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화 대륙의 기상(2)
"혹시 아는 사람입니까?"
전상기의 물음에 현시운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짐작하는 이와 동일인일 가능성은 높습니다."
"?"
시운의 말에 전상기와 백진섭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진미디어의 왕룽이라….'
신진 그룹 오너가의 일원이라고는 하지만, 시운이 왕룽을 기억해낸 계기는 그것과 무관했다.
"신진의료…."
시운은 작게 중얼거렸다.
신진이란 두 글자를 뇌리에 남기게끔 한 회사명.
왕룽의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른 이름이다.
작년 코로나 19 확산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항체 검사 방식의 불량 진단키트를 대량으로 생산해 많은 국가에 피해를 줬던 곳이다.
분명 그곳의 대표 이름이 왕룽이었지.
정확도 30%도 되지 않는 신진의료의 진단키트는 무수히 많은 오진을 내렸고, 수많은 사람이 치료받을 시기를 놓쳐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진단키트를 수입했었던 국가들이 반품과 피해 보상을 요청했지만, 신진의료는 제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강짜를 부렸다.
각국의 물품 취급 부주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되레 책임을 전가해 버렸다.
거래 취소가 잇따르면서 신진의료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초도 물량이 대거 판매된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반품과 피해 보상이 일절 이루어지지 않았었기에 더더욱.
그 신진의료의 왕룽이 이번에는 드라마 제작사인 신진미디어를 차려 여전히 횡포를 일삼는다?
일단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확인이 먼저다.
신진이란 두 글자를 회사명으로 쓴 게 우연이고, 왕룽이란 이름 역시 동명이인일 수도 있으니까.
"신진미디어의 왕룽이라는 사람. 약력이나 인물 정보를 좀 더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안 그래도 미리 준비한 게 있습니다. 잠시만…."
시운의 물음에 백진섭은 도로 태블릿을 가져갔다.
이윽고 하나의 파일을 찾아 실행한 그는 다시 시운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
고집 세 보이는 입매와 얄팍한 눈, 제법 풍채가 있는 몸집.
왕룽의 사진 아래로 그의 약력이 세세하게 나열되었다.
언제 어디에서 출생했는지와 신진 그룹 왕원 회장의 넷째 아들이라는 특점부터 기타 소소한 이력들까지.
경력란에서 시운은 찾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1월 ~ 2020년 4월 신진의료 총경리]
시운의 입가로 사나운 웃음이 맺혔다.
"저…, 회장님. 왜 그러시는지?"
심상치 않은 시운의 표정에 전상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운은 태블릿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두 분께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 네…."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태블릿 화면에 비친 왕룽의 얼굴을 되짚으며 시운은 말했다.
"신진미디어를 상대로 이번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면 승소할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
그에 백진섭과 전상기는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굳혔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전상기가 입을 열어 답했다.
"한국과 중국 모두 국제 저작권 조약인 베른 협약의 가입국이라서 원칙적으로는 저작권 소송도 진행할 수 있고, 이렇듯 정황이 뚜렷한 만큼 저희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전상기는 미간을 한껏 좁혔다.
"다만, 소송을 진행하려면 피소인의 주소지가 있는 관할 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사실 승소를 한다고 해도 거기에 드는 비용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보상은 극히 미미합니다. 또한, 중국의 사법 기관이 자국보다 타국의 기업을 얼마나 위할 지도 불분명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신진 그룹 오너가의 일원이 얽힌 만큼 절대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시운은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시를 내렸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습니다. 중국 현지의 로펌 중 저작권 관련 소송의 승률이 가장 높은 곳을 알아보세요. 그곳과 계약을 맺고 신진미디어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회, 회장님. 그런다고 저희한테 큰 이익은 없는…."
"몇 푼 되지도 않을 저작권 사용료 받자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백진섭 대표님."
"…네, 네! 회장님."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백진섭이 시운의 부름에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
"지금 중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그…, 웃기지도 않는 제목의 드라마. 앞으로 몇 화가 남았다고 보십니까?"
"네, 그게…."
백진섭은 자신이 만들었던 두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와 중국 짝퉁 드라마의 현재 줄거리를 비교하며 남은 화수를 가늠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전개가 아직 초중반에 해당하니, 못해도 15~20화가 더 남아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직 전체 줄거리의 절반도 못 왔다는 말에 시운은 비식거렸다.
"잘 됐군요. 우리의 목적은 저작권료가 아닙니다.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는 그 드라마의 방영 금지 처분입니다. 전 대표님."
"네, 회장님."
"비용 대비 수익을 따지는 건 기업 경영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멋모르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번 일이 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 드라마를 지금처럼 도용당하고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
"……."
시운의 말에 백진섭과 전상기는 차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상황임에도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했던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제대로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승소하여 받을 수 있는 저작권료의 수십, 수백 배의 비용이 든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진행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말씀 따르겠습니다."
너무 계산적으로만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전상기는 고개를 힘주어 끄덕였다.
"근데, 회장님. 소송을 제기하면 일견 우리가 유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저쪽은…."
"신진 그룹의 영향력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해결합니다."
"……?"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하겠다는 건지 전상기는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시운의 자신감 어린 표정에 더는 묻지 못했다.
시운은 태블릿을 다시 들어 왕룽의 사진을 바라봤다.
'신진의료 때처럼 쉽게 빠져나갈 수는 없을 거다. 이번에는!'
제대로 응징하기 위해 시운은 정보 이용권을 아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 *
오전에 미래빌딩을 찾았었던 현시운은 중국 신진미디어의 표절 드라마 건에 대한 대응을 전상기와 백진섭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애초의 목적대로 '엠파이어'의 성공적인 런칭을 축하하며, 점심을 함께 했다.
신진미디어 때문에 김이 많이 셌을 텐데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다들 순수하게 '엠파이어'의 인기몰이를 기뻐하고 축하했다.
"……."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룹 본사로 돌아온 시운은 책상 앞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유레카를 실행시켰다.
[잔여 정보 이용권 : 12장]
새로운 해외 투자법인을 위해 조금씩 월 사용 수량을 아끼다 보니 어느새 정보 이용권의 수가 두 자리를 넘었다.
오늘 정보 이용권 몇 장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왕룽의 최대 약점을 알아낼 작정이다.
필요하다면 신진 그룹 왕원 회장의 치부라도.
시운은 한차례 날숨을 토해내며 검색창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이내 나타난 자판을 두들겨 검색어를 완성했다.
바로 검색창 옆의 실행 버튼을 눌렀고, 나온 결과에 시운은 혀를 내둘렀다.
예상대로 정경 유착의 정황도 나왔지만, 그건 약과에 불과했다.
납치, 강간에 청부 폭행까지.
재벌가 일원이 아니라 삼합회 조직원에게서나 볼 법한 죄악들이다.
왕룽이 젊었을 적부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망나니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지만, 이 정도로 죄질이 나쁠 줄이야.
그중 압권은 단연….
"…마약 파티?"
그것도 과거에 저지른 비행이 아니라 현재도 주기적으로 열린다는 사실에 시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중국은 마약 사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거로 아는데?"
이미 호주와 캐나다 국적의 외국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까지 한 전적이 있다.
근데 자국의 5대 재벌가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마약 파티는 여태껏 꼬리도 잡지 못했다?
"그럴 리가…."
알면서도 눈감아준 거겠지.
원래 가진 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법의 심판이 관대한 법이니까.
아마 이 일이 밝혀져도 왕룽이 사형을 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 전에 신진 그룹에서 정부와 거래를 하겠지.
역시 세계 부패 국가 수위권에 올라있는 중국답다.
씁쓸했지만, 시운으로선 쓸만한 패를 쥐게 되었다.
이제 이걸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시운은 곧장 핸드폰을 들어 단축번호를 길게 눌렀다.
이내 신호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네, 보스. 오랜만이에요. 아니…, 회장님이라 불러드릴까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시운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스 리우는 미래 그룹 소속이 아니잖습니까. 전처럼 편한 대로 불러주세요."
시운이 연락한 이는 헬렌 리우.
대만의 투자법인인 티엔유의 CEO다.
- 근데 어쩐 일로 연락을 하셨나요? 혹시 지난주의 실적 보고서에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요."
- 네, 말씀하세요.
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혹시 중국 쪽 라인이 있습니까?"
- 본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중국과 대만으로 국가는 나뉘었지만, 두 나라 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미래의 실현 목표로 상정했다.
물론, 저마다 자국의 정부가 통일의 주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네. 그쪽으로 일을 하나 진행해야 해서 말이죠."
- 음…. 티엔유의 투자 대상에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의 증시도 포함되어 있다 보니 알음알음 친분을 맺은 이들이 있기는 합니다.
"잘 됐군요. 그 라인을 좀 이용할까 하는데 말이죠."
- 어떤 내용인지 먼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시운은 신진미디어에 대한 이슈를 헬렌에게 설명했다.
왕룽의 치부까지 말이다.
- …단순히 일 하나라고 평할 정도로 가벼운 건 아니군요.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보스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 …….
이미 여러 해 함께하며, 믿을만하다고 여기는 헬렌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비밀까지 공유할 정도는 아니다.
- …그렇군요.
시운의 대답에 헬렌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여태껏 시운은 믿지 못할 만큼의 정확한 투자 예측을 해 왔었다.
헬렌은 고작 이십 대의 젊은이가 그만한 능력이 있을 거로 여기지 않았다.
'분명 뒤에 누군가 있을 거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밀 조직 같은?
전 세계로 눈과 귀가 퍼져있는 그곳에서 여러 사실을 취합해 가장 가능성 높은 정보를 예측해 시운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그녀는 추측했다.
왜 굳이 시운인지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근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스피어의 대표, 대런 체스터가 시운을 용한 점쟁이나 예언자로 여기는 것보다 더 심한 억측이었다.
- 별로 이득도 없는 일에 공을 너무 들이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보스?
오전에 전상기가 했던 말과 비슷한 걱정이다.
"장기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서 당장의 손해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어때요, 헬렌? 당신의 연줄로 제가 원하는 걸 해낼 수 있습니까?"
- …….
헬렌은 잠시간 아무 말이 없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 이런 일이라면…. 아무래도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다른 쪽을 이용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다른 쪽이라면?"
- 해커.
"…중국의 해커 말입니까?
- 네. 보통은 정보를 빼내는 일을 하지만, 이번처럼 역으로 정보를 원하는 곳에 심기도 어렵지는 않죠. 그만큼 중국의 해커 집단은 우수한 편이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미국 CIA의 기밀문서도 하루 만에 빼낼 수 있을 거로 여겨지는 중국 해커다.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려되는 점을 밝혔다.
"그러다 도리어 우리 쪽이 노출될 위험은?"
-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믿을만한 중개상을 하나 알고 있거든요.
대만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그녀가 언제 그런 인맥을 만들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흐음…."
헬렌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시운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해커와 관련해서는 미스 리우에게 전적으로 맡기죠. 필요한 게 있다면 주저 말고 말씀하세요."
- 왕룽의 치부. 그 증거를 보내주세요.
"그리하죠."
일의 진행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논의한 뒤에야 둘의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헬렌은 슬며시 웃음 지었다.
그녀에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껏 시운의 지시에 따라 주요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체 투자 운용자금 중 20%는 자신의 재량이다.
이번 왕룽 일이 불거졌을 때, 분명 신진 그룹은 타격을 입게 된다.
그 정보를 이용해 그녀는 단기 투자로 이익을 극대화할 생각이다.
그렇게 얻게 될 이익은 자신의 성과급으로도 이어지니 헬렌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헬렌은 즉시 본토의 지인에게 연락을 넣으며, 이번 일에 대한 밑 작업을 시작했다.
* * *
탁! 타탁-
자신의 집무실에서 왕룽은 두꺼운 손가락을 움직여 키보드 자판을 쳐댔다.
[낙하산 타고 내린 베이징 클라쓰]
검색을 실행하자, 관련 기사들이 촤르륵 길게 나열되었다.
[베이징TV 채널 최초로 시청률 5% 돌파!]
[극 중반으로 넘어가는 15화의 엔딩에 시청자들의 찬사 이어져]
[중화대중매체 협회장, "중국의 드라마 제작 수준이 이젠 한국을 능가할 정도"]
칭찬 일색의 기사에 왕룽은 싱글벙글한다.
물론, 아래로 내려갈수록 거슬리는 기사들도 몇몇 보였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낙베클. 중국의 도약인가? 교묘한 표절인가?]
[일부 네티즌, 낙베클의 표절을 문제 삼아]
[한국의 드라마 '사랑은 낙하산을 타고', '홍대 클라쓰'와 비교 영상 리뷰 하루에 수십 개씩 생겨]
[한국 드라마 제작사 '블루드래곤 픽처스', 표절로 신진미디어에 저작권 소송 진행 중]
자신에게 악의적인 기사 원문과 달린 댓글들을 쭉 읽어내린 왕룽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 아, 왕 대표님. 어쩐 일로….
"이봐! 지금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 네?
왕룽은 전화를 걸자마자 역정을 냈다.
"돈을 받은 만큼 제대로 하란 말이야! 알겠어?"
- 아, 네…. 죄송합니다.
용건을 마친 왕룽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잠시 기다리자, 자신의 드라마와 신진미디어에 악의적인 내용을 쓴 기사에 악플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제야 왕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댓글 알바 업체.
고작 댓글 조작하는 데 돈을 주는 건 아까웠지만, 나름의 효과는 있어서 드라마 방영 시점부터 계약을 맺었다.
"흐흐흐. 좋아, 좋아."
신진의료로 떼돈을 번 왕룽은 평소 관심이 많았던 방송계로의 진출을 모색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신진미디어다.
아직은 단순히 드라마 제작사로만 기능하지만, 그의 목표는 드높았다.
드라마 전용 방송국을 차리는 것.
제작부터 방송까지 일원화 체제를 갖추어 돈을 깡그리 긁어모을 생각이다.
우둔한 인민들은 다른 나라의 인기 드라마를 가져와 교묘히 틀어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적당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출연한 배우들로 이벤트를 가지면, 좋다고 돈을 써댈 이가 수천만이다.
보랏빛 미래를 꿈꾸며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때, 왕룽의 핸드폰이 요란히 울려댔다.
"누구지?"
곧, 액정 위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왕룽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버지]
재작년, 여배우를 임신시켰다가 집안에서 의절 비슷하게 당한 왕룽이다.
근 1년 만의 왕원 회장 전화에 왕룽은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 야, 이 육시럴 놈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갑작스러운 왕원 회장의 호통에 왕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