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대륙의 기상(3)
"아버지, 그게 무슨…."
- 림 비서 지금 그리로 보냈으니, 당장 튀어와!
뚝-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왕룽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노친네가 뭘 잘못 드셨나! 1년 넘도록 연락 없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왕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로 뛰어 들어온 비서의 입을 통해서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뭐, 뭐! 그게 정말이야?"
"네, 대표님. 지금…,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니다!"
"……."
왕룽은 서둘러 마우스를 움직였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누르자, 상위권에 신진미디어와 신진 그룹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비서가 말한 자신의 마약 파티 의혹 게시글 원본은 신진 그룹에서 발 빠르게 조치했는지 이미 내려온 상태였다.
하지만, 이를 캡처한 중국 네티즌들이 커뮤니티에 도배하다시피 올리며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게재된 한 장의 사진.
일부러 그런 건지 해상도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왕룽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두 미녀를 양 허리에 끼고 코카인을 코로 흡입하는 덩치가 우람한 남성.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왕룽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어떤 개새끼가 감히!"
프라이버시가 확실한 파티장을 빌렸고, 그간 오래도록 거래해온 업자에게서 물건을 들여왔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던 광란의 마약 파티.
그 현장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웹 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중국 5대 재벌답게 신진 그룹 비서실이 풀가동되어 커뮤니티에 올라온 캡쳐 글까지 빠르게 삭제했지만, 낮 시간대에 이루어진 조치라 금세 중국 네티즌들이 눈치를 채고 성토의 글들을 남겼다.
어느덧 왕룽, 신진미디어, 신진 그룹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서 3위까지를 차지했다.
덜컥!
거칠게 열리는 문.
왕룽은 누가 감히 예의도 없이 자신의 집무실을 그리 여냐며 한소리를 하려다 그만 말을 도로 삼키고 말았다.
왕원 회장이 보냈다고 한 림 비서가 문 앞에 서서 왕룽을 노려보고 있었다.
림첸.
아버지인 왕원 회장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전속비서이자 충복이다.
"리, 림 삼촌."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랐던 인물이기도 했다.
림첸은 왕 회장 집안에서 단순한 사용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라와."
차갑게 내뱉는 림첸의 한 마디.
왕룽은 이를 거부할 용기조차 없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나가는 소처럼 림첸을 따라 집무실을 나선 그는 이십여 분 뒤, 신진 그룹 본사의 회장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 들어와!
이미 누구일지 알만하다는 듯 왕원 회장의 언성은 거칠고 또 높았다.
"회장님, 데리고 왔습니다."
림첸이 앞서 들어가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고, 왕룽이 주춤주춤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을 더듬더듬 내뱉었다.
"아, 아버지…. 그, 그게…."
짜악!
채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왕원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여든의 나이임에도 왕원의 풍채는 왕룽의 친부임을 보여주듯 그 못지않게 우람했다.
솥뚜껑 같은 손이 다시 날아와 왕룽의 반대쪽 뺨을 강타했다.
"커억!"
단숨에 입안이 터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 어디서 집안을 망치려고 작정을 한 게야!"
왕룽은 바닥에 엎어진 채 부들부들 떨었다.
고작 두 번의 손찌검에 화가 풀릴 리 없는 왕원은 씩씩대며 한쪽 벽에 세워둔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왜 너 같은 놈이 태어나서 아비까지 죽이려고 들어!"
막 왕룽의 등을 향해 휘두르려는데, 그 앞을 림첸이 막고 섰다.
"뭐야! 안 비켜?!"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 아무리 자네라도 막아서면 용서 못 해. 두 번 말 안 해. 얼른 비켜 서!"
왕원의 엄포에도 림첸은 비켜서지 않고 침중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곧 먼 길을 가야 할 녀석이지 않습니까. 그만 참으십시오, 회장님."
"……."
림첸의 그 말에 왕원의 안색도 어둡게 변했다.
"에잇!"
그는 신경질적으로 골프채를 한쪽 벽에다 던져버렸다.
장식장을 꾸미고 있던 고가의 도자기 여러 개가 깨져나갔다.
천만 위안도 넘을 값어치가 순식간에 쓰레기로 전락했지만, 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 차례 거친 숨을 몰아쉰 왕원은 책상 서랍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 대자당에서는 뭐래?"
현 주석과 부주석을 배출한 중국 공산당 내 최대의 파벌이자, 왕원이 줄을 대고 있는 정치 세력이다.
"이미 인터넷에 퍼져나가 버려서…. 인민들이 알아버린 만큼 없던 일로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쯧!"
왕원은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껐다.
"그놈의 홍청단 놈들이 이때다 싶어 물고 늘어지는 걸 테지."
"……."
"어느 놈인지는 알아냈어?"
"그게…, 아무래도 해커들 짓인 것 같습니다."
"해커?"
"네, 아시다시피 그 족속들은 동료를 파는 짓은 죽어도 안 하는 놈들이라…."
밝혀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에 왕원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혹시 모르니 한 번 파봐. 어딜 가나 배신자는 있는 법이야."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왕룽은 잔뜩 숨을 죽인 채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조금 전에 림첸이 언급한, 자신이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내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찌릿!
그러다 왕원과 눈을 마주치자, 왕룽은 고개를 푹 숙였다.
"에잉!"
왕룽의 마약 파티 사건이 어떤 식으로 해결되든 간에, 신진 그룹은 이미 대자당과 홍청단의 주목을 받아 버렸다.
이를 무마하려면 상당한 돈을 찔러넣어야만 한다.
작금의 상황이 몹시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핏줄을 두 파벌 사이의 먹잇감으로 내줄 수는 없다.
십중팔구 사형 아니면 추방이다.
추방이 확실하다면 고민이라도 해보겠는데….
없느니만 못한 자식이라도 자식이다.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림첸."
"네, 회장님."
"계획했던 거 진행해."
"…알겠습니다."
왕룽은 그 계획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음을 직감하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 * *
지난밤 베이징의 외곽에 자리한 고급 주택 하나가 전소되는 화재가 일어났다.
신고를 받은 베이징 소방서에서 부리나케 출동하여 불길을 잡아봤지만, 기름이라도 부은 건지 불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겨우겨우 진화를 마쳤을 때, 안에서 불에 새카맣게 타버린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치아 기록을 대조해보니 집주인이었던 왕룽으로 밝혀졌다.
공안에서는 불이 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왕룽의 집에서 일하던 고용인들을 불러모았다.
장시간 심문이 이어졌다.
고용인들은 하나같이 불이 나던 날 밤, 왕룽이 혼자 있고 싶다며 자신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줬다고 진술했다.
전일 낮에 왕룽에 대한 마약 파티 폭로 기사가 나왔던 점에 주목한 공안은 당국으로부터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될 걸 두려워한 왕룽이 비관적 선택을 한 거로 결론지었다.
신진 그룹 왕원 회장이 충격에 쓰러졌다는 소식이 기사로 전해졌고, 왕씨 일가는 애도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3대 파벌 중 하나인 홍청단으로선 당내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다.
몇몇 단원들은 아무리 왕룽이 죽었다고 해도 진상을 밝혀내어 신진 그룹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자당의 자금줄 중 하나인 곳이니 자신들 쪽으로 돌아서게 만들면 당내 입지가 전에 비할 바 없이 커질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홍청단의 수장인 중앙서기처 서기는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간 서로 죽고 죽이는 숙청으로 이어진다며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아무리 파벌이 나뉘었다고는 해도 같은 공산당인 만큼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 일로 홍청단은 신진 그룹으로부터 상당한 정치자금을 뜯어낼 수 있었다.
중국 네티즌은 그간 왕룽이 저질러온 죄상이 하나씩 밝혀지자, 잘 죽었다며 고소해하는 한편, 연로한 왕원 회장이 자식의 일로 쓰러졌다는 말에 동정하는 이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혹자는 불에 타죽는 게 가장 고통스러운 만큼 자살의 방법으로 사용했을 리 없다고 주장하며 왕룽의 분신에 의문을 품었지만, 앞선 두 여론의 물결에 금세 묻혔다.
왕룽의 마약 파티를 터트린 이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일단락될 무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 차량 한 대가 압록강을 건너 본국으로 들어섰다.
그 차량 뒷좌석에는 늦봄의 따듯한 날씨인데도 모자와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풍채가 커다란 남성이 타고 있었다.
* * *
"일이 참 묘하게 돌아가네요."
- …그러게나 말이에요.
여론을 쉽사리 잠재우지는 못할 거로 여겼지만, 이렇게 극적인 엔딩을 맞이할 지는 현시운도 예상하지 못했다.
"왕룽이 분신자살을 했다…."
그렇게 심약해 보이는 자는 아니었는데.
각국 외교부의 날이 바짝 선 반품과 피해 보상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가 아니었던가.
쉽사리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긴….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금고형을 당하는 게 아니니까.'
사형.
실현 가능성은 낮았지만 말이다.
근데 당사자가 지레짐작하고 자살을 택해 버렸으니….
"헬렌, 고생 많았습니다."
- 아닙니다. 고생은요.
헬렌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아무리 마약 파티를 폭로한다 해도 왕룽은 중국 5대 재벌 가의 자제.
그녀 역시 시운과 마찬가지로 사형 집행이 되지는 않을 거로 추측했었다.
신진 그룹에서 당과 적당히 협의를 볼 테니까.
추방령 정도가 헬렌이 생각한 처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너무 다르게 나와버렸다.
이번 일을 자신의 실적을 올릴 기회로 여겼던 헬렌으로선 입맛이 참 쓴 결말이다.
물론, 그녀는 신진 그룹의 주가 하락을 이용하여 실적을 쌓기는 했다.
공사 구분이 철저한 그녀답게 말이다.
헬렌과의 통화를 끊은 시운은 말없이 창가로 가서 섰다.
"……."
무심코 바깥을 바라보던 시운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필이면 햇살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신경질적으로 블라인드를 내린 시운은 책상 앞에 걸터앉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정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했다.
그간 보인 왕룽의 행동과 결과가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잔여 정보 이용권 : 10장]
저도 모르게 손가락은 유레카 앱을 실행시켜버렸다.
"흠…."
사실 여부 확인과 10억 원의 정보 이용권 한 장.
"쯧!"
결국, 호기심이 물욕을 이겼다.
어쩌면 자살이 아닌, 타살이 아닐까 싶어서다.
가문의 수치를 이번 기회에 치워버리려는 왕씨 일가 내 누군가의 소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게 시운의 짐작이었다.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나온 결과.
"하, 하하…."
실소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왕씨 일가 내에서의 타살 의혹?
시운의 짐작은 진실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2021년 5월 11일 오전 3시 26분, 중국 베이징 외곽의 왕룽 자택에서 일어난 불로 사망한 이는 왕룽이 아닌 주타오입니다. 왕룽의 치아 기록과 일치하게 시술을 받은 주타오는 신진 그룹으로부터 오백만 위안의 보수를 받아 가족에게 전하고 자진하였습니다.]
시운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지금 뭘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하며, 유레카 검색 결과를 읽고 또 읽었다.
여태껏 유레카가 자신에게 거짓을 알려준 적이 있었나?
천만에!
그렇다면…, 결과로 나온 내용이 진실이란 소리다.
유레카에 따르면, 대외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죽은 이는 왕룽이 아닌 주타오라는 남성이었다.
"그럼 왕룽은?"
정보 이용권이 한 장 더 소진되며 왕룽의 정보를 시운에게 알려왔다.
"…북한?"
왕룽은 버젓이 살아 북한의 평양에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한 장의 이용권을 더 사용하면서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
결국 왕원 회장의 실신도 국민과 정부를 속이기 위한 쇼였을 뿐이다.
"대륙, 대륙 하더니…. 참나!"
절로 기가 찼다.
사람을 사서 왕룽의 자살로 위장하다니.
한 사람의 무고한 죽음과 이를 사주한 이들.
치가 떨려왔다.
동시에 이 정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
바로 까버릴까?
도의적으로는 그게 맞겠지.
하지만, 그런다 해서 자신에게 무슨 득이 될까?
타국의 일이다.
죽은 주타오라는 남성 역시 자신의 생명을 놓고 신진 그룹과 거래를 했다.
거기에 끼어들어 분탕을 치려면 그럴만한 당위성이 필요하다.
표절 소송?
왕룽의 범죄 행위 덕분에 소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다음 주 드라마 방영분부터 금지 처분을 법원으로부터 이미 받아냈다.
지금 얻은 이 패는 당장 사용한다 해도 아무 소득이 없다.
"묵혀둘까?"
예전 신정문 회장의 비자금 내역처럼 말이다.
비록 타국이지만, 이게 터지면 삼정의 경우보다 일이 커지면 커졌지 결코 작지는 않을 거다.
"흠…."
향후 대 중국 사업을 진행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움켜쥔 신진 그룹의 치부는 커다란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시운은 왕룽에 대한 진실을 한동안 숨기기로 했다.
* * *
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보이는 갈색 머리의 중년 남성이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모니터 위에 부착된 화상 카메라였다.
"지난번 지시하신 맥 컬리 상원의원의 포섭은 장로님께서 원하시던 대로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춰 보고를 이어나갔다.
정치계부터 시작된 내용은 정부가 주도하는 국경 정비 사업의 진행 상황까지 이어졌다.
"…로 예정되어있습니다."
카메라 맞은편의.
모니터 화면 가득히 나와 있는, 검은 두건을 쓴 장로라 불린 인물은 가만히 듣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순조롭군. 그 외의 특이사항은 없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삼 장로님."
남성은 한차례 갈등했지만, 어색하지 않게 말을 끝맺었다.
- 알겠네. 그럼 다음 정기보고 때 보도록 하지.
핏!
삼 장로의 그 말을 끝으로 화상통화는 끝났다.
"흠…. 한국의 그 회사 건은 아직 말씀드리기 이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성.
그의 책상 앞에 놓인 명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글 CEO 해리 페이퍼]
그는 고글의 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