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71화 (71/139)

§071화 준비(1)

몸이 부유하는 듯한 감각이 살짝 느껴지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우웅-

리얼 월드에서 빠져나온 현시운이 가장 먼저 접한 건 기계의 구동음이었다.

"……."

생각보다 소리가 컸다.

방금까지 이토록 시끄러운지 몰랐을 정도다.

가상현실세계인 리얼 월드에서는 한적한 풍경에 어울리는 고요함 속에서 산새 소리만 이따금 들렸는데….

현실과 큰 괴리에 시운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드림비전이 완성한 새로운 세상이 경이롭기만 하다.

반짝- 반짝-

헬멧 형태의 접속기기 다이버의 시각 장치에선 형태를 알 수 없는 빛무리가 연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체험하기 전에 미리 설명은 들었다.

저 시각 장치에서 쏘아내는 빛이 사용자를 유사 수면 상태로 유도함과 동시에 리얼 월드에 접속했을 때 본 세상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신호체계라는 것을.

우우웅- 뚝!

체험의 종료를 알리듯 기계음이 멎으며, 눈앞의 빛무리가 사라졌다.

동시에 정적이 찾아왔다.

철커덕-

헬멧 아랫부분의 고정핀이 벗겨지며 다이버가 위로 올라갔다.

"으음…."

드림비전 연구실의 천장 조명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이버 안의 환경이 어둡다 보니 밝은 빛과 마주하자 시운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땠습니까, 현 부장님?"

한진형이 다가와 시운이 체험용 베드에서 몸을 일으키는 걸 도와주며 물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대감에 눈을 빛내며 얼굴을 들이민다.

"……."

연구실에 있는 다른 직원들 역시 그와 비슷한 심정으로 시운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오래 봐왔던 얼굴들이다.

시운은 변화 없는 표정으로 그들과 시선을 한 번씩 마주했다.

"그만 뜸 들이고 말해봐요, 좀!"

한진형 옆에 서 있던 정혜련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그에 시운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행동으로 답해주었다.

"와!"

"역시!"

"내가 말했잖아. 누가 봐도 이건 최고라니까!"

시운이 들어 올린 쌍 엄지에 모두 기뻐하며, 자부심 가득 담긴 말을 주고받았다.

예상하던 시운의 반응이었음에도,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한진형도 옆의 정혜련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남들이 보는 데도 둘은 개의치 않았고, 다른 이들 역시 그러려니 여겼다.

둘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다.

회귀 전처럼 연인으로 발전한 둘의 모습에 시운은 피식 웃음 지었다.

체험용 베드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한진형과 정혜련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저희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네?"

뜬금없는 시운의 말에 한진형은 반문했고, 정혜련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앞으로의 사업에 대해서 말입니다."

기술은 완성되었다.

이를 토대로 창조된 세상의 티저도 훌륭하다.

이젠 상업화의 수순을 밟을 때였다.

잠시 서로 마주 본 한진형과 정혜련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드림비전의 회의실로 셋이 모였다.

현시운과 한진형 그리고 정혜련.

이들 모두 드림비전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였다.

물론 시운이 49%로 최대 주주이기는 하지만, 독단적으로 드림비전의 사업 방향을 재단할 수 없다.

둘로 나뉘긴 했지만, 한진형과 정혜련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나머지 51%이다.

최대 주주더라도 둘의 동의 없이는 아무런 일도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2년 반 가까이 두 분 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2018년 6월에 처음으로 만났고, 투자를 제안하고 또 받아들여 지금 이 자리에까지 왔다.

한진형과 정혜련도 그때를 떠올렸는지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들어갔다.

2015년에 야심 차게 스타트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한 성과와 이탈하는 창립 멤버들로 수없이 가슴앓이했던 두 사람이다.

만약, 2년 전 그때 시운이 찾아와 투자해주지 않았다면….

한진형은 자신과 정혜련 모두 이 길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았을 거로 확신했다.

물론 실제의 역사대로라면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지금과 비슷한 결과를 얻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시운은 알았다.

"고생은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모두 현시운 부장님 덕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저희에게 수백억 원을 투자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옆의 정혜련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운은 작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제 바람을 두 분이 이루어주셨으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웃음기를 살짝 지우며 진중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완성된 기술을 유감없이 쏟아내어 진정한 리얼 월드를 만들어내야죠."

그 길은 지나온 2년 반의 시간보다 훨씬 지난할 것이다.

회귀 전에는 리얼 월드가 정식으로 런칭되기까지 장장 12년이란 시간이 소요됐었다.

하지만, 시운은 확신한다.

원래라면 3년이나 걸렸을 브레인 컨택팅이 1년 앞당겨져 개발 완료되었듯이 리얼 월드의 완성 역시 상당 시간 단축될 거라고.

전과 달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M&D의 두 젊은 IT 천재들을 일찌감치 스카우트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시켰고, 진성전자와의 협업도 이뤄내서 다이버의 초창기 모델까지 완성해냈다.

회귀 전엔 어떤 식으로 브레인 컨택팅 기술을 시연했는지 모르지만, 오늘 자신이 체험해본 것처럼 완성도 높은 콘텐츠는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접속기기인 다이버의 보급형 개량과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줄 새로운 서버 컴퓨터를 구비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것들만 완비된다면 당장이라도 힐링 콘텐츠로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굳이 국제 IT 박람회를 거치지 않더라도 언제든 화제가 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결과물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현재 있는 인력과 설비만으로는 무리죠. 대단위 데이터 센터도 준비해야 하고, 여태껏 없었던 최고 사양의 슈퍼컴퓨터도 필요합니다."

"……."

기술을 완성했다고 끝난 것이 아님을 둘도 잘 알았다.

한진형과 정혜련은 이어지는 시운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제가 두 분께 다시 제안하려 합니다."

시운은 자신의 명함 케이스에서 명함 두 장을 꺼내 한진형과 정혜련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주)미래투자신탁]

[투자운용 2팀/팀장]

[부장 현시운]

"…이걸 왜?"

이미 예전에 받은 바 있는 명함이다.

이걸 왜 다시 꺼내는 건지 한진형이 되물었다.

"여기서 자금을 조달할 생각입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상응하는 지분을 넘겨야겠죠."

"……."

언뜻 보기엔 자신이 운영하는 투자회사를 끌어들여 연구개발비를 핑계로 지분을 확보하려는 잔꾀로 보일지 몰랐다.

회사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시운이 계획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그와 비슷하게 될 거다.

시운은 그동안 생각해왔던 미래 그룹의 설립과 드림비전의 계열사 편입, 이후의 상업화 계획까지 둘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다이버의 초기 모델이 나왔지만, 컴퓨터처럼 집마다 보급을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경량화를 해야 합니다. 리얼 월드에 수만 명 이상의 동시접속자가 원활히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선 그에 따른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할 테고요."

시운이 회귀하기 직전, 다이버의 최신 모델은 헬멧형을 탈피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캡슐형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원래의 역사대로 착실히 단계를 밝아나가야만 했다.

시운은 다이버 보급과 상업화가 이루어졌을 때의 미래상을 마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실감 나게 표현해냈다.

시운이 말한 대로만 된다면, 그건 한진형과 정혜련이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치다.

실제 시운은 회귀 전 봐왔던 넥스트의 성공 신화를 입으로 옮긴 것에 불과했지만, 자세한 예측에 나머지 둘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향후 드림비전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될 겁니다. 지금의 고글도 능가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말입니다."

길었던 설명과 소견을 모두 끝냈다.

시운은 바짝 마르는 입에 뭔가 마실 게 절실했지만, 회의실로 들어올 때 미처 음료는 준비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침으로 갈증을 해소하며 둘의 대답을 기다렸다.

둘의 결정에 앞으로의 향방이 갈린다.

내년 전반기 상하이에서 개최될 국제 IT 박람회에서 드림비전의 기술과 콘텐츠는 분명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회귀 전처럼, 고글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특허권을 사갈 지도 모르지.

고글이 그랬던 것처럼 100억 달러를 제시할 수는 없었다.

해외 투자법인까지 합친다면 그 정도 자금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한 가운데 드림비전에만 몰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지금까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의견을 따라줄 가능성이 크지만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한 기업을 이끄는 사업가이고, 때론 오랜 친구를 저버리는 결정도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시운은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고, 한진형과 정혜련은 말없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더니 별 고민 없이 답을 내놓았다.

"뭐가 이렇게 비장한가 했습니다. 당연히 전 현시운 부장님과 같은 뜻입니다."

"저도요. 부장님 아니었으면, 우린 이 자리까지도 못 왔을 것에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운의 투자가 없었어도 이들은 내년 이맘때쯤 기술을 완성해냈을 거다.

시운은 알고 있는 미래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누군가의 기회를 대신 뺏어온 것뿐이다.

그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시운은 고마움을 느꼈다.

"고맙습니다."

회귀 전에 이 둘이 이룬 세계 부호 1위의 자리를 뺏어오게 되겠지만, 대신 보답은 제대로 할 생각이다.

한진형의 사고사.

이번 생에선 둘 사이를 갈라놓게 될 불의의 교통 사고를 말끔히 들어낼 것이다.

이미 유레카의 위기 알림 서비스 대상자로 둘은 등록되어 있었다.

"근데 회사명은 이대로 가는 건가요?"

"네?"

돌연 정혜련이 말을 꺼냈고, 한진형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새롭게 도약하는 것이니만큼 사명은 바뀌어야죠. 원래 드림비전이란 사명을 정했을 때의 목표를 오늘 이뤘으니, 새로운 목표에 걸맞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합니다."

"……."

시운은 말없이 둘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넥스트라는, 원래의 미래에 있었을 회사명을 끄집어낼 순 없었다.

사실 실속이 중요하지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정혜련이 다음 순간 꺼낸 말에 시운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

"넥스트(Next). 넥스트가 어떨까요? 다음 목표를 지향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왠지 미래지향적인 단어잖아요? 현 부장님의 회사명에도 미래가 들어가는 만큼 꽤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전 찬성입니다."

한진형은 웃으며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제 시운의 답변만이 남은 상황.

"…좋네요. 넥스트."

이로써 드림비전의 새로운 사명은 넥스트로 결정되었다.

이미 자신이 개입하면서 미래가 많이 바뀌었을 텐데도 동일한 회사명이라니.

시운은 새삼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4개월 후인, 2021년 4월 16일 상하이 국제 IT 박람회에서 넥스트라는 생소한 회사가 선보인 차세대 가상현실 기술 브레인 컨택팅과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리얼 월드의 트레일러 콘텐츠는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 * *

2020년 12월.

한해의 끝이 다가왔다.

2020년은 여러모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해였다.

한일 간의 무역갈등이 더욱 심화하였고, 그에 재를 뿌리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었다.

한 달 전인 11월에 대한민국 광진제약이 백신을 개발해내며 암울했던 세상에 희망의 씨를 뿌렸고, 이는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아직 전 세계인이 백신을 접종받으려면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유례없던 감염병이 곧 수그러들 거라는 걸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성에 대해 일각에선 너무 섣부른 긍정론이라고 비판했지만, 이 역시 이미 완성된 백신 GJ-808을 베이스로 변형을 가하면 무난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정론이었다.

실제로 회귀 전에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제약회사는 변이가 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신약을 계속해서 출시했다.

코로나 19 범유행 사태 초창기 어느 학자가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세상은 독감 백신처럼 매년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아야 할 거라고.

그 말대로다.

이번 감염병 사태가 끝나더라도 인류는 매년 찾아오는 독감처럼 코로나바이러스도 옆에 끼고 살아가야만 한다.

이는 광진제약으로선 호재였다.

앞으로도 지금 개발한 백신의 덕을 톡톡히 본다는 거니까.

현시운의 그룹화 결심으로 강하민은 모처럼 바쁜 12월을 보내게 되었다.

기존에 해오던, 장세연과의 정보 교환은 물론 장기우와 주기적으로 만나며 스파이 짓도 수행해냈다.

그러면서도 미래 그룹의 설립을 위한 밑 작업을 한창 이어나갔다.

우선 그룹의 지주회사가 될 미래투자신탁을 증권사로 변모시키는 게 먼저였다.

이미 자산 가치와 투자 실적은 인허가 조건을 충분히 넘어섰다.

이는 시운과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던 일이라 금융위원회와의 협의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미래투자신탁 측에서 심사만 요청하면, 최대 30일 이내에 인허가 결과를 알려줄 것이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에야 증권사로의 변경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강하민은 이를 위한 준비를 차근히 다져나갔다.

모름지기 증권사라면 독자적인 HTS 프로그램이 구축되어 있어야 했다.

업계 평균보다 높은 연봉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했고, 지난달 말부터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갔다.

개발진에서 애초에 내놓은 개발 기간은 5개월.

시운이 목표로 하는 3월의 그룹 설립에 맞추려면 한 달의 시간을 단축해야만 했다.

개발진의 야근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강하민은 그들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야근 수당과 별도로 개발 기간 단축 정도에 따른 성과급을 책정했다.

3월 이전에만 완료해도 연봉만큼의 수당을 더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 개발진은 영혼까지 불살랐다.

그 밖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많았다.

그룹을 관리하려면 여러 부서가 필요하고, 적재적소에 인재가 배치되어야 한다.

대대적인 인력 충원 계획이 세워지고, 법률 자문인 김현석을 통해 그룹화와 관련한 법적 문제에 대한 준비에도 신경을 썼다.

현시운이 종속 기업들을 찾아가 미래 그룹 설립에 관하여 설명하고 또 설득한다고 했으니 이는 전적으로 맡기면 된다.

이제 남은 건.

그룹 본사로 삼을 건물을 구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미래 빌딩은 5층 규모로 한 그룹의 본사로 삼기에는 왜소하다.

현시운과도 미리 논의된 상황.

미래 빌딩에는 추후 계열사로 편입될 빅스텝 엔터테인먼트와 블루드래곤 픽처스가 들어올 예정이다.

신사옥을 짓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만큼 기존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여 해결하려 한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건은 아주 손쉽게 해결되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이 금액은 좀."

"이번 달로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하면 건물이 통째로 경매로 넘어갈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

서초동에 자리한 15층 높이의 빌딩.

빌딩 소유주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큰 손해를 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를 쓰고 어음을 남발했다.

입주해있던 업체들도 건물주의 사정을 알아차리고 경매로 건물이 넘어가기 전 일찌감치 사무실을 뺀 상황이다.

경매로 넘어가 버리면 시장가의 70%도 보장받기 힘들다.

결국 건물주는 강하민이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였다.

이제 남은 건 등기 이전과 잔금을 치르는 것뿐.

강하민은 자신이 이룬 성과를 시운에게 알렸고, 오늘 그와 함께 그룹 본사 예정지를 방문했다.

시운은 말없이 빌딩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쭉 뻗은 고층의 건물.

외형도 수려하기 그지없다.

강하민이 입이 닳도록 말한 것처럼 그룹 본사로 쓰기에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분명 그러한데….

이곳에는 그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주 커다란 흠이 하나 있었다.

"그게, 조금…."

"응?"

자랑스럽게 미래 그룹 본사로 쓸 빌딩을 보여주던 강하민은 시운의 떨떠름한 표정에 이마를 살짝 좁혔다.

"왜, 별로야? 어딜 가도 이만큼 조건이 좋은 곳도 드물어."

강하민의 의견에는 시운도 공감했다.

다만, 다만….

"저기…."

"아아."

대로 맞은편의 건물을 가리키는 시운의 손가락에 강하민은 그제야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았다.

둘이 서 있는 빌딩보다 더 높고 웅장한 크기의 건물.

그 건물 외벽에는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장강]

미래 그룹 본사 예정지 맞은편에는 장강 그룹의 본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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