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9화 (19/139)

§019화 미래투자신탁(1)

매우 놀란 얼굴의 강하민.

그와 달리 현시운은 자신 앞에 놓인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태연스레 마셨다.

강하민은 두 눈을 몇 번 끔뻑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야?"

"뭐가요?"

"방금 네가 한 말들…."

첫 만남 이후로도 둘을 이어준 김현석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덕분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어느새 김현석처럼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강하민의 물음에 시운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더 투자한다는 거요? 아니면 추가로 넣을 투자금이 500억 원이라는 거?"

"…사실이구나."

재차 확인을 받은 강하민은 맥이 탁 풀렸다.

이번 만남은 투자회사 설립과 관련해 최종 의견을 조정하려고 만든 자리다.

강하민은 오늘 한 달 반 동안 자신이 이뤄낸 투자 성과를 알려줘서 시운을 깜짝 놀라게 해줄 심산이었다.

무려 50% 이상의 수익으로 투자금 300억을 456억으로 불렸으니 말이다.

분명 그럴 계획이었는데….

되레 강하민이 더 놀랄 일이 생겨버렸다.

"…50억도 안되는 돈으로 600억 이상을 벌었다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강하민은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시운은 작게 웃으며 답했다.

"운이 좋았죠, 뭐."

그 말에 강하민은 무슨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시운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잖아. 아무리 미수 거래를 했다고 해도 한 달 만에 10배도 넘는 수익을…."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걸 해낸 게 고작 스물넷의, 투자 관련 자격증 하나 없는 청년이라니.

앳된 얼굴이라 누가 보면 스무 살인 줄 알 정도다.

'난 저 나이 때 뭘 했나….'

어느덧 천억 원 대의 자산가로 거듭난 시운을 보며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하는 강하민이다.

동시에 의기소침해졌다.

"너 혼자서도 그렇게 잘 해내는데…. 굳이 내가 필요할까?"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애꿎은 커피만 빨대로 휘젓는 강하민의 모습에 시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위로했다.

"왜 그래요, 형답지 않게. 업계에서 투자의 귀재로 불리던 분께서. 그 짧은 시간에 50% 이상 수익을 낸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같은 기간에 소액을 투자하여 그 정도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경우야 비일비재하지만, 300억이라는 거액을 안정적으로 운용하여 50% 이상의 수익을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규모의 경제라고 하던가?

생산량이 늘어나면 평균비용이 줄어드는 현상.

그처럼 투자금이 올라갈수록 수익률 역시 줄어드는 게 투자시장의 상식이다.

부동산 시장과 같이 정부의 개발 계획과 방침에 따라 값이 수 배에서 수십 배로 들쑥날쑥한 경우는 있지만, 단연 투자시장의 꽃인 주식 시장은 상식선에서 움직인다.

백만 원으로 백만 원을 버는 건 쉬울 수도 있지만, 같은 기간에 백억으로 백억을 벌어들이는 건 어렵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재벌들의 재산이 매년 몇 배씩 증가했겠지.

그런 관점에서 시운은 강하민의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 중이다.

그 덕분에 자신이 한 달 전에 유레카의 정식 이용자가 될 수 있었다.

10억을 647억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강하민의 조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까지 알 리 없는 강하민은 시운을 불쾌하다는 듯 노려봤다.

"승자의 여유냐? 아님, 패자에 대한 격조 있는 조롱…. 뭐, 그런 거야? 전혀 위로가 안 돼."

"하하…."

냉철한 사고력과 빠른 판단력의 소유자라고 불릴, 미래 '대한민국의 워런 버핏'답지 않게 가끔 저렇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스물아홉 살의 투정이라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신연령 마흔넷의 자신이 보듬어줘야지.

강하민이 내린 평가와는 달리 시운은 자신이 한참 부족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유레카의 정보가 없다면, 아무리 미래의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강하민 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자신은 없었으니까.

'언제까지 유레카만 믿고 있을 순 없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또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강하민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익힐 계획이다.

유레카가 없더라도 그 못지않게 시장을 분석하는 안목과 투자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쭈욱-

차디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열기를 한층 식힌 강하민은 냉철해진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500억 원의 투자금이 추가 투입된다?

곧 만들어질 투자회사의 자본금만 천억 원에 육박했다.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무척이나 좋은 상황이지.

'그럼 기존의 계획대로 갈 필요는 없겠어.'

그렇게 결론을 내린 강하민은 서류 가방에서 한 부의 서류를 꺼내 시운에게 건넸다.

"뭐예요, 이게?"

"한번 봐봐."

강하민이 준 서류의 첫 장에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건물 사진이 큼지막하게 찍혀있었다.

뒷장에는 건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지상 5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연면적은 750평.

1층은 카페와 편의점이 들어서 있으며, 2층부터 4층까지의 사무실도 모두 임대가 되어있다는 것으로 내용이 끝나있다.

서류에 담기지 않은 정보를 강하민이 부연 설명했다.

"회사 사무실로 임대하려고 알아본 곳 중 하나야. 5층이 통으로 비었고, 지하가 모두 주차장이라 그만큼 편리하지. 입지 조건도 나쁘지 않아서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은 곳이었어."

"그런데요?"

"주인이 임대가 아닌 매매를 원했어. 이참에 건물을 처분하고 자식들이 있는 미국으로 아예 건너갈 생각이더라고."

"흠…."

"현재 입주한 임차인들 보증금 7억을 떠안는 조건으로 60억. 급매로 나와서 그렇지, 현재 시세만 72억 원은 하는 곳이니 사놓으면 손해 볼 일은 없어. 앞으로도 가격은 오를 전망이고."

조금이라도 투자 운용 자금을 늘릴 생각이었던 강하민은 매매라는 조건 때문에 일찌감치 후보지에서 탈락시켰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네 덕분에 자본금이 기존의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않겠어? 언젠가는 자가 건물의 사옥도 필요할 테고. 미리 앞당기는 셈 치지, 뭐. 거기 한 달 임대료 수익만 6천만 원이야."

강하민의 설득에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말했다.

"근데 왜 신사동입니까? 그것도 가로수길. 대한민국의 월스트리트는 여의도잖아요."

강하민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거기도 알아보긴 했는데, 신사동 건물보단 메리트가 적어. 게다가 가로수길. 여의도 증권가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지."

그게 무슨 상관인지 시운이 의아함을 표하자, 강하민은 건물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유명하다는 말이잖아. 그만큼 나중에 고객들을 유치할 때 광고 효과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 신사동 가로수길에 회사 소유의 사옥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그래요?"

어차피 회사 설립과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강하민에게 믿고 맡긴 만큼 시운도 이견은 없었다.

"형 뜻대로 하세요."

"좋았어!"

그렇게 투자회사가 들어설 곳이 정해졌다.

그 밖에 소소한 사항들을 조율한 둘은 점심을 먹기 위해 카페를 나섰다.

내년 1월 2일에 정식으로 창립할 투자회사의 사명은 시운의 의향을 반영해서 정해졌다.

(주)미래투자신탁.

앞으로 국내 투자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이름이었다.

* * *

강하민의 빠른 결정과 행동력으로 법인 설립과 사업자등록 등이 완료되었고, 신사동 가로수길 소재의 5층 건물은 미래 빌딩으로 이름을 바꾸어 투자회사의 소유가 되었다.

아는 지인을 통해 사무실로 쓰일 5층의 인테리어를 서둘러 마친 강하민은 경영지원팀을 이끌 팀장도 발 빠르게 채용했다.

창립일까지 남은 시간은 2주가량.

그 사이 관공서 대응 업무 및 전화, 인터넷, 복사기 등 사무에 관련된 업체와의 계약을 모두 마쳐야 했기에 경영지원팀장으로 채용된 나영현 차장은 12월 중순부터 출근하여 일을 하나씩 쳐내고 있다.

세무법인 출신으로 각종 세무 업무에 정통했으며, 일머리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에 그를 고용한 강하민은 만족스러워했다.

현시운은 자신이 전담하게 될 투자운용 2팀의 사무 공간을 찾았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전화, 복합기 등 집기 비품들이 전부 갖추어져 있었다.

이제 일할 사람만 들어오면 된다.

시운은 창가에 자리한 자신의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말없이 책상 겉면을 쓸어내리던 그는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명함 통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 한 장의 명함을 꺼내든 시운은 그걸 들여다봤다.

[(주)미래투자신탁]

[투자운용 2팀/팀장]

[부장 현시운]

"……."

강하민이 미리 준비한 모양이다.

왠지 감회가 남달랐다.

"부장 현시운…."

회귀 전에는 이렇다 할 회사생활을 못 해봤다.

공장에서 3개월 만에 쫓겨났고, 그 뒤론 줄곧 몸 쓰는 일만 했으니까.

그런 자신이 평사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장의 직함을 달았다.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기분이다.

똑똑-

"음?"

파티션을 두드리는 소리에 뭔가 싶어 시운은 고개를 들었다.

강하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오전 내내 나영현 차장과 할 일들이 많다더니 그새 다 처리한 모양이다.

시운은 그의 물음에 답하듯 명함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대표라는 호칭에 강하민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코끝을 찡그렸다.

"대표는 무슨. 아직 개업도 안 했어. 명함 보고 있었던 거야?"

"네. 할 일이 많다더니 벌써 다 끝낸 겁니까?"

시운의 말에 강하민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뽑은 모양이다. 내심 세무법인 출신이라 일반 기업체 업무는 서툴 거라 여겼는데 예상외로 잘해, 나영현 차장이."

"다행이네요."

강하민은 투자운용 2팀의 사무 공간을 한번 둘러보더니 물었다.

"어때? 마음에는 들어? 미흡하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주저 없이 말해. 일하는 사람이 편해야 능률도 오르는 법이니까."

"그런 것 없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만족해하는 시운과는 달리 강하민은 못내 불만인 표정이다.

"굳이 직급을 부장으로 해야만 했어?"

"왜요, 평사원의 정점이 부장 아닙니까?"

시운의 대답에 강하민은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거야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런 거지. 넌 이 미래투자신탁의 실소유주잖아. 전무나 상무 등, 임원 자리도 널렸다고."

강하민은 사내이사 자리를 주려 했지만, 이를 시운이 거부했다.

"이제 겨우 스물넷인데 임원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봅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한동안은 강하민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다.

사내이사는 법인 등기부등본만 떼어봐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로 벌써 자신을 장기우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후년에 법인 결산을 마치고 결산자료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올라가면 녀석도 자연히 미래투자신탁이 자신의 것이란 걸 알게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려면 아직 1년 이상이나 남았다.

그 동안 시운은 미래투자신탁을 장기우가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키워낼 생각이다.

자신도 있었다.

물론 그 전에 녀석에게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겠지만, 유레카가 있는 이상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강하민은 시운의 변명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스물넷의 부장이 더 이상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럴지도.

원래는 과장 정도의 직급으로 만족하려 했지만, 강하민이 결사반대했다.

이 회사의 실소유주이니만큼 다른 직원들보다는 직급이 높아야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나영현 차장은 경영지원팀장인 만큼 절로 알게될 수밖에 없어 미리 알렸지만, 다른 직원들은 모르는 상태다.

괜히 나이도 어린데 직급까지 낮아버리면 다른 직원들이 실수할 수도 있다는 말에 시운도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시운은 강하민의 핀잔에도 딱히 대꾸 없이 마주 웃었다.

"암튼. 다른 게 아니라 네 팀원 뽑는 것 때문에 왔어."

강하민을 따라 수호증권을 관두고 따라나선 이들로 이미 투자운용 1팀이 구성되었다.

수호증권 재직 당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상관임에도 성심성의껏 보필해준 장한진 차장을 부장으로 채용했으며, 그 아래로 김문성 과장과 이철민 대리를 포진시켰다.

생각 같아선 김문성과 이철민 중 한 명을 시운의 2팀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스물넷의 아무 경력도 없는 상관이란 말에 둘은 학을 뗐다.

자신을 믿고 1위 증권사인 수호증권을 나온 둘의 의사를 무시할 수도 없었던 강하민은 결국 시운의 2팀 팀원을 채용공고를 통해 뽑기로 결정했다.

"나영현 차장이 얼마 전에 일해넷으로 구인광고를 올렸거든. 아마 이력서가 여럿 들어와 있을 거야. 이게 우리 회사 계정이니까 들어가서 한번 봐봐. 너랑 함께 일할 팀원이니 네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추려서 면접 보자."

강하민에게 인선을 모두 맡길까도 했지만, 자신과 일할 팀원이라는 그의 말에 시운은 생각을 달리 하였다.

쪽지를 받아든 시운은 고맙다고 말한 뒤, 강하민을 배웅했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시킨 그는 일해넷의 계정으로 들어가 쌓여있는 이력서를 들췄다.

기회의 평등을 표방하는 구인 사이트답게 지원자의 사진은 따로 등재되지 않았다.

시운은 수십 통의 이력서를 보며 1차 서류 합격자를 뽑아냈다.

경력 지원자는 경력 내용을 위주로, 신입 지원자는 출신 학과와 자기소개서를 중점적으로 본 그는 1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면접 볼 인원을 다 추려냈다.

"이 정도 숫자면 되겠지?"

이제 회사를 시작하는 단계라 강하민과 시운이 정한 TO는 두 명이었다.

그 세 배수인 여섯 명을 뽑은 시운은 1차 합격자 리스트를 나영현 차장에게 전달했고, 그는 면접일을 정해 면접자들과 면접관으로 나설 강하민, 시운에게 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망의 면접일.

첫 번째 면접자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를 본 시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서 나와?'

회귀한 시운의 입장에선 철 지난 옛 가요의 가사 한 자락이 절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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