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4화 (4/139)

§003화 뜻밖의 만남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산전자상가에 들른 현시운은 가장 성능이 좋은 노트북을 하나 구매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노트북은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두 푼씩 모아 샀던 거로 어느새 부팅속도만 1분이 넘게 걸릴 정도의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사은품으로 받은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어깨에 멘 뒤, 곧장 고시원으로 향했다.

"이봐요."

막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시운을 불러세웠다.

"네? 저 말입니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시운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이는, 파란색 운동복 차림의 덩치 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운의 얼굴과 방 호수를 번갈아 보더니 작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203호죠?"

"네. 맞습니다만?"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204호입니다."

"……."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비로소 시운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퉁명스러운 말투로 남자는 203호의 소음을 지적했다.

"여긴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잖아요. 보아하니 대학생인 것 같은데…. 시험공부 할 때 누가 옆에서 떠들면 좋겠어요?"

애석하게도 작년부터 대학생이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어제 벽을 두드리며 고함칠 때와는 달리, 또한 우락부락하게 생긴 인상과는 다르게 남자는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고, 놀란 마음에 그랬다고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명백했기에 시운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시원이 처음이라 잘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곧 고시원을 나갈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과 감정 상하며 척을 질 필요까지는 없겠지.

장기우에게 인생이 한 번 파탄이 나고 보니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근데?

얼굴이 굉장히 낯이 익다.

누구였더라?

"흠, 흐흠!"

흔한 변명 하나 없이 곧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하자, 도리어 남자가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해댄다.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데, 시운의 시선은 무심코 그의 다른 손으로 향했다.

헌법 총론.

짧은 한자 지식으로 읽어낸 책의 제목이다.

남자의 커다란 손에도 겨우 잡힐 만큼 두꺼운 두께를 자랑하는.

"?!"

그제야 시운은 남자의 얼굴이 낯익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고요."

조금 전보다 많이 누그러진 말투로 당부하고 돌아서는 그.

시운은 저도 모르게 남자의 팔을 붙잡아버렸다.

"…뭡니까?"

"아!"

갑작스러운 행동에 자신도 깜짝 놀란 시운은 얼른 남자의 팔을 놓았다.

"……."

설명을 해보라는 남자의 눈빛에 시운은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혹시, 김현석…씨 아닙니까?"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순간 망설였다.

204호 남자 아니, 김현석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절 어떻게 아시죠? 혹시 서울대 법대생입니까?"

모교 후배인가 싶어 묻는 그의 말에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서울대 로스쿨…일 리는 없겠군요. 아직 대학교를 졸업했을 나이로는 보이지 않네요."

시운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살짝 적시며 답했다.

"2008년도 수능 만점자였던 것 같은데…. 맞죠? 당시 뉴스에서 얼굴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 그랬었죠."

9년도 더 지난 과거의 영광을 들춰내자 김현석은 창피한지 콧잔등을 매만졌다.

물론 시운의 말은 반만 맞았다.

김현석이 9년 전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매스컴까지 탄 건 맞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다만, 앞으로 18년이 지나면 미취학 아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한민국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해지기에 알아본 것뿐이다.

"법 공부하시나 봅니다?"

"아, 네. 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시운도 그가 왜 그런 얼굴을 하는지 잘 알았다.

김현석의 과거사 역시 제법 유명했으니 말이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김현석은 시운의 격려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와 일별하고 203호로 돌아온 시운은 노트북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

회귀와 미래 정보 앱, 유레카만큼이나 놀라운 만남이었다.

시운은 옆방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을 표현했다.

'대통령 후보 김현석이 바로 내 옆방이라니….'

2037년에 있을 제22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로 손꼽혔던 김현석이다.

물론 지지율 2, 3, 4위 후보가 선거일 3주 전에 후보 단일화를 하는 바람에 낙선을 하게 되지만,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의 득표율은 고작 1%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낙선했다고 하여도 정계에서 그가 가진 영향력은 실로 크다.

"흐음…."

미래의 거물급 정치인.

그전까지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던 열혈 검사.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시운은 당장이라도 고시원에서 나가려 했던 애초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김현석과 연을 맺을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다!

재벌 3세 장기우를 무너뜨리는 데 돈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 재벌이 돈만 있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도 아니거니와, 정계에 뻗어있는 그들의 힘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사람이 절실했고, 김현석은 그에 가장 부합되는 사람이다.

'이용하는 것 같아 내심 마음에 찔리기는 하지만….'

그의 미래를 잘 알고 있으니 자신 역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고, 또한 그럴 생각이다.

그렇게 다짐을 하며 시운은 204호가 있는 벽을 바라봤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매와 같이 매서운 눈빛이었다.

* * *

김현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시운은 가방에서 로또 당첨금이 든 통장을 꺼냈다.

첫 면에 계좌번호와 자신의 이름, 사인이 적혔고, 다음 장 상단에는 오늘 일자로 입금된 로또 실수령액이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큽! 크흠."

저도 모르게 함성을 지를 뻔한 걸 다급히 손바닥으로 막았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다.

55억도 넘는 거금의 주인이라니!

잠시간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상 앞에 앉은 시운은 새 노트북을 부팅시켰다.

성능 좋은 삼정전자 노트북답게 부팅이 완료되는 데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에 쓰던 노트북과 비교할 수 없는 빠름에 시운은 신세계를 경험했다.

"음, 저것도 까는 게 낫겠지?"

예전 기억을 더듬어 주로 썼던 프리웨어를 설치하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

불림증권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간 시운은 곧장 회원가입을 진행했다.

이곳을 주거래 증권사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수수료가 쌌기에.

20여 분을 들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스탁도어' 설치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아 설치를 시작하고, 농협에서 신청한 공인인증서로 증권 계정에 연동까지 마쳤다.

설치 완료된 프로그램을 실행한 시운은 실명인증과 함께 농협 계좌의 돈을 증권계좌로 옮겼다.

"일단은 50억 원."

김현석과 친분을 만들기 위해 좀 더 고시원에 붙어있을 생각이니, 아파트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여윳돈으로 5억 원가량만 떼놓고 다 투자를 할 심산이다.

5억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 게 낫겠지.

투자금액이 제대로 옮겨진 걸 확인한 시운은 유레카가 알려준, 제이오엠을 검색했다.

잠시 후, 노트북 화면 위로 종목 정보가 떠올랐다.

"응?"

[제이오엠(주) / 현재가 6,310원 / 전일 대비 +20원 / 등락률 +0.32% / 시가총액 997억 원 / 거래량 137,295주]

전반적인 차트 흐름은 보합세였다.

2018년 1월 중순 4,000원 대의 주가에서 껑충 뛰어올랐다가 한 달 가까이 6,000원 초·중반대를 유지하며 조정을 받고 있었다.

유레카의 검색 결과는 불친절하다.

아니, 어떤 검색어를 넣느냐에 따라 정보의 결과가 바뀐다고 해야 할까?

3개월 안에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 종목으로 검색했을 때 나온 답은 제이오엠이란 종목명뿐이었다.

얼만큼의 수익이 나는지도 명시되지 않은 채로.

'보통은 선물 옵션이나 파생상품이 더 수익률이 높지 않나?'

도박성이 짙어서 그만큼 손실을 볼 위험도 크긴 하지만 말이다.

제이오엠의 수익률이 얼마나 높을지 궁금하지만 그걸 알아보자고 이용권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번의 유레카 이용 후 현재 남은 정보 이용권은 3장.

정식 사용자로 등급을 올릴 수 있는 특정 조건을 모르는 이상 사용에 심사숙고해야만 한다.

끝내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결국은 파워볼인가?"

이용권이 하나만 남는 순간, 시운은 그걸 파워볼 당첨 번호 확인에 사용할 생각이다.

최대의 아웃풋을 위해 수십 번은 이월됐을 때 말이다.

"아마 조 단위였지."

회귀 전에도 몇 번 있었다.

이월이 거듭되며 최종 당첨금이 조를 훌쩍 뛰어넘던 순간들이.

기사로 접했을 때 얼마나 부러웠던지.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최후의 보루다.

일단은 알아봐야겠지.

정식 사용자 등급 조건을!

'2장이라….'

시운은 남은 이용권 수를 떠올리며, 유레카 정보 검색에 앞으로 좀 더 신중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제이오엠은 오늘 매수에 들어가 석 달 뒤인 6월 4일 전후로 되팔 예정이다.

석 달이 적절했으려나?

한 달 만에 몇 배나 오르는 종목도 있겠지만 극히 드물고, 석 달을 넘어서는 기간은 왠지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석 달 후의 제이오엠 수익률이 예상외로 낮을지 모르지만, 시운은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확신했다.

'선물 옵션도 제치고 나온 결과인데, 설마….'

만약 기대보다 수익이 낮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두둑한 시드머니만 있다면야 굳이 유레카의 정보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자금을 불릴 자신은 있었다.

20년 후까지의 대략적인 미래는 알고 있으니까.

거시적인 흐름에 편승하기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어들이는 게 가능하다.

특히, 2년 후에 일어날 대사건 때는 말이다.

벌써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겠지.

주가가 급상승하지 않게 조금씩 매집을 시작한 시운은 2시간이 지날 무렵에야 매수를 끝낼 수 있었다.

[보유 종목 : 제이오엠(주)]

[보유 주식수 : 783,600주]

[평균 매입가 : 6,380원]

[매입 금액 : 4,999,368,000원]

[현재 주가 : 6,570원]

[현재 가치 : 5,148,252,000원]

[현재 수익률 : +2.97%]

[수익 금액 : 148,884,000원]

[주식 잔고 : 5,148,884,000원]

"좋은데?"

수익 금액란을 바라보는 시운의 눈가에 웃음이 맺혔다.

전일보다 다섯 배 이상 늘어난 거래량에 뭔가 있다고 여겼는지 거래 시작 때보다 매수 세력이 늘었다.

주가 역시 요동을 치며 완만하게 상승했다.

초반에 많은 양을 매집한 덕분에 벌써 1억 원이 넘는 수익이 생겼다.

물론 수익도 실현해야 제대로 돈이 되는 거지만, 일단 기분은 좋았다.

앞으로 3개월 뒤에 지금 금액이 어느 정도까지 불어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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