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35화 (35/139)

§035화 김현석의 결심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놀라는 둘의 반응에 김현석은 입을 닫은 채, 빈 잔을 술로 다시 채웠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야? 검사를 관두겠다니?"

김현석이 검사가 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다년간 옆에서 지켜봤었던 강하민은 그의 결심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되물었다.

현시운의 심정 역시 그와 같았다.

'부장 검사까지 올라갔다가 정계에 입문했었는데….'

그런 김현석이 돌연 검사를 관두겠다니.

역사가 어긋나도 이건 너무….

"너희에게 미안하게 됐어. 돈을 빨리 갚아야 하는데…."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도대체 뭐 때문에 검사를 그만두겠다는 건데!"

이 순간만큼은 강하민도 그가 검찰의 요직에 앉아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계산적인 생각이 아니라, 친구로서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뿐이었다.

"별거 없어. 그냥 검사가 나랑 맞지 않을 뿐이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두 사람이 아니다.

특히, 미래를 알고 있던 시운은 더더욱.

"혹시? 지난번에 하민이 형이 검찰에서 조사받고 나왔던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시운의 말에 강하민이 눈을 크게 뜨고 추궁하듯 물었다.

"뭐야? 정말 그것 때문이야? 야, 겨우 그런 거로 어렵게 붙은 검사를 그만둔다는 게 말이 돼."

"……."

김현석은 말없이 자신의 잔을 들어 술을 비워냈다.

심각한 얼굴의 둘을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그때 일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 하지.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그럼 도대체 뭔데?"

시운이 말한 것처럼 4개월 전, 강하민이 검찰에 불려가 곤욕을 치렀을 때 회의감이 들었다.

자신이 앞으로 일하게 될 직장의 민낯에 실망하기도 했고.

하지만 정치권이나 재벌에 빌붙은 검사가 전체 중 극히 일부라는 사실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정도에서 벗어난 그들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믿는 바대로 행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연수를 마치고 수습을 위해 내려간 창원지방검찰청.

뉴스나 영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비리 검사들은 없었다.

오히려 할당받은 사건에 소신껏 임하며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이들만 눈에 보였다.

그런 선배들 밑에서 실무를 하나씩 익혀가며 김현석은 얼른 그들처럼 제대로 된 검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부조리는 존재하는 법.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정의감에 불타오르던 한 선배 검사가 지역 유지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을 끝까지 파고들려 했었다.

하지만 지검장 라인에서 내려온 무언의 압박에 그녀의 뜻은 꺾였다.

위로부터 언질을 받은 부장 검사의 노골적인 훼방에 사건 진행은 더뎌졌고, 그 사이 지역 유지는 돈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봐버렸다.

결국, 고소는 취하되고 그 일은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기본 전제.

이는 실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법에도 인정이 있다고 말들 하지만, 그 인정이란 것 역시 누구냐에 따라 차별되어 적용되는 현실이다.

검사가 하는 일이 일어난 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여 재판을 집행하는 것이다 보니 다소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명명백백해 보이는 사건도 증거와 법리 앞에서는 언제든 판결이 뒤바뀔 수 있다.

그에 김현석은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감에 날마다 고민 속에서 보냈고, 결국 친우들을 마주한 오늘 결심을 하였다.

검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경위를 둘에게 설명한 김현석은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공사변에 가입해서 활동해볼 생각이야."

"뭐, 공사변?"

공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사 모임.

줄여서 공사변으로 불리는 이 단체는 공익 실현을 위한 여러 법을 제안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로 유명했다.

강하민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를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넌지시 물었다.

"혹시, 너…. 정치에 관심이 있는 거야?"

"뭐?"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다가 정치에 입문하는 정치인들을 많이 봐왔던 강하민이다.

그의 질문에 김현석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치는 무슨. 그런 거 아냐. 그냥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래."

"아닌 것 같은데…."

시운은 잠시 그들의 대화에서 떨어져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왜 현석이 형의 미래가 이토록 크게 바뀌는 걸까?'

여러 추측을 떠올려보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은 하나다.

회귀 전에는 사채업자들 때문에 검사 임용에 실패해 변호사로 3년을 일한 다음에 검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선 자신의 도움으로 그런 위기 없이 꿈을 이뤘다.

변호사로 일했던 3년의 차이.

그게 이런 결과를 만든 건가?

회귀 전에 일어난 일들과 지금의 상황을 두고 한참을 궁리하던 시운은 곧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바뀐 김현석의 미래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이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은데?'

시운의 시점에서 과거인, 회귀 전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현석은 검찰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상대 진영으로부터 많은 음해와 비방을 받았다.

물론 나중에 모든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지만, 출신 성분에 대한 라이벌들의 언론 플레이로 적지 않은 지지층의 이탈은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김현석은 상대 후보 세 명의 후보 단일화란 빅 카드에도 대선에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을 테지.

근데 이번에는 인권변호사로 시작한다?

검찰의 현실을 개탄하며 스스로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에 말이다.

이건… 쓸만한 서사가 될 게 분명했다.

비록 지금은 강하민에게 여전히 자신은 정치에 뜻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향후 현실의 벽에 부딪힐 그가 향할 곳은 역시 국회다.

그럼 그때, 지금의 선택으로 쌓이게 될 이력들은 그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거다.

검찰 내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둔다는 애초의 계획과는 많이 벗어나지만, 그거야 다른 선택지도 많으니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자신에게 강하민을 소개해준 것만으로도 김현석은 기대 이상의 큰 도움을 줬다.

'그럼….'

시운도 김현석이 그런 것처럼 결정을 내렸다.

그가 걷게 될 험난한 길을 지지하고, 후원하며 응원하기로.

"형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시운의 말에 강하민은 인상을 팍 썼다.

"어쩔 수 없기는! 이 현실 감각도 없는 멍청이의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생각을 돌려놔야지."

시운은 그에 어깨를 으쓱이며 응수했다.

"하루 이틀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 아닌 것 같은데요, 뭘. 이 정도로 결심이 선 거면 현석이 형 성격에 되돌릴 것 같지도 않고…."

시운의 추측에 김현석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물론! 내 결심이 바뀔 리는 없어."

"이러는데 어쩔 수 있습니까?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수밖에."

강하민과 달리 제 뜻을 이해해주는 시운에게 김현석은 신뢰의 눈길을 주었다.

그에 작게 웃으며 답례하는 시운의 속마음은 또 달랐다.

'이대로 쭉 나아가셔서 대통령까지 오르세요.'

김현석이 거물급 정치인, 혹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에게서 노골적으로 득을 볼 생각은 없다.

다만, 그와의 친분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지면 족했다.

그 사실을 알고도 함부로 자신을 건드리려고 할 사람은 드물 테니까.

"참, 나! 속들 편해서 좋겠다."

그런 둘의 모습에 강하민은 속이 터지는지 자신의 술잔을 들어 단번에 내용물을 비웠다.

"어려운 사람들 돕는 거? 좋아. 근데 그 전에 너 먹고살 궁리부터 해야지. 무료 변론이나 하면서 돌아다니면 어떻게 먹고살 건데?"

김현석의 마음을 돌리려고 강하민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파고들었다.

친구의 타박에 김현석은 국선 변호를 맡으면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고 답했다.

그에 강하민은 못마땅한 시선을 보낼 뿐이다.

"뭐가 걱정이에요."

시운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입을 열었다.

"어?"

시운은 술로 입안을 적시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 법률 자문 서비스 업체 아직 안 정했잖아요. 현석이 형 개업하면 바로 계약 맺죠, 뭐."

"……."

강하민은 마치 브루투스에게 칼을 맞은 카이사르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시운은 잔에 남은 술을 털어 넘기며 빙긋 웃었다.

물론 김현석이 나중에 정계에 입문했을 때,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게 자문료는 현실적인 금액으로 책정할 생각이다.

강하민만 소외된 것 같은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 *

협심증과 고혈압 증세로 진료를 받은 장철구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는 주치의의 권유로 한동안 회사를 나가지 않고 평창동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룹에 대한 신경을 전혀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강건설에서 입찰한 중국 지린성 상업지구 개발 건의 발표일은 내달 9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룹 분석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장철구는 일주일에 한 번, 문지환 비서실장을 불러 그룹의 전반적인 사업 내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집사 황성태가 내어온 용정차를 천천히 마시던 장철구는 신사업 진행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자 손을 들어 문지환의 말을 끊었다.

"인수하게 될 회사가 어디라고 했나?"

"네. 상원반도체라는 곳입니다. SC하이퍼닉스의 1차 벤더로 연평균 오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기술은 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SC하이퍼닉스에서 공급하는 저가형 메모리에 들어가는 중품질의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음…."

후계자로 낙점한 장기우 구조조정본부장의 주도로 장강 그룹은 현재 전자 부문의 계열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룹 임원회의에서 장기우는 미래성장동력과 장강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고, 다수의 임원이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최종 결정권자인 장철구는 일단 장기우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지만 그는 그룹에 전자회사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미 삼정전자와 SC하이퍼닉스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세 번째 주자로 뛰어들기엔 큰 메리트가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레드오션.

특출한 신기술이라도 있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다.

그런데도 장기우의 뜻을 받아들인 건 녀석이 거기서 배우는 것이 있을 거라고 여겨서다.

아무리 말로 골백번을 가르쳐도 몸으로 직접 부딪쳐 배우는 것만은 못하다.

수천억, 혹은 수조의 돈이 날아갈지도 모르지만, 장철구는 다음 대를 이끌게 될 장기우에게 비싼 수업료를 치르더라도 값진 교훈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만약, 장기우가 원래 계획한 대로 진성전자를 성공리에 인수했다면?

아마도 장철구의 생각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장기우로선 최선의 선택지가 물 건너간 상황이라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허투루 할 생각은 없는지 부족한 부분을 간파하고 메우려 노력하는 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술 연구소와 협업 체계를 구축해놓은 상태입니다. 이달 중 상원반도체 인수 계약이 끝나는 대로 라인 증설에 들어갈 예정이고, 못해도 2년 내에는 국내 공급량 3위 규모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기술 개발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리도 없고, 다른 경쟁사들이 손을 놓고 구경만 할 리도 없다.

우려는 되지만, 모든 걸 후계자에게 일임한 만큼 더는 간섭할 마음이 없었다.

장철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신사업과 관련된 보고를 넘겼다.

뜨거웠던 용정차가 식고, 내용물도 삼 분의 일만큼 줄어들었을 때 문지환의 업무 보고는 모두 끝이 났다.

이젠 장철구가 사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에 대한 보고만이 남았다.

"…세연이, 그 아인 요즘 어떻게 지내나?"

조금 전보다 약간 어두워진 기색으로 그는 물었다.

"지난번 보고드린 바와 같습니다. 평소처럼 유통으로 출근하여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주선하신 맞선 자리에도 꼬박꼬박 나가고 있습니다."

장철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달 전 보고 때 말씀드렸던 미래투자신탁이라는 투자 전문회사에 지난주 다시 방문했었습니다."

"…계좌 내역에 변동이 있었나?"

"그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카드 대금 결제 외에는 이렇다 할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카드 대금이 억 단위이기는 하지만.

"흠…."

한 달 간격으로 같은 투자회사를 찾아갔다?

장철구로선 딸의 의중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투자회사를 통해 자금을 불려서, 그 돈으로 어떻게든 그룹에 영향을 미쳐볼 생각이었겠지.

물론 장철구가 바라는 형태와는 반대되는 식으로.

"미래투자신탁이란 곳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몇 달 전 장기우의 요청으로 한번 알아본 적이 있는 회사다.

최신 데이터로 정보를 갱신하는 것쯤은 크게 어려운 것 없었다.

"아닐세.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아무리 국세청과 금감원에 라인을 만들었다지만, 별로 중요한 사안도 아닌 일에 인력을 낭비할 수는 없다.

장철구는 딸이 돈을 맡겨볼 요량으로 방문했다가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에 실망하고 투자를 포기한 걸 거로 짐작했다.

변동 없는 장세연의 계좌가 말해주듯이.

문지환은 과거 미래투자신탁을 조사한 사실에 대해선 굳이 보고하지 않았다.

장철구에게 알릴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만약, 장철구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관심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사소한 우연 몇 가지가 겹쳤다.

이로 인해, 장철구는 훗날 장강을 송두리째 뒤흔들 미래투자신탁에 대한 경계심을 놓아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세연이에게 붙였던 눈도 그만 물리게. 그 아이 계좌에 큰 변동이 생길 때만 보고하도록 하고."

"네, 회장님."

장철구는 더는 장기우를 위협하지 못할 거로 판단하고, 장세연에 대한 감시까지 물렸다.

이 역시 그의 실책이었다.

* * *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장마가 26일까지 이어졌다.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현시운은 고속도로 위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경기도 화성의 우송 공장.

- 현 부장님, 내일 오후 2시부터 신설 라인 정상 가동 들어갑니다.

어제 연락이 온 우송 사장의 말이었다.

"…드디어."

핸들을 움켜쥔 시운의 입가로 옅은 미소가 번졌다.

부아앙-

자동차가 엔진음을 우렁차게 내며 빗속을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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