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29화 (29/139)

§029화 장 & 강(2)

"장만영 회장과 우리 할아버지의 성을 따서 장강이라고 사명을 정했던 거야."

강하민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장강건설은 전후 복구 시기에 맞춰 눈부시게 성장했다.

장만영과 강지벽 둘 다 사업수완이 뛰어나 관급 공사에서부터 민간 아파트 건설 수주까지 따 내와 장강건설의 일거리는 연일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1961년 5월 16일.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제2공화국이 무너졌다.

제3공화국이 출범하던 초창기.

부정축재자에 대한 심판이 행해졌는데, 강하민의 할아버지인 강지벽이 이에 연루되었다.

"장만영이 할아버지를 군부에 팔아넘겼지."

짓씹듯 내뱉는 강하민의 말에 진득한 분노가 서렸다.

"당시의 군부 실세에게 돈을 얼마나 많이 먹였는지 그때 이후로 정부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공사에 장강건설의 이름이 항상 올랐어. 왜, 지금의 J&G조선과 장강화학도 경부고속도로 깐 대금으로 지은 거잖아."

반면, 부정축재처리법으로 7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강지벽은 당장 먹고살 길마저 막혀버렸다.

그는 과거 자신의 지위를 되찾고자 친구를 찾아갔지만, 매몰찬 대접만 받았다.

이미 건설, 조선, 화학을 묶어 그룹화하려던 장만영에게 옛 친구는 방해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친구를 한번 팔아넘긴 이력이 있는 장만영에게 강지벽이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존재가 됐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회사에서의 입지와 실권을 모두 잃은 강지벽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과거 한때나마 함께 장강건설을 키운 공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장만영은 강지벽에게 미화 1만 달러를 건넸다.

한화가 아닌 미화를 건넨 의도는 명백했다.

이 땅에서 사업할 생각 말고 한국을 떠나라.

"……."

강하민이 재미교포라는 건 예전에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계속 학교에 다녔다면 아이비리그의 여덟 명문대 중 한 곳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성적이 좋았던 그다.

굳이, 왜 한국행을 택했을까 전부터 의아했었는데….

이어지는 강하민의 이야기로 시운은 오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이었어."

과거를 회상하듯 강하민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들어와 봤지. 그리고 알게 됐어. 예전에 할아버지를 배신한 친구의 가문이 이 땅에서 어떤 신분으로 살고 있는지를."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났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강하민의 할아버지가 미국에 이민했던 때가 1969년.

인종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백인, 흑인 다음으로 황인종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에 막혀 고국에서와는 달리 강지벽의 사업수완이 미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뭐든 하려고 해봐도 실패하거나 지지부진하기 일쑤였다.

또한 어렸던 강하민의 아버지는 낯선 이국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왕따와 폭행을 당하길 여러 번.

그 때문일까.

강하민이 커오면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패배자와도 같았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어깨도 축 늘어뜨린 채 땅만 보고 다니는 자신의 아버지.

'쯧!'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강하민은 술잔을 들어 내용물을 단번에 삼켰다.

어릴 적, 자신이 옆집에 사는 백인의 또래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들어왔던 적이 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노란 원숭이라고 놀리기에 하얀 멍청이라고 대꾸한 게 다였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사실을 알렸을 때, 아버지는 아무런 대처도 없이 그 일을 그냥 넘겨버렸다.

그때 받았던 충격은 어린 강하민에게 확고한 목표 의식을 심었다.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평소 강하민이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기인했다.

괜히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니까.

18살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홀로 한국행을 택했던 데에는 무기력한 아버지를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컸었다.

그런 아버지라도 아버지니까.

그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던 강하민은 그렇게 태평양을 건넜다.

그런데 고국에 와서 본 배신자의 가문은 강하민의 집과는 정반대로 번성하고 있었다.

현대판 귀족인 재벌로서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면서.

장강 그룹 오너 가의 그 모습은 18살 강하민의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지폈다.

"왜 장강이라는 사명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한때 동고동락했던 친구에 대한 배려와 존중일 리는 없다.

그랬다면 그토록 쉽게 배신하지도 않았겠지.

할아버지에 대한 장만영의 죄책감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강하민은 그런 장씨 가문의 위선에 더욱더 치를 떨었다.

빈 술잔에 술을 따른 강하민은 시운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하더라니. 공통되는 적이 있어서 그랬나 봐. 너와 난 만날 운명이었다는 거지."

할아버지 대부터 장씨 집안과 원수가 되었던 강하민.

장기우 때문에 이전 삶이 파탄 나 봤었던 현시운.

시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내렸다.

'회귀 전에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자신과 만남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강하민이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장강 오너 가와의 악연의 고리는 변하지 않았을 거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돈을 벌었나 했더니….

장강 그룹에 복수하기 위해서였나?

그런 것 치곤 뚜렷한 결과가 없었다.

아마도 실패했거나 시도조차 못해 본 거겠지.

회귀 전, 강하민의 추정 재산은 8조 원가량.

국내 수위를 다투는 재벌 가문을 어찌해보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한 금액이다.

"그래서요?"

"응?"

시운의 반문에 강하민은 고개를 들었다.

"형이 원하는 건 뭡니까? 할아버지의 복수?"

"…뭐, 굳이 말하자면."

살짝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정당한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 거지."

"그 말은?"

"응. 장강 그룹을 뺏는 게 내 오랜 꿈이야."

강하민의 결의에 찬 단언에 시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순히 능력이 뛰어난 투자가를 영입한 줄로만 알았는데.

자신의 계획에 큰 힘이 되어줄 조력자를 얻은 거였다.

"그 꿈 제가 도와드리죠."

강하민도 마주 웃었다.

"사양하지 않을게."

둘은 서로의 잔을 세게 부딪쳤다.

* * *

♩~ ♪♬~

"으음…."

머리맡에서 울리는 벨 소리에 장세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윽!"

어제 마신 술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싼 술이라 웬만하면 뒤끝이 좋은 편인데….

그녀가 어젯밤 들이켠 술은 웬만한 수준을 넘어선 양이었다.

♩~ ♩♬~ ♪~

계속 울리는 벨 소리에 장세연은 오만상을 써가며 이불 밖으로 손을 뻗었다.

"?"

[김신영 비서]

장세연의 전속 비서다.

액정에 뜬 발신자 정보에 장세연은 의아해했다.

"오늘 출근 안 한다고 어제 분명 말했었는데…."

자신과 함께 한 지 벌써 4년이나 되었다.

그만큼 장세연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그녀인데, 말을 못 알아들었거나 무시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연락을 해야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말인데….

"……."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치 5년 전의 일이 절로 떠오를 만큼.

장세연은 굳은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 장세연 부사장님.

자신을 부르는 김신영 비서의 목소리가 평소와 비교해 매우 낮게 가라앉았다.

"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말해보세요."

"조금 전, 사모님께서…. 부사장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상은 맞았다.

툭-

- 부사장님? 부사장님!

핸드폰을 떨어뜨린 장세연은 한동안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 * *

김신영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함께 상복을 챙겨 들고 장세연의 오피스텔에 도착한 것은 통화가 끝난 지 40여분 후의 일이었다.

그동안 울기라도 했는지 장세연의 눈은 많이 부어 있었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에 맞는 메이크업을 받는 그녀를 보며 김신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재벌이라고 다 좋기만 한 건 아니구나.'

장세연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김신영은 초췌한 얼굴의 그녀를 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돈이 아무리 많다지만, 장철구 회장의 집안은 그야말로 콩가루다.

유력했던 그룹 후계자들이 동시에 죽자마자 아버지란 사람은 밖에서 낳은 자식을 데려와 호적에 정식으로 올렸고, 지금은 회사의 중임까지 맡겼다.

비록 몇 년간 병원 신세를 지며 온전한 정신일 때가 드물었지만, 여태껏 장세연을 지탱해준 이가 바로 그녀의 어머니다.

그런 분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세연이 느낄 상실감이 어떨지 김신영으로선 상상도 가지 않았다.

김신영은 맨날 지지고 볶는 자신의 집이 되레 재벌가보다 낫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김 비서."

"네, 넷!"

장세연의 부름에 상념에 잠겼던 김신영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장례식장이 어디라고 했죠?"

"아, 네. 서울 장강병원 장례식장입니다."

"…여기서 많이 멀진 않군요."

"네…."

화장을 끝내고 장세연이 나갈 채비를 마칠 즈음, 김신영이 한발 앞서서 문을 열려고 입구로 향했다.

끼익-

문고리를 돌려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건장한 사내들이 줄줄이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문 입구를 막고 섰다.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들에 김신영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뭐, 뭐죠?!"

놀란 마음을 소리쳐 물어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닫은 채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 사이, 장세연이 김신영의 뒤로 다가왔다.

사내들의 정장 왼쪽 가슴에 달린 엠블럼으로 장세연은 그들이 장강 그룹 산하 J&G 시큐리티에 소속된 경호원임을 알아챘다.

그들을 향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사내들 사이를 헤치며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장세연과 김신영 둘 다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문지환 비서실장님?"

김신영의 확인에 눈길을 잠깐 줬던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장세연을 바라봤다.

장철구 회장을 가까이서 수행하는 그가 갑자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이게 무슨 짓이죠?"

차갑기 그지없는 장세연의 물음에 문지환은 고개를 먼저 숙였다.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장세연 부사장님."

"뭐 하는 짓이냐니까!"

그녀의 고성에 문지환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지시사항입니다."

"그게 무슨…."

"앞으로 3일간 오피스텔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응당 자식인 자신이 빈소를 지키는 게 마땅하다.

게다가 두 오빠가 먼저 떠나버려 남은 자식이라고는 자신 하나뿐이….

"……."

설마?

아니, 아닐 거야!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건 정말….

"지금 누가 빈소를 지키고 있죠?"

"……."

장세연의 물음에 문지환은 머뭇대기만 할 뿐, 선뜻 대답을 못 했다.

"말해봐요. 누가 지금 상주로 있냐고요!"

"…장기우 본부장님께서."

"뭐?"

"장기우 본부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장세연의 외마디 외침이 공간을 울렸다.

자신의 어머니다.

근데 상주 자리에 장기우, 그 자식이 서?

이 무슨 고약한 말장난이란 말인가!

"비켜요. 비키라고!"

문지환의 옆을 지나간 장세연을 경호원들이 막고 섰다.

힘으로 밀쳐보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들이 쌓은 굳건한 방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장세연의 발악과도 같은 몸부림을 지켜보며 문지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장철구 회장의 전언을 마저 전했다.

"장례식장에서의 불상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대로 장세연을 보낸다면 십중십 장기우와 사달이 날 게 뻔하다.

그 모습을 장례식장을 찾은 기자들이 서둘러 기사로 내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연신 오를 것도 자명하고.

"장 부사장님께선 모친을 여읜 충격에 나흘 동안 몸져누운 거로 매스컴에 보도될 겁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장세연에게 들릴 리 없었다.

"비키라고. 비켜어어! 으흑-"

장세연은 경호원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 굳이 그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문지환은 이곳에 오기 전에 나눈 장철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장세연 부사장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입니다.

- …알지. 나도 잘 알아.

- 근데 왜….

- 장 본부장에 대한 그룹 내 소문이 어떻지?

- …네, 그야.

- 첩의 자식, 혼외자, 서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테지.

- …….

- 이참에 장 본부장의 입지를 단단히 세워야만 해. 그래야 나중에 그룹을 이어받아도 딴소리가 덜한 법이야.

문지환은 장철구의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오열하는 장세연을 바라봤다.

'회장님. 후계자는 얻었을지 몰라도 오늘 자식을 또 하나 잃으셨습니다.'

동경하던 로열패밀리의 실상에 문지환은 씁쓸함만 맛봤다.

"흑- 흐윽!"

두텁게 가로막힌 벽에 주저앉은 장세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와중에 그녀의 두 눈에 독기 가득한 빛이 차츰 차오르는 걸 그곳에 있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장철구…! 장기우!!'

어머니의 마지막 배웅도 할 수 없게 만든 자들.

그녀는 진심으로 둘을 저주했고, 복수를 다짐했다.

장강 그룹 내부에 독을 품은 꽃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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