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6화 (16/139)

§016화 작은 보은

지난 9월에 정년으로 퇴직한 한신철은 퇴직금으로 받은 2억 원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이미 포화 상태다.

그냥 은행에 묻어두고 소일거리 하면서 연금처럼 빼 쓸까?

100세 시대.

갓 60대에 접어든 그가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즐길 노후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음 같아선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라도 지으며 마음 편히 살고 싶지만 아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이마저도 무산되고 말았다.

애들 학비에 생활비까지.

지금까지 30년 이상 직장에서 일한 대가로 수중에 남은 건 서울 외곽의 낡은 아파트 한 채와 퇴직금 2억이 다였다.

앞으로 살아야 할 수십 년의 세월을 감당하려면 은퇴 라이프는커녕 당장 새로운 일자리부터 알아봐야 할 판이다.

"어디 경비원 자리라도 없나?"

날마다 구인사이트에 들어가 그날 올라오는 일자리를 확인하는 게 일상처럼 되어버린 어느 날, 한신철은 자신보다 한 해 먼저 퇴사한 전 직장 동료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사한기술산업이라고 코스피 상장기업이거든. 내 조카가 거길 다녀. 조만간 좋은 호재가 있을 거라고 했단 말이지. 난 거기에 전 재산 몰빵하기로 했어. 자네도 이번에 퇴직금 나왔잖아. 같이 투자해보자고. 못해도 서너 배는 뛴대. 그 돈이면 노후자금은 걱정 없지."

서너 배라….

최소 6억 이상으로 돈을 불릴 수 있단 소린데?

동료의 말을 듣고 확인해본 사한기술산업의 주식은 코스피 종목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낮은 가격으로 주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주가의 흐름도 장시간 동안 제자리걸음 수준.

선뜻 투자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확실하다니까. 남미 쪽의 유전 개발하는 업체와 공식적으로 계약을 진행할 거라고 했다고. 공시 뜨고 나면 너무 늦어. 들어가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나름의 신뢰가 쌓인, 믿을만한 동료였다.

한신철은 그의 제안을 따라 퇴직금 전부를 사한기술산업에 투자했다.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말이다.

이번 기회가 앞으로 삶의 향방을 판가름할 중요한 분기점처럼 느껴졌다.

처음 며칠 간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10원이라도 오르면 기뻤다가도 다시 20원 내리면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일희일비하면 가슴을 졸이던 어느 날.

동료가 말한 공시가 떴다.

[(주)사한기술산업, 11월 16일 멕시코 중질유 개발업체 아이가스(IGAS) 코퍼레이션과 공급·유통 관련 양해각서(MOU) 체결!]

"…!!"

전일 종가 1,350원으로 시작된 주가는 공시가 뜨자마자 단숨에 가격제한선까지 급등했다.

[(주)사한기술산업 / 현재가 1,750원 / 전일 대비 +400원 / 등락률 +29.62% / 시가총액 1,075억 원 / 거래량 2,653,150주]

한신철은 장대 양봉을 환희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다, 단번에 상한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주가가 치솟으며, 한신철은 불과 몇 분 만에 6천만 원을 벌었다.

전에 다녔던 회사의 1년 연봉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였다.

띠리리~

때마침 울리는 전화에 한신철은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액정을 들여다봤다.

사한기술산업의 정보를 알려준 직장 동료였다.

- 어때? 내 말이 맞지! 확실한 종목이라니까.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 어떻게 갚긴? 오늘 술 한잔 사. 이런 날을 그냥 넘길 순 없잖아.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날 한신철은 평소라면 가볼 엄두도 못 낼 고급 한우 전문점에서 양주까지 곁들여 동료를 대접했다.

수백만 원이 깨졌지만, 오늘 주식으로 번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이어 화요일까지 사한기술산업의 상한가는 이어졌다.

어느새 한신철의 주식 잔고는 4억 원을 훌쩍 넘겼다.

하루가 또 지나 수요일 아침.

기대감에 컴퓨터를 켠 한신철은 전날과는 달리 +8~9% 사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주가에 불안해졌다.

분명 시가는 상한가였는데, 유입되는 매도세에 가격제한선이 풀려버린 것이다.

그는 곧바로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파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매도세가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

- 팔기는 뭘 팔아. 이제 겨우 3천 원을 넘겼는데. 아직 갈 길이 구만리야. 꼭 쥐고 있어. 팔지 말고. 못해도 만 원까지는 갈 주식이라니까.

한 번 조정을 받고 떨어낼 개미들을 한번 털고 간다는 그의 호언장담에 한신철은 일단 하루만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목요일, 동료의 말처럼 사한기술산업은 또다시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 뒤부터는 상한가가 일시적으로 풀리더라도 크게 동요하는 일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공시가 뜬 지 11일째 되는 날, 사한기술산업의 주가는 7,400원을 달리고 있었다.

오전 장 내내 20~23% 사이를 오르내리던 주가가 마침내 가격제한선에 다다르며 매도세가 닫히자 한신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식 잔고 : 1,112,738,000원]

처음 살 때만 해도 2억 원이던 게 다섯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한신철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얼굴로 연신 잔고만 들여다봤다.

"여보, 식사하세요."

"어! 지금 바로 갈게."

두 배로 돈이 불어났을 때, 아내에게 주식에 퇴직금을 몽땅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몹시 걱정하며 당장이라도 팔라고 아우성쳤지만, 그 돈이 세 배, 네 배로 불어나자 아내의 잔소리와 닦달은 사라졌다.

"냄새가 좋네? 뭐야, 오늘 점심?"

"호호, 당신 요즘 기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장어 두 마리 넣고 탕 끓였어요."

"에게? 두 마리 가지고 돼. 다음엔 넉넉하게 열 마리 정도 사. 끓여도 먹고, 구워도 먹고 그래야지."

"알았어요, 알았어. 어서 들기나 해요."

역시 돈이 최고다.

항상 바가지를 긁던 마누라의 대접이 180도로 달라졌으니.

밥 한 그릇 뚝딱 말아 해치운 한신철은 오후 장도 확인할 겸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 뭐야?!"

그리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주)사한기술산업 / 현재가 4,000원 / 전일 대비 -1,700원 / 등락률 -29.82% / 시가총액 2,455억 원 / 거래량 5,320,970주]

장대 음봉이 차트를 수놓고, 11억 원을 넘던 주식 잔고가 6억 원까지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

뭔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한신철은 얼른 매도 주문을 넣으려 했다.

그때, 하한가를 기록한 주가가 꿈틀대면서 다시 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

상한가까지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까지 회복된 주가.

한신철은 방금 지옥과 천당을 왕복한 듯한 기분에 진이 다 빠졌다.

방금 먹은 장어탕으로 보충한 기력이 고작 몇 분 만에 바닥난 기분이다.

무슨 악재라도 있는 건가 싶어 공시와 종목 관련 뉴스를 모조리 뒤져봤지만, 딱히 특별한 소식은 없다.

이럴 때 물어볼 곳은 사한기술산업을 추천해준 동료뿐.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있었던 주가 흐름에 대해 말했다.

- 음, 나도 엄청 놀랐어.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이게…. 급락장의 전형적인 유형 아닙니까?"

- 아니래도. 안 그래도 나도 염려돼서 조카에게 연락을 해봤거든. 아! 전에 말했었지? 내 조카가 사한기술산업에 다니고 있다고.

"그랬죠."

- 녀석 말로는 조금 심하게 조정을 받는 것뿐이래. 공시가 뜨기 전에 오래도록 들고 있던 주주들이 이번에 대부분 털고 나간 것 같다나 봐.

"…그냥 이쯤에서 우리도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요?

- 이 사람, 또 이런다. 그렇게 새가슴이래서 어디 큰돈 한번 만져보겠어? 개인투자자가 왜 돈을 못 버는데. 일희일비하며 조급하게 사고팔아서 그래. 가만 놔둬 봐. 못해도 만 원까지는 간다니까? 그때 팔면 돼. 수억 원을 더 벌 기회인데 그냥 날릴 거야?

"……."

동료의 확신에 찬 말에 한신철은 대답 없이 그냥 듣기만 하다 전화를 끊었다.

"…아냐. 아무래도 그냥 단순한 조정은 아닌 것 같아."

일주일 전의 양상과는 달랐다.

전일 종가 대비 오른 상태에서 주가가 요동치는 거랑 상한가에서 단번에 하한가까지 곤두박질치는 건 엄연히 다른 신호다.

잠깐 고민을 한 한신철은 이내 결심했다.

이쯤에서 그만 털어내기로.

"11억 원이면…. 나쁘지 않지."

한신철은 다시 상한가에 도달한 사한기술산업 주식의 전량을 매도해버렸다.

이로써 그는 다음날 있을 끝도 없는 주가의 추락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 * *

"후우."

가지고 있던 모든 사한기술산업 주식을 매도한 현시운은 한차례 날숨과 함께 뻐근해진 목덜미를 풀었다.

"파셨을까?"

20억 원을 들여 매수했던 사한기술산업 주식 백오십만 주를 모두 처분하고 시운이 쥐게 된 돈은 104억 원이다.

450% 이상의 수익이라면 110억 원을 넘겨야 하겠지만, 시운이 마지막에 남은 오십만 주를 최저가로 설정하고 단번에 털어냈기에 기대 수익보다 낮아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대량 매도에 개인투자자들이 뭔가 있나 싶어 덩달아 주식을 던졌고, 잠시지만 사한기술산업의 주가는 하한가까지 내려갔었다.

뒤늦게 작전 세력들이 부랴부랴 주가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충격의 여파는 오후 장 마감 직전까지 이어졌다.

회귀 전 공사판에서 만난 한 씨.

이름도 모른다.

같이 일하고 여러 번 술자리를 가졌음에도 한 씨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꺼렸다.

공장에서 이유도 모른 채 잘리고, 노점 분식점마저 깡패들의 등쌀에 닫은 뒤 시운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몸을 쓰는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게 막노동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다들 초보자인 시운을 무시할 때, 한 씨만은 자신에게 다가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치지 않고 일하는 요령도 배웠고, 여러 번 밥과 술도 얻어먹었다.

시운은 잊고 살았던 가족의 정을 그에게서 어렴풋이 느꼈었다.

- 8천 원을 넘어서는 듯하더니 갑자기 하한가로 직행하지 뭐냐. 후유…. 팔려고 해도 팔 수가 없더구나. 그때 팔 수만 있었어도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연일 하한가가 이어져 가지고 있던 주식을 매도할 수도 없었다고 당시 한 씨는 푸념했었다.

이후, 대표이사의 해외 도피와 함께 사한기술산업이 상장 폐지되면서 그는 퇴직금을 모두 날리게 되었지.

"이번에는 꼭 파셨어야 합니다, 한 씨 아저씨."

이름도 모르니 찾아볼 수도 없었다.

오늘 자신이 준 매도 신호를 그가 제대로 받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회귀 전 그에게서 받았던 은혜에 작은 보답이라도 되었기를.

시운은 마음속으로 빌었다.

"오늘은 드림비전에나 한번 들러볼까."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듯 시운은 애써 밝은 얼굴로 외출 준비를 했다.

김미영 팀장이 메시지로 보낸 오늘의 코디를 그대로 적용한 시운은 차를 몰아 판교로 향했다.

자신의 투자를 받은 한진형은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 기존의 좁은 사무실을 나와 판교 테크노파크 인근의 넓은 사무실을 새로 얻었다.

개발진들도 새로 뽑아 인력을 보충했으며, 필요 장비들도 아낌없이 사들여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직원들 몫까지 넉넉히 커피와 도넛을 챙겨 들고 간 시운은 한진형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어서 오세요, 투자자님!"

처음 만났을 때 비해 훨씬 밝아진 모습이다.

시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달라니까요. 투자자님이라니. 어감이 별로입니다."

"덕분에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데, 이름으로 부를 순 없죠. 사장님이란 호칭도 싫다면서요. 그냥 감내하세요. 아, 도넛은 저한테 주세요."

못 말리겠다는 듯 시운은 고개를 작게 흔들며 그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70평 상당의 내부에 각종 사무집기와 연구용 장비들이 즐비했다.

열 명의 직원들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저마다의 맡은 일에 열심이다.

"정혜련 부장님이 안 보입니다?"

"아, 그 녀석은 오늘 쉽니다."

"왜요? 어디 아픕니까?"

한진형 못지않은 워커홀릭인 그녀였기에 하루 쉰다는 말에 시운은 걱정부터 앞섰다.

"아뇨, 아프긴요."

"그럼?"

"자신을 대체할 인력도 충분히 뽑았으니 전처럼 미련하게 밤새가며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더군요. 그래서 하루 쉬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아픈 게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회귀 전 세계의 부호 1위이기에 은연중 신경이 쓰인다.

물론 이번 생에선 그 자리를 자신에게 양보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개발에 진척은 좀 있습니까?"

의례적인 물음이었는데,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한진형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제대로 된 장비 덕분에 개발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BCI(Brain-Computer Interface)를 기반으로 한 컨트롤러의 설계가 거의 다 완성되었습니다. 최종 목표인 브레인 컨택팅(Brain-Contacting)을 실현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기술인데 이게 어떤 거냐 하면…."

이어지는 전문적인 용어의 향연에 시운은 간간이 고개만 끄덕이며 들어주는 척을 했다.

누가 공학도 아니랄까 봐 문외한인 사람을 앞에 두고도 열의를 발한다.

"…못해도 반년 가까이는 시기를 당길 수 있을 겁니다."

"잘됐습니다. 상용화 단계까지 가는 시간도 앞당길 수 있는 거니까요."

한진형과 함께 사무실을 한번 둘러본 시운은 앞으로도 힘내 달라는 인사를 끝으로 그곳을 나왔다.

처음 드림비전에 투자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시운의 목표는 기술의 특허권을 팔아 돈을 챙기는 것이었다.

고글이 제시할 100억 달러.

자신의 지분이 49%이니 49억 달러는 자신의 몫이 되는 셈이다.

그 돈을 불려 장기우의 앞길을 막아설 계획이었는데, 유레카 정식 이용자가 되면서 방향이 살짝 바뀌었다.

굳이 고글에게 기술을 팔아 넥스트라는 미래의 시장가치 1위 기업을 바다 건너 미 대륙에 넘길 필요가 있을까?

"미국 못지않게 국내 인력도 우수한 편이지. 이곳에 넥스트를 세우면 돼."

그 좋은 걸 남에게 양보할 필요는 없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시운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딩동!

막 차 문을 열고 타려는 순간이었다.

"응?"

재킷 안주머니에서 울리는 소리에 시운은 손을 집어넣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유레카나 문자메시지 알림음과는 다르게 설정한, 일정 알람이다.

시운의 조작에 곧 스마트폰은 11월 캘린더와 함께 미리 설정한 일정을 표시했다.

"…벌써 이땐가?"

핸드폰을 바라보는 시운의 눈빛이 더없이 신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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