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7화 (17/139)

§017화 Saving Kim(1)

[11월 30일. 현석이 형 검사 임용시험 최종면접일 하루 전]

오늘이 27일이니 사흘 뒤의 일정이다.

회귀 전, 김현석은 이날 생긴 일의 여파로 결국 최종면접장에 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변호사 시험을 쳐서 합격하고 3년을 그쪽에서 일한 뒤에야 검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나서서 그 일을 막을 거다.

회귀 전의 원래 역사처럼 허무하게 3년을 낭비하지 않게끔.

그가 무사히 최종면접을 치러 내년에 검사로 임용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야 자신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부릉-

시운은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날을 위한 준비는 별것 없었다.

시운은 차량 블루투스와 스마트폰을 연결하여 미리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두어 번의 신호음이 가고 상대가 받았다.

- 반갑습니다. 고객의 신체와 재산을 지키는, 경호·보안 전문 (주)가디언즈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성 안내원의 매뉴얼화된 멘트가 이어졌고, 시운은 거기에 대고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얼마 전 연락드렸던 현시운입니다. 단기 경호 서비스. 견적대로 계약을 진행하려 합니다."

- 아, 네. 담당자에게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약하려면 직접 본사로 찾아오셔야할 텐데요. 언제 방문하실 예정입니까?

시운은 내비게이션을 슬쩍 보고는 답했다.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30분 뒤에 도착합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그 시간에 맞춰 계약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용건을 끝낸 시운은 통화를 끊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 * *

평소처럼 오전 6시에 일어난 김현석은 씻고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후, 언제나처럼 책상 앞에 앉아 법전 공부로 오전을 보냈다.

검사임용 최종면접일이 내일인데도 몇 년간 해온 루틴대로 그는 행동했다.

꼬르륵-

뱃속에서 울리는 시계 소리에 김현석은 시간이 벌써 점심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 현석이 형, 내일 점심에 별 약속 없으면 저랑 봐요. 면접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로 맛있는 거 사드릴 테니까.

어제저녁 늦게 걸려온 현시운의 연락에 김현석은 그러자고 했다.

약속 시각이 12시 반이었으니….

이제 20분 정도 남았나?

"……."

김현석은 가만히 안을 둘러보았다.

4평 남짓의 좁은 방.

침대와 책상, 미니 냉장고와 욕실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로 갖춰진 고시원.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3년째다.

내일 면접을 통과하고 정식으로 검사에 임용되면 익숙해진 이곳도 떠나야겠지.

왠지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다.

파란만장했던 젊은 시절의 긴 시간 동안 몸을 의탁했던 곳이라 더욱더 그러했는지 모른다.

스무 살, 대학 새내기 시절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버지는 종적을 감춰버렸다.

남 부럽지 않을 정도로 부유했던 집안이 단번에 풍비박산이 나버렸고,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빚쟁이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다.

자식인 김현석이 빚을 대신 갚을 의무는 없다.

하지만 얄궂게도 어머니가 아버지의 빚보증을 서있었다.

자신이 채무 변제를 거절하기라도 한다면, 빚쟁이들은 당장이라도 아파서 누워있는 어머니께 달려들 기세였다.

결국, 김현석은 자신이 빚을 갚겠다고 말했다.

빚쟁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에게서 각서를 받아 갔고 말이다.

그해 사법고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차 시험을 준비할 여유도 없거니와, 당장 어머니의 병원비부터 마련해야 했으니까.

다행히 수능 만점,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스무 살의 사법고시 1차 패스라는 타이틀 덕분에 고3 수험생을 둔 부유층들로부터 고액의 과외 제안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과외비로 어머니의 입원비와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던 어느 날, 불현듯 아버지가 찾아왔다.

- 미안하다, 현석아.

눈물까지 흘리며 사과하는 그 모습에 김현석은 그를 용서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이 아닌 앞으로 저지를 행동에 대한 사과였었다는 걸 김현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 학생 아버지가 급하다면서 보증금 오백만 원 다 빼갔어. 다음 주 중으로 채워 넣지 않으면 앞으로 월세를 5만 원 더 받을 테니 그리 알아.

"……."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울컥하는 기분이다.

계약당사자인 자신을 통하지 않고 보증금을 내줬으니 이는 무효라고 아무리 말해도 집주인은 막무가내였다.

자신은 그런 건 모르겠으니, 보증금을 채워 넣든 월세를 더 내든 알아서 하라고 윽박만 질러댔다.

법적인 조치로 보증금에 대한 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하늘이 준비한 시련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 오전 1시 24분 39초. 최애란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병세가 악화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졸지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김현석.

그 와중에도 빚쟁이들은 한 푼이라도 빨리 받아내려고 매일 그를 찾아왔다.

마침 그때 입영통지서가 날아왔고, 김현석에게 군대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그렇게 입대를 하고, 2년 가까이 세상을 등졌다.

군 생활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김현석은 제대하자마자 빚쟁이들을 일일이 찾아가 양해를 구했다.

빚은 꼭 갚을 테니 자신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그렇게 모두의 동의를 구한 김현석은 곧바로 학교에 복학함과 동시에 전처럼 고액 과외 알바를 병행했다.

그 외에도 졸업한 선배들로부터 단기 일자리를 소개받은 그는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을 때, 김현석은 아버지가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여 로스쿨로 진학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해 있을 마지막 사법고시에 전념하던 김현석.

1차 시험은 무난히 합격했고, 2차 시험을 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김현석에게 아직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 그쪽이 김동진 씨 아들이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정문을 나오다 마주친 사람들.

한눈에 봐도 정상적인 일을 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험상궂은 인상과 우람한 덩치.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야비한 인상의 남자는 검정 손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비식거렸다.

사채업자였다.

- 김동진 씨가 우리한테 돈을 좀 빌렸어요. 근데 갚을 능력이 없다네? 그러니 어쩌겠어. 피붙이한테라도 받아내야지, 안 그래요?

이미 절연한 사람이며 자신이 대신 갚을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들에게 그 말이 통할 리 없었다.

그날, 모처로 끌려간 김현석은 하루가 지날 때까지 구타와 협박에 시달렸다.

결국, 그들의 폭거에 굴복한 김현석은 아버지의 사채를 책임진다는 각서에 지장을 찍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작년, 사법고시 2차 시험일 전날 있었던 일이다.

"후우…."

강압적이고 위법한 수단으로 작성된 각서는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고, 법적 증거로 활용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점을 들어 김현석은 자신을 납치, 감금, 폭행한 사채업자 일당을 고소하려 했다.

이를 절친인 강하민이 말렸다.

- 법을 무시하며 사는 놈들이야. 괜히 건드렸다가 벌집 들쑤시는 것밖에 안 된다고. 나중에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그냥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넘겨.

그러면서 빚을 갚는 데 쓰라며 1억 원을 선뜻 자신에게 건넸다.

무척 억울했지만, 강하민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김현석은 그날로 사채를 갚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여건이 될 때, 천천히 돌려줘도 된다는 절친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김현석은 언제나 무거운 납덩이를 몸에 매달고 사는 기분이었다.

일단 내일 면접에 집중하자!

최종합격하기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김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운과 약속한 시각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막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핸드폰을 집어 들려는 순간,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뭐, 뭡니까. 당신들?"

"시끄러워. 좀 닥쳐! 어디 보자, 고시원 명부라."

고시원 총무의 목소리 뒤로 거친 말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김현석의 귀에 무척 낯익었다.

"…설마?"

불현듯 든 불길함을 확인하고자 김현석은 얼른 복도로 나왔다.

"?!"

자신의 예상대로다.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현석도 아는 사람이다.

"아이고. 찾는 수고를 덜어주셨네? 김현석 씨, 오랜만이야. 근 1년만인가?"

작년에 자신에게서 사법고시의 기회와 함께 1억 원의 거금을 가져간 그 사채업자였다.

"…여긴 또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긴. 나 같은 사채업자가 하는 게 뭐겠어. 채무자한테 돈 받으러 온 거지."

작년과 똑같이 덩치가 우람한 남자 셋을 대동하고 온 그는 여전히 야비한 얼굴로 이죽거렸다.

"…그래요? 그럼 하던 일 마저 하시죠. 전 바빠서 이만."

그들을 지나쳐 고시원을 나가려던 김현석을 사채업자가 손을 뻗으며 막아섰다.

"에헤이! 방금 말했잖아. 돈 받으러 왔다고. 우리 김현석 채.무.자 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미 작년에 다 갚았잖아요!"

김현석의 고성에 사채업자는 시끄럽다며 귀를 한번 후비더니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펼쳐 보였다.

"이거나 한번 봐봐. 귀청 떨어지게 소리만 지르지 마시고."

"……."

[본인 김현석은 추후 부친인 김동진이 사채를 쓰고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를 책임지고 변제한다.]

각서라고 쓰인 제목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내용이다.

그리고 제일 아래에 붉은 인주로 지장이 찍혀있는데, 아무리 봐도 자신의 것이었다.

"뭡니까, 이게? 대체 무슨 수작이냐고!"

자신은 이런 데 지장을 찍은 기억이 없다.

"뭐긴. 작년에 김현석 씨가 김동진 씨 빚 1억 대신 갚는다고 했을 때 같이 날인한 거잖아."

"……."

갖은 구타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때의 일이다.

자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각서에까지 억지로 지장을 찍게 했다니!

히죽 웃는 사채업자의 면상을 그대로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채업자는 각서가 에피타이저였다는 듯 메인디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김동진 씨가 우리한테 돈을 빌려 갔다는 차용증이지."

"!!"

그곳엔 김현석의 아버지인 김동진이 사채업자에게서 오천만 원을 빌린다는 내용과 함께 고리의 이자율이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현석은 이를 절대 믿을 수 없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그 사람은 작년에 이미 죽었다고!"

그의 친부는 작년 겨울, 만취한 채 무단으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이어 굴곡이 많던 생을 마감한 지 오래다.

"김동진 씨가 죽었다는 건 또 몰랐네."

사채업자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한번 쩝 다셨다.

그러면서 잘 보라는 듯 차용증의 맨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암튼 여길 한번 잘 보라고. 돈을 빌려 간 날짜가 언제인지."

"……."

김현석은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작년 12월 23일.

차용증에 명시된 날짜는 그보다 훨씬 이른 7월 4일이다.

그리고 이날은 김현석이 강하민의 도움으로 1억 원의 빚을 갚고 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잘 봤지? 설마 이 날짜 이전에 돌아가셨나? 그럼 우리가 귀신한테 돈을 빌려줬다는 소린데 말이야."

사채업자의 말에 함께 온 일행들이 낄낄대며 웃었고, 김현석은 인상을 잔뜩 썼다.

"자, 계산해보자고. 오천만 원 원금에 이자율이 월 10%니까. 어디 보자…, 총 합치면 229,748,000원이군. 김동진 씨 조의금으로 백만 원 아래는 떼주지. 이억이천구백 만원만 갚아."

"거짓말 하지 마…."

"뭐가, 또?"

"당신들 이거 위조한 거지? 난 이런 각서에 동의한 적 없다고! 그리고 빚을 진 날짜가 내가 돈을 갚은 바로 다음 날이라고? 거짓말도 작작 하라고!"

김현석의 악다구니에 사채업자는 인상을 쓰며 주위를 쳐다봤다.

"얘들아."

"네, 형님!"

"아무래도 우리 김현석 채무자님께서 작년에 받은 교육 발이 다 떨어지신 것 같다. 교육장으로 어서 모셔라."

"알겠습니다, 형님!"

우람한 덩치의 사내들이 콧김을 내뿜으며 김현석을 둘러쌌다.

"이거 놔! 놓으라고!"

평소라면 조금만 시끄러워도 강하게 항의했을 고시원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다들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고시원 총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지만, 사채업자의 사나운 시선에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사채업자와 그의 동료들 손에 이끌려 고시원 밖으로 나온 김현석은 입구를 떡하니 막고선 봉고차 한 대와 마주했다.

모든 창문을 짙게 선팅한 것이 마치 납치를 위해 준비된 차량인 것만 같았다.

'안 돼!'

끌려가서 구타를 당하는 건 겁나지 않는다.

다만, 작년처럼 또 검사가 될 기회를 날려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내일이 바로 최종면접일인데!

'이대로 끌려갈 순 없어!'

"여기 사람… 읍!"

소리를 질러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이를 미리 눈치챈 사채업자가 잽싸게 김현석의 입을 막았다.

"얘들아, 뭐하냐? 서두르자!"

"네, 형님!"

봉고차의 옆문이 열리며 시커먼 입을 벌린다.

절망감에 김현석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채업자와 일행들이 그를 봉고차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나타나 앞을 막아섰다.

"넌 또 뭐야?!"

사채업자의 신경질적인 고함에 훼방꾼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현석이 형!"

김현석의 눈에 비친 건 바로 현시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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