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43화 (43/139)

§043화 스캔들(5)

"아냐. 이, 이럴 리가 없어!"

함수아는 자신이 잘못 확인한 건가 싶어 위에서부터 다시 꼼꼼히 읽어내렸다.

하지만, 맨 아래까지 시선을 옮겨도 그녀의 이름 석 자는 게시물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디션 당시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척 좋았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왜 자신이 떨어지게 되었는지.

함수아는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두들겼다.

홈페이지 하단부에 있는 회사 대표전화번호를 찍고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네, 인터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저기…."

- 네, 말씀하세요.

갑자기 말문이 막혀왔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몇 차례의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함수아는 결연한 표정으로 용건을 밝혔다.

"지난주에 오디션을 봤었던 함수아라고 하는데요."

- …….

갑자기 상대방이 조용해졌다.

"대표님 계시면 좀 바꿔주시겠어요? 오늘 합격자 발표가 난 걸 봤는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요."

- 으음…. 함수아 씨라고 했죠?

"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수아 씨. 음…. HR 엔터테인먼트 출신…, 맞죠?

"…네, 맞아요."

좋지 않게 끝나버린 전 소속사라 오디션 신청서의 이력란에 HR 엔터테인먼트를 기재하지 않았었다.

근데도 알고 있다?

함수아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을 숨긴 게 탄로가 나서 불이익이라도 받게 된 걸까.

하지만 인터 엔터 직원이 말하는 탈락 이유는 함수아의 추측과는 사뭇 달랐다.

- 이게…, 참. 수아 씨 노래와 춤.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

직원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 그…, 색깔이랄까? 아니, 이미지. 그래요. 이미지. 그게 우리 회사랑은 별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해서….

"혹시 오디션 날 심사하셨던 분인가요?"

- …아뇨.

함수아로선 황당한 경우였다.

심사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한다는 것이.

"대표님 바꿔주시죠. 그분께 직접 탈락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분명 오디션 날 합격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고요."

- 아, 음…. 그게 지금 자리에 안 계셔서….

전화 너머로 '대충 둘러대.'라는 음성이 작게 들려왔다.

오디션 때 만났던 인터 엔터 대표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네, 알겠어요. 그만 끊겠습니다."

전화를 더 붙들고 있어봤자 분명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핸드폰을 내려놓은 함수아는 방금 통화를 곱씹어보았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자신의 이름에 알고 있다는 듯 바로 반응했다.

그러면서 HR 엔터테인먼트를 언급했었지.

왠지 이번 일…, 아니 앞서 도전했던 다른 연예기획사 오디션 결과도 전 소속사와 연관이 되어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함수아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 네가 웬일이냐?

"……."

함수아는 혹시 몰라 녹음 기능을 활성한 뒤에 입을 열었다.

"실장님이 그런 거예요?"

함수아가 전화를 건 대상은 바로 HR 엔터의 도민식 실장이었다.

대표인 고희준의 수족이자 술자리에 데리고 갈 연습생들을 발탁했던 사람.

- 다짜고짜 전화해서 그게 무슨 말이지? 좀 알아듣게 설명을 하던가.

"인터 엔터."

- …아. 너, 거기도 오디션 본 거야?

함수아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거기도라뇨. 설마 다른 기획사 오디션에도…."

- 너도 참. 여기서 그러고 나갔는데 다른 데서 잘 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순진하기는.

"……."

- 여기가 대한민국 3대 기획사는 아니지만 나름 대형 기획사야. 우리 회사 영향력으로 이 바닥에서 안 되는 게 거의 없어. 무려 대표님이 GJ 그룹의 로열패밀리이신데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지금 제 앞길을 막으시는 거예요. 그 영향력으로!"

- 막기는 무슨. 그냥 너 연예인은 포기해. 어딜 가도 널 받아주려는 곳은 없을 거다.

분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이.

함수아는 이를 악물었다.

- 그래, 너 얼굴 꽤 반반하잖아. 그 얼굴로 돈 많은 놈팡이나 하나 꼬셔서 시집이나 가. 그게 연예인 해보겠다고 이곳저곳 기웃대는 것보단 나을 거다.

도민식의 비하 발언에 함수아는 참았던 말을 토해냈다.

"그날 2차 거부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이미 소속사에서 내보냈으면 끝난 거잖아요!"

흔히들 말하는 2차.

성 상납을 거부한 결과로 함수아는 지금 이토록 참담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데뷔 직전의 그룹 멤버에서 제명되었고, HR 엔터에서 방출되기까지 했다.

그것으로 HR 엔터와의 관계는 끝난 줄로만 알았었는데….

안이한 생각이었다.

질긴 악연의 끈은 함수아의 발목을 붙든 채, 옴짝달싹도 못 하게 하고 있었다.

- 야! 너, 그 소리 딴 데 가서 했단 봐. 오디션 탈락이 얼마나 가벼운 벌이었는지 알게 해줄 테니까. 인생 송두리째 거덜 나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닫아.

HR 엔터에서 내쫓을 때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한번 언급하는 도민식이다.

- 그리고 다신 전화하지 마라.

그러고선 전화는 끊겼다.

"……."

통화녹음 파일이 생성되었다는 알림 메시지를 보는 함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자신의 오랜 꿈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충격을 그녀는 온전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함수아는 문득 든 생각에 흐려진 시선을 들어 한 곳을 바라봤다.

아무렇게나 던져둔 가방에서 살짝 삐져나온 명함 한 장이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의 일치였다.

낮에 카페로 찾아왔었던 신명훈이 주고 간 명함이었다.

* * *

치이익-

불판 위로 먹음직한 한우 꽃등심이 익어갔다.

이를 보며 신명훈은 침을 꼴깍 삼켰다.

살림이 곤궁하지는 않지만, 고려일보를 관두고 나와 몇 년을 술만 마시고 지내다 보니 넉넉하지도 않았다.

모처럼 만에 한우라는 호사에 그는 즐거웠다.

"흥신소가 잘 되나 봅니다?"

"뭐, 그럭저럭 먹고는 살 만해."

그리 대답하는 정민철이지만,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그 역시 한우는커녕 수입산 돼지고기 구경도 한 달에 한 번 할 정도로 쪼들렸었다.

이렇게 여유로워진 것도 다 현시운의 의뢰 덕분이다.

장강이라는 국내 굴지의 그룹 후계자 뒷조사로 인연이 시작되었다.

원체 재벌에 대한 반감이 컸던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일을 받아들였다.

지금 데리고 있는 직원들의 실력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긴 했지만.

훌륭히 첫 의뢰를 완수한 이후로도 지금까지 현시운과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불판을 보며 연신 입맛을 다시는 신명훈을 한 차례 바라본 정민철은 언젠가 그에게도 현시운을 소개할 날이 올 거라고 여겼다.

"자, 거의 다 익었네. 먹자."

"아이고, 이런 귀한 음식을 사주시는데 제가 구워도 될 것을. 허허허."

집게를 내려놓는 정민철에게 너스레를 떠는 신명훈.

그는 젓가락으로 잘 익은 한우구이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띠리리~ 띠리리링~

막 소금 기름장에 끝을 적셔 입안에 넣으려는 찰라, 신명훈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아이, 참!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누가 전화를…."

핸드폰을 꺼내 들며 신경질을 내던 그의 말꼬리가 흐려진다.

낯선 휴대전화번호.

근데 왠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신명훈은 자신의 촉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방금까지 귀하게 여기던 한우구이도 아무렇게나 내려놓는 신명훈.

그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울어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수아 씨?"

정민철은 조용히 신명훈의 통화를 지켜봤다.

수아라….

자신이 조사했던 HR 엔터 전 연습생 명단에 있던 이름이다.

아마도 신명훈이 진행하는 취재와 관련된 일이겠지.

"네, 알았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네!"

통화를 끊은 신명훈은 옆자리 방석 위에 두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

"형님, 죄송해서 어쩌죠. 지금 급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지 대략 파악한 정민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만 날도 아니고. 괜찮아. 급한 것 같은데 어서 가봐."

"네, 형님. 죄송합니다!"

서둘러 별실을 나가는 신명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민철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우진아. 밥 먹었냐? 아직이라고. 그럼 나와라. 같이 고기나 먹자."

통화를 마친 정민철은 불판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집어 먹었다.

"예전부터 먹을 복이 별로 없구나, 저 녀석도."

신명훈에 대한 평 한 줄과 함께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어 입으로 넘겼다.

그 뒤로 일주일의 시간이 더 흘렀고, HR 엔터테인먼트의 룸살롱 접대에 대한 특집 기사가 완성되었다.

* * *

♩♬~ ♪♬~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현시운은 거실에서 울리는 벨 소리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이동했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탈탈 털어가며 거실 소파 한쪽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포크레인 흥신소 정민철 사장]

액정에 찍힌 발신자 이름.

"……."

어떤 용무일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운은 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여보세요?"

- 정민철입니다.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정민철의 전하려는 용건은 시운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 HR 엔터테인먼트 룸살롱 접대 관련 기사. 내일 주간지에 실려 나옵니다.

인터넷 기사로는 오늘 밤 아홉 시 정각에 게재될 거라고 정민철은 덧붙여 설명했다.

"잘됐네요."

대답하는 시운의 입꼬리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근 한 달 가까이 공들인 일이 대망의 말미를 장식하려 했다.

현재 시각 오후 8시 52분이었다.

* * *

몇 달 전에 있었던, 큰형과의 전화 통화 이후로 고희준은 힘을 갈구해왔었다.

자신이 힘이 없으니, 가족들에게도 그런 수모를 받는다고 여겼다.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풍족하지만, 그것도 서민들의 시선으로 볼 때 그럴 뿐이다.

같은 계층인 재벌 가문의 상속자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부는 흔하디흔한 수준.

이런 걸 힘이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해서 고희준이 탐하는 것은 권력.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지도 않았고, 딱히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는 손쉽게 돈을 들여 정치권에 빌붙으려 했다.

"의원님, 제 술 한 잔 받으셔야죠."

"그럼, 그래야지! 자, 가득 붓게나."

반들반들 드러난 앞머리를 옆 머리카락으로 빗어넘겨 가린 깡마른 노인네.

강남구 구청장의 소개로 알게 된 서울시 시의원이다.

그는 기분 좋은 듯 껄껄 웃으며 잔을 든 오른손을 호쾌하게 내밀었다.

시의원의 다른 손은 옆에 앉은, 딸뻘인 연습생의 허벅지를 더듬고 있었다.

'쳇!'

마음 같아서는 국회의원이라도 데려다 앉혀 구워삶고 싶지만, 아직 고희준은 그런 급이 되질 못 했다.

'그래,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인맥을 쌓아가면 돼.'

구청장을 통해 시의원을 알게 되었다.

시의원을 통한다면 국회의원과 안면을 터는 것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누가 알겠는가.

운이 좋아 대통령이 될 권력의 실세와도 이어질지.

'그때 되면, 큰형도 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지.'

예로부터 권력이 금력보다 우위에 서는 법이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던 가족들과 재벌 3세 친구들이 대통령 비선 실세의 한 축이 된 자신의 앞에서 눈치를 보고 쩔쩔맨다?

상상만 해도 통쾌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고희준은 시의원과 함께 자리한 당원들의 잔에도 술을 그득히 채웠다.

"언젠가 윗분들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아이고. 우리 고희준 대표, 은근 야심가일세? 허허허. 내가 당에서 호형호제하는 친한 형님이 한 분 계셔. 지금 동작구 을을 맡고 있지. 내 언제 자리 한 번 만들어봄세."

그동안 받아먹은 게 많아서 그런지 고희준의 은근한 부탁을 시의원은 흔쾌히 들어줬다.

고희준은 술을 탐하고, 또한 옆에 파트너로 붙여준 연습생의 몸을 탐하는 시의원과 당원들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똑똑-

그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 것은.

잠시 후, 도민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도 준비해 온 사과 상자를 시의원과 당원들의 차 트렁크에 넣고 보고하러 왔을 거라고 여긴 고희준은 이를 생색이라도 내듯 소리 높여 물었다.

"음, 그래. 도 실장. 가져온 과일은 잘 나눠드렸나?"

그 말에 시의원과 당원들이 눈빛을 반짝였다.

"아, 아아…. 네. 근데 대표님, 다른 게 아니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다급해 보였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네, 그게…."

도민식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려 하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며 시의원과 당원들의 보좌진이 들이닥쳤다.

"어허, 뭐야. 다들 왜 이래?"

굳은 표정의 보좌진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사람 옆으로 가 귓속말로 뭔가를 빠르게 속삭였다.

결례로 비칠 수 있는 그들의 행동에 대신 당황해하고, 또 의아해하는 시의원과 당원들.

셋의 안색이 돌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몇 초도 채 되지 않았다.

시의원과 당원들은 말없이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흠, 험험! 고 대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

"네?"

시의원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 대표님, 저희도 당에서 지금 찾아서…."

"지금 이 시각에요?"

벌써 밤 열 시도 넘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당원들도 시의원을 따라 서둘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보좌진들이 따르며 썰물처럼 룸을 빠져나갔다.

"아니, 갑자기 다들 왜 저래?"

평소에 술과 돈,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던 위인들이 말이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고희준은 인상만 잔뜩 써댔다.

"대표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고희준과는 달리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는 도민식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뭔데 그래?"

도민식의 핸드폰 액정 화면 위에 떠 있는 것은 한 포털사이트의 뉴스 카테고리였다.

그 공간을 수놓고 있는 여러 기사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고희준은.

"뭐야, 이건!!"

이내 경악성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