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51화 (51/139)

§051화 새로운 투자회사

"왜 직접 나오셨어요. 직원을 보내도 됐을걸."

강하민과 얼굴이 닮았으면서도 성격은 보다 쾌활한 대런은 허허 웃으며 시운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회사 내에는 저 말고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어 놔서 말이죠."

"…저 영어 할 줄 안다고 분명 말씀드렸습니다만?"

"허허…. 이쪽입니다. 가시죠."

괜히 말을 돌리며 대런이 앞장섰다.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시운은 확신했다.

전에 자신이 한 말을 까먹은 게 분명하다고.

매사에 철저한 동생 강하민과 달리 대런은 일 외적으로 좀…, 덤벙거렸다.

그래도 업무적인 면에선 강하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스피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지만.

"인제 그만 말씀 놓으세요. 하민이 형도 업무 외적인 자리에선 편하게 말을 놓습니다."

"그건 안 되죠. 평소 태도가 공적인 자리에서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회사의 대주주를 그리 홀대할 순 없죠."

이런 부분에선 또 고지식하다.

괜히 중간에 낀 자신의 처지가 난처하게 말이다.

공항을 나온 시운은 대런의 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향했다.

뉴욕 다섯 개의 자치구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브루클린은 대부분을 주택지가 차지했다.

그와 달리 스피어의 사무실이 있는 맨해튼은 비록 면적은 가장 작지만, 뉴욕시의 중심부이자 명실상부 세계 상업·금융·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초고층의 마천루와 유명 회사들이 즐비했다.

"……."

브루클린교를 통해 이스트강을 건너자 높다란 빌딩 숲이 시운을 맞이했다.

초행길임에도 왠지 낯설지가 않다.

창밖을 바라보는 시운의 시선에서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대런이 웃으며 말했다.

"왠지 낯익지 않습니까?"

"네? 아, 네…. 그런 것 같네요."

"다 영화 덕분이죠."

뉴욕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그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들도 제법 되었다.

대런의 설명에 시운 역시 그럴듯한 이유라고 느꼈다.

왠지 저 높은 빌딩 사이로 쫄쫄이를 입은 심약한 소년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닐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차는 십여 분을 더 달려 뉴욕 시청 인근에 있는 스피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현시운입니다."

시운은 대런의 소개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정체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시운은 자신을 스피어에 자금을 댄 회사 직원으로만 간단히 소개했다.

대런 역시 미리 언질 받은 대로 시운과 말을 맞췄다.

당시 한화로 500억 원 상당이었던 4,250만 달러로 시작한 스피어는 현재 12억 700만 달러까지 자산이 증가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1조 4,800억 원을 넘는다.

6월에 개업해 근 반년 만에 서른 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다.

비장의 무기 삼아 만든 회사라 빨리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래투자신탁보다 더 많은 정보 이용권을 할애했었고, 결과는 눈부셨다.

너무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다 보니 역효과도 있었다.

미래투자신탁과는 달리 조직 운영이 비효율적이고, 업무의 혼선도 잦았다.

문제를 인식한 대런이 최근 유능한 관리 인원을 대거 채용하고 있으니 이도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시운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온 이유는 두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중 첫 번째는 이곳 스피어에서 인재를 발탁하는 것.

영국 런던과 대만 타이베이를 거점으로 스피어 말고도 새로운 해외 투자회사들이 준비되고 있다.

시운은 대런처럼 그곳을 관리하며,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여줄 파트너를 구하러 이곳에 들렸다.

나중에 장강을 공략할 때, 스피어만으로 주식을 매입하면 너무 눈에 띌 것 같다는 강하민의 조언에 시운은 해외 투자회사를 여럿 늘리기로 했다.

그 시작이 영국과 대만이다.

현재 두 거점에 사무실도 구해놓았고, 영업 신고도 끝난 상태이며, 직원들도 거의 다 채용했다.

이것 때문에 11월부터 강하민과 시운은 한 달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어야만 했었다.

초기 자본금은 각 1억 달러.

자금은 스피어에서 나왔다.

물론 신설될 해외 법인 두 곳도 스피어처럼 비장의 무기로 사용할 거라 서로의 접점을 줄여야 했었고, 이번에도 하와이의 'G&H Property'가 이용되었다.

스피어는 11월 초, 배당 결정을 앞당겨서 진행했다.

총 이억 달러가 G&H로 송금되었고, 이는 다시 둘로 나뉘어 영국과 대만의 투자회사 계좌로 옮겨졌다.

G&H의 주거래 은행인 'Bank of U.S.A'는 고객 정보의 보안에 특히나 철저한 곳이다.

미 CIA의 정식 수사 요청이 아닌 이상에는 고객의 계좌 내역을 절대 공개하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외부에서 G&H의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제 두 곳의 수장을 결정하고, 다음 달 초부터 정상적으로 굴리기만 하면 된다.

처음엔 현지에서 영입해볼까도 했지만, 실무직 직원과 달리 시운과 긴밀히 소통해야 할 대표의 자리이기에 쉽게 뽑을 수도 없었고, 감염병 유행까지 남은 시간도 넉넉지 않았다.

그래서 시운은 스피어의 직원 중 희망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보고 선발하기로 했다.

1차 선발은 대런에게 전적으로 맡겼고, 그는 다섯 명의 후보를 최종 선발에 올렸다.

이제 시운의 최종 결정만이 남았다.

오후에 있을 면접 자리에서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직원들과 인사를 모두 나눈 후, 시운은 대런과 함께 그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면접 관련 사항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네?"

대런은 방금 제대로 들은 건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의 반문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시운.

그 모습에 대런은 자신이 제대로 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저 혼자서 면접을 진행하라고요?"

그에 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태껏 함께 일하며 옆에서 쭉 지켜봤을 테니, 대런만큼 그들을 잘 아는 이도 없잖습니까. 그만큼 필요한 질문들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괜히 제가 옆에서 몇 마디 더 거들어봤자 번거롭기만 하죠. 대런이 그들과 면접을 진행하면 전 옆에서 지켜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으음…."

대런으로선 의아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직접 묻고 또 답을 들고 해야 상대방의 능력과 사람 됨됨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로서는 말이다.

"준비한 질문을 시운과 나눠서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대런의 절충안에도 시운은 손을 흔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면접을 보게 될 다섯 명도 대런이 면접관이면 좀 더 편하게 자기 소신을 밝힐 수 있을 겁니다."

확고한 시운의 뜻에 대런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추가할 부분이 있을까 싶어 대런은 준비한 질문 사항들을 시운과 공유했다.

그런 뒤, 둘은 스피어의 향후 투자 방향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오전을 보냈다.

점심을 사무실 근처의 인도 음식점에서 해결한 시운과 대런은 건물 1층 카페에 들러 휴식을 취하다가 면접 예정 시각인 오후 두 시 무렵이 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왔다.

대런을 따라 회의실로 발길을 옮긴 시운은 거기에서 파트너가 될 다섯 명의 후보를 만났다.

다들 오전에 시운과 인사를 나눈 적 있는 얼굴이었다.

"모두, 월스트리트 저명인사의 자서전 한두 권쯤은 읽고 왔겠죠?"

대런의 우스갯소리에 다섯 중 둘만 웃을 뿐, 전반적으로 잔뜩 긴장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테지.

불과 반년 전쯤에 입사한 회사가 서른 배 이상의 급성장을 이뤄냈고, 자금을 댄 회사에서 영국과 대만에 스피어와 같은 투자회사를 설립하려 한다.

거길 맡을 파트너를 자신 중에서 고른다는 말이 나온 상황이었고 말이다.

십수 년을 일해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가 1년도 채 안 돼서 왔다.

이역만리라고 해서 이를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중차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인 만큼 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순전히 거짓말일 거다.

"다들. 너무 굳어있지 말라고. 평소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풀어보려 대런이 애써 웃으며 말해보지만 크게 소용은 없었다.

이따금 후보들의 시선이 시운을 향했다.

아무래도 스피어가 주관하여 진행하는 해외 지점 설립이 아니다 보니 자신들의 보스인 대런이 아닌, 오늘 처음 만난 동양인 청년의 손에 결정권이 쥐어져 있다고 생각들 하는 눈치다.

물론 그 추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시운은 그들을 향해 살짝 웃어주고는 한발 물러서며 구석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시운이 면접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후보들은 오전에 대런이 그러했듯이 다들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자,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해볼까요?"

대런의 선언에 다섯 명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시선을 돌렸다.

"우선, 조. 런던의 투자회사에 지원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대만 쪽은 아무래도 여기와 환경이 아주 다를 것 같아 초기 적응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할 거로 짐작됩니다. 그 때문에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가 가장 컸습니다. 그에 비해 아무래도 영국은 미국과 정서적으로도 유사점이 많은 곳이다 보니, 현지 직원들과 융화도 잘 될 것이고 보다 빨리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곧 실적으로 이어질 거라는 저의 판단에 의거…."

시운은 1 대 5의 면접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자유의 나라, 미국답게 면접 분위기는 대한민국처럼 딱딱하지 않았다.

국가별 직장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반년간 대런과 함께 일해온 탓에 편안한 분위기가 연출된 게 아닌가 짐작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시운은 가져온 수첩에 후보들의 신상명세를 간추려 적어나갔다.

39세 백인 남성 조 휴스.

42세 흑인 남성 제이크 버그먼.

34세 아시아계 여성 헬렌 리우.

45세 히스패닉계 남성 호세 곤잘레스.

37세 백인 여성 캐리 모리스.

대런이 다들 괜찮은 인재들이라고 장담했던 대로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의욕은 넘쳐났다.

근 한 시간 반가량 면접은 이어졌다.

"자,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결과는 다음 주 월요일에 알려드리죠."

대런의 면접 종료 선언과 함께 다섯 후보는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회의실을 나섰다.

스스로 답변에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제대로 된 응답을 못 했다는 자책에 얼굴색이 어두운 이들도 보였다.

그들이 퇴장하고 난 뒤, 대런은 손수 문을 닫아걸고는 시운과 마주 보는 자리로 와서 앉았다.

"시운, 어땠습니까. 마음에 드는 적임자는 찾아낸 겁니까?"

대런은 자신의 역할이 1차 선발과 최종 면접까지란 걸 인지하고 있었다.

최종 결정은 오로지 시운의 몫.

그래도 그의 선택에 작은 도움은 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시운은 핸드폰 액정화면 위로 뜬 글자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씩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수첩 한 면에 뭔가를 써 내려가더니 이내 찢어서 대런에게 내밀었다.

"여기 적혀있는 대로 결과 발표해 주세요."

"……?"

후보들에 대해 뭔가 하나라도 자신에게 물을 것으로 예상한 것과 달리 시운은 단번에 결과를 내버렸다.

종이를 건네받은 대런은 거기에 적힌 시운의 선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국 런던의 '블레스' 대표 - 제이크 버그먼]

[대만 타이베이 '티엔유' 대표 - 헬렌 리우]

그 둘은 대런이 면접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매긴 순위에서 하위권을 차지했던 이름들이다.

"아, 그리고…."

방금과는 달리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시운.

그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조 휴스와 호세 곤잘레스 말입니다."

"네, 그들은 왜요?"

유력한 후보로 대런이 꼽았던 이들이다.

시운은 대런을 똑바로 마주하며 쓴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예의주시하세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네?"

다른 생각? 옆에서 그런 게 보였다고?

선뜻 믿기지 않는 말이다.

"확실합니다. 분명 언젠가 회사에 손해를 끼칠 사람들입니다."

확신 어린 말에 대런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이다.

시운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핸드폰의 앱을 종료시켰다.

종료 직전의 화면은 유레카의 검색창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도 검색어와 결과가 나와 있는.

[스피어의 회의실에서 면접을 본 다섯 후보 중, 회사를 배신하거나 몰래 이득을 취할 사람은?]

[조 휴스, 호세 곤잘레스]

캐리 모리스가 투자회사 파트너에서 떨어진 이유?

입매가 시운이 싫어하는 누군가와 상당히 비슷해서였다.

개인적인 비호감의 발로.

애석하게도 그녀는 진상진과 입매가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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