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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재벌 참교육-34화 (34/139)

§034화 Join Us(2)

'디오니소스'를 나와 주차장에 도착한 강하민은 미리 부른 대리기사에게 차 열쇠를 건네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 문을 닫음과 동시에 핸드폰이 요란히 울려댔다.

모르는 번호.

이에 강하민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네, 장세연 부사장님."

- …당신 뭐야?

예상대로 전화를 건 사람은 장세연이었다.

자신은 미끼를 던졌고, 그녀는 그것을 덥석 물었다.

"아까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저는 작은 투자회사를 하나 운영하는 강하민이…."

- 이게 무슨 짓이야. 장철구 회장이 시켰어? 날 한번 떠보라고? 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잔뜩 흥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터져 나왔다.

강하민은 장세연이 진정하기를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호흡을 가라앉힌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 말해. 명함 뒤에 적혀있는 게 뭘 뜻하는 건지.

"궁금하시면, 내일 오전 10시에 명함에 적힌 회사 주소로 찾아오십시오. 거기서 말씀드리죠."

- …허튼수작이라도 부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물론입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뚝-

그렇게 장세연과의 통화는 끊겼다.

통화 내용이 운전석까지 들렸는지 대리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강하민을 힐끔 쳐다봤다.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시트에 몸을 뉘었다.

'포크레인 흥신소…. 꽤 실력이 좋은걸?'

엉망인 작명 센스와는 달리 말이다.

형 대런을 따라 하와이에서 뉴욕까지 날아간 강하민은 12년 만에 아버지와 재회를 했다.

그간 쌓였던 그리움과 미안함을 사흘간에 거쳐 조금씩 풀어냈다.

많은 대화와 서로에 대한 눈물의 사과까지 나누면서.

그 뒤, 강하민은 곧바로 뉴욕에 투자법인 '스피어'를 설립할 준비에 들어갔다.

대런과 함께 사무실을 알아보고, 손발 맞춰 움직여줄 직원들도 모집했다.

그러던 중, 예전 시운에게 소개받았던 포크레인 흥신소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의뢰했던 조사의 결과 보고서였다.

장철구 회장의 부인인 이진희 여사의 장례 이후 그룹 내의 분위기와 당시 장세연은 정말로 몸져누워 장례식에 참석을 못 했는지에 대한.

분명 쉬운 의뢰가 아니었을 텐데도 조사한 내용은 제법 알찼다.

이진희 여사의 사망일부터 시간순으로 객관적인 사실이 나열되었고, 장례식 전후로 달라진 장세연의 행동과 그룹 내 주요 움직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를 근거로 하여 조사자가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였다.

[…등의 사실들로 미루어봤을 때 이진희 여사 장례식 당시 장세연의 거동은 제한되었을 거로 추측되며, 현재 장철구 회장, 장기우 본부장과의 관계도 예전보다 더 나빠진 거로 사료됨.]

강하민 역시 자료를 보곤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섣부른 판단은 앞으로의 일을 크게 그르칠 수도 있는 법이다.

강하민은 보다 확신을 얻기 위해 뉴욕의 이름난 정신심리분석 전문가 다섯 명을 찾아가 흥신소에서 조사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장세연의 심리상태를 알아봤다.

비싼 상담료를 지불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게도 다섯 명 다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강하민은 조금 전 장세연과의 통화로 그들의 결론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창밖을 바라보는 강하민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 * *

오전 9시 58분.

미래투자신탁 대표이사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네. 강하민입니다."

- 대표님, 지금 사무실 밖에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미리 약속되어 있으시다고….

그 말에 강하민의 입가로 웃음이 걸렸다.

"여자분이신가요?"

- 네, 그렇습니다. 장세연이라는 분입니다.

"제 방으로 모시고 와줘요."

- 네, 대표님.

잠시 기다리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강하민의 허락에 경영지원팀 여직원이 문을 열고 장세연을 안으로 안내했다.

"……."

차가운 시선으로 강하민을 노려보는 장세연.

강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장세연 부사장님. 여기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여직원의 존재를 의식한 탓인지 어제 전화로 얘기했을 때처럼 저돌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저…, 차는 뭐로 준비해드릴까요?"

여직원의 물음에 강하민은 손을 뻗어 장세연에게 무언으로 의향을 물었다.

"괜찮아요, 전."

강하민을 대할 때와는 달리 여직원에게 살짝 웃으며 사양의 뜻을 내비치는 장세연이다.

"차는 됐습니다. 그만 나가서 일 보세요."

"네, 대표님."

여직원이 방을 나가자, 좀 전보다 더 냉랭한 시선이 강하민을 향했다.

강하민은 쓰게 웃으며 응접용 소파를 가리켰다.

"할 말이 많으신 건 압니다. 일단은 앉아서 얘기하시죠."

"……."

장세연은 대답 없이 소파로 성큼 걸어가 앉았다.

강하민 역시 맞은편으로 가서 그녀와 마주 보고 앉으려는데….

탁!

"음?"

장세연은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강하민의 눈앞에 한 장의 명함이 놓였다.

자신이 어제 '디오니소스'에서 장세연에게 건넨 그 명함이다.

뒷면이 위로 향한 명함에는 검은 글씨로 하나의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함께 장강을 박살 내시죠.]

어젯밤 장세연을 자극해 전화를 걸게 만든 문구였다.

"설명해봐요."

장세연은 차디찬 얼굴로 강하민을 똑바로 주시했다.

강하민은 작게 웃으며 명함을 집어 들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의 장강 그룹을 해체시킬 생각입니다. 그 일에 장세연 부사장님도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충분히 그러고 싶어 하실 것 같습니다만."

"하!"

기가 찬다는 듯 장세연은 웃었다.

"해체를 해요? 장강을? 누가 말이죠?"

"그야 물론 저희가."

장세연은 숫제 미친놈 보듯 강하민을 바라봤다.

"현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인 장강 그룹을 자산 규모 5천억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한낱 투자회사가 어찌해보시겠다? 장강 그룹의 시가총액이 얼마인 줄은 알고 하는 말인가요?"

말하는 그녀의 입꼬리에 웃음이 가득 담겼다.

비웃음이.

"2018년 말 기준으로 425조 원이더군요."

"그런데도 박살 내시겠다?"

"그렇습니다. 사실 시간만 좀 걸릴 뿐이지, 지금으로서도 가능은 합니다. 그러나 장세연 부사장님이 도와주신다면 시간도 앞당겨지고 좀 더 수월해지겠죠."

"……."

자신 있다는 투로 대답하는 강하민을 한동안 노려보던 장세연은 몸을 꼿꼿이 세우며 입을 열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 말고, 진짜 용건을 말해봐요. 날 자극해서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칭찬해 드리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저의 투자를 끌어낼 생각이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어요."

그녀의 말에 강하민은 작게 웃으며 명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전 지금까지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

다시금 노려보는 장세연.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강하민은 말을 이었다.

"이미 미래투자신탁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하고 오신 것 같습니다만? 그럼 지금이 아닌 올해 1월 회사 창립 당시의 자산 규모도 알고 계시겠군요."

"…천억에 조금 못 미치더군요."

장세연의 대답에 강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불과 4개월도 안 되어서 회사 규모를 다섯 배 이상으로 불렸습니다. 이게 일반적으로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물론 가능했다.

현시운이 맡았던 투자운용 2팀의 활약으로 말이다.

하지만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장세연이 그런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왔을 리는 없을 거라고 강하민은 장담했다.

'살짝 MSG를 치자.'

그녀를 포섭하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위장과 기만전술 쯤이야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말하고 싶은 요점이 뭐죠?"

"제게 신뢰할만한 투자 정보들을 따로 얻는 창구가 있습니다."

"……."

"그들과의 계약 때문에 정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해외 사모 펀드라고나 할까요?"

강하민의 의뭉스러운 대답에 장세연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정체를 밝힐 수 없는 해외 사모펀드라….

장세연이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강하민은 재미교포 출신의 사업가다.

비록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고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그의 뿌리는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럼 미국 쪽의 시장 세력이 뒤에 붙어있다는 말일까?

거기서 지금 장강 그룹을 노리고 있고?

아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제가 알아본 것과 다르네요. 이곳의 대주주는 분명히 내국인인 걸로 아는데."

"흔히 쓰지 않습니까. 차명 계좌 같은 걸 말이죠."

그럴지도.

이십 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천억 원에 가까운 자본금을 투자했다고는 선뜻 믿기 어려웠으니까.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자산이라면 재벌 가의 사람이든가 유명 자산가의 핏줄 정도는 되어야 했다.

정말 자수성가로 그 많은 돈을 모은 거라면, 장세연의 귀에도 한 번쯤 이름이 들려왔을 거고.

미래투자신탁의 대주주로 올라있는 현시운이란 이름을 그녀는 처음 들어봤다.

"그쪽의 말을 제가 어떻게 믿죠? 손을 잡자면서 정체도 제대로 밝히질 않는데 말이에요."

"그 점은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강하민은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지금 들은 사실들을 아버지께 말씀드려 여길 단숨에 밀어버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장세연 부사장님의 염원을 이룰 길은 영영 사라지는 겁니다."

장세연의 으름장에도 강하민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응수했다.

"……."

어제 명함 뒷면의 문구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장철구나 장기우가 자신의 의중을 떠보는 걸 거로 생각했었다.

근데 알아보니 그 둘은 이곳과 전혀 연관이 없다.

장강을 박살 낸다?

가능 여부를 떠나 눈앞의 남자가 장강 그룹에 칼끝을 겨눈 건 분명해 보였다.

타깃으로 정한 기업 오너의 딸에게 이런 제안을 할 정도로 대범하기까지 했고.

물론 자신을 처절히 조사하여 가능하다 여겼기에 이러는 거겠지만 말이다.

강하민의 말이 사실이고, 자신이 협력함으로써 장강의 붕괴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난 집안을 말아먹은 다시 없을 불효녀가 되는 건가?'

그 옛날 자명고를 찢은 낙랑국의 공주처럼?

씨익.

장세연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건 자신이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하지만 강하민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신뢰의 문제보다는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능력에 대한 의심이다.

"저에 대해 어디까지 조사했는지는 몰라도…. 좋아요, 일단 목표는 마음에 드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마주 보며 웃는 강하민을 향해 장세연은 말을 이었다.

"근데 전 여전히 그쪽을 못 믿겠어요."

"……."

강하민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어떡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실력을 검증해보세요."

"어떤?"

"그룹 비서실과 감사팀, 구조조정본부에 제 사람이 필요해요. 적임자를 선별해줘요."

장세연도 자신의 요구가 쉽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았다.

그런데 만약 이걸 강하민이 해낸다?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능력만은 있다는 소리니 한번 손을 잡아볼 의향은 있다.

어차피 현재로서도 장철구와 장기우에게 복수할 방법은 전무했으니까.

별안간 찾아온 이번 기회에 장세연은 작게나마 기대를 걸었다.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그걸 해낸다면…."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장강을 박살 내는 데 한 손 거들죠."

그렇게 둘의 대담은 끝이 났다.

장세연을 입구까지 마중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현시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래요?"

"흠…. 쉽지는 않네. 조건을 걸었어."

"어떤?"

강하민은 조금 전까지 장세연과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세 부서에 자신의 사람이 필요하다…."

장세연이 한 말을 되뇌듯 중얼거린 현시운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역시 사람을 제대로 부려먹으려면."

그에 강하민이 말을 받았다.

"그 사람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야겠지."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끝맺었다.

"한동안 또 포크레인 흥신소가 바빠지겠군요."

그날 저녁, 둘은 이제 단골이 되어버린 포크레인 흥신소에다 장세연이 말한 세 부서의 직원들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했다.

* * *

4주 후, 강하민의 집무실.

강하민은 마주 앉은 장세연을 바라봤다.

전과 달리 홍차를 마시며 자신이 건네준 조사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내리는 그녀.

툭-

잠시 후,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장세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꽤 하는군요."

그녀의 칭찬에 강하민은 마주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좋아요. 약속대로 한 손 거들죠. 단! 다른 계열사들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만, 유통과 리조트는 건들지 말아요. 그건 내 것이니까."

예전부터 호텔과 백화점은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던 장세연이다.

"그러시죠."

강하민은 흔쾌히 그러라고 답했다.

그렇게 장세연과의 동맹이 이루어졌다.

* * *

5월 말.

늦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한낮의 햇살은 전보다 더 뜨거워졌고, 반대로 한강의 밤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졌다.

연초에 있었던 연수를 끝마치고 창원지방검찰청에 수습으로 내려갔었던 김현석이 주말에 서울로 올라왔다.

근 석 달 만에 청담동의 빌라에 모인 셋.

"현석이 형. 거기서 뭐 해요. 얼른 들어와서 한잔해요."

"…어. 들어갈게."

배달 음식과 사 온 술들로 거실 탁자 위 세팅에 분주한 시운과 강하민.

발코니에 우두커니 서서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던 김현석은 그간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는 몸을 돌렸다.

"우리 김현석 검사님의 탄탄한 앞날을 위해서 건배!"

강하민의 선창에,

"이대로 검찰총장까지 쭉쭉 올라가십시오."

시운이 덧붙였다.

"……."

김현석은 아무런 말 없이 마주오는 잔들을 부딪치고는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얘들아."

"어?"

"네, 말씀하세요."

김현석은 이미 내린 결단을 둘에게 털어놓았다.

"나, 검사 관두려고."

"뭐!"

"네?"

동시에 놀란 둘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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