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44화 (44/139)

§044화 스캔들(6)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HR 엔터테인먼트 접대 루머, 드디어 밝혀졌다?]

[소녀들의 꿈을 담보로 자신의 사욕을 채운 어른들]

[HR 엔터테인먼트 전 연습생 A양 양심 고백 파문!]

[연예계 가십 주간지 '스타 체이서' 단독 보도!]

['스타 체이서' 편집장, "공익 제보자로부터 믿을 수 있는 증거 확보했다" 단언!]

[HR 엔터테인먼트 접대 대상은 서울시 고위 공직자와 특정 정당의 관계자로 밝혀져 충격!]

"뭐, 뭐야…. 이게 다 뭐야!!"

자신과 HR 엔터를 정확히 겨냥한 여러 기사에 고희준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도민식은 한껏 인상을 쓴 채 말없이 대기했고, 동석한 연습생들은 불안한 눈으로 고희준을 쳐다봤다.

[HR 엔터테인먼트 접대 루머의 실체]

분 단위로 양산되는 기사들을 거슬러 올라가던 고희준은 최초로 유포된 기사를 찾아냈다.

바로 스타 체이서에서 올린 원본 기사였다.

"……."

고희준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기사를 클릭했고, 곧 액정 화면 가득 생겨나는 한 장의 사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두운 조명 아래의 술자리, 모자이크 처리된 여덟 남녀의 얼굴.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의 실루엣과 배경이 되는 방의 구조가 굉장히 낯익다.

고희준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방 안을 둘러봤다.

사진 속과 정확히 일치했다.

기사의 내용은 꽤 구체적이다.

소속사 연습생들에게 데뷔와 성공을 미끼로 술자리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한 부도덕한 연예 기획사 HR 엔터테인먼트.

지금 올리는 한 장의 사진은 내일 발간될 주간지 특집 기사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사건의 주모자로 HR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고희준을 지목했다.

"마담…."

"네?"

"당장 정 마담 불러와!"

"아, 네!"

서둘러 나간 도민식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에튀드'의 마담과 함께 돌아왔다.

고희준은 그녀의 눈앞에 스타 체이서의 기사에 실린 사진을 들이밀며 이를 갈았다.

"뭐? 보안이 확실해? 그럼 이건 뭔데? 이게 뭐냐고!"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조금 전,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가는 특실 손님들의 모습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마담은 종업원들에게 상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했었다.

그리고 알게 된 스타 체이서의 폭로 기사.

거기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에튀드'의 특실 안을 배경으로 한 게 분명했다.

"그럴 리가 없기는 무슨!!"

팍!

분개한 고희준은 손에 든 핸드폰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액정이 단숨에 깨지고 플라스틱 파편이 바닥에 어지러이 널렸다.

도민식은 망가진 자신의 핸드폰을 아까워할 정신도 없었다.

기사를 통해 폭로된 이번 일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다면, 깊이 관여한 자신 역시 무사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딩- 디디딩, 딩딩.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고희준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신경질적으로 재킷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던 그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큰형]

"……."

받지 말까?

기사를 확인하고 전화를 건 게 분명하다.

하지만….

고희준은 통화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을 무마시키려면 큰형의, GJ 그룹의 도움이 절실했으니까.

"…형?"

- 설명해 봐.

한 점의 온기마저 없는 냉랭한 음성이다.

"뭐, 뭘?"

- 몰라서 묻는 거냐?

모를 리가.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날조된 기사야. 사실이 아니라고."

- 그래?

"무, 물론이지. 내일 당장 허위사실유포로 기사 실은 놈들 전부 법적으로 대응할 거야. 그러니…."

GJ 그룹에서 날 좀 도와줘.

이렇게 말끝을 완성하려 했으나, 그전에 고희성이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 그래, 믿지.

"어?"

- 네 말을 믿겠다고.

"아…, 고마워. 큰형."

평소의 고희성답지 않은 반응이지만, 가족이니 잘못을 감싸주려는 건가 여기며 고희준은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고희성의 말에 그의 얼굴은 다시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은 없을 거다.

"…뭐?"

- 네가 그토록 결백하다 주장하니 곧 근거 없는 낭설로 밝혀지겠지.

"혀, 형. 하지만…."

-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길 빈다. 그럼 끊으마.

뚝-

"……."

고희준은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은 없다?

고희준에게 그 말은 자신을 포기했다는 말과 같은 소리로 들렸다.

고희준은 그렇게 GJ 그룹에서 완전히 내쳐져 버렸다.

* * *

점심을 먹고 1층의 카페에서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마시는 게 어느새 현시운의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식사를 함께한 팀원들은 인스턴트 커피가 낫다며 먼저 사무실로 올라갔다.

매번 얻어 마시는 게 미안해서 그런 핑계를 댔다는 걸 시운도 잘 알았다.

오늘도 회귀 전에 인연이 있었던 한신철의 가게에 들러 매번 마시던 걸 주문한 시운은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며 핸드폰을 들었다.

[실시간 검색 순위]

[1. HR 엔터테인먼트]

[2. HR 접대]

[3. 연예계 성 상납]

[4. 고희준]

[5. 엔터계 미투]

HR 엔터 관련 특집 기사를 실은 스타 체이서의 주간지가 나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검색 순위의 상위권을 관련 검색어들이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인터넷 신문사들을 통해 반복 양산되었고, 그 와중에 자신도 피해를 봤다며 주장하는 연습생들의 미투 운동까지 이어졌다.

HR 엔터뿐만 아니라, 다른 연예기획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연습생들의 고백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지금 엔터 계는 전·현 연습생들의 미투 운동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랬었지.'

시기만 다를 뿐, 사건의 진행 양상은 판박이다.

스타 체이서는 주간지 발행 전날 밤에 올린 예고편과 같은 인터넷 기사 하나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다음 날 아침, 주간지는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덕분에 스타 체이서는 창립 이후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록까지 달성했다.

하루 전 올라온 인터넷 기사보다 훨씬 상세한 내용과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주간지.

발간 당일, 포털사이트가 뜨겁게 달궈졌음은 당연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관련 기사들의 댓글 창은 불 위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 레알 : HR 관련 기사, 이거 진짜임?

└ 팩트체크 : 사~실!

- 관망증환자 : 경찰에서 조사해보고 발표하겠죠. 제대로 된 결과 나오기 전까진 설레발들 좀 치지 맙시다.

└ 의심암말기 : 검찰, 경찰, 정치궈는 미들 게 못 됨. 그드릐 마른 반대로 드러야 마즘.

└ 교정부직원 : 님아, 맞춤법 좀….

└ 의심암말기 : 뭐니, 이 진지충은.

- 절레절레 : 역시 연예계는 추러워. 더하다!

- 현실일리가 : 뭐야, 그럼? 스타 체이서 주간지 기사 내용이 다 맞는다면…? 지금 활동하고 있는 HR 엔터 소속 걸그룹 중에서도 여기에 연루된 멤버들이 있단 소리잖아?!

└ 팩트체크 : 딩동댕~

- 신고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신고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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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g9733 : 미친 ㅅㅐㄱㄱㅣ들. 평생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ㅈㅣㄹㅏㄹ이나 떨어라!

└ 181818 : 너였냐? 댓글 신고한 게?

└ 또라이만보면짖는개 : 왈! 왈!

"……."

대다수가 연습생을 동원하여 술자리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한 HR 엔터와 대표 고희준을 규탄하는 댓글이지만, 개중엔 피해자인 연습생들을 인신공격하는 글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대가를 바라고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둥,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둥.

익명성에 기대어 남을 찌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냈다.

어차피 소속사인 HR 엔터가 와르르 무너지게 생겼으니, 악플에 대한 대처를 못 할 거로 여기고 이러나 본데….

이번 특집 기사를 쓴 신명훈 기자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아마 지금도 여러 악플을 캡처하며 증거를 모으고 있겠지.

취재에 응해준 피해자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악성 댓글에 가차 없이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정민철을 통해 전해 들었다.

시운은 지금도 손가락을 함부로 놀리는 악플러들의 명복을 미리 빌어줬다.

"주문하신 아이스 바닐라라떼 나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친절히 배웅하는 한신철을 향해 밝게 웃음으로 화답한 후 카페를 나온 시운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어?"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강하민이었다.

"외근 벌써 다녀오는 겁니까?"

"뭐, 별로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잖아."

강하민의 대답에 시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 강하민은 검사를 관두고 변호사로 거듭난 김현석과 미래투자신탁의 법률 자문 계약을 맺고 왔다.

김현석의 변호사 사무실은 서울대입구역 부근이며 지난주에 정식으로 개업을 했다.

시운도 개업식에 참석해 앞으로의 발전을 빌어줬었지.

"식사는 했어요?"

"그럼. 현석이 녀석이랑 간단히 해결했어."

원래라면 슈퍼 을의 처지인 김현석이 미래투자신탁에 몸소 찾아와 계약을 청해야 마땅했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맡은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시운의 핸드폰 화면을 슬쩍 들여다본 강하민은 쓴웃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김현석 변호사님, 첫 사건부터 꽤 힘든 싸움을 하시겠군."

그 말에 시운도 작게 웃었다.

HR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접대 및 성 상납 사건.

특집 기사와 별개로 신명훈은 함수아와 함께 다른 피해자들을 설득해 HR 엔터와 고희준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

그에 반발해 고희준 측 역시 함수아와 피해자들에게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진행한 상태.

우연히도 피해자인 연습생들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가 바로 김현석이었다.

시운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다만, HR 엔터 대표인 고희준이 대한민국 3대 로펌 중에서도 승률이 가장 높은 법무법인 한률에 거액의 수임료를 내고 변호를 맡겼다는 소식에 어지간한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길 꺼린 까닭이다.

어떡해서든 피해자들을 도우려던 신명훈은 '공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사 모임', 통칭 공사변으로 알려진 인권 변호사 단체의 문을 두드렸고,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김현석이 자발적으로 변호를 맡겠다고 나섰다.

"현석이 녀석…. 정말 정치에 관심 없는 게 맞을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시운의 대꾸에 강하민은 턱으로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 지금 이만큼 주목받는 사건이 어딨어. 승소하든 패소하든 이 사건의 담당 변호사가 된 것만으로도 현석이 이름이 알려질 기회인 거잖아."

"그건 그렇죠."

"의도한 거면 내 친구지만 무서운 놈이고…."

시운은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우연이면 운이 좋은 거네요."

"그렇지."

강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운의 말에 긍정했다.

회귀 전에도 고희준의 대응 방법은 비슷했다.

돈을 들여 승률 좋은 로펌에 수임을 맡겼고, 피해자들과 적당히 합의함으로써 실형까지 선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연 이번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김현석에게는 좋은 기회임은 분명했다.

그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알고 있는 시운은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아, 참! 다음 주 월요일부터 면접 있는 거 알지?"

5층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하는 도중에 강하민이 입을 열었다.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럼요. 경영지원팀장님께 미리 들었습니다."

"2팀원 뽑는 거 아니라고 대충 임하려 하지 말고. 제대로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운과 강하민은 헤어져서 각자의 일터로 향했다.

HR 엔터테인먼트 접대 사건은 한 달 뒤, 재판 결과가 나왔다.

고희준 징역 3년.

도민식 징역 1년 6개월.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던 그들이 이토록 중형을 받게 된 이유는 이랬다.

함수아와 도민식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담긴 녹음 파일.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등장.

고희준은 자신은 몰랐던 사실이며, 도민식이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고 몰아갔다.

사전에 협의가 된 사항이 아니었던지라, 재판 당시 혼자 덤터기를 쓸까 두려웠던 도민식이 그 자리에서 모든 진실을 밝혀버렸다.

덕분에 법정에서 멱살잡이하는 둘의 진풍경을 보게 되었다.

재판부는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고희준에게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해 그 같은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김현석의 이름이 대중에게 조금이나마 알려졌다.

아울러, HR 엔터의 마수를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 빅스텝은 시운의 조언대로 위튜브를 통해 블루비쥬를 알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제의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 * *

밤새 식은 선선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늦여름의 오전.

강남구 신사동의 길 위를 택시 한 대가 달려갔다.

곧 가로수길에 접어든 그 택시는 몇 분을 더 나아가다 미래빌딩이라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덜컥-

차 뒷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검정 정장 바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반짝반짝 광을 낸 구두가 길 위에 내려섰다.

"잔돈은 됐습니다."

한껏 자신감이 충만한 목소리에 택시 기사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안녕히 가세요."

택시 기사의 호의 가득한 인사를 받으며 내린 남성은 미래빌딩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 건물을 감상하듯 올려보았다.

"여긴가, 앞으로 내가 일할 곳이?"

거만함이 돋보이는 입매와 눈.

그는 오늘 미래투자신탁에 면접을 보러 온, 진상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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