 고스란히 갚아줄 수 있을까?
하지만, 시운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나직이 한숨만 내쉬었다.
천애 고아에다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는 신세인 자신과는 달리 녀석은 재벌 3세다.
그것도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는 장강 그룹의.
다시 태어나 서로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복수는 불가능했다.
그런 자신과는 달리 녀석은 무엇이든 가능하겠지.
아마 지금도 알게모르게 녀석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근데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대로라면 회귀 전처럼 또 놈의 술수에 당하는 일이 되풀이되겠지?
퇴학은 당했으니, 이제 남은 건 공장에서 쫓겨나는 것과 불량배들 그리고 임대 사기인가?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으니 피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근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회귀 전에 겪은 일들만 피한다고 끝이 날 리 없다.
되려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겠지.
"젠장!"
앞으로 다가올 이십 년의 기억은 있지만, 돈이 될만한 정보를 세세히 알지는 못한다.
사고로 죽고, 이렇게 회귀를 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이니 말이다.
알고 있는 거라고 해봐야 언제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고, 어느 분야의 산업이 앞으로 발전하게 되는지 정도?
물론 대략적인 정보로도 돈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을 만큼의 재력을 갖출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어림도 없겠지.
당장 수중에 돈도 얼마 없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마당에.
"적당히 돈을 모으자마자 해외로 이민을 가버릴까?"
물가가 비교적 싼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지로?
그런다고 녀석이 포기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간혹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현지 빈민에게 총과 약간의 돈을 쥐어주고 자신을 죽이라고 청부할 지도 모른다.
차라리 회귀할 거였다면 1년만 더 앞으로 갈 것이지!
그럼 작년에 최고점을 찍은 가상화폐에라도 투자해보는 건데.
아니,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을 담아보자면 5년 전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시기 전.
그때로 회귀했더라면 일어날 사고를 막아 두 분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자 눈시울이 붉어진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자신들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발을 벗고 나서시던 두 분.
사고가 일어난 그 날 밤도 지방의 한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올라오시던 길이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쓸어낸 시운은 발개진 눈두덩이를 식히려 세면대로 향했다.
띠링!
"?"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뭔가 싶어 확인하니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와있었다.
[발신자 불명]
[GR컴퍼니에서 보냅니다. 우선 축하합니다! 미래 정보 임시 이용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길 바라며….]
"하! 회귀하고 처음 받는 문자가 스팸메시지야?"
미래에 나올 홀로그램폰은 개인정보 취급과 보안에 철저해서 스팸 문자를 발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모처럼 만의 스팸 문자에 시운은 신기한 기분마저 들었다.
[…부모님이 쌓은 공덕 덕분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이용자님! 아무쪼록 후회 없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저희 GR컴퍼니가 응원합니다!]
"?!"
대충 확인하고 문자 보관함에서 지우려던 시운은 말미에 적힌 글귀에 순간 얼어붙었다.
"…뭐야, 이건?"
부모님이 쌓은 공덕?
또 한 번의 기회?
단순한 스팸메시지로 치부하기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아는 듯한 내용이다.
시운은 문자메시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내렸다.
[♧다운로드♣]
[다운로드를 클릭하면 미래 정보를 검색해주는 앱 '유레카'가 설치됩니다. '유레카' 이용 방법은 앱 내의 도움말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또한, 다운로드 가능 기한은 2018년 3월 3일 23시 59분 59초까지이니 늦지 않게 설치 바랍니다.]
"……."
다른 글자들과 달리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다운로드 부분을 시운은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신종 사기 수법인가?
링크를 누르면 개인정보나 계좌정보가 유출되는?
현재 인기 있는 웹소설의 소재를 차용하여 낚시질하는 걸 수도 있잖아.
정말 자신처럼 회귀하지는 않았어도 궁금증에 한 번쯤 눌러볼 만큼.
누를까, 말까?
호기심과 걱정이 동시에 생겨난다.
인터넷으로 비슷한 문자 사기가 있었는지 검색해보지만 새로운 유형인지 사례는 없었다.
"한번 확인이나 해볼까?"
회귀도 있는 마당에 그보다 더한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
어차피 자신 명의의 통장에 돈도 얼마 들어있지 않았고, 인터넷뱅킹과 텔레뱅킹도 신청하지 않은 상태라 돈이 저절로 빠져나갈 리도 없다.
개인정보?
흥! 이미 여러 증권사와 보험사에 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뭘.
새삼스럽다.
무엇보다도….
돌아가신 부모님의 언급에 괜스레 궁금해진다.
꾸욱-
기대와 불안을 반씩 섞은 시선으로 액정화면을 바라봤다.
링크를 타고 새하얀 배경의 빈 페이지로 이동했다.
잠시 기다리자 푸른색의 설치 진행도가 나타나더니 좌에서 우로 길게 이어졌다.
이윽고 설치 완료라는 알림창이 떴고, 다시 원래의 바탕화면으로 돌아왔다.
바탕화면 한쪽, 비어있던 자리에 무지개가 그려진 로고의 '유레카'란 실행 아이콘이 생겨났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개인정보를 빼가는 사기 수법은 아닌 것 같다.
시운은 아이콘을 바로 눌러보았다.
앱을 설치하던 페이지처럼 새하얀 바탕의 배경이 깔리더니 중앙에 글귀가 떠올랐다.
[당신의 미래를 바꿔보세요.]
[미래 정보 애플리케이션, 유레카가 도와드립니다.]
[GR컴퍼니]
수초의 간격으로 떠오른 메시지는 곧 옅어지며 사라졌다.
대신하듯 유레카란 앱 명과 함께 옆으로 기다란 검색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최상단부 우측에 도움말 표시가 새겨졌고, 그 아래에는.
[잔여 정보 이용권 : 5장]
…라는 정보창이 떴다.
"……."
진짠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