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화 장군? 멍군!(2)
"경찰이다. 꼼짝 마!"
손전등의 눈 부신 불빛이 둘을 향해 쏟아졌다.
못해도 서너 개의 빛줄기들.
"이런, 씨발!"
욕설과 함께 한준석은 품 안의 잭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이동수 역시 당황한 와중에도 챙겨온 장도리를 손에 꽉 쥐었다.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둘의 행동에 테이저건을 꺼내 들어 겨눈다.
"섣부른 행동 하지 말고 그 칼과 장도리 당장 내려놔!"
"좆까, 씨발 짭새들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집안에 목표물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관들.
한준석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내 돈!!'
수천만 원의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대신하듯 쇠창살과 좁은 감옥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대로 연행되어 가면 십중팔구 그렇게 되겠지.
"씨발! 죽기 싫으면 비켜!"
한준석은 손에 든 잭나이프를 위협하듯 마구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겁을 먹고 경찰들이 옆으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고, 자신은 그 틈에 현관으로 달아날 심산이다.
하지만 그건 친구인 이동수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무모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뒤늦게 한준석을 말려보려고 했으나, 말 그대로 너무 늦어버렸다.
퓩! 퓨욱-
두 번의 발사음과 함께 한준석과 이동수의 몸에 전기 침이 꽂혔다.
"왜 나까지…?"
이동수는 억울함을 미처 다 토로할 수 없었다.
전기 침의 따끔한 통증 다음으로 5만 볼트의 전류가 흘러들어온 까닭이다.
치지직-
"으갸갸각!"
"브, 브르르…."
털썩-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단번에 무력화된 한준석과 이동수.
조심스레 다가온 경찰관들은 수갑을 꺼내어 둘의 손목에 각각 채웠다.
* * *
"어떻게 미리 아시고 밖으로 몸을 피하셨던 겁니까?"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강도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의 물음에 현시운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저녁부터 아파트 단지 주변을 배회하는 수상한 남자들을 발견했었죠."
처음엔 무시했다가 밤늦게까지 근처에 있는 게 하도 수상해 집안의 불을 모두 껐는데,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남자들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동으로 오는 것을 보고 옥상으로 몸을 피한 뒤, 112로 신고했다고 시운은 진술했다.
"침착하게 잘 대응하셨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
"운이 좋았죠."
대답을 마친 시운은 조금 전 형사를 따라 취조실 옆방에서 일방투명경을 통해 본 용의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절로 치가 떨린다.
그 뒤로도 몇 가지 질문이 나왔고, 이에 시운은 성심성의껏 답했다.
"참고인 조사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오늘 많이 놀라셨을 텐데, 들어가서 푹 쉬세요. 나중에 추가 확인차 따로 연락이 갈 수도 있습니다. 핸드폰을 항상 곁에 두시고요."
"네, 그러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사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시운은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현재 시각 오전 2시 13분.
고개를 돌려 방금 나온 강남경찰서 건물 외벽을 바라봤다.
이내 시선을 바로 한 시운은 본인의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했다.
걸으면서 핸드폰을 꺼내든 그는 몇 번의 터치 후, 원하던 화면을 액정 위로 띄웠다.
[2018년 10월 28일 23시 27분. 현시운 님은 자택을 침입한 두 강도에 의해 오른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게 됩니다.]
"……."
어젯밤 유레카가 보낸 위기 알림 메시지의 내용이다.
피해 시점의 장면을 간략히 묘사한.
강도의 정체나 어떤 식으로 다치는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없다.
10억 원의 정보치고는 너무 대충인 게 아닌가 싶지만, 이 덕분에 시운은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강도 사건이라고 여겼었다.
회귀 전 다쳤던 오른쪽 무릎이 또 박살 난다는 말에 매우 격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예고된 일을 오늘 막상 겪고 보니 애초에 가졌던 생각이 달라졌다.
"…장기우!"
서울 장강호텔에서 동창회가 열렸던 게 불과 하루 전이다.
그새를 못 참고 손을 써올 줄이야!
시운은 이를 뿌드득 갈며 아까 본 범인들의 얼굴을 다시 기억해냈다.
면식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담당 형사에게는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시운이 잘 알고 있는 놈들이었다.
회귀 전, 거리에서 분식점을 할 때.
그리고 장기우에게 따지러 갔을 때.
그놈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때는 장사를 훼방 놓던 동네 건달로.
또 다른 때엔 자신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비열하게 웃던 경호원의 모습으로.
그랬다.
지금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그 두 놈은 회귀 전부터 자신과 지독한 악연으로 엮인 사이다.
바로 장기우의 지시로 자신을 괴롭혔던 하수인들이었으니까.
그게 이번 강도 사건의 배후에 장기우, 그놈이 있음을 확신하는 이유다.
"후…."
자신의 차에 올라탄 시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범인들과 장기우의 연결고리.
경찰이 조사해보겠지만, 딱히 배후를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장기우 그 녀석이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꾸몄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자신과는 달리 재벌 3세의 신분인 놈을 상대로 경찰이 확실한 물증도 없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리 없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재벌 2세를 상대로 힘껏 부딪히는 열혈 형사 캐릭터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단순 강도 사건으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겠지.
화가 치밀지만, 그렇다고 회귀 전의 일을 담당 형사에게 말해 강도와 장기우를 엮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친놈 취급 안 당하면 다행이지."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는 시운.
이로써 명확해졌다.
녀석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이.
하지만 명확한 물증이 없어 어떤 법적인 제재도 가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신 나도 널 감시해주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지금까지는 녀석이 미국에 유학가 있어 생각만으로 그쳤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흥신소를 알아봐야겠군."
유레카를 통한 정보 검색이 보다 정확하고 빠르지만, 월 구매 한도와 장당 10억이란 액수 때문에 함부로 남발할 수는 없다.
꼭 필요한 순간일 때 외에는 아껴야 한다.
짐작했던 일이라 막상 눈으로 확인했어도 놀라움은 덜하다.
그러나 역시 기분은 더럽다.
짜증스러운 눈으로 유레카 앱을 들여다봤다.
[잔여 정보 이용권 : 3장]
[잔여 위기 알림권 : 1장]
이번 일은 무사히 넘겼지만, 언제 또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지 몰라 없는 살림(?)인데도 다시 위기 알림권 한 장을 질러버렸다.
이제 통장에 남은 돈은 10억 원 남짓이다.
이번 달이 지나기 전에 구매 한도가 있는 정보 이용권 3장을 더 사야만 한다.
강하민에게 말해 위탁한 돈 일부를 되돌려받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전액 다 주식과 파생상품에 투자가 된 상황이라 이틀 안에 현금화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단 급한 대로 은행 대출이라도 받을까?"
재원 마련을 위해 궁리를 하던 시운의 표정이 다시 찌푸려진다.
퍽!
시운은 오른손으로 콘솔박스를 힘껏 내리쳤다.
오늘 일이 다시 떠올라서다.
다른 생각으로 잊어보려 해봤지만, 화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장기우…."
유레카의 위기 알림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이번 삶에서도 회귀 전처럼 오른쪽 무릎이 망가졌을 거다.
그 사실을 상기하니 더욱더 분노가 치솟는다.
어떻게 해야 분을 제대로 풀 수 있을까.
자신도 사람을 고용해 놈의 무릎을 부숴버려?
아님, 영화처럼 덤프트럭으로 놈의 차를 밀어버려?
"아니, 아니지…."
놈 때문에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순 없지.
또한 그렇게 편하게 보내주기도 싫었고.
자신이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절망감을 안겨줘야만 한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역시!
"놈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거길 오르기 직전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버리는 게 가장 좋아."
20년의 원한을 한 번에 풀 수는 없다.
회귀 전 장기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놈의 것을 하나씩 뺏거나 부숴버릴 것이다.
자신이 맛봤던 참담함과 울분을 장기우, 그 녀석에게도 충분히 맛보게 하고야 말 거다.
그래도 작게나마 보복은 필요하다.
지금의 화를 가라앉히려면 말이다.
"…조금 앞당길까?"
시운은 머릿속으로 한 회사를 떠올렸다.
진성전자.
훗날, 장강전자로 사명이 바뀌고 장강 그룹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다 주는 계열사 중 하나.
하지만 지금은 도처에 널린 중소기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회사를 인수한 게 분명 장기우였지."
인성과는 달리 놈의 안목과 능력은 제법 뛰어났다.
곧 망할 회사를 사들여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까지 키워냈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게 두고보지 않을 생각이다.
"가로채주지."
시운은 씨익 웃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짰다.
"일단 돈이 많이 필요하겠어."
드림비전과 강하민에게 투자한 사백억 원 외에도 목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통장에 남아있을 10억가량의 자금을 떠올린 시운의 시선이 유레카 앱의 메인화면으로 향했다.
"……."
잠깐의 고민 뒤에 시운은 결정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주거래은행을 찾아가서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기로.
이제 제대로 정보 이용권을 활용할 때이다.
* * *
본사 사옥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운 장기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조조정본부가 있는 13층을 향했다.
"아! 본부장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네, 반갑습니다. 좋은 아침이네요."
자신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는 직원들에게 웃는 얼굴로 답례를 한다.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아침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온 장기우는 조금 전까지 보인 웃음을 얼굴에서 싹 지웠다.
무표정한 얼굴로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 그는 블라인드 너머의 창밖을 한동안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그토록 깊이 하는 걸까?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불쾌였다.
"…현시운. 네까짓 게 감히."
이틀 전, 서울 장강호텔에서 있었던 녀석과 만남이 방금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악수한 자신의 손을 힘주어 잡던, 그러면서 환하게 자신을 향해 웃던!
꽈악!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타고난 연기력으로 남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는 만큼이나 장기우는 남의 의중을 잘 파악한다.
그리고 그때, 시운이 자신을 향해 다음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분명… 조롱이었다.
"근데 녀석이 뭘 알고 그런 건가?"
의문이 든다.
녀석이 학교에 다닐 수 없게끔 자신이 사람을 써서 퇴학당하게 했다.
그 일과 자신을 결부시키지 못하게 여러모로 신경도 썼었고.
근데 녀석이 그걸 안다?
"설마?"
조교가 뒤늦게 양심고백이라도 한 건가?
그 때문에 자신이 이틀 전 그런 모욕을 당했었고?
"돈을 받아먹을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니고서는 현시운이 자신에게 그토록 무례한 행동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래서 격이 안 맞는 것들과는 말도 섞으면 안 된다는 거다.
장기우는 어금니를 악물며 화를 삭였다.
조교와 약속한 다른 보상은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현시운은….
"후후."
장기우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어린다.
자신에게 버르장머리 없게 군 대가는 지난밤에 충분히 치렀을 거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남아있던 앙금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녀석이 어느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을지.
이젠 확인만이 남았다.
"서서히 말려 죽일 생각이었지만…. 놈이 자초한 일이니까."
어디 한 군데 병신이 되었기를 바라며, 장기우는 전속 비서실과 연결된 인터폰 호출 버튼을 눌렀다.
- 네, 본부장님.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두 번째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받았다.
여비서의 말에 장기우는 답했다.
"커피 한 잔 부탁할게요. 아, 그리고."
- 네, 말씀하십시오.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깐 김 비서가 자리에 보이지 않던데요? 아직 출근 전입니까?"
- 아닙니다. 본부장님 출근 전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며 잠깐 외근을 나갔습니다.
'급하게 처리할 일?'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드는 말이다.
"알았어요. 김 비서 들어오는 대로 내 방으로 오라고 전해줘요."
- 네, 그러겠습니다. 본부장님.
인터폰을 끊은 장기우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김학수 대리.
4년 전, 두 형의 사망으로 장강 그룹 호적에 정식으로 오르면서 아버지인 장철구 회장이 붙여준 장기우의 전속 비서이다.
처음에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곁에서 지켜보고 장철구 회장에게 보고하는 감시자였겠지만, 지금은 충실한 수족이 되었다.
그 역시 대세가 자신에게 기울었음을 인지하고 일찌감치 전향한 셈.
김학수를 통해 장기우는 현시운을 괴롭혀왔었다.
학과 조교를 매수해 현시운을 학교에서 내쫓았으며, J&G조선의 구매부장을 움직여 일하던 공장에서마저 그만두게 만들려고 했다.
후자는 현시운이 그 전에 먼저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려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지난밤의 응징 역시 김학수가 판을 짰다.
"따로 보고도 없이 움직여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이라…."
어제 일에 차질이 생긴 건가?
김학수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니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장기우는 그가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시간 여쯤 지났을 때, 장기우의 집무실에 김학수가 찾아왔다.
마른 몸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30대 중반 나이의 김학수.
한준석과 이동수를 찾아가 일을 맡겼던 바로 그 남자였다.
김학수는 장기우 앞에 서자 마자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사죄의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
그를 보는 장기우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