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88화 (88/139)

§088화 이이제이(2)

- 미하일 르빈을 이용해봐.

- …네?

김현석의 결혼 발표가 있던 날, 셋은 현시운의 고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 와중에 강하민의 입에서 고글의 공동창업주이자 현재 위튜브의 CEO인 미하일 르빈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 아, 나도 얼핏 기사를 본 적이 있어. 예전에 해리 페이퍼와 고글 CEO 자리를 두고 그렇게 신경전을 벌였다며?

김현석의 말에 강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 한때는 절친이었지만, 지금은 라이벌을 넘어서서 아주 앙숙이야. 안에서 둘을 싸움 붙이면 넥스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 같은데?

- …….

맞는 말이다.

역사상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제국들도 외부보단 내부의 분열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지금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사자성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저도 모르게 나직이 중얼거렸는데 그걸 들은 강하민과 김현석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흘렸다.

- 맞는 말이네. 이이제이.

- 마치 무슨 작전명 같군.

그렇게 해리 페이퍼의 최대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하일 르빈의 포섭에 들어갔다.

안 그래도 자신을 지지해줄 세력이 필요했던 미하일로선 쌍수를 들고 반길 상황.

시운은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스피어의 대런 체스터를 움직였다.

어렵지 않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협상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사전에 미하일에 대해 알아본 시운은 그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무언지 간파해놓은 상태였다.

해리 페이퍼가 앉아있는 고글 CEO 자리를 뺏는 것.

그걸 위해선 3% 이상의 고글 지분이 더 필요하다.

40조 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한 일이다.

기존의 스피어, 블레스, 티엔유에 최근 새로이 설립된 지크, 폰스, 벨로스의 자산을 다 합쳐도 그만한 돈은 없다.

미래증권의 운용자금까지 긁어모은다면 겨우 가능은 하겠지만, 이미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투자처가 많아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시운은 이번 일에 미래증권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숨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숨기자는 게 그의 생각.

알려진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시운의 방침은 그러했다.

결국, 자금 마련 대책으로 시운은 해외투자법인이 지금까지 고수해온 자기자본 투자방식을 버렸다.

미래증권처럼 타인자본 유치를 허용한 것이다.

새로 생긴 세 해외법인은 몰라도 이미 2년간 높은 실적으로 각국 투자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스피어, 블레스, 티엔유다.

세 곳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어렵지 않게 필요 자금을 확보한 세 곳은 시운의 지시에 따라 고글 주식의 매수에 들어갔다.

최대한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그래서 해리 페이퍼가 눈치채지 못하게 분할 매수에 힘쓴 결과, 한 달 후 목표로 했던 3% 이상의 주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젠 미하일 르빈이 약속대로 움직여줄 차례다.

* * *

"음….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죠."

대런 체스터와의 통화를 마친 미하일 르빈은 핸드폰을 종료시키며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

그토록 원하던 고글 3%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였다.

미하일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위튜브 CEO란 명패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해리…. 서로의 자리가 바뀔 때가 되었군."

투자 전문회사 스피어의 대표라면서 대런 체스터가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게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미하일은 처음엔 그가 사기꾼인 줄 알았다.

손대는 투자마다 높은 수익을 내다보니 미국 내 슈퍼 리치 사이에서 스피어는 제법 유명했다.

그러나 서른 후반의 젊은 나이인 대런이 그곳의 대표라는 말은 쉬이 믿기 힘들었다.

실제 고글을 창업하고 벼락부자가 된 후,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실제 스피어의 대표인 대런 체스터임을 확인하였고, 그의 제안을 들은 미하일은 몹시 구미가 당겼다.

- 저희가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닙니다.

해리 페이퍼가 진행하고 있는 한국 인앱 결제 수수료 인상안의 전면 철회.

최근 한국의 IT 업체에 대거 투자하고 있는데 고글의 방침 때문에 손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달 있었던 임원 회의에서 미하일의 예상대로 해리가 내놓은 안건은 무사통과되었다.

물론, 10% 인상은 무리라는 판단에 5%로 낮추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하일은 자신의 위튜브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려는 해리의 수작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한국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대런 체스터의 방문으로 그게 다가 아님을 직감했다.

사람을 시켜 조사했고, 해리가 노리는 걸 알게 되었다.

넥스트란 한국 기업에서 개발한 IT 신기술.

미하일이 보기에도 분명 놀라운 기술이다.

향후 미래의 IT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도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고글의 CEO 자리만큼 중요하지는 않지."

대런의 제안을 미하일은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늘, 해리를 CEO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지분율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미하일은 칠 장로와의 화상통화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수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상대방이 화상통화에 응했다.

이윽고 모니터 화면 가득 칠 장로의 모습이 비쳤다.

- 정기 보고 때도 아닌데 연락을 한 걸 보니 전에 말한 그 일 때문인가?

중세 시대 수도승처럼 긴 후드를 눌러쓴 칠 장로의 물음에 미하일은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네, 칠 장로님. 그쪽에서 3%의 고글 지분을 확보했다고 조금 전 연락이 왔습니다."

- 흠…. 분명 희소식인 건 맞으나,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지. 고작 수수료 인상안 철회가 목적이 아닐 수도 있네.

칠 장로의 우려 섞인 말에 미하일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시운이 대런 체스터를 움직인 의도와는 달리 미하일은 스피어를 비롯한 투자법인들이 미래 그룹과 연관이 있음을 이미 간파했다.

아니, 정확히는 미래 그룹의 회장인 현시운 개인과 관련 있음을 말이다.

강하민의 도움으로 하와이에 세운 G&H Property의 법인계좌가 아무리 고객 보안에 철저한 'Bank of U.S.A'라 할지라도 우로보로스의 치밀한 정보망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로보로스는 필요하다면 미국 CIA에서 특급으로 다루는 기밀도 빼낼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막대했다.

미하일은 그 힘을 이용했고, G&H Property를 통해 만들어진 투자회사가 총 여섯 곳이란 것도 확인하였다.

불과 2년 만에 초기 투자금 대비 천 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미하일이 느낀 놀라움은 무척 컸다.

칠 장로 역시 그 점을 눈여겨보며 미래 그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좋은 기회이지 않겠습니까. 숨은 의도야 어쨌든 그들의 요구 조건은 들어주는 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차후 본색을 드러낸다 해도 대응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 흐음….

아직 실체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서 칠 장로는 걱정이 앞섰다.

고작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그만한 부를 이뤘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쩌면 자신의 경쟁자인 다른 여섯 장로 중 누군가가 몰래 안배해놓은 걸지도 모르지.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현시운이라는 자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겠지. 아니면….'

하나의 가능성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칠 장로는 애써 부정했다.

실상이 어찌 되었든, 지금 상황은 미하일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당장 그곳의 제안대로 따르면 고글의 CEO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놓치기 아쉬운 기회임은 분명하다.

잠시 궁리하던 칠 장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하일이 원하던 답을 주었다.

- 자네 뜻대로 진행하게. 이쪽에서도 전력으로 서포트하지.

"감사합니다, 칠 장로님."

화상통화가 끝나고, 미하일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이번에는 기필코 정당한 자신의 자리를 손에 넣겠다고 새삼 다짐해본다.

다음 달 중순에 임시주주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전반기 사업 실적과 하반기에 진행되는 굵직한 사업들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

미하일은 그 자리에서 해리 페이퍼의 CEO 해임안을 진행할 생각이다.

16%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 안건을 상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마 이 소식은 금방 사내에 알려질 테고, 임시주총이 열리기 전 3주 남짓의 시간 동안 해리 측에서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릴 테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다.

자신 역시 칠 장로의 지원을 받아 빠른 시일 내에 지분 확보에 나설 생각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일상적으로 사고파는 유동 주식을 가져오는 방식이 될 테니, 각 진영에서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은 미미할 것이다.

미하일이 노리는 건 주식 수를 늘리는 게 아니다.

해리 측과의 지분 차이 2.9%를 임시주총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것.

그게 그가 원하는 상황이다.

자신의 노림수대로만 된다면?

이번에 확보한 스피어 외 투자회사의 지분 3%가 CEO 자리 탈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게 분명했다.

미하일은 일찌감치 승리를 확신하며 히죽 웃었다.

그날 오후, 미하일 르빈은 정식 안건으로 CEO 해임안을 올렸다.

* * *

3주 뒤에 있을 임시주주총회에 자신의 해임안이 안건으로 상정되었다는 소식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해리 페이퍼의 귀에 닿았다.

그는 한때 절친이었던 미하일의 성격을 잘 알았다.

아무 승산도 없는 싸움을 걸 녀석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전후 사정을 면밀히 조사시켰다.

그리고 스피어를 비롯한 타국의 투자회사가 고글 지분 3%를 확보했으며, 미하일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현시운…!!"

근래에 자주 듣는 이름이다.

해리는 곧 삼 장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고글 주식 매입을 서둘렀다.

그와 동시에 고글 코리아 박성원 대표를 미래 그룹에 보내 자기 뜻을 전달하게끔 했다.

"……."

현시운은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본사를 찾은 박성원의 방문을 거절할까 하다가 그냥 맞아들였다.

어떤 제안을 할지 궁금해서였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그와 마주 앉은 시운은 묵묵히 박성원의 말을 들었다.

"무슨 연유로 미하일 르빈 대표와 손을 잡으셨는지는 모르나, 원하시는 바가 있으면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시운의 입가가 위로 말렸다.

"이유를 모르신다?"

"…네."

시운은 히죽 웃으며 몸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고글의 인앱 결제 수수료 인상안 발표와 그 원인이 우리 그룹에 있다는 소문이 그저 우연이라는 말씀입니까?"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안이 내부 직원의 실수로 알려졌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런 루머를 퍼트린 이의 생각을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루머성 게시글이 돌아다닐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이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믿지 않아 했다.

눈앞의 박성원이 마치 때를 맞춘 듯 인터뷰 기사를 내지만 않았으면, 그렇게 여기고 흘러갔을 일이었다.

"그런 오해 때문이라면 당장이라도 결제 수수료 인상안을 백지화하겠다고 해리 페이퍼 대표님께서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흐음, 그래요?"

"그렇게 되면, 루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옅어질 테고 미래 그룹을 비난하는 글도 사라질 겁니다."

선심 쓰듯 말하는 박성원의 태도에 시운은 어이가 없었다.

"제가 전에 전화상으로 분명히 말씀드렸었죠?"

"네? 무슨…."

"분명 들으셨을 텐데요. 개 같은 짓거리 언제까지 통하는지 두고 보자고."

"…오해를 하고 계신 듯한데, 그때도 그렇지만 이번 일도 고글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박성원의 모습에 시운은 비릿하게 웃었다.

"근데 어떻게 아셨죠?"

"네?"

"고글 지분 3%를 확보한 스피어, 블레스, 티엔유 세 투자회사가 저와 연관이 있다는 걸 말이죠."

"그야…."

박성원도 그 연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해리로부터 연락이 와서 자초지종만 듣고, 현시운을 설득하려 이곳을 방문했으니 말이다.

그는 해리 페이퍼의 충실한 수족 중 한 사람일 뿐, 비밀 단체 우로보로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스위스의 비밀금고를 제하면 세계적으로도 보안에 뛰어나다는 'Bank of U.S.A'를 이용해서 투자한 회사들인데…. 거래 내역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몹시도 궁금하군요."

"……."

박성원도 'Bank of U.S.A'의 철저한 보안에 대해서는 들어봤었기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 했다.

그를 보며 시운은 말을 이었다.

"해리 페이퍼 씨에게 전해주세요. 세 투자회사와 제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그걸 알려준다면 그쪽의 제안을 생각해보겠다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그렇게 둘의 만남은 일단락되었다.

박성원을 배웅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은 시운은 한참을 생각하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쪽에서 순순히 불 리가 없지."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몰라도 분명 합법적이지는 않을 거다.

제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걸 해리 페이퍼가 과연 고분고분 말해줄까?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자신에겐 유레카가 있다.

아무리 숨기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밝혀낼 수 있다.

시운은 바로 유레카 앱을 실행시켰다.

잠시 후, 기본 화면이 액정 위로 떠 올랐다.

[잔여 정보 이용권 수 : 9장]

지난번 신진미디어의 왕룽 사건 이후로 정보 이용권이 열 장 이상 모이지 않는다.

독일, 스위스, 싱가포르에 새로이 설립된 투자회사의 성공적인 투자 운용을 위해 꾸준히 쓰고 있는 까닭이다.

"……."

고작 이런 일에 정보 이용권을 쓰는 게 무척 아쉽기는 했지만, 적을 제대로 알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시운은 곧 이번 일에 대해 검색을 진행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

"우로보로스…?"

신화 속에 나오는, 자신의 꼬리를 문 뱀.

만족을 모르는 존재의 이름을 딴 비밀 단체를 시운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0