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화 Made in China
토라 위라완은 2014년 인도네시아 역사상 직선제로 정권 교체를 이룬 최초의 대통령이다.
시장 출신답게 뛰어난 행정력을 보였으며, 공약으로 내건 7%에는 못 미치지만, 연간 5%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빈곤율과 실업률도 역대 최저치로 낮췄고, 국민들의 지지율이 한때 60%를 넘기도 하였다.
덕분에 2019년 4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군 장성 출신의 반대 정당 대선 후보를 11% 이상의 표 차이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더욱 공고한 통치권을 얻게 된 토라는 10월의 2기 내각 구성 전에 인도네시아의 숙원 사업을 단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은 국토를 이루는 주요 다섯 개의 섬 중 가장 면적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상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집 과밀화로 교통, 주거, 환경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
토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 이전을 제창했다.
의회에 올라간 수도 이전 안건은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내며 무사히 통과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2019년 9월에 새로운 행정 수도 이전 예정지가 정해졌다.
칼리만탄섬(보르네오)의 발릭파판.
신수도 건설이란 대규모 공사에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었다.
이미 세종시라는 성공적인 노하우를 지녔다는 점이 인도네시아 국토개발부에 어필되었고, 이는 파트너 선정으로 이어졌다.
2020년 7월 착공을 목표로 차근차근 일이 진행되었었지만….
코로나 19라는 감염병 대유행 사태에 공사는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음…."
대통령궁의 복도를 서성이는 토라는 자못 심각한 얼굴이다.
큰 차질이 생긴 수도 이전이나 코로나 19로 인한 국정 운영의 어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코로나 19와 관련된 일에 근심이 생긴 것은 맞았다.
"각하."
잠시 후, 토라가 기다리는 소식을 들고 비서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그래. 결과는 어떻게 나왔소?"
토라의 물음에 비서실장은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단키트로 검사해본 결과 여사님께선 음성으로 판정되었습니다."
"그래요? 하, 다행이오."
혹여나 양성이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다행스러운 결과에 토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딸아이와 함께 2주간 미국으로 관광 여행을 다녀온 모친은 공항 검역대에서 발열이 확인되어 격리 시설로 모셔졌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중국, 대한민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중점적으로 확산세가 몰려있어 안심하고 보냈다.
3월에 들어서면서 유럽, 중동, 북미까지 순식간에 감염병이 퍼져버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특히나, 코로나 19는 기저 질환이 있거나 노약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바이러스.
가뜩이나 간암 치료로 몇 년간 고생했던 모친이다.
코로나 19가 아니라는 사실에 토라는 신께 감사드렸다.
"당장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소. 준비해주시오."
2주 넘게 뵙지 못했다.
토라는 직접 가서 모친을 대통령궁까지 모셔오려고 했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코로나 19의 잠복 기간이 최대 14일입니다. 앞으로 13일은 더 시설에 계셔야만 합니다."
"음성으로 판정 났는데도 말이오?"
"네. 그게 방역 원칙이라…."
초기에 감염 확산을 잘 막아낸 대한민국의 K-방역을 현재 많은 나라에서 따르는 추세이고, 인도네시아 역시 그러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
앞으로 십여 일 이상이나 어머니를 뵙지 못한다는 사실에 토라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졌다.
"아, 참. 검사는 이번에 기부받은 한국의 그 진단키트로 한 것이오?"
"아닙니다."
"그럼?"
"중국 신진의료라는 기업에서 수입한 진단키트를 사용했습니다."
"……."
중국산 진단키트라….
근래 들어 예전과 위상이 달라졌다지만, 토라는 아직도 중국산 제품에 좋지 않은 인식이 남아있었다.
처음으로 샀던 TV가 중국산이었는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고장 나버린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한국에서 만든 진단키트가 더 우수한 거로 아는데…. 아니오?"
"그렇게 알려져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한국의 진단키트는 유전자 증폭 분자 검사 방식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별도의 진단 장비가 필요합니다. 반면에 중국의 진단키트는 항체 검사 방식이라 별도의 장비 없이 한 시간 내에 그 결과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토라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모친의 감염 여부를 진단한 제품이 중국산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말이다.
만약, 한국에서 원조해준 진단키트가 없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몰랐지만….
이미 확보한 성능 좋은 진단키트를 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 진단 장비란 게 국내에는 없는 것이오?"
"아닙니다. 국립 병원에는 비치되어 있습니다."
"흠…."
중국산 진단키트.
왠지 불안하다.
결국 토라는 밑에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더라도 이번 일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모친의 건강이 걸려 있으니만큼.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그 이전에 토라 역시 한 명의 아들일 뿐이었다.
"혹시 모르니, 한국에서 원조받은 진단키트로도 어머니의 감염 여부를 한 번 더 확인해 주시오."
"아…, 네.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섯 시간 후.
토라는 비서실장으로부터 낮에 들은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전해 들었다.
"…여사님께서 양성으로 판정받으셨습니다."
"!!"
중증으로 발전하기 전에 감염을 확인한 토라의 모친은 늦지 않게 치료를 받아 한 달 후,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을 퇴원할 수 있었다.
"Future Investment Trust라…."
그 일은 토라가 이국의 한 회사 이름을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 * *
신진의료에서 10여 개 국가로 팔려나간 코로나 19 진단키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잇따른 컴플레인을 받게 되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빨랐던 이탈리아, 스페인, 이란 등의 국가에서 조속한 확진자 검사를 위해 대한민국의 PCR 키트 대신 중국의 항체 키트를 수입했었다.
여섯 시간이나 소요되는 PCR 키트보단 한 시간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는 항체 키트에 혹한 것이다.
물론 비교적 저렴한 가격도 그런 결정에 큰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막상 열어본 결과는 자신들의 예상과도 너무나도 달랐다.
높은 불량률.
30%라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은 정확도.
업체에서 장담한 70%의 정확도를 믿고 수입했건만.
거래를 전담했던 실무자들은 이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국민의 혈세로 쓰레기를 수입한 꼴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체코에선 수입한 진단키트 중 무려 80%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태를 직면했다.
위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실무자는 곧바로 신진의료에 전화를 넣어 따졌다.
이에 대한 신진의료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 우린 판매할 때, 취급 방법과 보관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를 지키지 않은 귀국의 잘못을 우리에게 떠넘기지 말아달라.
정확도가 애초에 설명한 수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에도 신진의료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다.
무책임한 신진의료의 대응에 제대로 피해를 보게 된 국가들은 직접 대사관을 통해 중국 정부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신진의료와 거리 두기로 나섰다.
- 신진의료의 진단키트는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행하는 의료 기부와는 전혀 무관한, 민간 기업 차원에서의 경상적인 거래 활동에 불과하다. 정부는 그곳에 판매 면허를 정식으로 내준 적도 없다.
국가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진단키트라며 광고한 신진의료의 주장과는 다르게 말이다.
싼 맛에 잔뜩 수입했던 국가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된 상황.
T/T 100% 선불로 거래를 한 거라, 신진의료에서 반환요청을 받아주지 않는 이상 구매 대금을 회수할 방법조차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개 국가에서 잔여 물품에 대해 반환요청을 해봤으나, 역시나 신진의료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 귀국의 관리 인원들을 문책하라. 우리 제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신진의료에서 진단키트를 수입했던 국가들은 추가분에 대한 거래를 바로 중단하고, 남아있는 제품 전량을 폐기해 버렸다.
중국 정부를 향한 항의의 뜻으로 진단키트를 쌓아두고, 오성홍기에 불을 붙여 함께 태워버린 국가들도 있었다.
이는 신문과 방송, 위튜브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인도네시아 역시 그런 국가 중 하나였으며, 토라 위라완 대통령이 직접 불씨를 댕겼다는 후문까지 나돌았다.
과거 만연했었던, 중국 제품은 가짜이거나 불량이다, 라는 공식이 다시금 세간의 평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런 상황에 반사이익을 얻게 된 곳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의료용품 제조업체, 디젠이었다.
신진의료 진단키트의 불량 문제가 대두된 3월 말 이후부터 각국의 거래 요청이 쇄도하였고, 4월 한 달간 전월의 열 배에 가까운 수출량을 기록했다.
그 소식을 뉴스와 기사로 접한 현시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래투자신탁이 보유한 디젠의 주식 가치가 어느새 두 배 이상 뛰어있었다.
* * *
2020년은 일본에 최악의 해로 기록되었다.
지난해, 수출규제로 대한민국을 압박하려던 수가 오히려 자국의 산업을 퇴보시키는 악수로 작용했다.
되레 일본이 장악해왔던 소재 산업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만들어버린 꼴이다.
일본에 의존했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부문 필수 소재 중, 에칭가스는 우송이란 업체를 통해 작년에 이미 국산화가 완료되었고, 나머지 두 소재도 연내 국산화가 완료되거나 공급 다변화가 완벽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또한, 코로나 19의 팬데믹 사태로 그간 준비해온 하계 올림픽이 3월 24일 공식적으로 연기되어 버렸다.
무역 분쟁 이후로 침체된 내수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2021년으로 한 해 미뤄졌지만,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올림픽 연기가 확정되자마자 그동안 정부에서 코로나 19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확언이 무색하게도 확진자 수가 도쿄도를 시작으로 폭증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 일부러 검사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국제적 지탄을 받게 된 사건도 있었다.
2월 요코하마 항으로 들어오던 크루즈 선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었는데, 일본 정부는 탑승객들의 하선만 막았을 뿐, 크루즈 선 내에서의 초기 조치에는 손을 놓아버렸다.
하루가 지난 뒤에야 객실별로 격리 조치할 것을 하달하고 검사를 진행하였으나, 이미 감염 확산이 이루어진 뒤였다.
70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중 여섯 명이 사망했다.
초반의 감염 여부에 대한 검사 역시 증상을 보이는 탑승객들에게만 이루어져 논란을 빚었다.
무증상 감염자의 존재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후생성의 조치는 미흡했다.
국내외의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서야 무증상 탑승객들에 대한 검사도 시행되었다.
하지만, 검사율은 80%를 약간 웃돌 뿐이었다.
이후 본국으로 귀국한 무증상 감염자들은 또 다른 감염원으로써 코로나 19를 이웃에게 퍼트렸다.
미국 뉴욕의 한 유명 언론사는 일본의 이런 대처에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다룰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사례'라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이와 달리 이웃에 자리한 대한민국은 적극적인 검사로 확진자 파악에 공을 들였다.
확진자의 카드사용 내역과 CCTV로 동선을 파악해 인근 지역의 시민들에게 실시간 재난 문자를 발송해 알리는 등 IT 강국다운 면모를 보였다.
또한, 현시운의 제보 덕분에 초반 대구, 경북의 집단 감염 사태를 막아내 5월 11일 현재 전국 총확진자 수는 천여 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같은 날, 확진자 수가 만오천 명을 넘어서는 일본과 극렬히 대비되는 숫자였다.
물론, 검사 수는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7배나 많았다.
일본의 통계는 믿을 게 못 된다는 평이 해외 언론을 통해 나왔고, 자국의 언론사들 역시 이를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와 도쿄도 봉쇄 조치는 늑장 대응일 뿐이다. 전국에 못해도 백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을 거로 짐작된다. 지금보다 검사 수를 열 배 이상 늘려야 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의 권위있는 미생물 학자가 방송에 출연해 지금의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한 발언이다.
이에 일본 6ch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 검사 수를 늘리면 의료 붕괴가 일어난다.
- 저 미생물학자는 과연 일본인일까? 내가 보기엔 재일 조선인 같은데.
- 분란을 조장하지말고 너네 나라로 꺼져!
선의로 한 말에 악의에 찬 모욕만 받았을 뿐이다.
이미 자국의 의료 붕괴가 진행 중인 상태인데도, 넷우익들은 옆 나라 대한민국의 통계가 조작이라고 흉보며 정신 승리에 여념이 없었다.
* * *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한 전국 광역시·도 교육청은 5월 16일로 연기 시행 예정이었던 2020년 제1회 초졸·중졸·고졸 검정고시를 5월 30일로 추가 연기하기로 했다고 오늘 밝혔습니다. 이는 코로나 19 확산 우려에 따른 결정으로….]
현시운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차를 몰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2월 인기리에 종영된 tvM 드라마 '사랑은 낙하산을 타고'가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웹플렉스' 아시아권 시청률 TOP 5를 기록했습니다. 3월 8일 '웹플렉스'를 통해 공개된 직후 6주간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특히 일본 시청률 순위에서는 9주 연속으로 1위를 이어오는 저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운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작년 12월 말에 tvM을 통해 방영을 시작한 '사랑은 낙하산을 타고'는 코로나 19의 발생과 확산 속에서도 꿋꿋이 인기를 이어왔다.
5월 현재까지도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은 상태.
수출규제로 무역 갈등을 빚어온 일본에서 새로운 한류 드라마 붐을 일으키며 남녀 모두에게 환영받는다는 건 참으로 난센스였다.
"아무렴 어때. 엔화도 돈인데."
회당 8억 원.
16부작으로 총 128억 원을 투자하여 방송권료, 해외판권, 광고 수입으로 그 세 배의 수익을 올렸다.
'웹플렉스'와 기타 OTT 서비스를 통해 계속 서비스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수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그리고 끝날 때마다 투자사로 자막이 떠오른 덕분에 홍보 효과는 제대로 보고 있다.
미래투자신탁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는 잠재 고객들이 늘었으며, 지금까지 투자 실적을 알려주면 바로 충성 고객으로 앞 머리말을 바꿔 달았다.
코로나 19 상황 속에 경기는 위축되었지만, 되레 투자시장은 호황이다.
불경기 속에서도, 하락장에서도.
투자시장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시중의 여윳돈이 투자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추세다.
부웅-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른 시운은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려 3층으로 향했다.
[BLUE DRAGON PICTURES]
회사 간판은 새것처럼 매우 깨끗했다.
예전에 방문했던 곳과는 확연히 달라진 제작사에 시운은 씩 웃으며 문을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