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73화 (73/139)

§073화 공방전(1)

삼정 그룹과 H자동차 그룹이 그러하듯 장강 역시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철구 회장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올해로 일흔의 나이다.

자신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후계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재계를 이끌어왔었던 동년배의 2세 경영주들이 사망하거나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추세다.

삼정의 신정문이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작년 11월에 눈을 감았고, H자동차 그룹 총수 한수덕은 스스로 장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눈에는 아직 핏덩이나 다름없는 3세 오너들과 한 푼이라도 더 벌자고 옥신각신 경쟁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건 다음 대의 일이다.

첫째인 장준우와 둘째 장현우가 7년 전에 사고로 죽지만 않았다면, 훨씬 일찍 이렇게 교통정리를 했을지도 몰랐다.

공식적으로 후계자가 된 장기우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상아로 깎아 만든 명패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명패에 각인된 이름 세 글자, 장기우.

자신의 이름이 오늘처럼 뿌듯해 보이기는 또 처음이다.

장기우는 명패 좌측의, 부회장이란 직함을 한참 바라봤다.

앞에 붙은 '부'란 글자가 사라질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한때, 아버지도 없다며 놀림당하고 서자라고 멸시를 받던 자신이 결국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오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똑똑-

"…들어와요."

여운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방해꾼이 나타났다.

"부회장님."

자신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는 오십 대의 남성.

비서실장 문지환이다.

"네, 비서실장님."

과거와 위상이 달라진 만큼 문지환도 이제 더는 장기우를 전처럼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내심 이런 관계를 바랐던 장기우로선 섭섭함이라든지 아쉬운 마음 따윈 전혀 없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았나 여길 뿐이다.

과거의 무례함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회사에서 내쫓고 싶지만….

문지환은 장철구가 여전히 아낄 만큼 유능하다.

이제 장철구의 지시로 자신을 보필하게 되었으니, 한동안은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다.

쓸만한 인재라는 평에는 자신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니까.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여태껏 자신을 수행한 김학수보다는 훨씬 나았다.

장기우는 그의 과오를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사장단 회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금 출발하시면 됩니다."

"그러죠."

원래라면 장철구 회장이 직접 주관해야 할 사장단 회의이지만, 그는 병환을 이유로 자택에만 머물렀다.

그룹의 대소사에 관한 결정권을 모두 부회장인 장기우에게 넘기고서 말이다.

직함만 부회장이지, 실상 그룹 내에서 지닌 권한은 회장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이른바, 대리청정이라고 봐야 하려나?'

옛 왕조 시대 늙은 왕이 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기기 전, 국정을 미리 운영하게 했었던.

일종의 예행연습이랄까.

그렇다고 장철구가 힘없는 뒷방 늙은이 신세는 아니다.

여전히 그룹의 실권을 움켜쥔 채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할 힘을 가졌다.

온전히 장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눈치를 보며, 그가 원하는 행동을 보여줘야겠지.

그래도 장강의 주인 자리가 절반 이상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대회의실로 향하는 장기우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신년 사장단 회의라고 해봤자 대단한 건 없었다.

딱히 모여서 의논을 해야 할 만큼의 중요한 사안이 있지는 않았으니까.

실질적인 업무 보고는 긴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계열사별로 정해진 결재선을 타고 취합·축약되어 요점만 장기우에게 올라오게 되어 있다.

장기우가 내리는 지시 역시 그 역순으로 진행될 테고 말이다.

오늘 사장단 회의의 목적은.

"부회장님, 영전을 감축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계열사 사장들과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모르는 인사들은 없지만, 그동안 마주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장강의 모태 기업이자 핵심인, 장강건설의 사장 임원우를 필두로 각 계열사 사장들의 축하 인사가 뒤따랐다.

그들을 바라보는 장기우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임원우를 비롯한 대부분의 계열사 사장들은 과거 장기우의 배다른 형제이자 장철구 회장의 적자인 첫째와 둘째를 지지하던 이들이다.

사고로 동시에 그 둘을 잃고 노선을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다 뒤늦게서야 마지막 남은 적자인 장세연과 붙어 일을 도모하려고 했었지.

"아직 회장님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어나가기엔 여러모로 경험과 능력이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절 많이 도와주십시오."

지극히 형식적인 말끝에 웃음을 짓는다.

그에 사장들도 추임새처럼 맡겨만 달라는 말 따위와 함께 웃는 표정들을 지었다.

한눈에 봐도 비위를 맞추기 위한 거짓된 웃음이지만, 장기우는 흡족했다.

결국 자신의 발아래 다 무릎을 꿇은 거니까.

물론, 모든 계열사 사장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어있는 자리가 보이는군요?"

대회의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눈치채고는 있었다.

원래라면 모든 계열사 사장들이 신년 회의 석상에 참석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자리에 없는 그녀는 그들과 달리 특별했다.

부회장인 장기우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

장강 그룹에서 그럴 수 있는 이는 장철구를 제외하면 단 한 명뿐이다.

"아, 네…. 장강유통 장세연 신임 사장은 신년사 행사 때부터 몸이 안 좋다고 해서…. 그게…."

지병을 이유로 물러난 장강리조트 사장 대신 그 자리에 앉게 된 전 장강유통 사장 권임찬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알고 있습니다. 명색이 누나인데 동생인 제가 그걸 몰랐겠습니까?"

"아! 그렇지요. 하, 하하. 맞습니다. 부회장님."

자신이 부회장직에 올랐듯 장세연 역시 부사장에서 유통 사장으로 승진했다.

- 일하다 보면 서로 안 맞는 구석이 분명 있겠지. 그래도 가족이다. 회사에 크게 손해를 끼치는 게 아닌 이상은 그냥 내버려 두어라.

"……."

장철구 회장이 사전에 자신을 불러다 놓고 당부했던 말이다.

일단은 그의 뜻대로 한동안은 장세연을 내버려 둘 심산이다.

하지만, 그게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분명 장철구 회장은 장세연에게 유통과 리조트를 넘길 의중이겠지.'

백화점과 호텔.

장강 그룹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두 계열사 모두 합쳐봤자 전체의 8%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고 그걸 고스란히 장세연에게 넘겨줄 마음은 없다.

장철구 회장이 살아있을 때는 어찌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는 자신의 재량에 달렸다.

장강이란 이름이 들어간 건 모두 손에 넣고 말 것이다.

백화점이 아니라 편의점, 시장 한구석의 낡은 상가 하나라 하더라도 장강의 이름이 걸렸다면 싹싹 긁어모을 생각이다.

절대, 장세연에게….

그 여자의 자식에게 넘겨주진 않을 거다.

재작년에 별세한 장철구 회장의 부인 이진희 여사를 떠올리며 장철구는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그 여자로 인해 친모와 자신이 받은 설움과 모멸감을 장기우는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걸 고스란히 그 여자의 자식에게 되돌려줄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부회장님, 다음 스케줄은 전무 이상의 임원들과 점심 식사자리입니다."

문지환의 말에 장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이번 신년 사장단 회의는 신임 부회장과 각 계열사 사장들 간의 서열 확인과 충성 맹세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이곳에서의 용무를 모두 마쳤으니, 이젠 다른 신하들을 보러 갈 차례다.

"언제 한번 사장님들 모시고 술이나 한잔했으면 합니다. 사석에서도 마음을 서로 맞춰놔야 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기우의 시선은 사장단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을 장강건설 사장 임원우를 향해 있었다.

사석이든 공석이든 앞으로 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었음을 알아챈 임원우는 굴욕적인 속마음을 감추고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조만간 부회장님께서 시간이 되실 때 자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래요."

장기우는 한번 빙긋 웃고는 뒤로 돌아섰다.

문지환 비서실장과 함께 대회의실을 나서는 그를 향해 사장단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여 배웅했다.

장기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맺혔다.

* * *

신정인 금요일부터 5일 화요일까지 미래투자신탁은 전원 휴가를 즐겼다.

작년과 달리 연말 워크숍을 하지 못했던 걸 월, 화 양일간의 유급 휴가로 대체한 것이다.

아무리 국내의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꺾이고 안정세로 돌아섰다고 해도 단체 모임과 행사는 당분간 지양할 생각이다.

그런 취지로 시무식 역시 거행되지 않았다.

대신 인트라넷 전체 게시판에 강하민 대표의 새해 덕담과 훈화 등이 담긴 글이 올라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수요일 아침에 출근한 현시운은 오랜만에 한신철의 카페에 들려 회사 직원 전원의 모닝커피를 주문했다.

개개인의 취향을 몰라 그냥 카페에서 잘 나가는 종류 서너 가지로 해서 인원수만큼 채웠다.

"부장님, 잘 마시겠습니다!"

"잘 마실게요, 현 부장님."

오전 9시 정각에 배달되었다.

커피를 든 직원들이 2팀 사무실 앞을 지나가며 한 마디씩 고마움을 표했다.

시운은 자리에 앉아서 웃으며 그에 일일이 응답했다.

새해가 시작되어서인지 아니면 작년 연말에 받은 보너스가 두둑해서인지 모두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이다.

연말 워크숍은 취소되었지만, 1년 실적에 대한 성과급은 2020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에 바로 송금되었다.

후룹-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며 시운의 시선이 사무실의 홍일점인 전민아에게 향했다.

그녀는 오늘 평소 못 보던 코트와 구두, 가방까지 갖추고 출근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지 않은 자신이 봐도 고가의 명품 신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작년의 투자 실적은 시운의 2팀이 가장 높았다.

회사 투자자금의 절반을 운용했으니 당연한 결과랄까.

거기에 시운이 미래 정보를 적절히 이용했고, 팀원인 장구용과 전민아도 보조를 잘 맞췄다.

많이 번 만큼 성과급 역시 타 부서와 비교해 높이 책정되었음은 당연했다.

사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투자운용 1, 3팀의 직원들 모두 얼추 연봉 이상의 성과급을 챙겼다.

그들도 그런데 최고의 실적을 올린 2팀의 직원들은 어떻겠는가.

장구용, 전민아 모두 작년 연봉의 열 배 이상 되는 보상을 받았다.

2팀에서도 가장 기여도가 높은 시운은 그러면…?

말해 무엇할까.

당연히 그들보다 금액이 훨씬 높았다.

한, 연봉의 백 배쯤?

적지 않은 돈임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거기에 목을 맬 만큼 큰돈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굴리는 투자금만으로도 한번 수익이 나면 그 정도는 가볍게 벌어들일 수 있었다.

하다못해 전년도 순이익에서 배당 결정만 내려도 수천억 원의 돈을 쉽게 가져갈 수 있다.

뭐, 아직은 회사 차원에서 쓸 데가 많아 고이 묵혀두고는 있지만 말이다.

'근데….'

벌어들이는 만큼 쓰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스타일과 패션을 3년째 코디해주는 김미영 팀장이 평소에 하는 말이다.

사람의 가치는 많이 들고 있다고만 해서 높게 평가되는 게 아니라, 적정한 지출이 동반될 때에 비로소 빛이 나는 거라고.

시운도 일부 공감하는 말이다.

전민아가 평소 사치스러운 성격은 아니지만, 두둑한 성과급에 신상 명품을 장만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근데 그와는 달리 장구용은….

"……."

변함이 없다.

옷도, 스타일도.

심지어 구부정한 자세까지도.

추구하는 패션이 확고하다고 여기며, 시운은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컴퓨터부터 부팅시켰다.

바탕화면이 나오자마자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하여 이메일 계정으로 들어갔다.

수요일은 언제나 그랬듯 해외 투자법인 세 곳에서 지난 주의 투자실적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오는 날이다.

예상대로 세 개의 새로운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틱! 티딕-

메일을 하나씩 열어 첨부된 파일을 컴퓨터로 내려받았다.

이내 실행되는 세 개의 파일들.

작년만은 못해도 여전히 수익은 꾸준히 나고 있다.

시운은 수익률과 현재 자산 가치 등의 내용은 대충 훑어만 보고는 마우스 커서를 아래로 계속해서 내렸다.

"…좋았어."

작게 읊조리는 말과 함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현재 보유 중인 주식 현황 리스트에 포함된 한 종목의 주식 수와 지분율을 확인한 뒤의 반응이다.

그 종목은 바로 작년 10월 이후부터 조금씩 매집하기 시작한 장강리조트였다.

스피어 12.3%

블레스 10.5%

티엔유 9.7%

세 곳에서 확보한 장강리조트의 지분이다.

모두 합치면 32.5%.

여기에 장세연이 가지고 있는 7.5%의 지분을 더하면 도합 40%나 된다.

절반을 넘기는 지분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경영권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개인 투자자들의 지분 8%를 제외하더라도 앞으로 6%의 지분을 더 모아야 안정적으로 장강리조트의 경영권을 가로챌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리조트를 손에 넣어야 유통과 푸드도 넘볼 수가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장강 그룹과의 치열한 지분 확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시운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미 미래투자신탁의 명의로 유통과 푸드의 지분 5%가량을 손에 넣어놨으니까.

전쟁이 시작되더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띠리리-

울리는 내선 전화에 시운은 손을 뻗었다.

- 시운아.

"네, 대표님."

자신처럼 강하민 역시 해외 투자법인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는 잠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을 꺼냈다.

- 이제 시작하자.

강하민의 말에 시운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네. 바로 진행하죠."

둘은 장강을 향해 겨눴던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힘껏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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