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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재벌 참교육-70화 (70/139)

§070화 백신(2)

미국 식품의약국의 사용 승인 소식에 광진제약의 주가는 다시 치솟았다.

유통되는 주식보다 훨씬 많은 신주의 추가 상장일이 25일 뒤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미국발 호재에 아무도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본격적인 수출길이 열린 셈이니 말이다.

FDA의 발표에 그동안 반신반의하던 국가들의 구매 문의가 뒤따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수요를 맞추기엔 아직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광진제약의 생산 라인 증설은 이제 막 첫 삽을 뜬 단계라 기존 설비로만 생산해야 했다.

그렇게 생산할 수 있는 백신의 양은 하루에 약 100만 도스가량.

보통 접종대상 인원의 2배수를 공급하기에 50만 명에게 주사할 수 있는 양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인구수는 5,178만 579명.

현재 생산량을 대입하여 단순 계산하면, 하루도 쉬지 않고 104일 동안 생산해야 국민 전체에게 백신 주사를 놓을 수 있다.

물론, 도중에 설비 증설이 완료되면 그 시기는 보다 앞당겨지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 50만 명분의 백신 생산량은…, 너무 저조한 수치였다.

전 세계 인구수만 78억 명이다.

자국에 공급하는 것부터 우선시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국가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광진제약 경영진에게 위탁 생산 방식을 제안했다.

한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코로나 19 범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서로 간에 협력은 필요했다.

제약 특허를 쥐고 있으니, 위탁받은 제약회사의 생산량에 따라 로열티를 책정해 받는 식으로 계약을 주선하겠다며 정부는 광진제약에게 협조를 요청해왔다.

괜히 백신을 독점하겠답시고 생산 설비만 늘렸다가 사태가 진정된 나중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느니 적정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경영진은 주주들에게 임시주주총회를 통보했다.

일주일 뒤, 정부의 제안에 대한 찬반이 안건으로 올랐고, 미래투자신탁을 비롯한 주주들 과반수의 찬성으로 무난히 통과되었다.

최대 주주인 미래투자신탁은 여기에 하나의 조건을 걸었다.

"일본 국적의 제약회사에는 위탁 생산을 맡길 수 없습니다."

대리인의 자격으로 임시주총에 참여한 현시운의 의견은 즉각 받아들여졌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무역 분쟁에 양국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최근까지도 광진제약의 백신 개발 소식에 원색적인 비난만 퍼부어대던 국가였다.

심지어 후생노동성의 고위 관료는 FDA의 사용 승인 역시 돈을 주고 산 결과라며 망언까지 쏟아냈다.

그런 곳에 백신을 확보할 기회를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산한 백신을 취지에 맞게 사용할지도 미지수다.

백신을 무기 삼아 주변국에 휘두르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광진제약 경영진은 주주들의 의견을 그대로 정부에 전했고, 보건복지부에서는 12월 1일 위탁 생산 업체 네 곳을 발표했다.

미국의 토이자.

영국의 아트라카.

대한민국의 SC바이오제약.

독일의 로윈바이오.

이 네 곳의 백신 생산 가능량을 합산하면 1일 약 1,200만 도스다.

하루에 600만 명분의 백신 생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 세계인 모두에게 백신을 나눠주기엔 여전히 부족한 양이지만, 그래도 광진제약 한 곳에서 생산해내는 것보다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왜 우리 일본의 아신제약이 백신 위탁 생산 업체에서 제외된 것입니까? 매출액만 보더라도 세계 제약업계 4순위란 말입니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일본 정부는 즉각 대변인을 주일 한국대사관을 보내 따지고 들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일입니다. 우리 외교부와는 전혀 상관도 없고, 어떤 식으로든 간섭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 대사는 그렇게 원론적인 답변으로 곤란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모면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는 자국으로 들어오는 한국의 의약품에 이상은 없는지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보복성이 다분한 긴급 조치를 같은 날 오후에 발표했다.

- 의문증환자 : 얘네, 작년부터 왜 이러지? 진단키트 때도 그러더니. 지금은 엎드려서 제발 백신 좀 나눠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거 아님?

- 팩트체크 : 후생노동성 발표 원문 보려거든 여기로!

└ 팩트체크 : https://www.mhlw.go.jp/hd_kh/dl/r2076.pdf

└ 일문학과낙제생 : 아씨…. 일본어 좀 공부해둘걸.

- 만16세 : 저러는데도 정부에서 백신 나눔 하면 다음 선거 때 투표로 때려준다!

└ 만15세 : 동참함!

└ 만14세 : 나도!

└ 만5세 : 저도!

└ 선거관리위원회 : …그만해라, 너희들.

국내 네티즌들은 대부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엔 일본 내에서도 비슷한 의견들이었다.

이미 FDA에서 사용 승인까지 받았는데 무슨 뒷북이냐며 후생노동성과 그 뒤에 있을 정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이 순간만큼은 넷우익도 평소처럼 편향적인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들도 자신의 목숨은 소중했을 테니까.

한국에 뒤처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먼저 국민의 생명부터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한 야당 의원의 쓴소리가 다음 날 오전 유력 일간지의 첫 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전 총리 하베 신이치 재임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만큼 현 정부에 대한 일본 국민과 언론의 불신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 * *

오늘도 함께 점심을 해결한 강하민과 현시운은 언제나 그랬듯 대표이사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남은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하민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며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운을 향해 입을 뻥긋했다.

"아주 네 방 같다? 위화감이 전혀 없어 보여."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니, 그냥. 이제 너도 네 방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시운의 직급은 아직 부장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단순한 부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산가치 6조 원을 넘어선, 미래투자신탁의 80%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가 바로 시운이다.

물론, 강하민은 직원들이 모르는 사실을 하나 더 알고 있다.

스피어, 블레스, 티엔유라는 이름의 해외 투자법인도 소유하고 있다는 걸.

그 세 곳의 자산가치는 미래투자신탁을 능가한다.

"……."

평소 강하민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어이없어하며 웃거나 한 소리 하던 시운이 오늘따라 조용하다.

"뭐야, 무섭게…."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시운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강하민을 향해 피식 웃었다.

"그냥, 형 말이 맞는 것도 같아서…."

"뭐? 정말로 방 하나 만들어달라는 소리야?"

강하민의 반문에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이제 자리에 변화를 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

"……."

자리 변화라….

그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할 강하민이 아니었다.

"이제 준비할 생각이야?"

그룹 설립을.

"…네. 그래야죠."

이심전심이랬다고 시운 역시 강하민이 무엇을 묻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TV에 나오는 코로나 19 백신 관련 뉴스를 보며 시운은 눈을 빛냈다.

뉴스는 막 코로나 19 백신을 구매하기 위해 직접 대한민국으로 날아온 인도네시아 대통령 토라 위라완의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지난 코로나 19 세계 확산 시기에 시운이 주도하여 디젠의 진단키트를 무상으로 지원한 나라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시운은 추후 있을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건설사업인 수도 이전에 뛰어들기 전 미리 포석을 깔아둔 것이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코로나 19로 사망했을 토라 위라완의 모친이 여전히 생존해 계신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진단키트를 기부한 미래투자신탁의 이름을 그가 기억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좀 더 확실하게 못 박아두려고 이번에 생산할 백신도 일정량을 기부해볼까 했었는데….

각국에서 구매 요청이 쇄도하는지라 외교부가 대신 전면에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최대 주주라고 해도 백신 물량을 따로 확보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네 곳의 위탁 생산 업체 선정을 마쳤고, 광진제약의 생산 라인도 증설 중이지만 당장은 기존 설비에서 생산되는 양이 전부다.

찾는 이는 많지만, 줄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었다.

확산 위험군에 속한 국내 대도시부터 예방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최우선 투여 대상인 60세 이상 노약자들에게 놓을 백신도 겨우 충당하고 있었다.

위탁 생산 역시 12월 중순 이후에나 가능해 다들 대한민국과 광진제약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일본도 끼어 있었는데, 외교부는 그들의 요청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신 위탁 생산 업체에서 자국의 제약회사가 탈락하자, 한국 의약품 검수를 강화했던 곳이다.

자신들이 급하니 돌연 태도를 바꾼 모양이지만, 정부에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FDA에서 백신 사용 승인이 나기도 전부터 구매 의사를 타진했고 대통령이 직접 예정에도 없던 일정까지 만들어 방한했다.

수도 이전 사업의 파트너로 대한민국이 뽑힌 만큼.

또한, 그 사업으로 기대되는 수익이 엄청난 만큼 정부도 인도네시아에 어느 정도까지는 성의를 보여야 했다.

[인도네시아에 백신 지원하기로 외교부에서 결정.]

잠시 후 뉴스 자막으로 백신 지원 소식이 전해졌다.

시운의 예상대로였다.

리포터는 토라 위라완 대통령이 백신이 생산되고 있는 광진제약을 방문한 뒤에 인도네시아로 귀국할 예정이라며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시운에게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전 건설사업은 큼직한 고깃덩어리였다.

놓칠 수 없는 기회이자, 앞으로의 계획에 커다란 분기점이기도 했다.

'그걸 위해서라도….'

미래투자신탁을 지주회사로 삼아 종속 관계에 있는 회사들을 묶어 그룹화해야 한다.

단순히 투자회사일 때와 그룹으로 탈바꿈된 뒤에는 이름값이 달라질 거다.

그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건 당연했다.

시운은 그룹 설립과 향후 방안까지 머릿속으로 점차 그려나갔다.

조금 전에 보인 시운의 결심에 무언가 깊이 생각하던 강하민의 입이 열린 건 다음 순간이었다.

"생각하는 시점은?"

"음…, 일단은 내년 3월쯤이 어떨까 싶습니다."

"3월? 생각보다 촉박한데…."

준비할 게 많아서 그렇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3월이면 대충 그 일이 끝났을 즈음이겠군."

강하민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운도 그에 마주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강리조트부터 제대로 접수해야죠."

그렇게 둘의 머릿속에 D-DAY가 새겨졌다.

* * *

현시운이 향하는 방향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곧게 뻗어있다.

길 양옆으로는 지름만 족히 1m도 넘을 거목들이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도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쪼로롱- 쪼롱!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의 소리가 들려왔다.

시운은 천천히 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 봐왔던 하늘보다 훨씬 푸르고 맑은 느낌이었으며, 높이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

시운은 얼마간 더 걷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툭! 툭툭!

신발 앞코로 길바닥을 찍어본다.

비포장인 갈색빛 길을 이룬 흙의 입자는 무척이나 고우면서도 단단히 다져졌다.

분명 흙길인데도 평탄함은 여느 포장도로와 다름없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제법 걸어왔다고 여겼는데도 길의 끝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빼곡히 들어찬 나무와 푸른 하늘.

그리고 기다란 비포장의 흙길.

보이는 건 그게 다였다.

계속 산새 소리는 들려왔지만, 그 실체는 단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다.

언젠가 봤었던, 이국의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지 못했던 생경한 풍경이다.

아니,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장소.

시운은 입가를 살짝 비틀며 웃었다.

"그럴 수밖에."

왼손을 들어 오른쪽 눈을 가렸다.

그러자, 왼쪽 눈의 시야에 텍스트 창이 나타났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일정한 행동이 트리거로 작용하여 텍스트 창을 불러왔다.

텍스트 창은 선명히 반짝이며 담긴 내용을 시운에게 전달했다.

[Real World - Beta Version 2.0.1.3054]

[Testing Now…]

이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다.

드림비전이 완성한 브레인 컨택팅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콘텐츠 리얼 월드의 베타 테스트 프로그램 속이다.

텍스트 창을 쳐다보며 시운이 입을 열었다.

"로그 아웃."

의지가 뇌파로 발생하고, 이를 수신한 인터페이스가 시운의 명령을 그대로 실행했다.

팟!

곧 이색적인 풍경이 암전되듯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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