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83화 (83/139)

§083화 치사한 짓(1)

"그 회사 이름이…, 뭐였더라?"

워낙 맡아서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여러 차례 들었음에도 헷갈렸다.

해리 페이퍼는 마우스를 움직여 전에 받은 자료를 클릭했다.

"그래, 맞아. 넥스트."

대략적인 회사 약력 아래로 넥스트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 나열되었다.

사업장 소재지부터 직원 수에 주주 현황, 사업 진행 상황까지.

이국의 기업 정보를 이토록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넥스트가 상장된 회사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있든지 알려고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취득할 수 있을 정도로 해리가 속한 비밀 단체의 힘은 대단했다.

스윽-

해리는 왼쪽 팔뚝을 지그시 눌렀다.

슈트와 셔츠 아래 자신도 그 일원이라는 징표가 새겨져 있다.

전도유망 했지만, 일개 컴퓨터 공학도였던 자신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일약 세계 10대 부자의 반열에까지 올라섰을 정도다.

"아니, 10대 부자는 무슨…."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거부는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그것도 비밀 단체 내에 말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을 살짝 엿본 느낌이랄까?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절실히 통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목표도 생겼다.

지금처럼 일반 단원이 아닌, 일곱 자리밖에 없다는 비밀 단체의 최고위 간부가 되는 것.

방금 화상으로 얘기를 나눴던 삼 장로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부를 쌓아야만 한다.

비밀 단체, 우로보로스.

그곳에선 돈이 곧 서열이다.

만족을 몰랐던 신화 속 뱀과 같아져야 한다.

끊임없이 부를 추구해야 정상이 겨우 시야에 들어올 정도니까.

그 위를 밟으려면 더 치열해져야만 했다.

"흠…."

해리는 넥스트의 정보를 열람하며, 얼마 전 조셉 테이슨이 열변을 토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 획기적입니다! 이걸 얻는 기업이 미래의 시장을 주도할 정도라고요. 해리!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기술을 가져와야만 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신뢰하는 조셉이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허황한 공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설명 외에 정확한 자료가 필요했고, 우로보로스를 통해 입수했다.

확인했고, 또한 전율했다.

실제처럼 느껴지는 가상현실.

이게 뜻하는 바는 명료했다.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어느새 고전 영화가 되어버린, 1999년 작 '네트워크'.

그 영화에 나왔던 가상현실 세계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상하이 국제 IT 박람회에서 선보인 콘텐츠의 수준을 봤을 때, 넥스트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한 발짝 뗐을 뿐이다.

물론 그 한 걸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만들어내려면 무수한 시행착오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다.

모기업인 미래증권이 70억 달러 가치의 우량기업이라고 해도 원활한 지원은 쉽지 않겠지.

아래로 딸린 회사가 넥스트 하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해리가 판단하기로는 지금의 속도라면 상용화까지 대략 8~10년 정도?

하지만, 고글이 인수하여 단기간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는다면?

예상되는 개발 기간을 절반 가까이 단축할 수 있다.

5년 안에 전대미문의 가상현실 콘텐츠가 세상에 선보인다?

그건 곧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말이다.

또한, 자신의 부가 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려면 우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지."

해리는 언젠가 조셉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키폰의 호출 버튼에 비서가 응답했고, 해리는 조셉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넥스트 기술 매입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몇 분 뒤, 노크와 함께 조셉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조셉. 거기 앉지."

"네."

소파로 자리를 옮긴 해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되어가나? 넥스트의 기술 건 말이야."

"그게…."

어두워지는 조셉의 표정에서 해리는 듣지 않아도 답을 알 것만 같았다.

"지금 얼마까지 불렀다고 했었지?"

"…네. 지난주에 500억 달러까지 제안했었습니다."

"500억 달러라…."

한화로 55조도 넘는 돈이다.

그걸 마다한다….

"이번에도 그자가 거절한 건가? 모기업의 대표라는?"

조셉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넥스트 한진형 대표가…."

"아, 그 지분 20% 정도 들고 있다는?"

"…네."

조셉은 그런 상세한 것까지 보고한 적이 있었나 싶어, 살짝 의아해했다.

이를 눈치챈 해리는 재빨리 다른 화제를 꺼냈다.

"자네가 보기엔 어때?"

"뭘 말씀하시는 건지…."

"얼마까지 불러야 그쪽에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은가?"

"……."

조셉은 상하이 박람회장에서 마주했던 현시운을 다시 떠올렸다.

- 1조 2천억 달러. 그 외의 조건은 없습니다.

작년, 고글의 시장가치만큼을 요구했던 그였다.

수백억이 아니라 수천억 달러를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을 위인이다.

"얼마를 불러도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예 팔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흠…, 그래?"

박람회장에서 퇴짜를 맞고, 해리에게 도움을 청할 때만 해도 가격 조건만 올리면 기술 매입에 큰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셉은 현시운이 가격을 올리기 위한 수작으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른 게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새삼 돌이켜보니 그때의 현시운은 진심이었다.

힘없이 늘어진 조셉의 모습에 해리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않나. 조셉, 자네가 말한 대로라면 그 기술이 향후 고글을 먹여 살릴 미래의 원동력이야. 계속 협상을 시도해보게."

"…네, 해리."

"그래. 그만 나가서 일 봐."

자신의 격려도 별 소용이 없는지 문을 열고 나가는 조셉의 발걸음이 무겁다.

그걸 지켜본 해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렵다는 건가?"

그렇다면…, 다른 수를 고려해야겠지.

해리는 넥스트의 기술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치사한 짓을 좀 해야겠군."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든 해리는 자신의 단축번호 중 하나를 꾹 눌렀다.

액정 위로 수신자의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찍혔다.

[+0082010…]

82는 대한민국의 국가번호다.

몇 번의 신호음 뒤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네, 보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미스터 박. 잘 지내지?

- 덕분에 무탈합니다.

해리가 전화를 건 이는 고글 코리아 대표인 박성원이었다.

* * *

타악!

이태원 바를 찾은 더그 베이커는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세게 내려놓는 글라스에 마주 선 바텐더가 눈꼬리를 찌푸렸다.

"한 잔 더."

더그는 비어 있는 잔을 가리켰다.

바텐더는 처음에 보였던 영업 미소마저 지운 채, 그의 잔에 독한 보드카를 채웠다.

잔이 차기가 무섭게 더그는 다시 내용물을 비워냈다.

속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그의 얼굴이 붉게 익어갔다.

"쳇!"

짜증스럽다는 듯 인상을 쓴다.

올라오는 취기에도 그의 정신은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반추했다.

고글에서의 제안.

무려 500억 달러를 기술 매입 가격으로 제시했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절친인 마이클과 함께 실리콘 밸리의 허름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봉 삼백만 달러를 받으며 집과 자동차까지 지원을 받는 나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자신이 느끼기에도 고글이 제안한 500억 달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

자신에게 넥스트의 지분이 전혀 없었다면, 그건 그냥 그림의 떡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달에 있었던 상하이 국제 IT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한진형은 그간 고생한 개발진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여 일정 지분씩 나누어줬다.

마이클과 더그가 개발한 컨트롤러 인터페이스 역시 리얼 월드를 구현하는 핵심적인 기술인 만큼 넥스트 총 주식의 0.5%에 해당하는 지분을 받게 되었다.

0.5%.

무척 보잘것없는 수치인 것 같지만, 고글이 제시한 500억 달러를 여기에 대입해서 계산해보면 그 가치는 확 달라진다.

무려 2억 5천만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2,800억 원에 가까운 돈이다.

"그 돈이면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데…."

아니, 평생이 뭔가.

이자만으로 생활해도 몇 대는 놀고먹을 수 있을 거다.

'그걸 왜 거절하는 건데!'

예전 자신과 마이클을 스카우트하러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었던 현시운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자 때문에 자신은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놓쳤다.

고글이 언제까지 제안을 계속 해올지 모르나, 현시운과 한진형은 기술을 넘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제기랄!"

더그는 홧김에 또다시 잔을 테이블에 강하게 내리쳤다.

그에 더는 못 참겠는지 바텐더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여긴 혼자만 술을 마시는 공간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남들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은…."

탁!

더그는 바텐더의 잔소리를 들을 마음이 없었다.

지갑에서 대충 수백만 원의 돈을 꺼내 보란 듯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

바텐더의 표정이 굳어갔지만, 더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취기도 충분히 올랐겠다, 그만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더그는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며 출입구로 향했다.

툭-

그러다 마주 오는 누군가와 어깨를 세게 부딪혀 균형을 잃었다.

"어어…."

막 옆으로 넘어지려는 찰라, 상대방이 재빨리 더그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What the f…."

나직이 욕을 뱉으려는 찰라, 그보다 한발 먼저 상대가 말을 걸었다.

"더그 베이커 씨?"

"…날 아쇼?"

"그럼요."

취한 더그를 향해 환히 웃는 사십 대의 남성은 바로, 해리로부터 밀명을 받은 고글 코리아의 대표 박성원이었다.

"긴히 드릴 말이 있는데,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제가 잘 아는 가게가 있습니다."

낯선 이의 심상치 않은 말과 행동에 더그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누굽니까, 당신?"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박성원은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어 더그에게 내밀었다.

"고글 코리아의 대표로 있는 박성원입니다."

"…고글?"

"네. 베이커 씨에게 도움이 될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고글의 로그가 선명히 찍힌 명함을 확인한 더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현시운은 출근하자마자 한진형의 방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언제라고요?"

시운의 물음에 그룹 비서실장 권지환이 곧은 자세로 서서 답했다.

"30분 전에 판교 사무실에서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9시 반쯤 도착할 예정입니다."

시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 의아해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예정에도 없는 면담을 요청한 거지?

급한 일이면 전처럼 자신에게 바로 연락해도 됐을 텐데….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한진형답게 그룹 비서실을 통해 알려왔다.

못내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룹 내 위계질서를 위해선 한진형의 행동이 옳다는 데는 공감한다.

똑똑-

전날 올라온 결재서류를 확인하던 시운은 9시 20분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한진형이 도착한 것이다.

근데…, 방문자는 한진형 혼자가 아니었다.

시운의 시선이 그의 옆에 서 있는 외국인을 향했다.

"마이클?"

"…미스터 현."

시운의 부름에 붉은 머리를 한 백인 청년, 마이클 셰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숙였다.

"무슨 용건인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자리에 앉아서 얘기 나누죠."

둘의 심각한 표정으로 미루어 심각한 일임을 직감했다.

시운은 한진형과 마이클을 소파로 안내했다.

"미스터 현…, 아니 회장님. 제발 더그의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마이클은 자리에 앉자마자 침통한 얼굴로 시운에게 부탁했다.

"더그를 용서해달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최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시운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한진형을 돌아봤다.

한진형 역시 어두운 기색으로 입술을 어렵사리 떼어냈다.

"더그가 넥스트의 기밀을 유출해 가려 한답니다. 마이클이 오늘 아침 일찍 절 찾아와서 알려줬습니다."

시운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갔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이클을 똑바로 마주하는 시운의 눈에 분노가 조금씩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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