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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재벌 참교육-18화 (18/139)

§018화 Saving Kim(2)

어둠이 내려앉고 대신하듯 거리 곳곳에 불빛이 밝혀졌다.

맛집으로 인근에 소문난 돼지족발 전문점의 한쪽 테이블을 차지한 현시운과 김현석.

둘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시운은 비어있는 김현석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흘깃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게, 뭐하러 나섰어요. 참 겁도 없어. 내일 면접 어떡할 겁니까? 그렇게 얼굴에 멍이 들어가지고."

시운의 말처럼 김현석의 왼쪽 광대뼈 부근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시운이 채워준 소주잔을 기울여 반쯤 비웠다.

"괜히 나 때문에 너 다칠까 봐 그랬지. 몸을 던져 도왔으면 고맙다고 하든지, 아님 감동이라도 받든가. 웬 타박이야."

"전혀 쓸데없는 짓이었으니 그렇죠! 제가 괜히 저분들을 고용한 줄 압니까."

"……."

시운의 항변에 김현석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았다.

잔에 남은 술을 입 안으로 마저 털어 넣은 김현석은 슬쩍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

자신들의 테이블 바로 옆 자리에 앉은 평상복 차림의 건장한 남성 두 명.

한 명은 가게 문 쪽을, 다른 한 명은 가게 안의 다른 손님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경계했다.

시운이 고용한 경호원들이다.

식사하라고 시운이 족발과 음료수를 시켜줬는데도 경호원들은 손도 대지 않고 주변만 감시한다.

참으로 프로다운 자세다.

지금 이 구석자리도 경호원 둘이 클라이언트의 안전을 위해 내부 배치를 앞서 확인한 뒤에 지정한 테이블이다.

덕분에 이따금 가게 주인과 손님들의 낯뜨거워지는 시선을 받곤 했다.

자신이 사채업자 일행에게 강제로 끌려가던 그 긴박한 순간에 나타난 시운과 두 경호원.

낯선 두 남성에 한껏 의아해하는 김현석에게 시운은 이렇게 설명했다.

한 달 전, 자신의 집에 강도가 든 사건 때문에 한동안 극도의 불안 증세를 겪었었다고.

집에 머무는 것도 겁이 났고, 그렇다고 밖에 나갔다간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에 당분간 신변 보호를 위해 그들을 고용했다고 했다.

예전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신이 안정될 때까지만이라도.

'극도의 불안 증세? 강박 관념?'

그런 것 치고는 족발을 소주에 곁들여 먹는 시운의 모습이 무척이나 태연스러워 보인다.

'…뭐, 정신적인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물론 시운에게 불안 증세 따윈 전혀 없었다.

오늘 김현석에게 일어났을 불행을 막기 위해 경호원을 임시로 고용한 걸 둘러댄 것뿐이다.

어쨌든 덕분에 사채업자와의 일은 큰 마찰 없이 잘 해결되었다.

정상적인 요금보다 더 값을 치른 덕분에 우수한 경호원을 고용할 수 있었고, 그들은 오늘 인원수가 더 많은 사채업자 일행을 무난히 막아냈다.

뭐, 도중에 그 사실을 몰랐던 김현석이 시운을 돕는다고 나섰다가 한 대 얻어맞기는 했지만 말이다.

"…고맙다. 미안하고."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김현석이 고마움을 표한다.

"벌써 몇 번째입니까. 그 고맙다는 말도 이젠 지겨우니 그만 좀 해요.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니 고역입니다."

시운의 핀잔에 김현석은 작게 웃었다.

첫 만남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시운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평소 모교 후배들과 공적인 자리가 아니고선 따로 만나는 일이 없던 자신이었는데….

의도치 않았던 인연 덕분에 김현석은 또 한 번 닥쳐온 인생의 대위기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듣기 힘들어도 몇 번이고 들어줘. 그게 내 진심이니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의 진심을 충분할 정도로 시운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일이 제 생각대로 잘 풀린 것에 대단히 만족한 시운은 김현석의 말에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그런다고 아까 대신 내준 돈, 그냥 드리는 거 아닙니다. 내일 면접 제대로 보고 검사에 임용돼서 부지런히 갚아요."

사채업자와는 결국 돈으로 해결을 봤다.

마음 같아서는 경찰을 불러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응징하고 싶었지만, 괜히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부류와 원한을 맺을 필요는 없었다.

김현석이 검사가 된다고 해서 그들이 가만히 물러날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고.

돈과 관련되어선 야차와도 같으니까.

사채업자란 족속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았지만, 김현석도 그런 시운의 생각에 끝내 동의했다.

그들이 나중에 보복한다고 해도 시운에게 위기 알림권이 있으니 얼마든지 대비할 수는 있지만, 이 일로 구매 비용 10억 원을 매번 날릴 바에야 그보다 더 적은 돈으로 해결하는 게 나았다.

물론 김현석이 얻어맞은 걸 가지고 협상을 해서 원래의 이억이천구백만 원에서 2억 원으로 가격을 깎았다.

2억 원의 돈.

사실 김현석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냥 줘도 무방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을 김현석이 아님을 시운도 잘 알았다.

게다가 미래에 대통령이 되려면 지금부터 금전 관계는 깔끔해야지.

괜히 청문회에서 상대 진영에게 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그건 당연한 거고. 물에 빠진 걸 구해준 사람에게 내 보따리 어딨느냐고 따질 만큼 파렴치하지는 않아, 난. 근데…, 검사 박봉인 거 너도 잘 알지? 되도록 무이자로 부탁할게."

"무슨 그런 걱정을 합니까. 상환 기간도 길게 잡아줄 테니 형은 얼른 검사가 되기나 해요."

둘은 피식거리며 서로의 잔을 부딪친다.

자신의 활약으로 사채업자와의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김현석은 오늘 일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다.

회귀 전에 보고 들었던 그의 행보로 미루어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열혈 검사로 재직 중일 때는 대부업체와 사채업자에 관련된 사건을 가장 많이 맡았다.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회에 입성한 그는 '제3금융권에서 일어나는 불법 행위에 대한 관리 및 규제 강화'를 입법화하려고까지 했다.

물론 반대하는 정치 세력에 의해 중도에 무산되었지만, 이로 인해 김현석은 국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지고 다음 대선에 후보로 나설 정도로 큰 지지를 받게 된다.

"근데, 시운아?"

"네?"

김현석의 부름에 시운은 잠깐의 상념에서 벗어났다.

가게 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합격을 기원하는 걸 먹자고 하지 않았어?"

"그랬죠."

"족발이 그런 음식이라고?"

어제 통화로 시운이 그렇게 말했을 때, 설마 엿이나 찹쌀떡을 먹자는 건 아닐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족발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아, 모르시는구나. 왜 족발이 합격을 기원하는 음식이냐면요. 이게 중국 당나라 때 이야기인데…."

시운의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김현석은 술잔을 기울였다.

회귀 전과는 달리 시운 덕분에 사채업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김현석은 다음날 검사 임용시험의 최종면접을 무사히 치렀다.

그리고 3주 뒤, 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 * *

장기우는 자신의 본부장 집무실에서 조금 전 김학수가 들고 온 결재판을 옆으로 넘겼다.

"……."

세 장 분량의 보고서.

한 달 전쯤, 자신이 지시한 현시운에 대한 내용이었다.

몇 분을 소요해 보고서를 읽고 또 읽은 장기우는 미간을 좁히며 결재판을 덮었다.

"김 비서."

"네, 본부장님."

장기우는 펜꽂이대에 있는 펜대를 뽑아 들고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20대 젊은 남성이 지금 시세 18억 원의 강남 소재 아파트에 살며 7억 원짜리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어째서 이게 가능하다고 봅니까?"

그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김학수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둘 중 하나라고 봅니다."

"어떤?"

"첫 번째는 부모에게 상당한 유산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돈이 있는데도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공장을 다녔다….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죠?"

"…네, 물론입니다."

"그럼 다른 하나를 말해봐요."

지난번 일의 실패로 전과 비교해 자신을 대하는 장기우의 태도가 쌀쌀맞았다.

김학수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복권에 당첨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복권이라…."

이번에는 김학수의 추론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장기우는 딴지를 걸지 않았다.

몇 번 펜대로 책상을 두드린 장기우는 몹시 궁금하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요즘 복권 당첨금액이 얼마죠? 보고서에 추정 재산으로 50억 원이 적혀 있던데…."

"국내 유통되는 복권 중 가장 당첨금이 높은 건 로또입니다. 평균 15~20억 원 사이로 당첨금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학수의 말에 장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현시운의 보유 재산을 50억 원으로 추정한 이유는요?"

"보고서에 나와 있듯이 최근 그가 만나는 인물 중에 강하민이라는 투자분석가가 있습니다. 수호증권에서 최연소 팀장으로 있을 만큼 투자 실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음…, 그래서요?"

서문이 길어지는 듯해 장기우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정말 그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그 시기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둔 3월 초로 추정합니다. 그 전후의 로또 당첨금은 20억 원가량입니다. 바로 고시원을 나오지 않은 거로 봐선…."

당첨금을 모두 강하민을 통해 투자했을 거라며 김학수는 말을 이었다.

현시운이 고시원을 나오는 반년 후 10월까지의 강하민의 팀이 기록한 수익률을 근거로 재산을 추정했다는 김학수의 설명이 뒤따랐다.

"정확한 재산 내역은 금감원 라인을 통하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진행해볼까요?"

여느 재벌이 그렇듯 장강 그룹도 검찰, 경찰,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의 기관에 라인을 형성해놓았다.

이를 통하면 김학수의 말처럼 현시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장기우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직 재량권은 없지만, 비서실장인 문지환을 통하면 어렵지 않게 금융감독원의 라인과 닿을 수 있다.

대신 그룹 총수인 장철구 회장에게도 이 같은 사실이 보고되겠지.

자신의 작은 여흥 거리 때문에 친부의 관심까지 끌고 싶지는 않았다.

현시운에게….

그걸 감수할 만큼의 가치는 없으니까.

"일단 현시운에 대한 조사는 이 정도로만 하고…. 지난번 말했던 진성전자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재계 순위 수위권을 놓고 경쟁하는 그룹답게 장강에는 자동차, 조선, 건설, 제철 등 수많은 계열사가 존재하지만,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전자.

라이벌 회사인 삼정 그룹이 삼정전자로 얼마나 큰 도약을 했는지 익히 공부해서 알고있는 장기우는 유학 시절 내내 장강에도 전자 회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래 산업의 핵심이기도 하니까.

귀국 후 살펴본 국내 여러 전자 관련 업체 중 장기우의 관심을 끈 게 바로 진성전자였다.

"삼정전자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연장은 없다고 통보가 온 뒤, 자체적으로 해외 판로를 개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그걸 이루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잘 됐군요. 우리 입장에선."

"네, 맞습니다. 올해 12월로 삼정전자 납품이 중단되면 5개월 이내에 자금 압박을 받게 될 거란 계산입니다."

김학수의 보고에 장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5월 이후라…. 좋습니다. 진성전자 쪽은 주기적으로 계속 확인을 하세요."

"네, 본부장님."

"그리고…."

"?"

장기우는 펜대로 책상을 다시 두드리며 김학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요즘 장강유통 장세연 부사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지난주에 건설 임원우 사장과 제철 김성국 부사장을 만났다죠?"

둘 다 예전 장철구 회장의 장남을 지지했던 임원들이다.

대세가 이미 자신 쪽으로 기울었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의 욕심에 장기우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 셋을 잘 주시하세요. 어떤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보인다면 즉각 보고하고요."

"네, 그러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럼 나가서 일 보세요."

김학수를 내보낸 장기우는 책상 위에 놓인 결재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펼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덮어버렸다.

"현시운…."

녀석에 대한 다음 응징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국내에 있는 이상, 아니 설사 해외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을 테니까.

그보다는 그룹 내부의 일이 먼저다.

장기우는 결재판을 책상 맨 아래쪽 서랍에 넣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집무실을 나서려던 그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펜대를 보고는 다시 펜꽂이대에 꽂았다.

오늘은 펜대가 무사히 살아남았다.

* * *

"뭐어?!"

12월 초.

오랜만에 현시운과 만난 강하민은 방금 들은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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