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60화 (60/139)

§060화 결착(1)

- 기사는 다음 주 잡지에 실려 나오게 될 겁니다.

적을 사지로 몰아넣었으니, 이젠 숨통을 끊어놓는 일만 남았다.

해외 불법 비자금 사용과 함께 납치 및 살인 교사 혐의까지 뒤집어쓰면, 아무리 국내 제일 재벌 가의 일원이라도 법망을 쉽게 빠져나올 순 없을 거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아닙니다. 현시운 고객님 덕분에 숙원을 풀 기회가 왔는걸요. 감사합니다.

"……."

이게 계획의 끝은 아니다.

신수겸을 옭아매기는 했으나, 검찰과 법원에 드리운 삼정의 영향력은 가벼이 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그 때문에 신수겸이 저지른 짓에 합당하지 않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의 비교적 가벼운 형벌이 내려진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으리라.

"그러기 전에…."

신수겸에 대한.

아니 신정문, 아울러 삼정 그룹의 오너 가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필요가 있었다.

검찰과 법원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하는 데에 대중들의 시선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다.

국민을 대표한다고 늘 자부하던 정치인들도 나설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

그에 대한 준비는 정민철과 이번 일을 계획하던 초반에 미리 해두었다.

한 장의 정보이용권이 소모되었지만, 이번에 정민철과 신명훈이 세운 공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유레카로 알게 된 그 정보는 한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지상파 방송국에 익명으로 제보되었다.

이젠 그 결과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고대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머지않았어."

시운은 핸드폰으로 오전 한 시에 가까워져 가는 시각을 확인하고선 소파에서 일어났다.

* * *

어제부터 '신명훈 기자 납치 및 살인 미수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강남경찰서에서 여러 번 요청했음에도 신수겸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신명훈의 구두에 심어진 녹음기에 담긴 내용으로 정황은 이미 다 밝혀졌다.

신수겸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엄석태의 진술까지 나온 마당이다.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신수겸과 그룹 비서실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말로 대응할 뿐이었다.

엄석태 일당을 현장에서 검거하고, 이번 사건까지 담당하게 된 차성원은 팀원들 몇 명을 대동한 채 삼정 그룹 본사를 찾았다.

부회장실에 올라가 직접 당사자에게 임의동행을 요청할 생각이었으나, 로비에서부터 경호원들에 막혀 대치 중이다.

경호원들과 눈으로 싸우며 신경전을 벌이던 그때, 안내데스크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은 삼정 그룹 비서실장 성철우가 1층 로비로 내려왔다.

"강남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차성원은 경찰 배지를 다시 보이며, 방문 목적을 성철우에게 밝혔다.

그에 대한 성철우의 답변은 지난 이틀간 전화상으로 전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형사님이 말씀하시는 건 엄석태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신수겸 부회장님께서 엄석태에게 부탁을 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한 행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습니까?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였기에 한 사람을 납치하고 죽이려고까지 했는지…. 저는 몹시도 궁금하군요."

날이 바짝 선 차성원의 조롱 섞인 말에도 성철우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최근 삼정과 관련된 악성 루머가 언론 기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습니다. 그룹을 이끌어 나갈 신수겸 부회장님 입장에서는 회사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석태를 불러서 루머의 진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봐달라고 말씀하신 게 다입니다. 괜히 그가 과잉 충성한답시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걸 왜 저희 부회장님께 덮어씌우려고 하십니까."

엄석태의 진술 외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안 나온 상황이라 법원에 정식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없었다.

윗선에서도 국내 제일 기업의 차기 수장이 엮인 일인 만큼, 최대한 결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수사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말이다.

"…그러면 여기 CCTV 자료나 좀 보여주시죠. 엄석태 말로는 나흘 전에 부회장실에서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하니, 그걸 확인해보면 실장님 말씀이 맞는지 아닌지 확실해지지 않겠습니까?"

차성원의 요구를 성철우는 단호히 거절했다.

"사내 CCTV 자료는 외부인에게 함부로 유출할 수 없습니다. 보고 싶으시다면 압수수색 영장이라도 받아서 오십시오."

"……."

한참 성철우를 노려보던 차성원은 짧게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가자."

그와 형사들은 결국 이를 갈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본사 건물을 떠나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성철우도 몸을 돌렸다.

마침 도착한 빈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성철우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저도 모르게 꽉 쥐었던 주먹을 펴보니 어느새 땀이 흥건하다.

"……."

상황이 좋지 못하다.

신수겸에게.

또한, 그와 손을 잡은 자신에게도.

"그냥 돈이나 몇 푼 쥐여주면서 포섭했으면 됐을 것을!"

괜히 엄석태 같은 위험한 자를 움직여선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때, 적극적으로 말려보는 거였는데!

아무리 후회해봤자, 물은 엎질러졌고 버스는 떠났다.

엄석태 사건과 삼정이 관련되었다는 기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룹 비서실이 사력을 다해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임시방편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해외 불법 비자금 기사가 나오는 순간, 이것도 풀릴 텐데…."

신문 광고로 압박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고발IN에서 내려는 기사의 내용이 얼마나 실체에 닿아있는지는 현재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엄석태가 그 기자를 실제로 죽이려 했다는 대목에서 상당히 신빙성 있는 정보가 누출되었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고발IN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려 하여도, 이미 경찰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황이라 행동이 제약되고 위험 부담은 늘었다.

"후우…."

정말 신정문의 불법 비자금 기사가 맞고, 세상에 알려져 버리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피해를 보는 건 삼정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파나마 계좌로 돈을 받아먹은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까지 한데 묶여 사이좋게 불구덩이로 내던져지게 된다.

"한동안 해외로 피해 있을까?"

최근 파나마 계좌를 관리해온 성철우 역시 함께 처벌을 받게 될 건 분명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책임을 몽땅 떠넘길지도 모르지.

신수겸이라면, 신씨 일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니까.

성철우의 이런 우려는 며칠이 흘러 새로운 한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 * *

예전까지는 루머성 기사들과 연예인의 가십거리만 다루며, 흥미롭기는 하지만 믿을만하지는 못하다고 평가를 받던 주간 매거진 스타 체이서.

하지만, 지난해 HR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접대 스캔들을 대대적으로 폭로하며 위상은 달라졌다.

삽시간에 신뢰성 있는 저널로 인정받은 것이다.

루머와 가십에 열광하는 기존의 독자층과 신규로 유입되는 독자들을 구분 지어 공략하려는 편집장의 기획서가 잡지사 대표의 재가를 받았다.

그렇게 시사 고발 전문지인 '고발IN'이 새로이 탄생했고, 오늘 창간한 지 반년 만에 역대급 특종 기사가 터져 나왔다.

[국내 제일 기업 회장님의 비밀, 실체를 밝힌다.]

지난번 HR 엔터테인먼트 스캔들 폭로 때처럼 인터넷 예고 기사로 흥미를 끌 필요도 없었다.

이미 언론인들 사이에선 고발IN이 삼정의 불법 비자금을 폭로할 거란 사실이 지난주부터 퍼져있었던 상황.

잡지가 나오자마자 관련 기사를 확인한 그들은 비슷한 내용의 후속 기사로 인터넷을 도배했다.

[신정문 회장의 민낯, 파나마 불법 비자금 계좌!]

[역대급의 비자금 규모. 자그마치 340조 원!!]

[불법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 높아. 정치권과 검찰의 반응은? 무척 조용.]

[비자금이 오고 간 계좌들, 대부분 차명으로 밝혀져.]

[삼정 그룹 불법 비자금 조성 배경과 방법은?]

성철우의 염려대로 더는 그룹 비서실에서도 언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겨우 관련된 기사를 하나 내리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생소한 이름의 여러 인터넷 신문사에서 수십 개의 기사가 양산되듯 쏟아져나왔다.

- 레알 : 진짜야? 이거?!

└ 마드리드 : 이 정도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진짜일 듯?

- 관망증환자 : 검경에서 조사해보고 발표하겠죠. 제대로 된 결과 나오기 전까진 설레발들 좀 치지 맙시다.

└ 라떼is문세형 : 이 자식은 맨날 같은 소리야. 의심이 가는 대부분의 의혹은 거의 다가 사실이야! 묻히느냐 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 레알 : 맞는 말인 듯.

└ 마드리드 : 옳소!

└ 레알 : 왜 계속 따라오고 지랄이야!

└ 마드리드 : 우린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오. 후훗!

- 절레절레 : 역시 헬조선의 현실이란. 쯧쯧! 추러워. 더하다!

- 도리도리 : 340조라니?! 억도 아니고 조!! 역대급 정경유착 스캔들의 조짐이! 간만에 9시 뉴스가 재미있어지겠군?

같은 날 밤 11시경.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듯, 지상파 TV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이건 꼭 알고 싶다'에서 신정문 회장의 파나마 비자금 계좌와 관련된 하나의 사건을 특집으로 다뤘다.

바로 5년 전, 파나마의 한 모텔 욕조 안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고려일보 여기자에 대한 미스터리를 말이다.

[우리 제작진은 열흘 전, 뜻밖의 제보를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탄탄한 연기력과 중후한 목소리로 오랜 시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견 배우가 사회자로 카메라 앞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자료 화면과 함께 그 사건을 조사했던 당시의 담당 형사와 고려일보 동료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다시 스튜디오를 잡는 화면에 MC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멘트를 이었다.

[여기서 저희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오늘이죠? 삼정 그룹 신정문 회장의 불법 비자금 관련 기사가 나온 게 말입니다. 이 기사를 쓴 모 시사 매거진 기자는 5일 전,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해 파주의 야산에서 살해당할 뻔한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말입니다.]

한 템포 말을 끊고 걸음을 옮기자, 다른 각도의 카메라가 사회자를 줌인했다.

[놀라운 사실은, 익명의 제보자가 밝힌 여기자를 살해한 범인 엄모 씨와 이번에 기자를 납치, 그리고 살해하려 했던 용의자가 동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년 전 여기자의 출국과 파나마 입국 기록을 보여주고, 바로 옆 화면에 용의자로 지목된 엄모 씨의 출입국 기록을 동시에 띄웠다.

같은 날짜에 시각만 조금 빠른 기록들.

여기자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엄모 씨가 개입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정황 증거였다.

[또한, 저희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제 와서 제보한 익명의 제보자가 누구인지도, 그의 의도도 몹시 궁금합니다. 왜 하필 지금 시점이었냐 하는 것도 말입니다.]

마무리 멘트를 위해 사회자가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아직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수사기관에서 알아내야 할 일이죠. 아무쪼록, 그리고 부디! 경찰과 검찰에서 이를 낱낱이 조사해 5년 전,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고려일보 여기자의 한을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방송은 끝을 맺었다.

방송의 후폭풍은 무척 거셌다.

국내 제일 재벌 가의 추악한 민낯에 분노한 누리꾼들의 댓글과 대댓글이 관련 기사들에 끊임없이 달렸다.

'공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라는 인권 단체에서는 삼정 재벌가를 규탄하는 성명서와 함께 5년 전,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하는 국민청원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청원 글이 올라오고 열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오전 9시.

15만 명이 이에 동의했고, 그 수는 꾸준히 늘어만 갔다.

동시에 각 SNS에서 'OUT 삼정', 'OUT SIN'이란 태그를 달고, 삼정 그룹 오너 가를 손가락질하는 글들이 마구 생산되었다.

같은 날, 모든 신문사는 그동안 삼정 그룹 비서실의 노력으로 홀딩했었던 신명훈 납치 및 살인 미수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건 꼭 알고 싶다'의 방송 이후, 거세어지는 여론에 그들도 마냥 손에 쥐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까닭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고작 이런 기사 하나 막지 못해요!"

"……."

출근하자마자 신수겸은 성철우를 불러 닦달했다.

그동안 기사를 막아내느라 사력을 다한 성철우로선 억울해할 만했지만, 묵묵히 신수겸의 질타를 감내했다.

콰앙!

그때,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부회장실 문이 부서지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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