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COVID-19(1)
12월 20일 금요일 오전 9시에 뉴욕에 도착한 시운은 같은 날, 오후 4시 무렵에 신설 투자회사 '블레스'와 '티엔유'의 파트너를 뽑은 뒤 다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 배웅 나와준 대런이 저녁이라도 먹고 가는 게 어떻겠냐며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시운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며 거절과 함께 미안함을 표시했다.
미국에서의 일을 마치는 대로 얼른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세계적 위기에 대응할 준비를 하려면 몸이 여러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시운이 미국에서 해야 할 두 번째 일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인재 영입.
다만, 스피어에서처럼 투자회사를 대신 운영해 줄 파트너는 아니다.
- 생각보다 기술 완성이 많이 앞당겨질 것 같습니다. 애초 계획한 것보다 1년은 빨리 말이죠.
이달 초, 시운이 드림비전을 방문했을 때, 대표인 한진형이 알려온 사실이다.
이에 따라 넥스트 설립을 위한 준비 과정을 1년씩 앞당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드림비전이 개발해낼 오감 동기화 기술, 브레인 컨택팅(Brain-Contacting) 하나만으로 가상현실 콘텐츠 기업 넥스트가 저절로 완성되는 건 아니다.
브레인 컨택팅이 필수 기술이긴 하지만, 넥스트가 만들어낼 '리얼 월드'에 접속할 수단일 뿐이었다.
실제의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해선 그밖에도 많은 요소와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리얼 월드'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계할 기획자는 물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그래픽 디자이너,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세상이 되게끔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짤 프로그래머도 필수다.
대부분의 고급 인력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충원 가능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유저가 의도하는 말과 행동을 '리얼 월드'에 사실적으로 투영시킬 컨트롤러 인터페이스 기술과 엔지니어만큼은 국내에서 대체가 불가능했다.
BCI(Brain-Computer Interface)를 기반으로 하는 명령 체계이며, 프로그램이다.
이쪽 분야만 십수 년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개발자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기술.
회귀 전, 드림비전의 기술을 인수한 고글이 넥스트를 통해 '리얼 월드'를 정식 서비스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컨트롤러 인터페이스 기술 완성에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당시 넥스트의 CEO였던 한진형이 실리콘밸리의 개발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영입함으로써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허비한 시간만 5년.
시운은 굳이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두 번째 목적지가 바로 넥스트로 영입되었던 개발진이 있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다.
사전에 이메일과 전화로 서로 간의 대화는 충분히 오고 갔다.
이젠 얼굴을 마주하고 조건을 조율한 뒤, 손을 잡을지 말지 결정만이 남은 상황.
시운은 웬만하면 그들의 조건을 다 들어줄 생각이다.
그만큼 넥스트를 통해 완성해낼 '리얼 월드'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니까.
'샌프란시스코 행 출발 시각이 오후 6시 5분이라….'
시운은 발권 후, 탑승장 위에 걸린 시간표를 확인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시차는 3시간.
비행시간이 다섯 시간쯤 되니 도착하게 되면 현지 시각으로 오후 8시를 넘기게 될 거다.
어차피 약속을 잡은 날은 내일이다.
하와이에서부터 9시간 이상을 날아와 뉴욕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다시 5시간 이동.
어느 정도의 휴식은 필요했다.
"대런, 그만 가보세요."
"매우 아쉽습니다. 근사한 데서 술이라도 한잔 대접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감정을 표정으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대런에게 시운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그렇게 답하면서도 한동안은 실현되기 힘든 일이라고 혼자 되뇌어본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도 잘 풀리길 바랍니다."
"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대런과 일별한 시운은 탑승장에 들어섰다.
신원 확인과 항공권 검사를 받고 한 시간가량 더 대기한 후, 비행기에 몸을 실어 미 서부 캘리포니아 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 지나 다음날, 실리콘밸리의 외곽에 위치한 IT기업 'M&D'의 사무실 안.
이곳의 둘뿐인 직원이자 공동 창업자인 마이클과 더그는 동양인 사내가 제시한 계약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보곤 미간의 주름을 활짝 폈다.
"미스터 현.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 M&D는 앞으로 드림비전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의 긍정적인 답변에 마주 앉은 시운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로써 짧았던 미국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 * *
2019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위생건강위원회는 원인불명의 폐렴이 27명에게서 집단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9일 뒤인 2020년 1월 9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에서 발생한 이번 집단 폐렴의 발병 원인이 SARS, MERS처럼 중증 호흡기 증상을 유발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확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중국 내에서 2003년의 악몽인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재림이라고 외쳐댔지만, 중국 정부는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며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낙관적인 당국의 전망과는 달리 사태는 악화되어갔다.
1월 11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13일과 15일에는 태국과 일본에서도 확진자가 나타났다.
춘절을 앞둔 국민의 대이동으로 중국 내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뒤늦게 우한시 지방정부에서 시 전체를 봉쇄 조치했지만 이미 국내로, 해외로 확산된 뒤였다.
그리고….
"콜록, 콜록콜록!"
2020년 1월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거친 기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막 우한에서 입국한 36세 중국인 여성에게서.
대한민국 최초의 확진자 발생이었다.
* *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제네바 현지 시각 2020년 2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확정한 중국발 감염병의 공식 명칭인 COVID-19의 국문 표기이다.
"흠…."
퇴근 후,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인터넷상에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던 현시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결국,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감염병이 확산되었다.
아직 국내 확진자 수는 서른 명 아래지만, 이번 주말이 지나면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원인은 종교 모임과 의료 시설에서의 집단 감염.
"코로나19…."
아직 널리 불리지 않는 명칭이다.
이보다는 신종 코로나란 이름으로 세간에 더 알려진 상태.
하지만 회귀한 시운에게는 코로나19라는 약칭이 훨씬 귀에 익다.
회귀 직후부터 시운은 많이 고민했었다.
곧, 전 지구적 재앙이 닥칠 텐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박애 정신으로 이를 막아낼 것인가, 아니면 이를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할 것인가.
오랜 고민 끝에 시운이 내린 결론은 막을 수 있다면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서라도 남을 도우려는, 이타심에서만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만큼이나 이로 인한 손실도 제법 되었다.
목표로 세운 미래 그룹 설립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 건 뻔했고, 장기 경기 침체로 수익을 극대화할 기회마저 줄어들 것이다.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글로벌 증시가 대폭락하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단기에 많은 수익을 벌 수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조금 덜한 수치일 뿐이다.
해서 시운은 코로나를 아예 근절시키고자 계획을 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불가능했다.
이유는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있었다.
회귀 전, 코로나19에 대한 여러 음모론이 대두됐었다.
혹자는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실수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고 하고, 당시 무역 전쟁 중이던 미국이 남몰래 중국 본토에 퍼뜨렸다고도 했다.
끝내 2038년까지도 이런 음모론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꽤 많은 사람이 이를 믿었고, 시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확산시킨 범인은?]
한 장의 정보 이용권을 사용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는 이랬다.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의 자연 진화에 따라 발생하여 확산하였습니다.]
"……."
음모론을 맹신했던 대가를 정보 이용권 한 장을 날리는 것으로 치렀다.
자연 진화에 따른 발생.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추가로 정보 이용권을 사용해서 우한의 어느 지역에서 처음 발병했는지는 알 수 있겠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연 발생했으니, 거길 막아낸다 해도 결국 어디서든 터져 나올 상황인데.
매번 막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보 이용권에 한도가 있기에.
또한, 자신이 그렇게까지 이타심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무슨 지구방위대도 아니고 말이야….'
해서 시운은 다시 마음을 바꿔먹었다.
막을 수 없다면 종식을 앞당기자고.
그래서, 1월 초부터 중순까지 주가가 바닥을 기는 한 제약회사의 지분을 매집하여 최대 주주가 되었다.
손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내년 2021년 가을 미국의 한 제약회사에서 백신이 완성된다.
많은 제약회사와 국가가 백신 개발에 몰두했지만, 코로나19의 변이를 따라잡지 못했고 하나 이상의 결함도 발견되었다.
인체에 무해하며 온전히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백신 개발을 성공한 건 미국의 제약회사뿐이었다.
미국의 한 억만장자가 자기 재산의 절반 가까이 쏟아내 백신 개발에 매진한 덕분이다.
그 억만장자는 이후 투자한 재산의 갑절 이상 되는 부를 다시 쌓게 되었었지.
이번 생에선 그 역할을 자신이 해야겠다.
헛돈을 쓰게 될 억만장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내년까지 이 사태가 이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
백신의 조합식 정도야 유레카 정보 이용권 한 장이면 바로 알 수 있으니 문제없었다.
하지만 시기는 중요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일어나자마자 백신이 나온다면, 되레 그걸 만든 회사가 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언제가 좋을까?"
시운은 올해 겨울이 오기 전에 백신을 시판할 계획이다.
겨울철 독감과 겹쳐 피해가 늘었던 회귀 전을 생각하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백신 개발에 보통 10년 이상 걸리지만,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에 정부는 승인 절차를 간소화할 것이다.
그래서 시운이 백신 개발 성공 시기로 잡은 건 6월.
전 임상과 1, 2, 3 임상까지 생각하면 좀 더 앞당겨야 맞지만, 너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르게 개발된다면 이 역시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 시기에 맞춰 유레카로 알아낸 조합식을 제약회사 연구진에게 전달되게끔 할 생각이다.
우연을 가장하여, 익명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이득이 될지, 철저히 계산적으로 접근했지만, 거기에 작은 이타심이 존재함은 시운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백신 개발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정리한 시운은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시운?
"네, 대런. 잘 지내셨죠?"
- 저야 뭐…. 근데 거긴 좀 어떻습니까? 뉴스에서 보니 지금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로 난리던데요?
"여긴 아직 그렇게 심한 상황은 아닙니다."
주말이 지나면 달라지겠지만.
이 역시 시운은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백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예방이니 말이다.
"대런, 다른 게 아니라…."
- 네, 시운. 말해봐요.
"이번 감염병 사태,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 …….
시운은 혀로 입술을 살짝 적시며 말을 이었다.
"주가 폭락에 대비하세요."
2월 말부터 3월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글로벌 증시의 폭락을 떠올리며 시운은 눈빛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