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37화 (37/139)

§037화 수출 규제(2)

장기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앞에 선 김학수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긴장된 얼굴로 모시는 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장기우의 입이 열린 건 그로부터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자재관리를 맡고 있다는 그 담당자 말입니다."

"네, 본부장님."

장기우는 두 동강 난 펜대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상원반도체 적부터 일한 직원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상원반도체의 대표와 임원들은 장강과의 기업 인수·인도 계약 시 많은 프리미엄을 얹은 지분의 대가를 받고 회사를 미련 없이 떠났다.

그러나 그 밑의 부장급 이하 직원들은 그대로 고용을 승계했다.

당장 그만한 숫자의 인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내렸던 조치였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직장이 승격된 것에 모두 기뻐했겠지만, 장기우가 오늘 내릴 결정에 철퇴를 제대로 얻어맞게 생겼다.

"자재관리 담당자와 부서 책임자, 오늘 바로 해고하세요."

"…네."

불법 해고라며 대응해올지도 모르지만, 명백히 잘못이 인정되는 사안이었다.

끝내 불응하더라도 일개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이 일을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할 김학수로서는 조금 골치가 아플 뿐이다.

"그리고…."

"네, 본부장님."

"장강전자 하반기 채용공고 낼 때 신입과 경력자 구인 수를 대거 늘리세요."

"……."

장기우는 시린 눈빛을 발하며 뒷말을 이었다.

"지금 있는 상원반도체 출신 중 자격 미달인 사람을 가려내서 주기적으로 내보내요."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집단 해고.

앞선 자재관리 담당자 한 명을 내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후폭풍이 예상됐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

차기 총수가 그렇게 결정을 내렸으니까.

본부장실을 나온 김학수는 장강전자 인사과에 전화를 넣어 자재관리과의 두 사람을 자르라는, 장기우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런 뒤, 그는 곧장 그룹 법무팀과 인사팀에 들려가며 상원반도체 출신 직원들의 해고 방법을 찾아내려 궁리했다.

그나마 가장 후폭풍이 약할 거로 예상되는 방법을 말이다.

하지만 결코 쉬울 리는 없었다.

그 사이 장강전자의 구매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당장 구매해야 하는 소재는 에칭가스와 포토레지스트.

둘 다 일본에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이다.

본격적인 규제가 시행되는 게 7월 4일이니만큼 그 전에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일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번 규제 조치로 피해를 고스란히 보게 된 일본 기업들이지만, 그렇다고 자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시행일까지 사흘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들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물품 반출을 거절했다.

해외의 지사를 통한 매입도 시도했으나, 이 역시 본사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면 다들 고사하기는 마찬가지.

다행히 일본 다음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 미국 드본 사와의 협상이 진행되어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었다.

문제는 에칭가스.

세계 2위 에칭가스 생산 기업인 대만의 라스텔 사가 있었지만, 이곳은 일본 노리타 화학과 라스텔 그룹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세운 합작회사였다.

지분의 절반 가까이 들고 있는 노리타 화학의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에칭가스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시간은 점차 흘러갔다.

7월 4일이 지나 본격적인 규제 조치가 발효되었고, 세 가지 소재의 일본 수입로는 굳게 잠겼다.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

한 인터넷 신문사를 통해 하나의 희소식이 기사로 올라왔다.

이번 수출 규제를 계획하고 실행한 일본의 정치인들은 기사의 내용을 보좌진에게 전해 듣고는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 성공!]

인터넷으로 올라온 그 기사는 단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뒤이어 다른 신문사에서도 앞다퉈 후속 기사들을 내보냈다.

[경기도 화성 소재 (주)우송. 국산 에칭가스 양산 해내.]

[일본산보다 더 우수한 품질. 99.999999999%의 초고순도 불화수소.]

포탈 검색순위에 '에칭가스 국산화', '우송', '99.999999999%'가 상위권에 한나절 이상 걸리기까지 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기술은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야 겨우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의 기사를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라고 매도했다.

하지만, 이틀 뒤 특집으로 편성된 '일본 수출 규제와 우리의 대처'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우송의 생산 시설과 에칭가스가 제조되는 현장을 보여주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들이 쏙 들어갔다.

반도체 세계 점유 1, 2위인 삼정전자와 SC하이퍼닉스의 구매담당자들이 우송을 찾아 에칭가스 공급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고, 다른 중소 제조업체들도 뒤를 이어 화성 제2공장의 문을 두드렸다.

"네. 음… 네, 잘 알겠습니다."

강하민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소파에 앉아 그를 바라보던 현시운은 눈빛으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강하민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장강전자는 충분한 양의 에칭가스를 확보하지 못했다는군. 아마도 곧 우송에 접촉해오겠지."

방금 강하민과 통화한 사람은 바로 장세연이다.

그녀는 강하민이 건네준 직원들의 뒷조사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원하던 대로 그룹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 감사팀의 직원 한 명씩을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했다.

그들을 통해 알아낸 장강전자의 내부 사정을 장세연이 강하민에게 오늘 알려왔다.

"어쩔 거야?"

시운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그에 시운은 잠깐의 고민 뒤에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팔 물건 없다고 하고는 싶지만…."

"싶지만?"

강하민의 되물음에 시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판매를 거부할 수는 없으니까."

가뜩이나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민들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마당에 같은 국내의 업체를 상대로 에칭가스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면 자칫 우송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혼란한 시국을 틈타 이득이나 챙기려 한다면서.

같은 국가의 기업끼리 서로 도와야지, 이게 무슨 갑질이냐며 비판하는 말들이 나오겠지.

평소 대기업의 폭리와 횡포에는 침묵하던 사람들도 비상시국인 이 시점에선 도덕심과 이타심을 요구하는 법이다.

만약 장강 그룹이 그런 식으로 여론을 조장한다면 중소기업인 우송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제값은 받아야죠. 한 푼도 못 깎습니다."

"아무렴."

"생산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서 납기일도 최대한 늦게 잡아야겠고 말이죠."

치사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있을 것이다.

상대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는.

음흉하게 웃는 시운을 바라보며 강하민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의견은 일치했다.

미래투자신탁 의사결정권자들의 이런 결정은 곧 우송 사장에게 전해졌고, 그는 다음날 찾아온 장강전자 구매부장에게 그 뜻을 그대로 내비쳤다.

결론적으로, 장강전자는 부족했던 에칭가스와 포토레지스트를 보충할 창구는 확보했다.

에칭가스의 경우엔 다른 기업들이 받은 대량 구매에 따른 할인 혜택을 일절 받지 못했고, 납기마저 물량 부족의 이유로 최대한 뒤로 미루어졌지만 말이다.

게다가 결제 방식도 외상이 아닌 현금 거래로 우송은 못을 박았다.

이런 차별적인 대우에 장강전자 구매부장은 발끈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론을 움직여 우송을 몰아붙이기에는 명분이 많이 부족했다.

제값 받고 판다는 데 그게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이제 막 생산을 시작해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낱낱이 조사해볼 수도 없었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면에 서린, 그들의 야욕을 한풀 꺾어버린 구국의 기업으로까지 칭송받고 있다.

괜한 생각으로 섣불리 우송을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장강전자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한편, 자신의 집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장기우는 조금 전에 올라온 보고를 떠올리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

진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우송 역시 미래투자신탁에서 지분투자한 업체란 걸 익히 조사해 알고 있는 그였다.

평소 남들 앞에서 보이지 않았던 깊은 분노가 눈동자를 통해 창문에 비쳤다.

"현시운!!"

녀석만 아니었다면 진성전자를 예정대로 인수했을 테고, 이번의 규제 조치에도 무난히 대처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증오의 대상을 부르짖으며 장기우는 이를 갈았다.

* * *

- 젠텍, 파울러, 산 엔드리아. 이 세 종목이란 말이죠?

확인차 묻는 대런의 물음에 현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했다.

- 음…. 이번에도 이전처럼 신용거래로 진행합니까?

우려 섞인 목소리다.

"네, 최대한 한도 범위까지 지정해서 거래해주십시오."

- 여태까지야 시운 씨의 예측대로 전부 들어맞아서 문제는 없었다지만…. 이런 운이 계속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인제 그만 안정적인 투자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에 세워진 투자법인 스피어는 현재 총 운용자금의 90%는 시운의 종목 선정에 따라, 나머지 10%는 대런과 현지 직원들의 재량에 따라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운과 강하민의 지분율에 따른 투자 비율이다.

대런 역시 강하민과 비슷한 투자 이념을 지녔다.

저평가된 우량주에 중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그런 그의 관점에서 시운이 거래하라며 알려주는 종목과 신용 거래 방법은 한탕을 노리는 도박꾼의 객기처럼만 보였다.

물론 시운은 유레카의 정보이용권을 사용해 알아낸 확실한 정보로 가장 안전하게 투자를 진행하는 거지만, 내막을 모르는 이들에겐 위험천만한 행위로 여겨질 것이다.

"지금은 외형을 먼저 키울 때입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 마세요.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하고 확실한 투자처로만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 …네, 알겠습니다.

실제로 시운의 실적이 확연할 정도로 특출하니 대런으로서도 뭐라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6월 초,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 스피어는 한 달이 조금 지난 현재, 초창기의 자산 사천이백오십만 달러가 팔천만 달러로 불어났다.

한화로 천억에 가까운 돈이다.

대런과 현지 직원들이 낸 수익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시운에게 들은 대로 투자하여 얻은 성과였다.

대런과의 통화를 끝낸 시운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따서 발코니로 향했다.

대낮의 땡볕으로 달구어졌던 대기가 밤이 되자 한층 선선해졌다.

전과 달리 습도가 높아 끈적이는 느낌은 있었지만, 시운은 가끔 발코니로 나와 이렇게 맥주를 마시며 한강 경치를 감상하는 걸 즐겼다.

'정보이용권 구매 한도만 좀 더 늘었어도….'

언제까지 위험해 보이는 투자를 대런에게 요구할 수도 없었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하지만, 너무 다 들어맞는 것도 이상해 보이니까.

정보이용권에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덜 공격적인 방법을 썼을 거다.

'미래투자신탁에서 한 장, 스피어에 두 장.'

구매 한도인 세 장의 정보이용권은 보통 그달에 모두 소진되는 편이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두 장의 이용권이 항상 남아있지만, 말 그대로 비상용이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다.

7월 중순이다.

월초에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에 타격이 클 거로 여겼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회사들은 생각보다 큰 충격 없이 상황을 모면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우송이 생산한 에칭가스도 한몫 거들었다.

진성전자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우송의 에칭가스가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기존의 재고가 소진되면 우송의 제품을 쓰기로 결정되었다.

삼정전자와 SC하이퍼닉스 등 여러 전자회사에서도 샘플로 가져간 우송의 에칭가스로 자사의 제조 공정에 적합한지 한창 품질테스트 진행 중이다.

"후후."

거기에 장강전자가 끼어있다는 사실이 시운을 기쁘게 했다.

우송이 미래투자신탁에서 투자한 회사임을 장기우도 알고 있겠지.

녀석이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 역시 시작되었다.

수출 규제 조치에 반발하는 민심을 반영하듯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은 약소국이라 불매운동을 해봤자 영향이 없다.]

[우리 기술력을 시샘하여 졸렬하게 불매 운동 같은 손쉬운 방법을 쓰는 것이다.]

[조선인은 금방 뜨거워졌다가도 바로 식는다. 일본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 있었던 불매운동과 비슷할 거라 여긴 일본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망언은 번져나가는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지 않는 걸 넘어서서 상인들까지 들고일어나 팔지도 않겠다며 가게에 있는 일본 제품들을 모두 빼버렸으며, 누리꾼들은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일본 자본이 투자된 기업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웹상에 게시하며 퇴출 운동을 종용했다.

그 덕분에 대체할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이 주목받게 되었고, 덩달아 주가도 상승했다.

시운 역시 이런 흐름에 편승하여 대체재로 떠오른 기업들의 주식을 미리 샀다가 제법 수익을 올렸다.

"이제 내 총자산이…."

시운은 머릿속으로 현재 자신의 자산 규모를 가늠해봤다.

미래투자신탁이 팔천억 원가량.

해외 투자법인 스피어가 거의 일천억 원에 육박했고, 개인적으로 지닌 금융자산을 다 합치면 칠백억 원을 넘는다.

그 밖에 청담동 빌라 시세까지 더한다면.

"거의 1조 원인가?"

새삼 신기하고 믿기지도 않았다.

회귀 전에는 몇억도 겨우, 잠깐 쥐어봤었는데.

다시 돌아온 지 약 1년 반 만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지."

목표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부단히 나아가야만 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면서 시운은 남은 맥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금방 양치를 마치고 잘 준비를 했다.

막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이었다.

띠링!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맑게 울렸다.

"뭐지…?"

이런 야심한 시각에?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든 시운은 보안 화면을 풀고, 액정을 들여다봤다.

"…어?"

그리고 확인한 알림음의 정체에 시운은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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