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46화 (46/139)

§046화 정보 유출(1)

"장세연 씨 맞으시죠? 여기 앉으십시오."

웃으면서 자신을 맞이하는 맞선남의 행동에 장세연은 한동안 말없이 그를 째려봤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네? 뭘 하긴요. 당연히 장세연 씨랑 맞선을 보는 겁니다만."

"하아…."

장세연은 한숨과 함께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에 만족스럽다는 듯 맞선남은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진도 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우석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놀랍게도 장세연의 오늘 맞선남은 애초에 전달받은 세흥은행장 아들이 아닌, '디오니소스' 오너이자 친구인 박우석이었다.

"…왜 네가 이 자리에 있는 거야?"

"왜라뇨?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장세연 씨와 맞선을 보기 위…."

"장난 그만하고."

살짝 화가 난 듯한 장세연의 얼굴에 박우석은 아쉽다는 혀를 한번 차고는 대답했다.

"왜긴. 집에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맞선 보라며 다짜고짜 네 사진을 내밀잖아. 뭐, 그래서 여기 있는 거지."

"하!"

장세연의 황당하다는 반응에 박우석은 그저 웃음 지을 뿐이다.

사실 박우석의 말은 거짓이다.

오늘의 만남은 그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 원해서 만들어진 거니까.

예전, 장세연이 맞선을 보고 '디오니소스'로 와서 우스갯소리처럼 했던 말.

- 아저씨랑 싸우고 이렇게 집만 나오지 않았으면, 다음 맞선 상대가 너였을지도 몰랐겠네.

박우석에게 그 말은 몇 날 며칠이고 잊히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이젠 그만 아버지와 화해하라고 옆에서 부추겼고, 아버지도 꾸준히 비서실장을 보내며 그만 회사로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우석은 조건을 걸었다.

장세연과의 맞선을 성사시켜 주면 다시 집으로, 또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장철구 회장에게 어렵사리 사정을 했는지 박우석의 아버지는 아들이 원하는 자리를 오늘 만들었다.

맞선을 통해 장세연과 이어지길 바라는 기대는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질 인연이었으면 예전에 고백했을 때 진작 되었었겠지.

다만, 언제나처럼 친구가 아닌….

한 번쯤은 이런 식으로 남자와 여자로 대면하는 자리를 가지고 싶었다.

그게 박우석의 작은 바람이었다.

물론 이 자리를 통해 장세연과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껏 인상을 쓰는 녀석을 봐선 헛된 희망일 뿐이다.

"장철구 회장이 이걸 허락했다고?"

아버지라 지칭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재계 서열 7위의 진도 그룹.

이젠 배다른 동생의 자리를 넘볼 힘이 없다고 여겨 사업에 도움이 될 대상을 물색하기라도 하는 걸까?

설마….

자신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을 건데 그럴 리가 없지.

장세연의 의문에 박우석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우리 관계를 잘 아시잖아. 맞선으로 이어 놔봤자 안될 사이란 걸 알고 그러셨겠지."

"음…."

박우석의 설명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장세연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

장세연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막상 저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박우석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래도 가문끼리 약속을 하여 만든 자리니 서로 예의는 다해보도록 할까요? 장세연 씨."

"후, 후후. 무슨 역할극이라도 하잔 소리야?"

"안될 게 있나요?"

"뭐, 안될 건 없겠죠."

장세연의 승낙에 박우석은 웃으며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진도 그룹 부회장 직을 맡고 있는 박우석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장강유통 부사장, 장세연이에요."

그렇게 마치 처음 만난 남녀처럼 서로를 소개한 둘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거. 쉽지가 않네."

"그만하자. 닭살 돋으려고 해."

비록 짧았지만, 그리고 이런 연극 같은 상황이지만 박우석은 만족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떻게? 차라도 마셔야지. 뭘로 시킬까? 커피? 주스?"

"밥."

"응?"

"배고파. 밥 먹자."

원래 이 자리에 나올 때만 해도 전처럼 간단히 차나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점심도, 저녁도 아닌 어중간한 오후 네 시로 잡았고.

하지만 오늘의 맞선남이 박우석이다보니, 장세연은 편하게 저녁을 조금 일찍 먹기로 했다.

"그럴까, 그럼. 여기 티본스테이크가 맛있기로 유명해."

"그래? 얼른 시켜."

박우석은 웨이터를 불러 장세연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로 주문했다.

잠시 후에 나온 전채요리로 식사를 시작한 둘.

박우석은 남몰래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세연을 바라봤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조금 전의 장난과 같은 상황에 기대어 본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으니, 나를 이용해서라도 그걸 이루라고.

자신이 물려받게 될 진도 그룹의 힘을 온전히 너를 위해서 쓰겠다고.

하지만 박우석은 막 썰어서 입으로 넘기는 고기 조각과 함께 그 말들을 목뒤로 넘겼다.

장세연 본인보다 그녀를 잘 아는 그로선 다음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불을 보듯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박우석은 지금의 관계나마 유지되도록 오늘도 본심을 장세연 앞에서 감췄다.

* * *

이화 그룹 오너 가의 직계인 이재민은 남들이 볼 땐 그룹 회장직에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장자인 이재훈이 그룹 부회장직에 오르면서 표면적으로 후계 구도가 완성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평소 이재민이 보인 행동들이 권좌를 노리는 사람 같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화 그룹 오너 가는 재벌 가의 흔한 다툼조차 없이 화목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이재민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차남으로 태어난 걸 무척 분하게 생각하며, 언제라도 기회가 있다면 형의 자리를 빼앗고 싶어 하는 성정의 인물이다.

역사 속 인물 중 비슷한 위인을 뽑으라면 세조와도 비슷하달까?

다만, 그룹 회장인 아버지의 의향이 형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자신에겐 그 결정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 만큼 힘이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아 몸을 낮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재민은 나중을 기약하며 자신이 사장으로 부임해있는 이화증권을 성장시키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증권, 카드, 생명, 보험 등의 금융계 회사들을 모아 계열 분리한 후 역으로 지주회사인 이화리조트를 공략하는 것.

아무리 빨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나 이룰 수 있는 꿈이기는 하다.

이재민은 그날을 고대하며 하나하나 물밑에서부터 계획을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증권, 카드, 생명, 보험 등에 자신의 사람을 조금씩 늘렸고, 따로 운용하는 비자금으로 이화증권의 차명 주식을 매집하고 있는 중이다.

평소 아버지와 형의 말에 순응하고 고분고분했기에 아무도 그의 이런 행동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다들 이재민에 대해 욕심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고, 그 역시 그런 척 훌륭히 연기를 이어온 덕분이다.

이렇게 계획대로만 이어진다면 추후 일발 역전을 노려볼 수도 있는데….

요즘 그에게 고민이 하나 생겨버렸다.

"…너무 실적이 저조해."

모니터에 떠있는 이화증권 2/4분기 실적을 보며 이재민이 중얼거렸다.

그룹의 주력 사업이 증권이 아니었던지라 국내 수위권에 드는 수호증권과 삼정증권에 비해선 사세가 많이 약했다.

전년도 말 기준 국내 증권사 순위는 6위.

어중간하고 애매한 포지션이다.

추후 계열 분리될 이화 금융 그룹의 지주회사로 증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재민으로선 지금의 실적이 몹시도 탐탁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비책은 생각해뒀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해서 이재민은 대타로 세울 누군가를 선별하고선 비서실과 연결된 인터폰을 눌렀다.

삑-

- 네, 사장님.

"증권분석팀장 내 방으로 오라고 좀 전해줘요."

-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재민은 2/4분기 실적 보고서를 뒤적이며 기다렸고, 몇 분 뒤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돌렸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십 대 중반의 남성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장님."

"으음, 일단 거기 앉아보세요."

응접용 소파를 가리킨 이재민은 책상 앞에서 일어나 상석으로 걸어가 자리했다.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 리 없는 안후석은 긴장한 얼굴로 눈알만 또르르 굴렸다.

"2/4분기 실적 보고서 봤겠죠?"

"아, 네! 확인했습니다, 사장님."

"보고 뭘 느꼈나요?"

"…저, 그것이."

"음, 편하게 말해봐요. 안 팀장을 질책하려고 부른 것도 아닌데."

"……."

안후석에게 그 말은 언제든 질책할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긴장감에 침을 한번 삼킨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전부터 한일 간의 날선 감정 대립 때문에 투자자들 심리가 많이 위축되어 전년보다 다소 떨어지는 실적이 나온 것으…."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

이재민은 두 손을 깍지 끼며 안후석을 지그시 바라봤다.

"안 팀장의 말처럼 외부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라면 다른 증권사들 역시 실적이 저조해야겠죠? 근데 봐요. 1위 증권사인 수호증권의 실적은 전년도 같은 분기보다 14%나 늘었어요."

"…죄송합니다. 제 역량이 부족하여 실적을 올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무슨 그런 말을. 우수한 인력이 부족한가요? 그럼 허심탄회하게 말해봐요. 즉시 보충해 줄 테니."

표면적인 말과는 달리 그 말속엔 실력이 없으면 실력있는 팀장으로 갈아치워주겠다는 엄포가 담겨있었다.

"……."

이재민의 말뜻을 짐작한 안후석은 대꾸도 못하고 진땀만 뺐다.

그의 주눅 든 모습에 겁은 이 정도로 줬으면 됐겠다 여긴 이재민은 에둘러서 살 방도를 알려줬다.

"근데 영화나 드라마 보면 그런 장면들이 있더라고요?"

"네? 어떤…."

"왜, 그런 거. 실적이 좋은 증권사나 투자사에 스파이를 심어 투자 정보를 빼내오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참 대단하지 않아요? 하긴, 영화나 드라마니 그런 게 가능하겠지만. 안 그래요?"

"하하…. 네. 그, 그렇습니다."

안후석의 이마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금 이재민이 자신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다른 회사에 사람을 심어 유용한 정보를 빼내오라는.

"다음 분기는 지금보다 더 분발해 줬으면 해서 부른 겁니다."

"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만 나가서 일 보세요."

"네, 사장님."

다시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안후석의 머릿속은 온통 방금 이재민이 내린 지시를 어떻게 완수하느냐였다.

막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 안후석의 귀로 지나가듯 내뱉는 이재민의 혼잣말이 들렸다.

"요새 미래투자신탁이라는 데가 그렇게 실적이 좋다던데…."

타깃 역시 이재민이 미리 정해뒀었다.

'미래투자신탁이라….'

안후석은 속으로 타깃 명을 되뇌며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강하민이 경영지원팀 나영현 차장에게 채용공고를 올리라고 지시하던 7월 말 경에 있었던 일이었다.

* * *

미래투자신탁에서 매주 월요일은 지난주 실적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는 날임과 동시에 전주에 계획한 차주 투자 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회사 대표인 강하민의 투자 철칙이 많이 반영되어 중·장기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몇몇 투자 시점이 애매한 종목들을 제하면 보통 월요일에 운용 자금이 투입되는 편이다.

현재 투자운용 팀은 총 세 개로 늘어났지만, 운용자금의 비율은 설립 초기 현시운과 협의한 대로 유지 중이다.

강하민 대표가 직접 핸들링하는 투자운용 1, 3팀이 각각 25%씩.

나머지 50%의 운용자금은 시운의 투자운용 2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에 따른 1팀장 장한진과 새로운 3팀장 김문성의 불만은 전혀 없었다.

지금의 사세 확장에 시운의 2팀 공이 큰 것을 그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또한 비율이 25%라고 해도 전에 운용하던 자금보다 금액이 점점 늘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기도 했으니까.

화요일 오전에 올라온 전주 실적 보고서와 차주 투자계획서를 살펴보던 시운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이거, 왜 이래?"

전주 실적에 대한 수치와 도표를 확인하던 중 나온 혼잣말이다.

자신과 팀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선정한 투자 종목의 수익률이야 항상 들쑥날쑥했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유레카를 이용해서 진행한 투자 건의 수익률은 검색 결과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었다.

근데 근래 들어 조금씩 수익률이 깎여나갔다.

그것도 정확히 8월 말부터.

지금이 10월 중순이니, 거의 두 달 가까이 그래왔다는 소리다.

처음엔 평소보다 오차 범위가 커졌구나 생각하고 넘겼는데 두 달간 비슷한 오차율이 발생하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8월 말이면….

새로 채용한 직원들이 출근을 시작한 무렵이다.

"저기…. 부장님."

실적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데, 전민아가 다가와 시운을 불렀다.

"네? 무슨 일이죠?"

시운의 반문에 전민아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누가 제 컴퓨터를 몰래 건드리는 것 같아요."

"네?"

2팀에서는 전민아가 실제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녀의 컴퓨터가 바로 그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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